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21)화 (121/164)

121화. 

순간 괜히 그들을 도발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해적들은 파상공세를 펼쳤다. 정확히는 마법사인 나를 먼저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실드를 쳐서 안전을 확보했다지만 이제 마법사 신생아인 내게 마나가 남아돌 리가 없었다. 어느 정도 공격 계열 마법을 시전하고 보니 서서히 마나가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얼른 가지고 온 가방을 뒤졌다.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티그리스 공작저에만 갔다가 오면 내 가방엔 마법 스크롤이 그득하게 담겼다. 이젠 어엿한 마법사였지만 할아버지의 눈엔 여전히 비틀거리는 플라이 마법으로 품에 안겨든 조그만 아이였다. 

마법 스크롤 중 약간 고가에 속하는 것을 꺼내 들어 찢었다. 순간 줄어든 마나가 다시 채워지는 상쾌함에 심호흡을 했다. 이른바 마나 보충용 스크롤이었지만 하루에 한 개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가장 필요한 스크롤이었다.

“할아버지, 감사해요.”

멀리 있는 할아버지에게 혼자 감사의 인사를 한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법을 시전했다.

“처제, 내가 지켜 줄 테니까…….”

“누가 누굴 지켜요! 아이스 애로우!”

최대한 마나 사용량이 적은 것들로만 시전하며 어떻게든 버텨 보려 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이제껏 세 척인 줄 알았던 해적선의 수가 늘어났다.

“아퀼라 공작과 판테르 영애를 산 채로 잡아라.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죽여도 상관없다.”

해적 선장으로 보이는 이가 해적들을 지휘하며 소리를 쳤다. 그걸 들은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가 이곳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안 이는 해군 외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어제 형부가 신분이 들켰다고 했다. 이왕 들킨 김에 헤인스 자작에게 나를 이곳에 태우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오늘 나와 언니 내외가 이 함정에 탄다는 사실을 안 이는 같은 해군 외엔 없을 것이다. 해군 중에 해적과 내통한 자가 정보를 흘렸고 작정하고 해적선을 이끌고 온 게 분명했다.

“이대로 잡히면 우리 아빠의 이름이 울지. 파이어 애로우!”

내통한 자를 잡는 것은 이곳에서 승리를 한 이후였다. 지금은 눈앞에서 달려드는 이들을 쳐내는 게 우선이었다.

그 와중에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파이어 애로우를 가까이 댄 해적선을 향해 날렸다. 몸집을 부풀린 파이어 애로우는 해적선의 갑판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해적선을 보고 만족스러워진 나는 다른 해적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법사로서 겪은 첫 전투가 해적들이라는 점에서 나는 안타까워하며 손을 내밀었다.

“마법, 마법을 못 쓰게 막아!”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

나를 삿대질하며 명령을 내리는 이를 향해 싱긋 웃어 준 나는 전격 마법을 걸었다.

“라이트닝!”

“으아악!”

금속의 무기에 닿은 전류는 해적들을 전기 구이 오징어로 만들어 버렸다. 벼락 맞은 듯 바르르 떤 이들의 머리카락 위에는 뽀얀 김이 피어올랐고 그대로 쓰러졌다. 죽지는 않았지만 새까맣게 그을려 기절한 이들은 거품을 물며 퍼덕거렸다.

본래는 라이트닝에 제대로 맞은 이들은 그대로 절명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최대한 마나를 아끼기 위해 기절할 정도로만 마나를 넣었다. 문제가 있다면 모든 무기가 금속이 아니었다.

활 종류는 나무나 동물 뼈를 이용했기에 순도 높은 라이트닝이 아니고서는 공격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활을 든 해적이 나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팅, 티딩-

실드에 막혀 화살이 바닥에 차곡차곡 쌓였다. 하지만 그들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형부의 손에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언제나 아빠 앞에서 앓는 소리를 내며 대련을 피하던 형부의 솜씨에 엄지를 세웠다.

“프로스트 더스트.”

자잘한 얼음 알갱이가 내가 지정한 곳에 생겼다. 그러곤 빠른 속도로 해적에게 엉겨 붙었다. 처음에 닿으면 서늘한 느낌이 들겠지만 이내 냉기가 혈관을 파고들어 심장을 순간 멈추게 했다.

