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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12)화 (112/164)

112화. 

좀 전까지만 해도 메리지 블루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다. 한데 이젠 아예 대놓고 헤실헤실 웃느라 정신이 없는 에이든을 본 나는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저렇게 안 가르쳤는데.”

“푸읍, 라피, 자꾸 아빠 웃길래?”

결혼식 중에 아빠의 입술 사이에서 몇 번이나 바람 빠진 소리가 터졌다. 아니 정확히는 사방에서 어깨 파도타기를 하는 중이었다.

“아빠, 아빠도 결혼할 때 저렇게 웃었어요?”

“아니, 당시엔 감정을 숨기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행동했단다. 그래서 지금 후회 중이야. 그러니 우리 딸과 아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내비쳤으면 하는구나.”

아빠는 엄마에게 제대로 된 감정 표현을 못 한 게 못내 미안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언니와 오빠를 키울 때도 타인의 손에 맡긴 채 일만 한 것을 후회했다.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충분히 감정 표현을 하는 중이란다. 특히 우리 찹쌀떡에게 말이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정수리에 입맞춤한 아빠는 계속 예쁘다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나도 아빠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 아빠가 새신랑도 아닌데 가장 멋져요.”

“정말? 그리 봐 줘서 고맙구나. 우리 딸.”

아빠와 다정하게 대화하는 중에 갑자기 오빠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버지랑만 이야기하는 거야? 오빠는 매일 보지도 못하는데.”

“오빠는 언니랑 이야기하면 되잖아.”

가족끼리 이야기하라는 말에 오빠는 언니를 올려다보며 흠칫했다. 그 모습을 본 언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뭘 봐?”

“아, 아닙니다. 누님.”

“할 말 있으면 해. 썩어들어 가는 표정 하지 말고.”

왜 이쪽은 현실 남매가 되느냔 말이더냐.

“오빠가 언니를 좋아한대요.”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려고 했다. 한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미친, 별소리를 다 들어 보는구나. 아! 이건 라피에게 하는 거 아니란다. 크흠, 그나저나 뭐? 좋아해? 지금 나랑 싸우자고 시비 거니?”

“절대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저도 누님이랑 마주 보는 거 싫거든요. 못된 악당 같아요.”

“못된 악당? 너 오늘 못된 악당한테 궁둥이에 불붙은 망아지처럼 얻어터져 볼래?”

두 팔을 걷어붙이는 언니를 본 오빠는 열다섯 살의 나이임에도 흠칫했다. 분명 검술도 잘하고 힘도 더 셀 텐데 감히 언니에게 무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뭐 그랬다가는 아빠한테 곱게 죽지는 못하겠지만.

티격태격하는 남매를 본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에게 말했다.

“우리 라피는 절대로 저런 거 배우지 말거라. 내가 저리 안 키웠는데…….”

“당연하지요. 아버지께서 키워 준 적 없잖…… 흥!”

아빠의 말에 오빠와 언니가 동시에 말하다가 눈이 마주치자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남매라서 그런지 이럴 땐 박자 하나는 잘 맞는 것 같다.

“에리카, 처제 교육상 그런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는데 유진이 자꾸만 시비를 걸잖아요.”

“제가 언제 누님한테 시비를 걸었습니까.”

“눈이 마주쳤잖아.”

눈만 마주쳐도 싸움이 일어나는 현실 남매는 그 후로도 한동안 티격태격했다. 그렇다고 무력이 오가지는 않았다. 오로지 말만 오갈 뿐이었다.

“이래서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구나. 자네는 절대로 둘째는 낳을 생각은 하지 말게나.”

아빠의 시선이 형부 쪽으로 옮겨갔다. 처음엔 둘을 싸우지 못하게 설득했지만 이젠 포기한 듯한 형부는 아빠의 말에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래도 전 처제 닮은 인절미를 낳고 싶습니다.”

“그게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라피 같은 찹쌀떡이 나올 확률은 없잖은가.”

온전한 외탁인 나와 언니의 엄마가 달랐다. 그렇기에 그 점을 노려 말한 아빠를 본 형부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도 딸이 결혼할 때 에스코트해 주고 싶단 말입니다.”

