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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20)화 (120/164)

120화.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대체 부부 싸움을 얼마나 크게 했기에 다른 사람에게 신분을 들킬 수 있는 것인가. 아니 들켰다고 한들 굳이 나를 왜 이곳까지 끌고 온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다른 사람한테 들켰으면 언니랑 형부만 움직여도 되잖아요. 저는 안 들켰는데 굳이 왜 데려온 건가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는 나를 본 형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인절미 처제랑 우리는 운명 공동체잖아. 즉! 가족이니까 항상 같이 움직여야지.”

이게 뭔 변비 걸린 개가 풀 뜯어 먹다가 토하는 소리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 아퀼라 공작님의 처제라면…… 혹시 판테르 영애가 아닙니까?”

“맞아요. 볼을 부풀리고 있는 아이가 내 동생이랍니다.”

“오오, 그렇군요, 판테르 영애께선 모르시겠지만 얼마 전 황실 연회에서 뵈었습니다. 당시 황태자 전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지요.”

처음 황태자 클레어런스를 본 이후로 해마다 그와 마주했다. 아니 정확히는 클레어런스가 나를 찾아왔다. 첫 만남부터 친구 하자고 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단 한 번도 나를 안 찾아온 적이 없었다.

클레어런스가 몸이 아파서 연회에 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페이지 경을 보내 꼭 강제로 문병을 하게 했다. 친구니까 말을 편히 하라는 클레어런스의 요청에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바로 놓았다. 그랬더니 클레어런스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파하면서도 웃었다.

그 후로 해가 지날수록 그만큼 할 말이 늘어갔고, 가족들 안부는 예의상 물었다. 한데 내겐 가족이 워낙 많아서 그들의 안부를 하나하나 답하는 것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심지어는 휴게실을 혼자 차지한 채 편히 앉아 있을 때 제 동생으로 입양된 황자 루카스를 데려와 소개해 주기까지 했다.

같은 피가 흘러도 황위 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곤 했다. 한데 이 둘은 같은 피가 흐르지 않았지만, 사이가 꽤 좋아 보였다. 겉으로만 좋아 보이는 쇼윈도 형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서로가 아는 게 많았다.

“그냥 인사만 묻는 정도예요. 그 정도는 다들 예의상 하는 말이잖아요.”

물론 황태자랑 친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호기심에 노출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하시기엔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여서 혹시 결혼 생각이 있으신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냐옹 냥냥 냐아앙.

헤인스 자작의 말에 나 대신 씨엘이 나서서 대답했다. 그런 거 절대 아니라며 온몸으로 표현을 한 씨엘을 쓰다듬은 나는 픽, 웃었다.

“제가 황태자 전하와 결혼한다고 하면 우리 아빠가 황궁부터 뿌셔 버릴 것 같습니다만. 그건 우리 엄마와 가족에 대한 모독이에요.”

“아, 크흠…… 죄송합니다. 워낙 두 분이 사이좋아 보여서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사반나 제국의 귀족이라면 내가 황태자와 엮일 수 없다는 것쯤은 알 것이다. 황태자비가 황손을 임신했다는 이유로 당시 황태자였던 황제가 전쟁에 나가지 않았고, 그 바람에 임신한 줄도 몰랐던 우리 엄마가 출전해서 전사하셨으니 말이다.

만약 내 눈에 콩깍지가 씌어 황태자와 결혼하겠노라고 하면 아빠가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아빠의 피눈물은 엄마를 죽인 적국 왕의 머리를 황족 앞에 던진 날에 흘린 게 마지막이어야 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좋겠네. 한데 우리 처제를 태우고 해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 줘도 무방한가?”

“물론이지요. 남부의 상징 아퀼라 공작님의 부탁이신데요.”

형부와 헤인스 자작의 대화를 들은 나는 순간 고개가 갸우뚱 움직였다. 지금 저들이 뭐라고 말하는 것인가.