순식간에 심장 마비가 와서 그대로 고꾸라진 것을 확인한 나는 마법을 거둬들였다. 그러곤 곧바로 다른 해적에게 재활용해서 사용했다. 사용하는 마나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었다.

“그나저나 분명 많이 쓰러뜨린 것 같은데, 처음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

하나가 죽으면 하나가 보충되었다. 정말 쉼 없이 꾸역꾸역 갑판으로 올라온 해적들을 본 나는 치를 떨었다. 이건 뭐 쓰러뜨려도 끝이 없었다.

꺄오옹, 캬옹.

자고로 마법사는 근거리가 취약했다. 이를 보완해 준 이가 바로 씨엘이었다. 내게 가까이 접근하는 해적이 생기면 바로 뛰어가서 날카로운 솜방망이로 사정없이 싸대기를 날렸다. 특히 눈을 집중적으로 노리는데 어찌 보면 나보다 더 잔인하게 보이면서도 효율적이었다.

“크아악, 젠장! 이 빌어먹을 고양이는 뭐야.”

“빌어먹는 건 너고, 얜 우리 씨엘이야. 인사는 생략할게. 인사까지 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잖아.”

씨엘의 발톱에 눈을 공격당한 해적이 비틀거리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눈을 부여잡은 손가락 사이에서 붉은 피가 스미듯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씨엘이 제 앞발을 그루밍하듯 핥더니 다시 이쪽으로 접근하는 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처음엔 단순히 애완동물로 여겨서 신경 쓰지 않았던 씨엘이 활약에 해적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녀석 보통내기가 아니야.”

“아무리 봐도 우리 동네에 있는 흔한 길고양이 같은데, 이상하네.”

“지금 고양이 감상평 할 때냐! 정신 차려.”

천천히 다가오는 해적들이 씨엘을 보며 한마디씩 하다가 다시 전의를 다졌다. 무시무시한 무기가 햇볕에 닿자 소스라치게 반짝였다. 더러는 무기의 날에 누군가의 피를 머금었다. 보기만 해도 무섭고 역겨웠지만,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차피 해군이 다치지 않기 위해서 범위가 협소한 마법을 할 수밖에 없어.”

어, 그래. 알아줘서 참 고맙구나.

그나마 마법 입문까지는 해 본 적 있는 듯한 이는 비릿한 표정을 지었다. 비릿한 생선의 썩은 눈깔도 저 정도보단 나을 듯싶다. 약이라도 한 것처럼 흐리멍덩한 눈동자의 소유자는 나를 보더니 입술을 혀로 적셨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훌륭하지 않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씨엘이 먼저 본보기로 쌍싸다구를 날렸다. 잔뜩 날을 세운 앞발로 난도질한 씨엘이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자 고통에 얼굴을 감싼 이는 그 길로 좋지 못한 모습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괜찮으십니까?”

사실대로 말하면 절대 ‘아니오’였다. 이 상황에서 괜찮을 리가 없었다. 제아무리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탄을 발사해도 다른 해군 함정은 오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이미 그쪽으로 배신자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지 말라는 언질을 줬을 것이다.

해적의 피가 묻은 검을 든 해군이 내 근처로 다가오며 묻자 예의상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작은 통신구를 꺼냈다.

이곳과 가장 가까운 곳과 임의로 통신이 연결될 수 있게 한 통신구였다. 제발 지금 이 순간 해적선에서 통신구를 쓰는 이가 없었으면 했다.

잘못했다가는 해적과 통신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해군이나 남부 관련 관료가 있는 곳과 통신이 되길 바랄 때 멋들어진 제복을 입은 존재가 보였다.

[음? 누구십니까. 여긴 해군 2함정 통신병…….]

“당장 출격해요. 지금 1함정이 해적선에게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헉!]

자고로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게 가장 나은 법이었다. 통신구로 내 앞쪽을 비추자 상대 쪽에서 헛바람을 들이켠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세라피나 판테르입니다. 만일 이 일이 거짓이라면 우리 형부가 전부 책임질 터이니 얼른 신호탄 터지는 곳으로 출동하세요. 얼른요.”

짧게 말한 후 얼른 통신을 끊었다. 평소 형부의 성격을 아는 이들이라면 즉시 출동할 것이다.

