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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36)화 (136/164)

136화. 

상당히 요망한 발언을 한 씨엘의 콧잔등을 살짝 튕겼다. 나와 같은 황금색 눈동자가 찰나에 찌푸려졌지만, 그것마저 예뻐 보였다.

“그랬다가는 우리 씨엘의 뼈와 살이 분리될 예정일 것 같은데.”

“아버님은 일찍 결혼해서 처형을 낳으셨잖아.”

“으음, 하긴 대부분 십대 중후반에 결혼하니까.”

좋든 싫든 결혼을 하면 무조건 의무적인 합방을 해야만 했다. 그러니 아이가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우린 지금 결혼 적령기야. 이대로 스무 살까지 기다리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해. 라피는 괜찮아? 내 주변에 여자들이 막 따라붙어도?”

“그건 좀…….”

아직 데뷔하지 않았지만, 씨엘이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일어날 일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서부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이렇게 예쁜 남자라면 여자들이 알아서 붙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현존하는 최고의 남편감 중의 하나로 급부상할 것이다.

“라피, 예전엔 나를 그냥 풀어 둬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방목하면 안 될 거야. 그러니까 얼른 목줄을 채워 줘. 안 그러면 나도 모르게 휩쓸려서 이 사람 저 사람 만날지도 모르니까.” 

지능이 높은 수인족이라지만 여자들에게 면역이 없어 그들의 언변에 휩쓸려 갈지도 모른다. 그걸 염려한 씨엘이 오로지 나만 바라볼 수 있게 제게 목줄을 걸어 달라 애원하는 듯했다.

이제껏 걸어 본 적 없는 목줄을 어떻게 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손끝에 닿는 뭉클함에 움찔했다. 씨엘이 내 손을 잡고 제 입술에 겹쳤다. 탄탄한 가슴과는 달리 씨엘의 입술은 상당히 부드러웠다.

이런 상황은 내 전생에서도 있은 적 없는 일이기에 조금 어색했다. 심지어 전 약혼자와도 이런 스킨십을 나눈 적이 없었다.

약간 긴장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제 기운을 나눠 주려는 듯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낸 씨엘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라피, 언제까지 생각만 하고 있을 거야? 생각은 짧게, 그리고 행동은 더 재빠르게…….”

요망한 말을 서슴없이 하는 씨엘의 도톰한 입술에 내 입술을 살짝 포갰다. 순간 씨엘의 눈이 커다래졌다. 얼굴엔 아직 저녁도 아니건만 노을이 스치고 지나간 듯 옅은 홍조가 드리웠다.

“우린 아직 어리니까 여기까지…….”

“더 해도 되는데, 더 해 주면 안 돼?”

“그러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을 것 같아. 정확히는 씨엘의 가죽이 벗겨질 것 같은데.”

씨엘의 뒤로 이곳에서 보여서는 안 될 인물이 보였다. 내 시선이 한곳에 박힌 것을 본 씨엘도 고개를 뒤로 돌리다가 화들짝 놀란 듯 움찔했다.

너희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오빠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몰라도 호텔 창문에 찰떡처럼 붙어서 외쳤다. 단지 방음이 완벽해서 입술만 보고 대충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을 할 뿐이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 씨엘이 나를 더욱더 끌어안자 오빠의 황금색 눈동자가 시퍼렇게 완전 연소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창문에 입김을 불어 넣어 손가락으로 글씨를 적었다.

나도 못 해 본 것을 너희가 하냐. 당장 안 떨어져-

금방 사라진 글씨를 흐린 눈으로 본 씨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내 귓불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아무래도 형님한테 애인을 만들어 줘야 할 것 같아.”

“나도 그러고 싶은데, 우리 오빠가 나를 보고 커서 눈이 너무 높아졌어. 그래서 쉽지는 않을 거야.”

아직도 다 큰 동생의 뒤치다꺼리 겸 감시를 한답시고 저리 졸졸 쫓아다니는데 어느 여자가 좋다고 하겠는가. 오빠의 애인 만들기는 내겐 너무나 험난한 일이었다.

요망한 고양이가 감히 제 딸에게 주둥이를 비볐다는 말을 전해 들은 판테르 공작은 입술을 살짝 비틀어 올렸다. 그러곤 라피가 곤히 잘 시간에 씨엘을 찾았다.

