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58)화 (158/164)

158화. 

에이든의 말에 우리 측은 소리 없이 웃었고 차이나 측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마, 마사지용이라니요! 그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네, 말 됩니다.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이런 마법도 얼마든지 실생활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요. 방금 만들어진 윈드 에로우의 끝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요.”

아직 소멸하지 않은 작은 윈드 에로우의 끝을 본 차이나 측은 대번에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겉모습이 날렵하게 변했다고 한들 끝부분은 날카롭지 않았다. 뭉뚝한 끝부분은 살상용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라피가 간혹 저걸 이용해 제 어깨와 몸을 마사지해 주는데 정말 효과가 좋습니다. 우리 라피의 마법 마사지를 받으려고 가족들이 순번을 정할 정도지요.”

이 와중에도 아빠는 깨알 자랑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든 게 능력 있는 딸 가진 자의 여유였다.

“크흐흠, 역시 판테르 양이 말한 대로 바람의 정령사가 개입을 한 것이로군요.”

“네, 그리고 저를 공격한 화살 역시 바람의 정령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본디 화살은 포물선을 그리지만, 저를 공격한 화살은 일직선이었지요.”

내 말에 순간 뒤에 있는 아빠와 미네르바의 시선이 매우 날카롭게 변했다.

“감히 내 딸을 해치려고 정령사까지 이용하다니,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사돈, 걱정하지 마시지요. 우리 포슬포슬한 백설기와 아들놈이 원한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습니다.”

투두둑- 관절 꺾기를 하며 뒤에서 음산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아니 이 안에 있는 이들 중에 못 들은 이는 별로 없을 정도로 아빠와 미네르바는 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판테르 공작님, 루피노 공작님, 진정하시지요. 여긴 화평을 논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화평이 끝난 후에 감정 정리하실 시간을 가지는 것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결론은 회의가 끝난 후 저들을 어떻게 요릴 하든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로 아빠와 미네르바가 저들을 직접 손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순히 협박용일 뿐이었다.

“드라코 공작님, 만일 정령사가 개입할 시 어떤 처벌이 이뤄지는지 아십니까?”

저걸 루카스가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지만, 드라코 공작은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했다.

“대륙법상 전시에 정령사의 개입을 금한다. 만일 이 일을 어겼을 시엔 승전국 측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두 배로 배상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는군요. 막시밀리언 차이나 황태자님, 이젠 배상금으로 왈가왈부할 게 아니라 배상금 지급 시기를 논하도록 할까 합니다만.”

“으윽…….”

“우린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그러니 기한은 한 달 내로 할까요?”

“그, 그건 너무 촉박합니다.”

배상금이 아니라 배상 시기를 조율했고 일 년 내로 지급하기로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차이나 측이 비척비척 일어나 퇴장하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밖으로 나왔다.

“바람의 정령사를 쓰고도 지는 것도 용하다면 용하네.”

“만약 라피가 없었으면 지는 것은 우리였을 거야. 역시 나의 라이벌은 너무 대단해서 탈이라니까. 라피, 그러지 말고 마법계의 무사 안녕을 위해 나랑 결혼하는 건…….”

파이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몇 개의 검이 녀석의 목에 겨눠졌다. 마치 목걸이의 매달처럼 주렁주렁 달린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찬란하게 빛이 났다.

“미쳐도 네놈에게 우리 라피를 줄 수 없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저놈이 낫다.”

“모르간 후작 영식은 목숨이 두 개라도 되나 보군.”

“라피가 목숨을 살려 줬으면 납작 엎드릴 것이지, 장난하나.”

아빠와 미네르바 그리고 씨엘이 언제 잡은지도 모를 검을 파이퍼에게 겨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절대 겁먹지 않았다.

“이런 것으로 겁먹기엔 제가 어린 시절에 산전수전을 다 겪어서…… 그나저나 좀 치워 주시지요.”

“같은 편끼리 분란 일으키지 말고 날붙이는 치워 주세요.”

