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43)화 (143/164)

143화. 

“싫은데.”

“삼촌, 그러지 말고. 삼촌은 좀 더 연애 기간을 갖는 게 어떨까요? 네? 우린 이미 연애만 2년째라고.”

“그게 나랑 뭔 상관? 어차피 삼촌 대우도 잘 해 주지도 않아 놓고 이제야 따박따박 삼촌이라고 부르는 거 봐. 됐고, 우리가 먼저 결혼할 거야.”

다급해 보이는 제이든의 말에 오빠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든이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는 시선을 보냈다.

“흐음, 두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네. 다들 늦게 결혼하는 축이니 말이야. 한데 결혼 날짜가 겹치면 안 되니 합동 결혼을 하는 건 어떠하느냐.”

“그건 절대 결사반대입니다.”

할아버지의 말에 오빠와 제이든이 동시에 외쳤다. 못사는 집안도 아닌데 합동 결혼이라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합동 결혼을 하면 그날의 주인공이 우리가 아니라 삼촌 부부가 돼 버리잖아요. 판테르 공작가의 후계자와 티그리스 가의 차남은 아무래도 좀 차이가 나지 않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이 있습니다. 그날의 주인공은 조슬린만 되었으면 합니다.”

오빠와 제이든의 반대로 결혼 날짜를 조율해야만 했다. 그리고 날짜가 결정되었다. 아무리 오빠가 항렬로 위라지만 나이 많은 제이든이 더 급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애 기간이 긴 쪽에 손을 들어 주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제이든의 결혼은 3월, 그리고 오빠의 결혼은 4월로 결정되었다. 다들 꽃 피는 봄으로 날짜를 잡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봄이야 돈 있는 사람한테나 따스한 날이지, 일반 사람들은 춘궁기라 굶는 이들이 허다할 텐데 결혼식이라…… 그럴 거면 영지민에게 결혼 기념으로 창고를 풀어 주는 건 어떨까요?” 

창고에 쌓여 가는 묵은 곡식을 처리할 때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우리 손녀는 누굴 닮아서 이리도 똑똑할꼬.”

이제껏 가만히 계시던 할머니가 천천히 말씀을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품에 안겨들어 방긋 웃으며 할머니를 닮았다고 말하자 주위는 곧장 환해졌다.

“춘궁기에 곡식을 풀며 결혼 소식을 전한다면 멀리서나마 모두에게 축복을 받을 수 있겠지.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자꾸나.”

“네, 아버님. 저도 라피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이로써 두 가문은 즉시 결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친정 가문엔 일절 걸음을 하지 않고 연락을 끊은 마리엘과 조슬린은 결혼을 할 거라는 언질도 하지 않았다.

* * *

다음 해 3월에 제이든과 마리엘이 먼저 결혼식을 올렸다. 티그리스 영지에서 올린 결혼식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화려했다. 헬레나와 사비나의 주도하에 꾸며진 결혼식장은 마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당분간은 티그리스 가문에서 이처럼 큰 행사가 없을 예정이라 일부러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꿈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꿈을 꾸는 듯한 제이든과 마리엘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친정아버지를 참석하지 못하게 해서 버진 로드를 혼자 걸어야만 한 마리엘의 손을 잡아 준 이가 있었으니 할아버지였다. 엄마 손을 잡아 주지 못한 애통함을 이런 식으로 풀 줄이야.

마리엘의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은 할아버지는 제이든에게 작은 손을 넘겨 주며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뒤돌아서서 애틋한 눈물 한 방울을 비쳤다.

그리고 한 달 후엔 우리 집에서 결혼식을 했다. 언니와 내가 몇 달을 고생해서 만든 야외 결혼식은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너도 결혼이란 것을 하는구나. 평생 결혼 못 하고 노총각으로 살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

“제가 왜 노총각이 됩니까. 저 이래 보여도 인기 많습니다.”

“네 인기가 아니라 가문 인기겠지. 너한테 판테르를 빼면 남는 것은 뭐 몸뚱이밖에 없겠다.”