고양이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 돌아간 씨엘은 라피의 옆에 누워 제 딸을 소중히 보듬은 채 잠들어 있었다.

“안 자는 거 아니까 이만 일어나지 그러나.”

“제가 안 자는 거 어떻게 아셨습니까.”

막 깨어난 것 치고 씨엘의 목소리는 또렷하고 눈동자도 맑았다.

“수인족은 청력이 좋다지? 그리고 내 딸을 지킨다는 놈이니 적이 칼을 뽑기도 전에 제압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피의 감긴 눈꺼풀에 적이 뽑은 칼날에 반사된 빛이 닿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판테르 공작이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이자 씨엘은 조심히 라피를 안고 있는 팔을 풀었다. 그 모습을 본 판테르 공작의 눈썹이 살짝 꿈틀댔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같이 자는 것은…….”

“그럼 고양이로 변해서 같이 자는 것은 됩니까? 고양이나 인간이나 저는 저입니다만.”

고양이는 전체연령가능이고, 인간으로 변한 자신은 성인연령가능이냐는 물음에 판테르 공작은 이를 꽉 깨물었다.

“됐고, 나오게.”

판테르 공작의 억눌린 목소리에 씨엘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라피가 씨엘을 꼭 끌어안고 있는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본 판테르 공작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어렸을 땐 제 가슴에 안겨 폭 잠들었는데 이젠 다 컸다고 씨엘을 안고 자니 세월이 무상하기만 했다.

라피의 손을 매우 조심히 풀어낸 씨엘은 판테르 공작을 따라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그곳에 가자마자 목검 하나가 날아왔다. 가볍게 목검을 쥐었고 바로 공격이 시작되었다.

기사 출신답지 않은 기습이었지만 이 정도쯤은 라피를 지키려면 기본으로 막을 수 있어야 했다. 한동안 말없이 목검이 섞였다. 그 모습을 우연히 지나가며 본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멈춰서 탄성을 질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씨엘이 판테르 공작에게 밀렸다. 하지만 엄청난 습득력을 지닌 씨엘은 이젠 쉽게 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판테르 공작의 눈동자에 의미 모를 희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대략 한 시간가량 대련이 끝난 후 판테르 공작이 땀을 닦으며 씨엘을 봤다. 수인족답게 아직 팔팔한 씨엘은 이 정도 대련으로 체력이 떨어진 티가 나지 않았다.

“씨엘, 만약 자네가 우리 딸이 아닌 다른 여자와 만났으면 당장 결혼할 수 있었을걸세.”

어느 누가 서부의 후계자이자 능력 좋은 씨엘을 사위 삼기 싫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곳은 보통 집안이 아니었다.

“전 라피 외의 여인은 필요 없습니다. 제가 아무리 라피에게 길들었다고 하더라도 능력 있는 여인을 놓아줄 정도로 머리가 비어 있진 않습니다.”

“여자 보는 눈은 확실히 있군그래. 그럼 이만 들어가서 쉬게나. 고양이 모습으로!”

기사들을 라피의 방 안팎으로 배치한다고 하더라도 씨엘 한 명이 존재하는 게 더 나았다. 그렇기에 인간의 모습이 아닌 고양이 모습으로 라피의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흐음, 고양이 모습으로 있다가 적이 온다면 바로 변신해서 싸우다가 라피가 제 알몸을 보면 어쩌시려고요.”

적이 앞에 있는데 옷을 입을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싸우다가 라피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씨엘은 라피가 제 솜털 하나하나를 들여다봐도 괜찮았다. 하지만 라피가 약간의 충격을 받을 것 같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충격은 안 받을 것이다. 이미 어렸을 때 목욕탕으로 뛰어들어 오는 제 오라비의 알몸을 봤으니.”

그때 잽싸게 라피의 눈을 가리긴 했지만 아마 봤을 것이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판테르 공작은 숨을 돌리며 물을 마셨다. 

“하긴 라피는 세 살 때에 이미 아기가 생기는 은밀한 방법에 대해서도 알고 있더군요.”

“풉!”

세상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귀한 어린 시절의 라피가 아이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는 말에 물을 뿜어냈다.

