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39)화 (139/164)

139화. 

그날 이후로 나는 연애 숙맥인 오빠에게 온갖 코치를 해 줬다. 인간적으로 에이든과 사비나를 엮었을 때보다 갖은 정성을 들였다. 그땐 양방이었다면 지금은 일방통행이라 그만큼 더 힘이 들었다.

단순히 어린 동생을 대하는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줄도 모른 조슬린은 내게 황궁에서 있었던 일 중 오빠와 따로 만났다는 것만 빼고 조심히 말했다.

“그래서 저번에 아버지랑 언니를 만나고 있을 때 오빠가 나타나서 막아 줬다고? 왜 나한테는 말 안 한 거야? 나한테 말을 했으면…….”

“초토화가 되었겠지.”

“그런가?”

“응, 라피의 성격에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비록 내가 집안과 연을 끊는다고 하더라도 그곳이 사라지길 원하진 않거든.”

“린은 너무 착해서 탈이구나. 나 같았으면 진짜 파이어 스톰에 윈드 스톰까지 곁들여서 날려 버렸을 텐데.”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은 부모와 온갖 계략으로 괴롭히는 능력 없는 언니는 인생에서 필요하지 않았다. 더불어 주제도 모르고 주인의 딸을 괴롭히는 고용인들이 있는 집이라면 당연히 박살을 냈을 터이다.

그것도 아니면?

“이 기회에 린이 니콜라이 백작이 되는 건 어때? 능력 없는 언니가 장녀랍시고 당연하게 후계자 자리에 오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그럴 바엔 기사 아카데미를 졸업한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 출신이라고 하면 몇 점이라도 더 먹고 들어갈 게 분명했다.

“나도 처음엔 그걸 생각한 적은 있어. 한데 그리되면 라피랑 헤어져야 하잖아. 그래서 싫어. 그깟 백작이 되는 것보다야 이곳에서 라피랑 있는 게 훨씬 더 좋아.”

“정말? 그럼 결혼도 여기에서 하는 거야? 원한다면 내가 중매라도 서 줄게. 나 이래 보여도 중매 경험자라고. 에헴!”

내 무릎에 철퍼덕- 누운 씨엘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자 조슬린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나중에…….”

“에이, 남자란 자고로 만나 보고 연애 기간을 거친 후에 결혼을 할지 아니면 딴 사람으로 갈아탈지 결정하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부터라도 연애를 해 봐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난 남자랑 만나는 거 적응이 안 되어서 말이야. 동료로 만나는 것은 상관없는데 이성적으로 느낀 사람이 아직은…….”

슬쩍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말끝을 뭉그러뜨린 조슬린을 본 나는 속으로 방긋방긋 웃었다. 남자에게 완전히 관심이 없진 않은 듯했다.

“원하는 이상형을 말해 봐. 내가 거기에 맞는 사람을 골라 줄게. 참고로 나는 황금색 눈동자에 까만 머리카락을 한 고양이 같은 남자가 참 좋아.”

“풉, 그게 뭐야. 그냥 씨엘 님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잖아.”

“맞아. 나는 씨엘이 좋아. 내게 그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 곁에서 안 떠날 사람이거든. 그리고 나를 여러 번 지켜 주기도 했고 말이야. 이 정도면 나한테 가장 잘 맞는 남자라고 생각해.”

내가 확고한 이상형을 말하자 조슬린이 약간 뜸을 들이며 쉽게 말하지 못했다. 비어 있는 조슬린의 찻잔에 차를 따라 주며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을 음미하며 씨엘을 쓰다듬었다.

“으음, 나, 나도 황금색 눈동자가 좋아. 그리고 흑발도 좋고.”

“뭐야, 그럼 린도 우리 씨엘을 좋아하는 거였어?”

“아, 아니야. 금안에 흑발을 가진 사람이 씨엘 님만 있는 건 아니잖아.”

“아, 하긴 그렇네. 우리 오빠도 그런 외형을 가지고 있긴 하네. 은근히 흔한 인상이었나.”

