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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31)화 (131/164)

131화. 

미운 다섯 살이라고 했던가.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땐 최소한 이러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에이든과 사비나의 다섯 살짜리 쌍둥이 형제는 내 눈앞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우다다다-

누가 이 망나니들을 풀어 놔둔 것인가.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마법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이든이 쌍둥이를 데리고 왔다.

“고모, 부탁 좀 할게. 애들 좀 맡아 줘. 난 사비나랑 데이트가 있어서 말이야.”

“잠깐만, 왜 네 새끼를 나한테 맡기는데.”

“그거야…… 할아버지 할머니는 연로하셨고 아버지랑 어머니가 거절했어. 그리고 고용인들은 전부 애들 못 잡아. 그러니까 고모가 해 줘.”

“제이는?”

“제이든 놈은 이미 튀었어. 그럼 고모 수고! 나중에 내가 젤리 같은 보석 많이 갖다 줄게.”

그 말을 하고 망할 조카님이 튀었다. 그리고 내 눈앞엔 절대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가 둘이나 뛰어다녔다. 한눈팔기가 무섭게 내 마법서가 갈가리 찢겼다. 씨엘은 두 놈들에게 안 잡히려고 뛰어다니는 중이다. 조슬린의 눈동자는 이미 영혼이 사라진 후였다.

정신 사나워서 이를 북북 갈던 나는 보던 책을 던져 버리고 외쳤다.

“동작 그만! 콩가루가 탈탈 털릴 정도로 맞아 볼래?”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내 방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며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뛰어다니던 형제가 순간 멈췄다. 그러더니 내 눈치를 살피며 뽀짝뽀짝 다가왔다.

“꼬모, 우리 혼낼 꼬야여?”

“꼬모, 죄송해여.”

본디 할머니라고 불러야 옳았지만 내가 노발대발했다. 그랬더니 녀석들은 제 부모가 나를 부르는 호칭을 듣고 그대로 따라 했다.

올망졸망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손가락을 꼼질댔다. 예전에 내가 저 모습을 보고 그대로 풀어 줬더니 그날로 내 방은 난장판이 되었다. 작은 악마와 같은 형제는 또다시 그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이번엔 나도 내공이 쌓였기에 통하지 않았다.

“유스터 티그리스, 아스터 티그리스! 고모가 전에 말한 것으로 아는데! 고모가 뭐라고 했었지?”

“조용히 잇써야 한댓써여.”

유스터와 아스터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 지금 조용히 있는 거니?”

“그치만…… 히잉, 꼬모가 안 노라주자나여.”

분명 유스터와 아스터는 훨씬 전에 혀 짧은 소리를 뗐다. 그래서 에이든이 내 앞에서 쌍둥이 자랑을 하다가 정강이를 걷어채인 적이 있었다.

한데 이 요망한 녀석들이 혀 짧은 소리를 내면 귀엽게 보인다는 것을 아는지 보채면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고모는 지금 공부 중이잖니.”

“그치만, 그치마아안 우리 심심해여.”

심심하다고 말하는 유스터를 본 나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이미 글을 다 뗐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역시 에이든이 제 아이들이 천재라고 노래를 부르다가 내게 얻어터진 전적이 있어서 알고 있다.

“책 읽어.”

“시른데…… 우리 놀고 시픈데, 꼬모오오오, 노라주떼여.”

내게 달라붙은 녀석들을 한참 본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게 나이 많은 조카들 교육을 제대로 못 한 내 죄이고 업보인 게 분명했다.

“대신 조용히 있어야 해. 시끄럽게 떠들면서 뛰어다니고 엉망으로 만들면 할아버지가 화낼 거야.” 

끄덕끄덕-

일전에 쌍둥이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와서 하필 아빠의 집무실에 들이닥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빠가 진심으로 불같이 화를 내서 아이들이 놀라 울음을 터트렸다.

‘콜린도 안 하던 짓을! 이 녀석들을 그냥 콱!’

그날은 아빠가 진심으로 빡쳐서, 아니 뚜껑이 열려서 욕만 하지 않았을 뿐 본인의 기운을 갈무리하지 않고 그대로 방출했다. 순간 아이들은 울음을 그친 채 사색이 되어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녀석들은 우리 아빠를 매우 무서워했다. 그래서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시끄럽게 안 뛰어다닌다는 조건으로 놀아 줄 테니까 같이 밖으로 가자.”