“그, 그게 진짜인가.”

“네, 정 못 믿겠으면 처형과 형님께 연락해 보셔도 됩니다. 미래의 조카님 앞에서 라피가 순화된 언어로 말했으니까요.”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들은 판테르 공작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런 판테르 공작을 보며 씨엘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 내 딸이 그런 걸 알고 있다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판테르 공작의 읊조림에 곁으로 와서 땀에 젖은 수건을 받아든 오스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실베스터 왕국에서 아기 낳는 것을 직접 보신 아가씨입니다. 그런 걸 모를 리가 없지요.”

보통 아이라면 아기 낳는 것을 보고 놀라 경기를 일으키거나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한데 라피는 매우 평온했다. 게다가 직접 갓 태어난 아기를 받아내지 않았던가. 그것만 봐도 라피의 순수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듯했다.

사하라의 판테르 공작저는 어느 때보다 바삐 돌아갔다.

“오늘 입으신 드레스엔 이 보석이 잘 어울리실 것 같아요.”

“음? 이건 못 본 보석 같은데.”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전속으로 배정되는 안나와 레아가 방긋 웃으며 보석 세트를 들고 왔다. 새빨간 루비를 고급스럽게 세공해 만든 세트를 본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루피노 공작가에서 집사가 직접 가져온 물품이랍니다. 아가씨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하셨어요.”

씨엘을 잘 봐달라는 뇌물 같은 선물에 나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서부엔 보석 광산이 상당히 많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네요.”

루비 세트를 어루만졌다. 매끄러운 감촉의 목걸이를 집어 들자 샹들리에 빛에 반사되어 영롱하게 빛이 났다.

“오늘은 이것으로 할게요. 정말 정열적이고 예쁘네요.”

“네, 그리고 씨엘 님이 입으실 옷과 보석도 같이 보내셨답니다.”

오늘은 씨엘이 루피노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내 호위로 정식 데뷔하는 날이었다. 그렇기에 루피노 공작가에서 씨엘의 치수를 묻더니 곧장 새 옷을 지어 보낸 듯했다.

고용인들에게 꾸밈을 당한 나는 얼른 황실 연회에 가기 위해 움직였다. 오늘은 조슬린도 내 호위 겸 니콜라이 백작영애로 참석하기로 했기에 평소보다 복장이 좀 화려했다.

정확히 말하면 오빠가 카디건을 돌려주며 한 약속을 지켜 어여쁜 드레스를 맞춰 줬다. 펑퍼짐하지 않은 드레스는 유행을 선도할 거라며 디자이너가 침이 마르게 자랑한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입은 조슬린의 치마 아래 허벅지엔 무시무시한 단검이 꽂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안나가 방문을 열자 앞엔 훤칠한 청년이 멋들어진 정장을 입은 채 내게 손을 내밀었다.

“레이디 라피, 제게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정장 차림의 씨엘의 모습에 순간 혹한 나는 그대로 굳었다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랑 오빠는?”

“밑에서 기다리고 계셔. 조슬린 경도 곧 나올 거라고 하셨고.”

씨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밑으로 내려가자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멋진 모습으로 서 있는데 마치 한 가족 같았다.

“가자꾸나. 연회장에서 모두 만나기로 했으니.”

아빠의 말에 모두 마차에 올랐다. 치마를 입어 활동하기 약간 불편한 조슬린을 위해 오빠가 손을 내밀어 마차에 오르는 것을 도와줬다.

다섯 명이 한 마차에 탔지만 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넉넉하고 큰 마차가 천천히 움직였고 멈췄을 땐 황궁 안이었다. 평소처럼 연회장에 들어선 우리는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 라피! 어서 와. 근데 옆에 있는 남자는 누구야?”

우릴 처음 보자마자 체면을 마다하고 먼저 다가온 클레어런스가 씨엘을 보며 조심히 물었다.

“아! 소개할게. 황태자 전하, 이쪽은 씨엘…….”

“씨엘이라면 네가 데리고 다니던 고양이 이름이지 않아?”

“정확히는 씨엘로 루피노, 루피노 공작님의 아들이자 유일한 후계자야. 그러니까 예의 갖춰서 맞이해 줬으면 하는데.”

내 말을 들은 클레어런스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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