조슬린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하니 순식간에 흔한 인상을 가지게 된 씨엘이 항의하듯 째려봤다. 하지만 궁둥이를 팡팡 두들겨 주니 느른한 눈동자를 한 채 즐기는 듯했다.

“금안에 흑발, 그리고 키 큰 사람을 좋아해. 체격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기사면 더 좋을 것 같아. 내가 기사인데 나보다 못한 사람이면 안 되잖아.”

조슬린의 이상형을 듣고 도출한 인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정도면 딱히 일방통행은 아닌 듯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던가. 제니에게 당장 오빠를 부르라고 눈치를 줬다. 제니 역시 내 시녀답게 눈치가 빨라 오빠가 자꾸 조슬린을 본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말없이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똑똑똑-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자 조슬린이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아, 라피를 만나러 오셨나 보군요.”

오빠임을 확인한 조슬린이 옆으로 비켜서며 말했다.

“라피가 불러서 왔습니다만. 라피, 오빠를 왜 부른 거야?”

안으로 들어온 오빠는 소파에 앉으며 넌지시 물었다. 그 물음에 나는 내 뒤에 서려는 조슬린을 붙러 옆에 앉힌 후 말했다.

“린의 이상형이 오빠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말이야.”

“라, 라피!”

“흑발에 금안에 체격 좋고, 키도 크고, 기사라면 오빠밖에 없잖아. 그래서 말인데 우리 린을 어떻게 생각해?”

“어, 어? 아, 그게…….”

쉽게 대답하지 못한 오빠를 본 조슬린이 약간 실망한 표정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판테르 경을 귀찮게 하지 마. 라피가 다짜고짜 그런 질문을 하니까 판테르 경께서 당황해하시잖아.”

“음? 평소엔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어도 싫으면 싫다고 바로 말하는 게 오빠 성격인걸. 한데 이렇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니 오빠도 린에게 관심이 없진 않은 것 같네.” 

회심의 미소를 손으로 슬쩍 가린 나는 얼굴을 붉히며 앉은 두 사람을 봤다.

“린은 우리 오빠 같은 남자 싫어해?”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오빠는 우리 린 같은 여자 싫어해?”

“라피, 그걸 말이라고 하니. 어찌 조슬린 경 같은 사람을 싫어할 리가 있겠어.”

약간 발끈하며 대답하는 두 사람을 본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됐네 뭐. 당장 결혼하라는 것도 아니니까 우선 만나서 연애 기간을 갖는 건 어때? 두 사람이 원한다면.”

조슬린은 결혼 적령기였지만 오빠는 진즉 넘긴 상태였다. 그런데도 아빠가 오빠에게 결혼하라고 압박을 넣지 않는 것은 순전히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빠도 자신을 좋아해 주는 여자와 함께 살아 봤으니까, 오빠에게도 기회를 주려 함이다.

“라피,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못 들은 것으로 할래.”

조슬린이 얼굴을 붉히며 먼저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오빠 역시 조슬린의 뜻을 받아들였다.

“라피, 이번은 너무 성급한 것 같구나. 그래도 우리 동생이 오빠랑 조슬린 경을 생각해서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준 게 싫은 건 아니니까 마음 풀렴.”

오빠가 내 앞으로 와서 조곤조곤 말했다. 그 설명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너무 앞서간 건 인정한다.

“에이든이랑 사비나 공주가 아이 낳고 사는 게 너무 좋아 보였구나. 그래서 오빠와 조슬린 경도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지?”

“으, 응.”

“우리 라피는 어쩜 이렇게 마음이 착할까. 지금은 나와 조슬린 경이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당황해서 그런 거니 마음 놓으렴. 그럼 오빠는 이만 가 볼게.”

내 이마에 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맞춤을 한 오빠는 머리카락을 몇 번이나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쳤다. 괜찮다고 말한 오빠는 곧이어 바깥에서 부르는 소리에 다음을 기약하며 나갔다.

