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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37)화 (137/164)

137화. 

생각하지도 못한 루피노 공작가의 후계자가 등장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반응을 보였다.

“씨엘로 루피노…… 오늘부터 내 연적이 되는 건가.”

매우 심각한 표정인 것에 비해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장난임을 알기에 나는 클레어런스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황태자 전하께 이런 모습으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씨엘로 루피노라고 합니다.”

씨엘의 인사에 클레어런스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씨엘로가 덥썩 붙잡자마자 바로 앞으로 당겼다. 순식간에 씨엘로와 클레어런스 사이에 간격이 줄어들었다.

“서부 공작가는 수인족의 피가 흐른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군.”

“…….”

대답하지 않았지만 클레어런스가 그 무응답이 긍정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잠시 둘이 눈을 마주하더니 클레어런스가 고개를 빼들어 씨엘의 귓가에 속삭였다.

“라피의 가족에게 아직 허락받지 못한 사이지?”

“네, 그렇습니다만.”

“그래도 자네가 좀 부럽군. 난 아예 허락을 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한 처지거든. 우리 위대한 아바마마의 멍청한 행동 때문에.”

짤막한 말을 끝낸 클레어런스가 호탕한 미소를 지으며 악수한 손을 풀었다. 그러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인사차 하는 가벼운 스킨십임을 알기에 자연스레 그의 손 위에 내 손을 올렸다.

그러더니 슬쩍 끌어당겨 역시나 귓가에 속삭였다.

“잔망스러운 고양이가 울리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언제든지 치고 들어가서 네 눈물을 닦아 줄 테니까.”

“인간적으로 내가 씨엘을 울릴 것 같긴 한데 말이야.”

“나도 울어 줄 수 있는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죠. 황태자 전하. 사람들이 지금 우릴 보고 이상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잖아.”

내가 째려보자 클레어런스는 그때야 나를 놓아주며 손등에 살짝 입맞춤을 했다. 그러고는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와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씨엘, 역시 우리가 고용한 재단사의 눈썰미가 상당하구나. 정말 잘 어울려. 우리 아들.”

마침 우리보다 뒤늦게 온 미네르바가 씨엘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한 마디에 씨엘로는 명실상부한 루피노 공작가의 진짜 후계자가 되었다.

“루피노 공작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네, 저야 판테르 공작님께서 우리 아들을 돌봐 주셔서 편히 지내고 있었답니다.”

여전히 단출하게 최정예 부대인 친위대 기사단장 그레이스 경만 데리고 다녔다. 아빠와 미네르바가 잠시 인사를 할 때 나는 그레이스 경과 시선이 마주쳤다.

묵례를 하자 나도 간단히 묵례를 했다.

“우리 백설기는 여전히 어여쁘고 사랑스럽구나. 역시 판테르 공작부인을 찰떡처럼 찍어 놨어.”

아빠와 인사가 끝난 미네르바가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아빠와 동갑이라는 말을 듣긴 했는데 수인족답게 여전히 삼십대 초반의 얼굴로 보였다.

“저보다는 씨엘이 더 예쁜걸요.”

“수인족치고 씨엘은 못생긴 편이란다. 후후, 그나저나 내가 보낸 보석이 잘 어울려서 다행이구나.”

“어련하시려고요. 씨엘이랑 이거 한 쌍으로 만든 세트 아닌가요?”

“음? 들켰구나. 후훗!”

씨엘이 착용한 장신구 또한 붉은 루비였다. 나와 같은 모양으로 세공된 루비는 씨엘의 몸 곳곳에서 화려하게 빛이 났다. 귀족들의 날카롭게 섬세한 눈동자에 한 쌍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히는 용도의 보석이 분명했다.

잠시 미네르바, 아니, 내 미래의 시어머니가 되실 분과 이야기할 때 귀족들이 조심히 다가왔다. 그러곤 씨엘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놀라워하는 시선을 보냈다.

“아니 이런 장성한 아들을 이제껏 어디에 숨겼다가 이제야 데려오신 겁니까.”