“니에!”

영악한 녀석들은 어른들에게 내 어린 시절의 말투를 듣고 배웠는지 그대로 하곤 했다. 정말이지 시끄럽게 굴면 짜증나서 몇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이럴 때 보면 귀여워서 손대지 못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정원으로 온 나는 바람 마법을 일으켰다.

“플라이!”

판테르 공작저가 초토화되기 전에 일부러 마법을 걸어 녀석들의 동선을 줄였다. 그 결과 유스터와 아스터는 공중에서 허우적대며 즐겁다는 듯이 어린아이답게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라피, 당장 나이 많은 조카놈 잡으러 갔다 올게.”

어느새 인간형으로 몸을 바꾼 씨엘이 쌍둥이를 보며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쌍둥이에게 제 몸을 내줬다가 털이 죄다 뜯겼던 씨엘은 그 이후부터 아이들을 피해 도망쳐 다녔다.

“이젠 좀 편해질 거니까 괜찮아.”

“괜찮긴, 저거 컨트롤 하려면 라피는 아무것도 못 하잖아.”

비록 전직 마법사이자 현직도 마법사였지만 저 두 녀석을 동시에 플라이 마법으로 컨트롤 하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쌍둥이가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법을 거둬들이면 그날은 초주검이 되어 잠만 자야 했다.

그렇기에 씨엘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내가 낳지 말라는 아이를 기어코 낳아서 하나밖에 없는 고모를 이리 달달 볶는다며 화를 냈다.

“어쩌겠어, 저 녀석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잖아.”

“그건 핑계일 뿐이야. 라피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나이 많은 조카님에게 재롱떨라고 시킨 것에 대한 앙갚음이 분명해.”

“풉!”

나와 씨엘의 말을 들은 조슬린의 입술 사이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났다.

“정말로 나이 많은 조카님에게 재롱을 떨라고 한 거야?”

“응, 감히 나를 본 첫날에 내 재롱을 보고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더라고. 그래서 괘씸한 마음에 항렬로 눌러서 강제로 재롱부리게 했어.”

“푸하하하, 라피! 정말 걸작이야. 그 모습을 직접 봤어야 했는데 못 봐서 안타까워.”

배꼽을 잡으며 웃은 조슬린을 본 나는 방긋 웃었다.

“못 봤으면 지금 보면 되는 거지 뭐. 후훗!”

음흉한 생각을 뒤로한 채 나는 얼른 쌍둥이가 공중에서 허우적대며 놀다가 얼른 지치길 바랐다. 그 결과 두 시간 만에 녀석들의 팔다리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금세 곤히 잠든 녀석을 씨엘이 낚아채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흔들림 없이 신속하게 쌍둥이를 방에 눕히고 고용인에게 지키게 한 후 나온 씨엘은 하품하는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이제 라피도 자자.”

“하지만 아직 못한 공부가 남아 있어.”

“그런 것은 다음에 해. 자고로 오늘 할 공부는 내일 하는 거랬어.”

씨엘의 품에 안긴 나는 다시 하품을 하며 그의 가슴에 기댔다가 눈을 슬그머니 떴다. 그러자 눈웃음을 지은 씨엘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뭐 할 말이라도 있어?”

“씨엘…… 실망이야. 우리 아빠 같은 가슴이 아니라서.”

“쿨럭!”

탄탄한 가슴임은 맞지만 빵빵함이 없었다. 이에 약간 실망했더니 씨엘이 헛바람을 들이켜며 기침을 해댔다.

“아, 아버님 가슴은 감히 비교 불가능해. 이제껏 만나 본 기사 중에 아버님 같은 가슴을 지닌 남자는 없었다고. 아버님은 가슴이 돌연변이야.”

“그딴 거 난 모르겠고, 내 씨엘의 가슴이 절벽이라니…… 이건 형부급인데.”

“하고 많은 인간 중에 라피가 인정한 절벽 가슴인 아퀼라 공작님이랑 비교하다니. 그거 나한테 욕하는 거 맞지?”

“아니야. 진짠데. 난 우리 아빠 같은 남자랑 결혼할 거거든. 근데 씨엘은…… 으음.”