방긋 웃는 파이퍼의 말에 꿈쩍하지 않은 검이 내 말에 회수되었다. 굳이 마법탑의 후계자를 건드려서 좋을 건 없었다.

“역시 우리 라피는 참 다복해 보이는구나.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건 알아. 하지만 라피에겐 져도 상관없어. 아쉽다. 내가 먼저 라피랑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뭐라는 거야. 됐고 얼른 가기나 나. 나도 이젠 짐 꾸려야 하니까 바…….”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막사로 돌아가 짐을 꾸리고자 한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파이퍼의 입술이 내 볼에 닿았기 때문이다.

“이건 그간 수고했다는 인사야.”

말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씨엘이 있는 곳에서 볼 키스를 할 게 뭐란 말인가. 친한 사이면 인사차 으레 하는 볼 키스였지만, 씨엘의 두 눈이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너 이 자식, 감히 누구 볼에 입술을 비벼.”

타오르는 눈길과는 달리 목소리가 너무나 냉랭했다. 그만큼 화가 많이 난 상태인 씨엘이 기어코 회수한 검을 꺼내려고 했지만 파이퍼는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곧장 워프를 사용해서 그 자리를 피했다.

“라피, 얼른 소독하자.”

씨엘이 말하는 소독 방법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항상 누군가의 손길이 닿으면 그곳을 가칠한 혀로 할짝이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씨엘이 내 곁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아빠가 가로막더니 손수건으로 볼을 북북 문질렀다.

“이 정도면 소독은 다 되었다. 후우, 모르간 후작은 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기에 감히 남의 딸 볼에…… 아버님께 말씀드려서 마법탑을…….”

“쓸어 버리는 건 안 돼요.”

“그럼 반…….”

“반만 쓸어 버리는 것도 안 돼요. 그간 파이가 내게 준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요.”

마법탑과 황제 사이에 뭔가 말이 오가기라도 하면 파이퍼가 내가 연락을 해 줬다. 그렇기에 마법탑과 티그리스가 교류하지 않아도 파이퍼 덕분에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다. 그런 내 훌륭한 정보원을 볼 키스 때문에 잃기는 싫었다.

“라피가 괜찮다고 했으니 이만 넘어가고, 우린 얼른 집으로 돌아가죠. 언제까지 우리 포슬포슬한 백설기를 이런 험한 곳에 둘 것입니까.”

굳이 나와 씨엘이 군사를 수습해서 사하라까지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기에 아빠와 미네르바는 루카스에게 허락을 받아 기나긴 행군을 기다리고 있던 나와 씨엘을 데리고 곧장 가까이에 있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가까이란 게 이틀 거리에 있는 도시였지만 말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곧장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아빠와 미네르바의 괴물 같은 체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였다.

“에이든은?”

“티그리스 가문의 대표로 남았단다. 그러니 조카는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찹쌀떡이나 신경 쓰거라. 너무나 홀쭉해져서 에리카와 유진이 우리 라피를 못 알아볼까 무섭구나.”

그 정도로 살이 빠지진 않았다. 하지만 보급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집에서 먹는 음식과는 똑같을 수가 없었다. 전쟁터라 그런지 먹어도 허기지는 느낌에 또 먹고 싶었다. 하지만 마법사라는 특혜는 전쟁터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씨엘이 근처 산으로 가서 작은 동물을 잡아 손질해서 구워 나를 먹였겠는가.

“그런대로 잘 먹은 편이었어요. 씨엘이 야생닭을 잡아 와서 구워 줘서 자주 먹었고요.”

“흐음, 우리 씨엘이 그랬다고? 기특해라. 자고로 사랑하는 사람이 배고파하면 뭐라도 구해 먹여야 진정한 남자지. 그래야 조신한 남자로 여자한테 사랑받는단다.”

예비 시어머니의 독특한 교육관에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빠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상당히 흡족해하는 표정이었다.