“진작 이걸 쓸걸. 알아서 기어 올 줄 알고 안 썼네.”

언제나 뭔지 모를 일이 터질 수도 있다며 할아버지는 내게 휴대용 통신구를 여러 개 만들어 주셨다. 정확히는 아랫사람들을 닦달해서 만든 최상급 휴대용 통신구였다.

귀한 통신구를 얼른 주머니에 넣은 나는 발치에 나동그라진 화살을 봤다. 내가 통신을 하는 중에도 끊기지 않고 쏘아지는 화살 비였지만 아직 실드는 건재했다.

“이거 팔아서 한 몫 챙겨도 될 것 같은데.”

나보다 높은 실력을 지닌 마법사가 마나를 담아 쏜 화살이 아니고서는 실드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가장 안전한 방어막 아래에 있는 나는 심호흡을 한 후 들끓는 마나를 다스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승산이 없었다. 아무리 지옥 같은 훈련을 받으며 수련을 한 해군이라고 할지라도 인해전술엔 속수무책일 터이다.

머릿수로 밀고 들어오는 해적들을 본 나는 이를 갈며 마법을 시전했다. 생각 같아서는 확 쓸어 버리고 싶었다. 해군이 휩쓸릴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자잘한 마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윈드 애로우, 윈드 애로우, 윈드 애로우, 윈드 애로우…… 에잇! 이래도 안 줄어들어? 윈드 애로우!”

바람으로 만든 화살만 계속 쏘아댔지만, 마법 스크롤까지 써서 채운 마나임에도 한계에 도달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프도, 리조또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나가 완전히 고갈되기 전까지 마법을 쓰는 것 외엔 없었다.

혼전임에도 서서히 해군이 밀리고 있음에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마법을 사용하려고 할 때였다. 

“정말이지 큰일 날 아가씨였군요. 다 된 수프에 재를 뿌리려 하다니.”

목에 닿는 예리함에 순간 심장이 멎었다. 분명 내 주변엔 해군 복장을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배신을 한 건가, 아니면 애초에 해적이 해군 복장을 한 채 함정으로 옮겨 탄 것인가.

당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내 귀 가까이에서 소리가 울렸다.

“멈춰라. 멈추지 않으면 판테르 영애를 죽이겠다.”

우레와 같은 소리에 순간 싸움이 멈췄다.

“하나뿐인 처제가 죽는 걸 보기 싫으시면 얼른 검을 놓으시지요. 아퀼라 공작님.”

남의 피로 흠뻑 젖은 형부는 그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년 이맘때쯤 공짜 맘마 먹을 생각인가 보군.”

“뭐?”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우리 처제 건드리면 자네와 같은 피가 한 방울이라도 흐르는 이들까지 판테르 공작가와 티그리스 공작가의 먹잇감이 될 텐데. 쯧쯧, 미리 명복을 빌어 줄까?”

이 와중에 웃으며 말하는 형부의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틈도 없이 긴장한 이의 검이 내 목에 닿았다.

날카로운 단검의 날에 닿은 목이 따끔함과 동시에 뜨끈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목이 베인 듯했다.

“처제!”

꺄오옹!

생각외의 출혈이 생겼다. 하얀색 옷을 입은 탓인지 앞섶이 붉게 물들었다. 놀란 형부의 외침과 동시에 이곳으로 달려드는 씨엘의 모습이 느릿하게 보였다.

분명 까만 고양이였는데 이곳으로 달려오는 씨엘의 모습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날렵한 몸매의 남자가 된 씨엘은 내게 단검을 들이댄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나는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가 다시 감았다.

똬아아앙-

순간 뒤에서 타종 소리가 들렸고, 내게 단검을 겨눈 남자의 몸에서 힘이 빠지더니 스르륵 쓰러졌다.

달려오던 씨엘이 그 자세로 굳어 버릴 정도로 아찔한 일이 터졌고 그 진원지는 내 뒤였다.

“어디 감히 내 귀한 동생한테 칼을 겨눠. 이 미친 새끼가! 판테르 가문의 여식이 호락호락할 줄 알아! 이 새끼들을 확 마!”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프라이팬을 든 언니가 씩씩대며 서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