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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24)화 (124/164)

124화. 

잠깐, 서부의 미네르바 루피노 공작님이라면?

“어? 나를 백설기라고 부른 예쁜 언니잖아. 아들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그 아들이 씨엘이야?”

“응, 우리 어머니셔. 우린 수인족이거든.”

내 가족만 있는 공간이었기에 씨엘은 숨김 없이 이야기를 해 줬다. 본디 수인족은 전설 속에서나 존재할 정도로 귀했다. 그의 피를 서부의 루피노 공작가가 물려받았다. 즉 루피노 공작가의 시조가 수인족인 것이다. 이건 다들 다 아는 거라 넘어갔다. 

“다른 이들은 전설로 여기겠지만 루피노 공작가는 실제로 수인족의 피가 진해서 대부분 수인족으로 태어나. 물론 최측근 외엔 모르는 사실이지만.”

씨엘의 설명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특히 아빠의 표정이 희게 질렸다.

“그럼 씨엘과 결혼하면 우리 라피가 도, 동물을 낳는 건가.”

아빠의 말에 대경실색한 오빠가 달려들어 나와 씨엘을 떨어뜨리려 했다. 한데 분명 체구가 오빠보다 여린데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오빠가 조금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수인족이란 건가. 인간보다 동물적인 감각이 발달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힘도 셀 줄은 몰랐다. 이래서 황궁 연회 때마다 드라코 공작이 미네르바의 빈정거림에도 결투를 신청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동안 씨엘을 떼어내려 하다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오빠는 씩씩대며 팔을 놓았다.

“내가 오늘만 너 봐주는 줄 알아.”

과연 올해 스물다섯 살짜리 어른이 맞는 건가 싶을 때 할아버지가 급히 통신구로 어딘가에 연결을 했다.

“루피노 공작! 나 티그리스 공작일세.”

다급히 서부에 통신을 연결한 할아버지는 매우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할머니에게 맞을 때의 애달픔은 진즉 사라진 후였다.

[무슨 일인지요. 이리 연락을 주고받는 게 처음이라 얼떨떨하군요.]

황궁 연회 때나 얼굴을 보는 사이인지라 미네르바는 솔직한 심정을 할아버지에게 드러냈다. 애초부터 예의 차리면서 귀족처럼 본론을 빼놓고 서론을 꺼내 들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릴 성질이 되지 못하는 듯했다.

“자네 아들이 우리 라피가 데리고 다닌 고양인가. 아니 씨엘이라는 수인족인가.”

[으음, 이제야 들켰나 보네요. 네, 제 아들이 맞습니다.]

미네르바의 한 마디에 할아버지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아마도 씨엘이 그냥 해 본 소리로 여겼던 탓인가. 씨엘이 진짜 루피노 공작가의 소생이라면 아무리 할아버지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씨엘은 루피노 공작가의 유일무이한 후계자니 말이다.

[본디 우리 가문은 아이가 태어나서 세 살이 되면 청소년에 해당하는 지능을 가지고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때쯤이면 세상 속으로 보냅니다. 교육 차원으로.]

우리가 듣기엔 어린 자식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내친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루피노 공작가의 교육관에 관해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육관과 다르다고 비난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저만 해도 밑바닥에서부터 굴렀는데, 제 아들은 귀한 아이의 엉덩이에 깔린 죄로 이름도 받고 잘 지내서 조금 배가 아프군요. 좀 더 굴러도 되건만.]

이젠 굴리고 싶어도 굴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하는 미네르바의 말에 씨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말이 뭘 뜻하는지 방금 오빠와의 힘 싸움에서 알게 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아이의 이름은 직접 지어 주지 않는 건가?”

[네, 만일 성인이 되어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름이 없다면 부모가 지어 주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가 이름을 지어 줬다면 호적에도 그리 올라가게 됩니다.]

참고로 루피노 공작가는 아이를 이름 없이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로 호적에 올렸다가 성인이 되면 그때 이름을 제대로 올린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재미 삼아 이름을 지어 주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개똥이나, 소똥이로 지었다면 루피노 공작가에 길이 남을 이름이 되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름을 지어 준 이와 평생을 함께한 적이 있습니까?”