“나이 많은 매형이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닌 것을 보고 홀딱 반해서 결혼한 누님보단 낫겠죠. 당시에 눈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습니다만.”

이건 절대로 싸우는 거 아니었다. 단순히 현실 남매가 평소처럼 이야기하는 것일 뿐이었다. 멋진 결혼 예복을 입고 꾸미는 오빠를 본 언니가 툭툭 말을 던졌다. 그럴 때마다 오빠가 툭툭 터지듯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본 고용인들은 이젠 그러려니 하고 놀란 눈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탓에 나조차도 둘을 절대 말리지 않았다. 그저 느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보고 있다가 지겨워서 조슬린의 방으로 이동했다.

이 세상에서 오늘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인 조슬린의 뒷모습이 유독 가라앉아 보였다. 어여쁜 드레스를 입은 채 화장을 하던 조슬린은 거울 뒤로 비친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굳은 표정을 풀었다.

“라피, 왔…… 아니, 라피 아가씨 오셨어요.”

“됐고 평소대로 해. 난 그게 더 편해. 린.”

며칠 전까지 내 호위를 전담한 조슬린은 사르르 웃었다. 아무래도 오빠와 결혼을 하게 되니 나를 부르는 호칭에서 좀 삐걱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평소대로 하라고 하자 조슬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 님은?”

“오빠? 지금 언니랑 이야기하는 중이야. 평소처럼.”

“뭐? 쿠쿡!”

언니와 오빠가 평소에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아는 조슬린의 화장 중임에도 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고용인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지만 절대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표정이 좀 풀렸네. 긴장한 것 같더니.”

“라피가 있어서…… 근데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쿵쿵거려서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

“어? 그럼 안 되는데. 조금 있으면 더 정신을 못 차릴 테니까.”

“응? 그게 무슨…….”

조슬린의 물음이 채 끝맺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화려한 차림을 한 이들이 우르를 몰려들었다.

“음, 오늘의 주인공답게 참 어여쁘구나.”

“그렇죠? 할머님! 근데 이 보석을 착용하면 더 예쁠 것 같아요.”

“어머나, 어머님! 그게 그 유명한 보석인가요? 정말 아름다워요. 동서가 봐도 그렇지?”

“그러게요. 형님! 정말 멋진 보석이에요. 이걸 착용하면 숙모님이 더욱더 돋보일 것 같아요.”

순식간에 티그리스 성을 가진 네 여인이 한 번에 안으로 들어왔다. 분명 방 안은 넓었지만, 티그리스 가문의 네 여인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복작복작해졌다.

“그게 선물로 가져온 보석인가요?”

“그렇단다. 네게 주려다가 생각해 보니 세라피나가 유진의 부인에게 주는 걸 원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할머니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마리아가 붉은 비단으로 싸인 상자를 가지고 들어왔다. 이번 새신부에게 줄 보석은 특별히 티그리스 쪽에서 선물로 준비하기로 하여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붉은 비단을 치우자 새까만 벨벳 소재의 상자가 나타났다. 그걸 본 나는 어렸을 때 잠결에 할머니가 상자를 안고 울던 모습이 언뜻 떠올랐다. 혹시 그때 그 상자가 아닌가 싶을 때 상자 뚜껑이 열렸다.

그 안엔 조슬린의 눈동자 색과 같은 보석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중에 목걸이를 꺼낸 할머니가 조슬린의 목에 직접 채워 줬다.

“이건 내가 우리 세라피나가 결혼할 때 선물로 주려고 남편 몰래 마련해 둔 보석이란다. 바다의 여신이라는 푸른 다이아몬드를 세공해서 세트로 만든 것이지.”

“네, 네? 이리 귀한 것을 어찌 제게 주십니까. 이런 라피 아가씨에게 주셔야 옳을 듯합니다.”

목걸이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 조슬린은 할머니의 말에 화들짝 놀라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니다. 이건 네가 착용하는 게 옳아. 유진도 내 딸이 낳은 아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내 손자가 사랑하는 부인이 받는 게 옳지.”