다시 한번 씨엘의 가슴을 흐린 눈으로 보며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손끝에 느껴진 감촉이 아빠와 달랐다.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자 씨엘이 내 두 눈에 입맞춤을 했다. 찰나에 눈을 감은 나를 힘줘 안은 씨엘의 어린아이 어르는 듯한 목소리에 픽, 웃음이 터졌다.

“됐고 그냥 자 줘, 제발. 우리 라피, 착하지? 이제 눈 감고 코오코오 하자.”

나를 안고 가는 씨엘의 뒤에서 조슬린의 바람 빠진 소리가 연거푸 들렸다. 웃겨서 죽을 것 같은 조슬린을 향해 한마디 해 주기도 전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씨엘의 빵빵하지 않은 가슴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아주 잠시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저녁나절이 되었다. 분명 쌍둥이를 오전에 힘을 빼서 재운 것 같은데 말이다.

“흐음, 유스랑 아스는?”

“지금 쌍둥이 걱정할 때야? 걔들은 형님이 와서 잘 돌보고 있으니까 조금 더 쉬어.”

오빠가 왔다는 말에 나는 씨엘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웃음을 터트렸다. 오빠가 쌍둥이를 잘도 봐줄 것 같았다. 녀석들은 아빠를 무서워하듯, 아빠를 쏙 빼닮은 오빠도 무서워했다.

오줌을 안 지리면 다행이지.

“그럼 린은?”

“조슬린 경은 지금 방 밖에서 호위 서는 중이야.”

씨엘이 내 옆에 눕자 차마 한 방에 있을 수 없었는지 조슬린이 자리를 비켜 준 듯했다. 체력이 떨어진 김에 잠시 씨엘의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적댔다. 그러자 씨엘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붉게 변했다.

“저, 저기 라피? 그거 너무 자극적인데 좀 자제해 주면 안 될까? 좀 전까지 내 가슴이 안 빵빵하다고 뭐라고 해 놓고는 갑자기 그러면…….”

“안 빵빵한 것은 맞는데 씨엘의 품이 너무 포근해. 마치 솜털 뭉치에 얼굴을 비빈 듯한 느낌이랄까.”

“이것 보세요. 그거 수인적으로 욕인 것 같은데요.”

씨엘이 뭐라고 하든 나는 그의 품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씨엘의 숨결이 약간 따끈해지고 거칠어졌지만.

“저기요, 판테르 공작 영애! 아기 만드는 법을 아시는 분이 자꾸 이러면 앙- 하고 잡아먹을지도 몰라요.”

“뭐래요? 아직 잡아먹을 정도로 내가 크지 않아서 말이야. 후아암, 앞으로 5년을 키워야 할 것 같은데.”

아직은 법적으로 미성년자였다. 물론 미성년자여도 결혼은 할 수 있었지만 부모의 동의가 필수였다.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아직 부모의 뜻을 따라야만 하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라피가 얼른 나이 먹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딱 스무 살에 멈추면 더더 좋을 것 같아.”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나는, 나는 가능한데…… 그래도 괜찮아. 라피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니까.”

수인족은 인간보다 1.5배 정도 수명이 길었다. 게다가 노화 속도도 현저히 느려서 나는 늙어 가는데도 수인족인 씨엘은 백살이 되어도 중년의 모습인 채로 살 수 있었다.

태어날 때도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도 순서가 있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나와 한날한시에 죽을 거라며 말하는 씨엘의 콧잔등을 살짝 튕겼다. 순간적으로 찡그린 모습마저 예쁜 씨엘이 내 손을 쥐더니 제 입술에 조심히 포갰다. 

“씨엘, 못 하는 말이 없어. 지금 수인족보다 수명이 짧은 내 앞에서 생목숨 끊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뭐야.”

“협박이 아니야. 내가 그 정도로 라피를 사랑한다는 말이었어. 그러니까 라피…… 나랑 결…….”

씨엘이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할 때 갑자기 마나의 유동이 느껴짐과 동시에 낯익은 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 고모! 어이쿠,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구나.”

저 빌어먹을 놈의 나이 많은 조카님 좀 보소. 내 방으로 워프 좌표를 찍어 놨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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