제대로 쉬지 않고 이틀을 달려서 간신히 워프 게이트에 섰다. 목적지가 사하라의 공용 워프 게이트라 곧장 이곳을 관리하는 마법사에게 말했다.

“지금 사하라로 이동할 예정이니 준비해 주세요.”

담당 마법사가 곧장 사하라와 통신을 시도했다. 사하라 쪽에서 허락이 떨어졌고, 우린 바로 워프 게이트에 섰다. 그러자 마법사가 마나를 주입했다.

감았던 눈을 뜨자 익숙한 모습이 눈이 비쳤다. 항상 피비린내와 죽음의 향기가 나는 전쟁터에 있다가 깨끗한 동네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가 봄에 이곳을 떠나 왔는데 겨울이 되었네.”

“응, 그러게. 근데 왜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 거죠?”

분명 우리가 올 줄 알았으면 이곳에 가족들이 진을 치고 있을 텐데 아무도 보이지 않자 아빠를 봤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어. 한 번쯤은 이런 서프라이즈가 필요하니 말이다. 루피노 공작님의 저택은 이곳에서 거리가 있으니 사하라에 있는 판테르 공작저에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될까요?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사하라에 오자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이 감길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씨엘을 간호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잔 상태에서 이틀을 쉬지 않고 이동했으니 체력에 한계가 왔다.

얼른 집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며칠간 이불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빠, 피곤해서 그러는데 아빠랑 말을 같이 타면 안 될까요?”

“왜 안 되겠느냐. 당연히 되지. 오랜만에 우리 딸이랑 같이 말을 타겠구나.”

미소 지은 아빠와 함께 말을 탄 나는 몸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피곤함에 연방 하품을 했다. 그러자 아빠가 말을 모는 속도를 늦췄다. 빨리 달리는 말에서 입을 벌렸다가 자칫 잘못하면 혀가 깨물려 잘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집에 가면 푹 쉬자꾸나. 조금만 참으렴.”

“후아암, 네…… 씨엘이랑 같이…….”

“응, 그건 안 돼.”

아빠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옆에 있는 씨엘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씨엘은 나를 지켜 준 기사님인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란다. 저 녀석도 제 딸이 남자랑 잔다고 하면 대번에 날려 버릴 것이다.”

“저는 절대로 그러지 않…… 죄송합니다.”

씨엘의 빠른 사과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내 멈췄다. 피곤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빠의 가슴에 안긴 채 반쯤 졸면서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조용했다. 단지 엉덩이가 들썩일 때마다 잠이 얼핏 깨곤 했다.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탑승감을 참고 있다가 저택이 보이자 가까스로 안도할 수 있었다.

“집에 다 왔단다. 그러니 잠시만 더 정신 차리렴.”

“니에…… 하암.”

연방 하품이 새어나왔다. 기품 있는 공작가의 여식이 해서는 안 될 하품을 했지만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았다. 

“가주님, 루피노 공작님 오셨습니…… 아, 아가씨, 씨엘 님!”

대문을 지킨 기사가 단번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다가 아빠가 조용히 하라는 눈짓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문이 열렸고 곧장 본채로 말을 몰았다.

“어, 어서 오십시오. 모두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젠 나이를 먹어 머리에 흰머리가 생긴 스칼렛이 유독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했다. 우리가 언제 올지도 모르면서 다들 이곳에서 기다리는 중인 듯했다.

아빠에게 안긴 채 말에서 내리자 본채의 정문이 열렸다. 그곳엔 꽃과 온갖 선물을 든 나의 가족이 존재했다. 웃음꽃과 울음이 범벅이 된 이들은 나를 보며 왁- 소리를 지르며 맞이했다.

“오 내 새끼, 어서 오려무나.”

“세상에, 우리 말랑 콩떡이 반으로 찌그러졌네. 얼른 먹을 것을 준비하게나.”

그들을 본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다녀왔어요.”

그다음부터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안도했고, 따뜻했으며 너무나 포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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