“하지만 너무 과한 선물이세요. 감히 제가 착용하면 하늘에 계신 어머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이걸 우리 라피가 결혼할 때까지 가지고 있다면 아마 눈물 한 바가지는 더 흘릴 것이다. 그나저나 참 잘 어울리는구나.” 

“정말 잘 어울려요. 조슬린 경, 아니 우리 동서라고 해야 하나요. 정식으로 가족이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하네.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차기 안주인으로서 말이야.”

이번엔 헬레나가 조슬린의 귀에 조심히 귀걸이를 채웠다. 보석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조슬린의 눈동자엔 이슬이 엉겨붙었다.

“새신부가 결혼할 때 울면 평생 눈물을 달고 산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슬픈 날이 아니라 기쁜 날이니 웃으세요. 숙모님.”

“어머, 그러는 동서는 결혼식 끝나고 우리 고모님 안고 펑펑 울었잖아.”

“혀, 형님도 참…… 그때가 언제적 이야기인데요.”

“한 달 전?”

사비나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신부 방에 울려 퍼졌다. 수줍은 표정은 지은 마리엘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맑은 미소를 지었다. 

실제로 마리엘은 결혼식이 끝난 후 하객으로 온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다가 나를 보더니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곤 갑자기 안더니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나는 마리엘의 등을 다독이며 연신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외엔 더 해 줄 수 없었다.

“고모님은 제 은인인걸요.”

“맞아. 우리 고모님은 내 은인이기도 하지. 자넨 아직 못 들었지? 내가 어떻게 에이든 님과 결혼할 수 있었는지 말이야.”

“말씀해 주세요. 스쳐 지나가는 말로 듣긴 했지만, 자세한 건 몰라서 엄청 궁금해요.”

“그때가 우리 말랑 콩떡 고모님이 세 살 때였어. 나와 에이든 님과 엮어 주기 위해 콩가루가 탈탈 털릴 정도로 바삐 뛰어다니셨지. 크흠흠.”

본디 친정 식구가 와서 이 방을 채워야겠지만 그러지 못한 조슬린에겐 우리 가족이 대신했다. 조슬린이 슬퍼할 겨를도 없을 정도로 웃고 떠들었다. 친정 식구를 부르지 않은 조슬린을 위해 일부러 온 이들은 한동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예식 시간이 되자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린! 그럼 우리 조금 이따가 봐.”

“응, 조금 이따가 봐.”

일부러 울지 말라는 둥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애써 참고 있는 눈물을 터트릴 것 같았다.

“라피, 얼른 가자. 다들 기다리고 계실 거야.”

“응.”

방을 나서자 앞에서 대기한 씨엘이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 내 손을 얹고 깍지를 낀 채 한 달 동안 공들여 마련한 예식 장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들 새 유니폼으로 입은 고용인들은 나와 씨엘을 보고 정중히 인사한 후 바삐 걸어갔다.

“우리도 봄에 결혼할까? 꽃이 펴서 예식장이 더 어여뻐 보여. 그래봤자 우리 라피에 비하면 안 예쁘겠지만. 아, 형님이 진짜 부럽다.”

“우리 오빠가 진짜 부러워? 올해 스물여덟 살인데? 씨엘도 스물여덟 살에 결혼할래?”

“어? 아니, 그건 좀…… 아니 어떻게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라피를 두고 십 년을 버틸 수 있겠어. 아무리 수인이 인내심이 깊다고 해도 난 더는 못 참을 것 같아.”

“그럼 그동안은 어떻게 참은 거야?”

“설마하니 내가 서너 살짜리를 어떻게 하겠어? 우리 라피가 클 때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린 거지.”

이른바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그런 뉘앙스가 풍겼다. 그 말을 하면서 귓가를 붉힌 씨엘을 본 나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본인이 말해 놓고 부끄러워하는 게 귀엽게 보였다.

“우리 라피가 화동이 되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화동이 되기엔 내가 너무 늙었어요.”

의자에 착석하자 옆에 앉은 다니엘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일전에 에이든의 결혼식에 화동으로 선 게 내 마지막이었다. 저번 달에 제이든이 내게 화동을 부탁했다가 정강이가 까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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