“우리 집안이 시끄러워서 잠시 판테르 공작가에 맡겨서 키웠네만. 한데 이리 번듯하게 커서 돌아오니 상당히 뿌듯하고 판테르 공작님께 감사할 따름이네.”

“세상에나, 정말 멋있는 청년이군요. 가만히 있어도 아가씨들이 따라붙겠어요.”

“그 무슨 말을……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반려로 여긴 아가씨가 있다네, 그러니 다른 영애들이 경비 있다고 도둑 안 드는 거 아니라는 심정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군.” 

미네르바가 나를 슬쩍슬쩍 보며 하는 말에 다들 씨엘의 반려가 누구인지 짐작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이는 탄식을 하며 제 딸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이도 속출했다.

어느 누가 감히 판테르 공작가의 여식인 내게 도전장을 내밀겠는가. 현직 마법사이자 티그리스 공작가의 손녀인 나의 것을 빼앗는 그 즉시 어떤 보복이 들어올지 모르는데 말이다.

못 먹는 씨엘 찔러 보려다가 밖으로 나앉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다들 마다하고 물러났다.

“그렇다면 판테르 공작가에서 사윗감을 키웠다는 거로군. 어렸을 때부터 딸에게 반려를 만들어 뒀을 줄이야. 응? 안 그런가.”

마침 아빠 곁으로 온 안젤로 후작이 피식피식 웃으며 물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팔을 툭툭 건드렸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반려 고양이가 진짜 반려자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젠 본인 집안에서 키웠다는 말에 아무 부정도 하지 못했다.

“자네, 좋은 말 할 때 그 입 다물게나.”

“왜 그러나, 저리 늠름하고 멋진 사윗감을 키워냈으면서 말일세. 언젠 딸이랑 결혼하겠다고 하더니, 진짜는 저리 숨겨 두고 있었나 보군.”

안젤로 후작의 말에 아빠의 표정이 슬쩍 일그러졌다. 그런 아빠의 반응에 더 신이 난 듯한 안젤로 후작은 계속 부지깽이로 들쑤셔댔다. 뭉근하게 타오른 불에 산소가 들어가 확 타오르려는 순간 내가 아빠의 팔을 슬쩍 감자 방긋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안젤로 후작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기에 여념이 없었다.

“막내한테 꽉 잡혀서 사는구만. 근데 그 모습이 더 정겹고 보기 좋아. 그나저나 라피가 서부로 시집가면 쉽게 볼 수 없을 건데 그건 어떻게 할 건가.”

씨엘이 루피노 공작가의 후계자이니 절대로 데릴사위로 삼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루피노 공작가를 이를 손자를 라피에게 얼른 낳으라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되었다.

“라피를 시집보내지 않으면 될 일이네만.”

“하하, 이것 보게나. 루피노 공작님이 누구인가. 한 번 문 상대는 절대 놓아주지 않은 성미인 거 모르나. 내가 보기엔 라피를 며느릿감으로 찍은 것 같은데.”

“자네는 자네 딸이나 걱정하게나.”

“음? 우리 딸은 이미 결혼해서 애를 셋이나 낳았네만. 결혼도 십 년 전에 했고 말일세. 참고로 우리 딸은 열일곱 살에 결혼했네. 자네가 선물도 줘 놓고 기억도 못 하는가 보군.”

열일곱 살에 결혼했다는 말에 아빠는 움찔하며 나를 봤다.

“우리 딸은 당장 결혼할 필요는 없단다. 아주 천천히 하자꾸나. 결혼을 안 해도 상관없으니까 남자는 씨엘 빼고 더 만나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단다.”

나에게 자유연애를 하라고 부추기는 아빠의 말에 씨엘의 귀가 쫑긋해지는 듯했다.

“다른 남자를 실컷 만나도 돼요?”

“전에 말했다시피 남자는 많이 만나 봐도 된단다. 이왕이면 동부에 사는 귀족 중에서 만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동부의 귀족 중에 내 눈에 차는 남자는 없었다. 생일 연회 때마다 어떻게든 얼굴을 들이미는 귀족들이 많았지만 내 눈엔 다 평범해 보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동부의 귀족과 결혼할 바엔 그냥 씨엘이랑 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할 것 같아요. 아빠한테 기조차 펴지 못하고 쭈글쭈글해 있는 모양새는 보고 싶지 않거든요.”