이제껏 할아버지가 질문했는데 이번엔 아빠가 먼저 질문을 했다. 그 질문에 미네르바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제 이름을 지어 준 이가 지금은 하늘에 있는 씨엘의 아버지입니다만. 참고로 루피노 공작가의 아주 먼 친척 집안의 기사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렇다면 우리 라피가 씨엘에게 이름을 지어 줬으니…….”

[끝까지 책임을 져야지요. 이름을 지어 준 대가로.]

“정말이지 매우 혹독한 대가로군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일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는 대가였겠지만 내 경우엔 그게 아니었다. 나야 가만히 있어도 잘 먹고, 잘 사는데 굳이 서부의 공작부인이 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부는 단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미지의 구역이기도 하고 말이다.

“우리 딸이 씨엘을 거부한다면요?”

[평생 혼자 수절하면서 살아야지요. 하지만 이제껏 그런 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인족 특유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힘 좋아, 민첩성에 유연성 등 모든 신체적인 능력이 보통의 인간을 능가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예쁜 얼굴이 반려를 꼬시는 데 한몫한다고 미네르바가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인간을 상회하는 체력이라 밤에도 충분히 만족…….]

“크흠! 아직 우리 딸은 미성년자이니 그런 말은 자제하는 게 좋겠습니다만.”

[아! 실수, 어쨌든 우리 포실포실한 백설기 라피! 우리 집에 오렴. 이곳에 오면 내가 아닌 우리 백설기를 지켜 주겠다고 기사들이 줄을 설 테니까. 그리고 예쁜 아들도 줄게.]

미네르바의 엄청난 공약에 난 말 없이 어색하게 웃기만 했고, 씨엘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내 눈치를 살살 살폈다.

[어쨌든 우리 아들을 성년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만일 경비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퍼다 주겠습니다. 후훗, 씨엘! 라피를 잘 지키려무나. 딴 놈이 채가게 놔두면 네 놈을 먼저 호적에서 빼 버릴 테니까.]

“잠시만요. 루피노 공작님, 저 역시 우리 인절미 처제의 형부로서 할 말이 있습니다.”

[음? 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다고? 아! 아퀼라 공작님, 그리고 다른 분들, 그럼 저는 일 처리를 위해서 이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도록 하지요.]

“저기요? 루피노 공작님, 전 아직 한 마디도 물어보지 못했…….”

형부의 외침과 동시에 통신이 끊겼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통신을 다시 연결하려고 해도 한 번 끊긴 통신구에서는 빛이 나지 않았다. 일방적인 끊김에 할아버지는 씨엘을 봤다.

“당장 우리 라피 곁에서 떨어지거라.”

“그럴 수 없습니다만. 라피는 제게 이름을 지어 줬습니다. 그리고 제 은인입니다. 어찌 은인 곁에서 떨어져서 지킬 수 있답니까.”

무려 내 곁에서 십 년이 넘도록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씨엘이 할아버지를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라피의 말만 듣습니다. 그게 저희 종족의 특성입니다.”

“고양이로 다시 돌아가란 말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씨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곤 대놓고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도 오빠는 이를 갈았지만, 아까처럼 무력을 행사하진 않았다.

“전 찬성이에요. 아가씨도 반려를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씨엘도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겠어요. 게다가 예쁜 남자에 싸움도 잘한다면 뭐 말해 봐야 입 아프죠.”

헬레나가 먼저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자 다니엘이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으음, 저도 찬성이에요. 만일 우리 라피가 씨엘을 반려로 선택한다면 그 의견 존중할 거예요.”

“누님이 그러면 안 되죠.”

“왜 안 돼? 난 우리 어머니가 남긴 귀한 보물이 뭘 하든 곁에서 지켜볼 거야. 실패하면 다독여 줄 것이고 성공하면 기뻐할 거야. 그게 어머니가 원하는 라피의 삶일 것 같아.”

“누님!”

“솔직히 어머니가 애 딸린 나이 많은 남자랑 결혼한 것도 말이 안 되는 거지. 근데 사랑 하나로 친정과 연을 끊고 결혼해서 너랑 라피가 태어난 거잖니. 그러니 유진, 너는 그런 말 하면 안 돼.”