“린,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해.”

“아, 아니야. 판테르 경에 비해 내가 너무 모자라서 그런 것뿐이야.”

“뭐가 모자라? 과하다 못해서 넘쳐흐르는구먼. 남자도 힘들다는 아카데미를 수료해서 기사가 되고 우리 집에 정식으로 시험 봐서 고용되었잖아. 그것만으로도 능력이 넘치지.”

마법보다는 검을 배우는 게 빠르다고 하더라도 마법사가 기사를 깔보지는 않았다. 각자 위치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일을 할 뿐이었다. 물론 우리 할아버지는 제외하도록 하자.

“어쨌든 나 같은 사람이랑 판테르 경이 엮이면, 사람들이 너무나 기우는 결혼을 한다며 뭐라고 할 거야.”

“뭐야, 우리가 기껏 세상 사람들 기준에 맞출 거라고 생각한 거야? 안타깝게도 우린 우리의 기준이 있어. 그래서 오빠한테도 결혼을 강요한 적 없고.”

“그건 그렇지만…….”

“딴 사람들 시선은 걱정하지 말고 머리 식히고 싶으면 정원에서 산책이라도 하는 건 어때?”

애초부터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아빠가 나를 호적에 올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 집안의 딸로 사람들에게 소개될 일도 없었다.

조슬린이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한다는 의사를 표한 나는 그날 밤 쪽지 하나를 받았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요즘 들어 생각할 게 많아진 조슬린은 일과가 끝난 후 라피의 충고대로 정원을 자주 찾았다. 아름다운 꽃이 핀 정원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무거워진 마음도 쉽게 가벼워졌다. 산책을 한 후 따뜻한 물로 씻고 잠을 자면 그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었다.

한걸음 디딜 때마다 고민도 한 꺼풀 꺾였다. 그렇게 정원의 중간쯤 갔을 때 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음? 조슬린 경이 이 시간엔 여긴 무슨 일로…… 혹시 산책 중입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와 함께 잠시 걷는 건 어떨까요?”

“네? 아, 네…….”

이 집안의 후계자가 같이 걷자는데 조슬린은 거부할 수 없었다. 가슴이 두근댔지만 애써 어스름한 어둠에 숨긴 채 유진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걷는 내내 유진이 제게 보폭을 맞춰 준다는 것을 깨닫고 옅은 웃음을 지었다.

“조슬린 경, 혹여 요즘 우리 라피가 경에게 또 저를 만나 보라느니 그런 말을 해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못나서 우리 라피가 걱정이 늘어서 그런 거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 아닙니다. 그날 이후로 라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다행히 우리 라피가 선을 잘 지킨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런 제의를 해서 좀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싫지는 않았어요.”

그냥 묻었으면 될 말을 저도 모르게 한마디 더한 조슬린은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곤 매우 조심히 유진의 얼굴을 살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지만 그의 황금색 눈동자가 살짝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크흠, 그, 그러셨군요. 사실대로 말하면 저도 우리 라피의 말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라피의 말이라면 콩 심은 데 팥이 난다고 해도 믿는 전형적인 동생 바보 오빠였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라피가 원하는 게 있다고 다 들어주진 않았다.

타인에게 약간 무례하다고 생각된다면 라피를 조심히 불러서 이런저런 충고를 해 줬다. 따스한 목소리로 제 동생의 기분을 맞춰 주면서 사과를 하라고 말한 후 지켜보곤 했다.

실제로 처음 라피와 마주쳤을 때도 그런 모습에 놀란 조슬린은 유진 같은 남자와 결혼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를 지키면서 제 동생을 따뜻하게 보듬는 유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졌다. 저런 가족을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어색했지만, 요즘엔 그게 당연해 보여 머리에 새겨졌다.

마법사가 되어 그 누구보다도 강한 라피였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약하디약한 세 살 아이처럼 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라피에게 별명을 붙여 자신들끼리 부르곤 했다.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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