“그건 다음 생에나 하게나. 에리카를 보니 이번 생엔 그른 것 같으니.”

본인이 직접 키운 것은 아니지만 딸의 성격 정도는 잘 알고 있는 듯한 아빠였다. 한 번 하기 싫다고 하면 끝까지 하지 않는다고 말한 아빠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죽어도 판테르 공작저엔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어기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우리 라피가 뚝 떨어져서 가능한 거지. 후훗.”

존재 자체만으로 세 가문을 엮어 준 나는 방긋 웃으며 하품을 했다. 화동을 하느라 새벽부터 일어나 치장한 탓에 졸렸다. 

몹쓸 체력에 낮잠 시간까지 겹쳤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몰려왔다.

“라피, 졸리면 자렴.”

결혼식은 어린아이에겐 수면제나 마찬가지였다. 제발 주례 좀 적당히 하고 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하품이 먼저 터져 나왔다.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하품을 하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결혼이 끝나 있었다.

신랑 신부가 하객으로 온 사람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본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바로 앉았다. 그래 봤자 아빠 다리 위였지만.

“잘 살도록 하게나. 우리 라피가 엮어 주느라 떨어뜨린 콩가루만큼이나.”

아빠의 덕담에 에이든과 사비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고모할아버지 말씀대로 잘 살도록 하겠습니다. 고모는 뭐 할 말 없어?”

“아가는 몇 년 후에 낳아. 신혼을 즐겨야지.”

덕담 아닌 덕담에 사비나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저희를 생각해 주시는 분은 고모님밖에 없으세요.”

절대 그건 아니었지만 내 말뜻을 아는 에이든은 입을 다문 채 잠시 먼 산을 봤다. 신랑 신부가 다른 이들에게 인사할 때 이번엔 미카엘라와 라파엘이 아이를 안고 왔다. 이제 돌이 지난 아이는 미카엘라의 품에 안긴 채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고모님, 이 아이가 그때 지켜 주신 아이린이랍니다. 아이린, 고모님께 인사드려야지.”

나를 빤히 본 아이린은 방긋 웃더니 말했다.

“꼬모!”

“으잉?”

“꼬모, 꼬모!”

뭐냐 대체. 내가 왜 네 고모가 되는데?

당황한 나를 본 미카엘라와 라파엘이 웃었다.

“사실은 고모님의 초상화를 그려서 걸어 두고 고모님이라고 말했더니 우리 아이린이 아빠, 엄마보다 고모라는 말을 먼저 했답니다.”

이젠 미카엘라마저 내게 말을 높이고 고모님이라고 불렀다. 평소대로 하라고 했건만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라나.

“참고로 제이비어는 못 데려왔습니다. 고모님의 반려감이 너무 어려서요.”

“풉!”

작년 12월에 태어난 제이비어는 남자아이였다. 제이비어를 낳은 라파엘이 처음 내게 통신구로 연락하면서 한 말이 내 신랑을 낳았다는 말이었다.

예쁘게 기를 테니 부디 요즘 인기 있는 연하남을 받아 달라는 소리에 옆에 있던 아빠가 통신구를 던져서 깨뜨렸다. 그때 본 오스카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왕자님, 왕자비님, 부디 우리 딸에겐 신경을 거둬 주시지요. 우리 라피의 주변엔 남자가 득시글할 테니 질투하지 않고 받아들일 남자와 결혼시킬 겁니다.”

한마디로 내가 바람피워도 인내하며 기다릴 남자와 결혼시킬 거라는 파격적인 말에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 나 진짜 바람피워도 돼요?”

“그럼, 우리 딸은 그럴 능력과 재력이 되니까. 자고로 남자는 여럿 만나 보고 고르면 된단다. 뭐 결혼해서도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워도 되고.”

상당히 파격적인 말을 한 아빠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이른바 딸 있는 생색을 내는 중이었다.

“나도 저 말을 일찍 들었어야 했는데.”

마침 옆에 앉은 언니가 형부를 보며 말했다.

“에리카,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훌륭한 남편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 엄청나게 잘난 공작입니다.”