언니가 오빠와 가만히 노려보기만 한 아빠를 말발로 짓눌러 버렸다. 그러고는 형부와 콜린을 봤다. 언니 역시 친정과 연을 끊을 각오를 하고 나이 많은 형부를 사랑해서 콜린을 낳았다. 그렇기에 형부와 콜린 역시 그 점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나는…… 우리 라피만 원할 때 볼 수 있다면 상관없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고인물이 되어 썩기 마련이니 우리 말랑 콩떡도 다른 것을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게 생각하네만.”

우리 가족의 최종 보스이자 권력자인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할아버지가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뜯어말렸다.

“여, 여보, 소피아! 우리 라피는 아직 어립니다. 어린데…….”

“몇 년만 지나면 아이도 성인이 됩니다. 언제까지 부모와 가족의 품에 안주한 채 세상 물정 모르는 마법사로만 지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씨엘이랑 결혼하는 것은…….”

“누가 당장 결혼하라고 했습니까? 라피가 성인이 된 후에 결정할 일인데 벌써 아이의 인생을 결정하려는 이들이 많이 있는지 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맞군요.”

할머니의 한 마디에 반대를 외치려던 가족들은 전원 입을 다물었다. 그런 가족들 틈을 밀치고 내게 온 할머니가 나와 씨엘을 보며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세상을 이끌어갈 이들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란다. 그러니 지금은 뭐든 하면서 실패도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단다.”

“그 말인즉슨…….”

“두 사람만 원한다면 사귀어도 된다는 말이란다. 그러다가 마음에 안 맞으면 헤어지고, 마음이 울적해지면 할미를 찾아오거라. 원할 때까지 다독여 주마.”

너무나 관대한 할머니의 말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스한 품으로 파고들었다.

“네가 아무리 세상을 안다고 자부하더라도 이제 열다섯 살이야.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잔뜩일 터이니 실수도 잦을 거야.”

“네…….”

“나는 너희가 많은 경험을 해 보고 느끼며 배우길 바란단다. 그 점에 한해서는 루피노 공작의 교육관이 참 자유로우면서도 훌륭하다고 여겨지기도 해.”

타인의 교육관을 무작정 싫다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좋은 점은 수용하는 할머니는 내 등을 다독였다.

“원래라면 네 어미가 이리 해 줘야 했는데…… 아마 세라피나라면 전설의 드래곤이 우리 라피랑 사귄다고 하더라도 네가 좋다고만 하면 무조건 허락해 주고도 남았을 거야.”

똑같은 속도로 다독이는 손길에 나는 할머니의 품에서 서서히 녹아 버렸다.

“반대하는 가족들도 전부 우리 말랑 콩떡이 걱정되어서 그런 거니 너무 미워하진 말거라.”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남의 집안 귀한 아들을 낮잡거나 헐뜯지는 말고. 씨엘이 우리 손녀사위가 되면 그땐 과거에 한 못난 언행을 어찌 지우려고 그러는 건가.”

이번엔 내가 아닌 다른 가족을 쓱 보며 말했다. 할머니의 말씀에 다들 숙연해졌다. 이로써 내가 원한다면 씨엘과 결합하는 게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할머니가 안 계신 곳에서 아빠랑 오빠가 열렬하게 반대하겠지만.

해군의 기밀을 빼돌려 해적에게 넘긴 이는 생각 외로 너무나 손쉽게 잡혔다. 그날 출근하지 않은 부함장이 나와 형부랑 언니가 함정에 탈 거란 사실을 해적에게 전해 줬다. 그 대가로 엄청난 금을 받았지만 결국 전부 압수당한 후 불명예제대를 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참수형을 당했으며 그의 가족은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사실이고 지금은 판테르 공작저의 연무장에서 기사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완벽한 인간으로 변한 씨엘의 손에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판테르 공작가를 지킬 기사들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후우, 미치겠군.”

마침 도착한 오빠가 그 광경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티끌만큼도 힘겨워하는 티를 내지 않은 채 맨몸으로 기사를 상대하는 씨엘을 향해 외쳤다.

“씨엘! 우리 가문의 기사를 전부 쓰러뜨리면 라피랑 결혼 못 하게 할 거다.”

그 한 마디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저보다 훨씬 덩치가 큰 기사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려 흔들던 씨엘이 냅다 뒤로 던져 버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양순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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