“처제, 헤인스 자작의 말은 잘 들었지? 우리 처제가 해군 함정에 탈 수 있게 내가 힘 좀 보탰어.”

“왜요?”

“음? 왜긴, 우리 인절미 처제는 남부의 보배야. 저번에 실베스터 왕국과의 협상에서 처제의 활약 덕분에 철을 싸게 수입해서 이렇게나 멋진 배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굳이 제가 배를 타야 할 이유는 없…… 형부!”

나를 갑자기 번쩍 안아 올린 형부는 그 길로 해군 함정에 올라탔다. 

아퀼라 공작이 해군까지 운용한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이런 것과 관련된 것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커다란 함정이 출항을 했음에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았다. 배 멀미나 안 하면 다행이었다.

잔잔한 바다를 쏜살같이 가르는 함정에서 멍하니 있자 해군들이 내 주변을 맴돌았다. 판테르 공작가의 여식인 내 눈에 어떻게든 들기 위해 음료수며 뭐라도 들고 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겐 신경 쓰지 말고 업무 보세요.”

올해 열다섯 살, 내년부터 나는 부모님의 허락만 있으면 결혼할 수 있는 열여섯 살이 된다. 그래서인지 황실 연회 때도 그렇고 젊은 남성들의 자꾸만 기웃거렸다. 물론 그랬다가 우리 가족들에 의해 강제로 떨어졌지만.

“우리 처제는 인기도 많아라.”

“제가 인기가 있는 게 아니라 판테르 공작가가 인기가 많은 거겠죠. 제 이름에서 판테르를 빼면 지금 같은 반응이 일어날까요?”

“응, 우리 처제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쫄깃쫄깃 말랑말랑한 인절미니까 분명 남자들이 찰떡같이 달라붙을 거야.”

기승전 떡으로 얼굴이 풀린 형부를 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내 머리를 언니가 쓰다듬어 주며 웃었다.

“그냥 즐기렴. 예전부터 제롬이 우리 라피를 해군 함정에 태우고 싶어 하는 것을 내가 어리다는 이유로 말렸었거든. 근데 이제야 소원풀이를 해서 저렇게 얼굴이 풀린 거야.”

본디 해군 함정엔 여자는 태우지 않았다. 물론 아퀼라 공작부인은 제외였다. 공작이 부재일 시엔 부인이 그의 지위를 이어받아 모든 실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공작과 같은 대우를 해 줬다. 하지만 타인은 절대 불가능했다. 

그 불가능한 벽을 깨부숴 버린 형부는 기분이 좋은지 계속 웃기만 했다.

“처제, 이게 뭐냐면…….”

굳이 알려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나를 옆구리에 끼고 말했다. 이런 건 제발 콜린에게나 알려 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좋아하는 형부를 보고 있노라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형부의 설명을 한 귀로 듣고 조용히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요란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내 주변을 맴돌던 해군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함장님, 지금 해적선 세 척이 이쪽으로 접근 중입니다.”

“뭐? 해적선이? 하필 지금…… 알겠으니 전원 공격 준비를 하게나.”

분명 방금까지 잔잔한 바다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해 함정은 어수선해졌다. 얼굴을 굳힌 헤인스 자작은 형부를 봤다.

“아퀼라 공작님, 아무래도 전면전이 시작되면 부인과 판테르 영애가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안전처로 이동하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배가 공격당하더라도 숨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 있는 법이었다. 그곳으로 나와 언니를 보내라는 헤인스 자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앞의 바다에 커다란 물보라가 일어났다. 순간 배가 흔들렸고 나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 형부를 꽉 붙잡았다.

“해적선이 포탄으로 공격해 옵니다.”

“우리도 맞대응한다. 전원 포탄 장전!”

“포탄 장전!”