라피가 판테르 공작과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니콜라이 백작과 장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항상 둘이 같이 다닌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 번 결혼을 했다가 이혼을 한 후계자인 리아 니콜라이는 여느 때처럼 당당했다.

“저기 판테르 공작과 영애가 있는 것으로 봐서는 조슬린이 왔으려나 모르겠구나.”

재작년엔 결혼 준비로 바빠서 황실 연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작년엔 리아의 이혼과 맞물려 황실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3년 만에 황실 연회에 참석한 니콜라이 백작의 눈은 자연스레 주변을 살폈다. 조슬린이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다른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백작저를 나가는 그 순간까지 조슬린은 제 아비와 언니에게 어디로 가는지 알려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조슬린에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편지를 쓰라고 말했지만, 글자 한 줄 적어 보내 주지 않았다.

애가 닳아서 동부의 판테르 공작저로 편지를 보냈지만 조슬린은 답장조차 해 주지 않았다. 

“일개 기사인데 이런 곳에 왔을 리가 없지요.”

부채를 펼친 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조슬린은 태어났을 때부터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자신이 니콜라이 백작이 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도 남을 아이였다. 기사로서 특출한 재능 때문이라도 경계가 되었다.

제 딴엔 절대로 니콜라이 백작이 될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건 언제 뒤집힐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눈치란 게 있으면 얼른 나가길 바라면서 은근히 괴롭혔다. 그러다가 취업했다며 홀연히 나가 버리자 그때야 마음이 놓였다.

더는 그 누구도 자신과 조슬린을 두고 비교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결혼과 이혼으로 바빠서 황실 연회에 빠졌을 때, 그곳을 다녀간 이가 조슬린을 봤다고 말했다.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가 되어서 황실 연회에 참석했더구나. 한데 그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어.’

눈에 안 보여서 속 시원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금 경계 대상이 되어 제 속을 어지럽혔다.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조슬린이 뭐가 그리 보고 싶다고 목을 빼고 둘러보시는 건가요.”

“마린이 먼저 신의 부름을 받고 간 후 조슬린의 탓으로 여겨 무심했지. 한데 지금에 와서야 그게 후회가 되는구나.”

언니가 괴롭힌다는 말을 입에 닳도록 한 어린 조슬린이었다. 하지만 리아를 보고 있노라면 마린이 떠올라 말로만 조용히 타일렀을 뿐이다. 

그로 인해 엇나가서 집에 붙어 있으려고 하지 않은 조슬린은 제 인생을 스스로 개척했다. 그리고 답장 대신 조슬린은 제가 받은 월급을 니콜라이 백작저로 보냈다.

이제껏 먹여 주고 키워 주고 공부시켜 준 값이라 하였다. 아비에게 눈곱만큼도 바라는 것도 없는 조슬린은 그간 제가 머물며 받은 것 모두를 돌려주고 완전히 연을 끊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아, 저기 조슬린이 있구나.”

때마침 예쁜 드레스를 입은 채 당당하게 서 있는 조슬린이 보였다. 니콜라이 백작이 곧장 다가갔다. 오랜만에 보는 딸은 너무나 예쁘고 멋져 보였다.

“조슬린, 집으로 오지 않고 왜 이곳으로 먼저 온 것이더냐.”

“제게 집이 있습니까?”

“뭣?”

이곳에서 아버지를 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생각 외로 너무나 일찍 만나고 말았다. 애틋한 목소리로 말하는 니콜라이 백작을 본 조슬린은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제겐 집이 없습니다만. 저를 동생이 아닌 경쟁자로 여겨 어렸을 때부터 도가 지나칠 정도로 학대하던 여자를 막아 준 적 없는 아버지와 집은 제게 필요 없습니다.”

그곳에서 짐을 싸 들고 나온 시점부터 조슬린은 니콜라이 백작가와 완벽하게 연을 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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