포탄실에 있는 이들이 대포에 포탄을 넣고 각도를 잰 후 신호를 기다렸다. 잠시 후 포탄이 일제히 해적선 쪽으로 쏘아졌다. 요란한 소리에 귀를 막은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에리카, 처제 데리고 따라오세요. 지금은 해적과 싸우는 걸 구경할 때가 아닙니다.”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자 형부는 내 손을 잡은 언니를 데리고 함정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와중에도 커다란 소리와 더불어 배가 흔들렸다.

“이곳은 안에서 열기 전엔 쉽게 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

“제롬, 우리랑 같이 있는 거 아닌가요?”

“난 남부를 다스리는 아퀼라 공작입니다. 해적이 무서워서 이런 곳에 숨을 수는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셨던 아버지처럼 콜린에게 멋지고 자랑스러운 아비가 되고 싶으니까요.”

우리를 안으로 밀어 넣은 형부는 마지막 인사조차 할 여유도 없이 멋진 말을 하고는 문을 닫았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언제나 당당한 언니가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이를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모든 기사의 전설인 엄마와 아빠의 딸인 내가 이런 곳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는 아빠와 엄마를 모독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언니, 여기에 잠깐만 있어요. 나는 잠깐 위로 나가 볼게요.”

“뭐? 안 돼! 어린 네가 다치면 내가 아버지한테 죽어!”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전 이래 보여도 마법사예요. 한 사람 몫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라, 라피! 안 돼. 위험해. 라피? 라피!”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나를 볼 때마다 인절미 처제라고 부르는 형부를 위해서라도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복도로 나온 나는 옆에 있는 씨엘을 봤다. 함정 구조가 상당히 복잡해서 내가 혼자 위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내 시선에 씨엘은 능숙하게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전면전인가.”

포탄 소리가 아니라 이젠 비명과 함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나를 태우기 위해 함정 한 척만 운용했으니 지금쯤이면 다른 함정이 위급한 신호를 보고 오고 있을 것이다.

갑판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더 커진 소리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는 아군을 살리고 자신을 희생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그런 행동을 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우리 엄마와 아빠의 딸이니까.

입술을 질끈 깨문 나는 문을 열었다. 그 앞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실베스터 왕국에서 본 것과는 차원이 달리한 적나라한 모습에 나는 곧장 마나를 움직였다.

“윈드 애로우!”

내 주변에 있는 공기가 뭉쳐 날렵한 화살 모양이 되어 순식간에 해적을 향해 날아갔다. 정확하게 세 개의 윈드 애로우는 해군을 공격하는 해적의 가슴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세 명을 해치운 나는 그들에게 명복을 빌어 줄 시간도 없이 곧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마, 마법사다! 마법사가 있다.”

바람 계열 마법을 난사하자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 정도로 마법사는 참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처제! 내가 올라오지 말라고 했…….”

“파이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나뿐인 형부한테 불화살을 쏘려고 하다니 우리 처제는 너무…….”

형부의 말을 전부 듣기도 전에 나는 그 뒤쪽에 있는 해적선 쪽으로 파이어 애로우를 쏘아 보냈다. 기껏 해 봤자 해적선 한 귀퉁이에 그을음 정도 남길 정도로 작은 불화살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에이든에게 배운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다.

“윈드!”

파이어 애로우에 신선한 산소가 그득한 바람을 더하자 순식간에 부피가 커졌다. 그러곤 정확히 해적선에 꽂혔고 이내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면전을 하기 위해 가까이 배를 댄 세 척의 해적선 중 하나에 큰불이 나자 그곳에 남은 해적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기본적인 속성 마법은 전부 배운, 바람 속성 전문 마법사인 내게 이런 것쯤은 매우 쉬웠다.

“처, 처제 너무 멋져. 나 처제가 마법하는 거 처음 봐.”

“지금 그런 거 말할 시간 없잖아요. 정신 차리세요. 형부!”

피융-

아군과 뒤엉킨 상태라 광범위의 마법을 시전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집중 타격을 가할 수 있는 화살을 만들어내 던졌다.

배 한 척이 소실되는 것을 본 해적들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그런 해적을 향해 검지를 까딱까딱 움직인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덤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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