그 당시에 남편감 1순위였던 형부는 상당히 불만이 섞인 시선으로 언니를 봤다. 그런 형부의 시선에 언니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러다가 부부 싸움을 할 것 같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나서지 않았다. 세상만사가 귀찮아진 다섯 살인 나는 앞에 놓인 오렌지만 먹을 뿐이었다. 오렌지를 양껏 먹고는 쉬러 방으로 올라갔다.

화동 드레스를 벗어 던진 나는 씻은 후 편히 침대에 엎드려 누웠다. 씨엘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 내 어깨에 분홍 젤리 발바닥으로 꾹꾹이를 해 줬다.

“씨엘이 안마해 주니까 기분 좋아.”

냐옹.

씨엘이 꾹꾹이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눌러지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씨엘의 기분이라도 좋으라고 칭찬해 주자 녀석은 더 기분 좋은 듯 발톱을 세우지 않고 더 힘껏 눌렀다.

씨엘의 꾹꾹이를 받으며 피로를 푼 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결혼 피로연이 열릴 시간이었다.

“내가 굳이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누가 뭐래도 말랑 콩떡 고모가 가는 게 옳지. 두 사람을 엮어 준 사람이잖아.”

내가 괜한 짓을 한 건가. 단지 둘을 엮어 준 것뿐인데 왜 내가 피곤해지는 것인가.

제이든에게 안겨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상당히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할머니, 새언니! 준비하느라 고생 많으셨겠어요. 결혼식 준비까지…… 으윽, 나 같으면 절대로 못 해요.”

“호호호, 우리 말랑 콩떡 아가씨 결혼식을 할 땐 이보다 더 잘 꾸며 줄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결혼할 때 미리 귀띔해 주세요.”

아직 결혼하려면 멀었지만, 헬레나는 벌써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녀의 팔을 꼭 잡아 내린 나는 상석에 앉은 할아버지 품에 안겨 조용히 눈동자만 움직였다.

“우리 라피가 만든 작품인데 어떠니?”

“굉장히 피곤해요. 다시는 중매는 못 할 것 같아요.”

옆에서 제이든이 안 된다며 말했지만 나는 귀를 한 번 후비적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좋아하는 남녀가 결혼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 같습니다.”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실베스터 국왕은 에이든과 사비나가 춤추는 모습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요. 우리 다니엘도 연애결혼이라 이리 뒤탈 없이 잘 지내는 거 아니겠습니까.”

헬레나의 말에 의하면 제 발등을 스스로 찍은 탓에 어디에 하소연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산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이런 자리에서 할 수 없었기에 얌전히 앉아서 행복으로 물든 부부를 봤다.

한동안 춤추는 것을 보며 축하하는 이들의 인사를 받다가 먹을 것으로 배를 채웠다. 피로연은 늦은 밤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런 게 무려 3일간 이어진다는데 귀족도 할 만한 게 못 되는 것 같았다. 피로연 하다가 기둥 하나 뽑히는 건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보다 신랑신부의 체력이 고갈되어 쓰러지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에이랑 조카 며느님은 언제 들어가요?”

“원래는 끝까지 남아서 돌아가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는 게 예의란다.”

다니엘의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러다가 새신랑 신부가 헌신랑 신부가 될 것 같아요. 얼른 재워요.”

“풉! 우리 라피가 원한다면 그리하마. 저 애들도 지친 것 같으니 말이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원망할 것 같은 새신랑 신부를 일부러 먼저 퇴장시킨 나도 몰려온 졸음에 일찌감치 백기를 들었다.

뒷일을 부탁한 나는 방으로 들어와 오늘은 혼자 잠이 들었다. 오빠는 아카데미 출석일이라 돌아갔고 아빠는 급한 일이 생겨 집으로 돌아가셨다.

티그리스 공작가의 가족은 죄다 손님맞이에 동원이 되었다. 그리고 언니와 형부는 중간에 싸워서 콜린을 데리고 내일 오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오랜만에 씨엘과 함께 잠이 들었고 중간에 언뜻 잠에서 깼을 때 까만색 머리카락을 지닌 아이가 옆에 있었다.

잠결에 잘못 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를 안으니 포근하고 따뜻해서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까만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 긴 검은 꼬리를 지닌 남자아이와 신나게 노는 꿈을 꿨다. 마치 씨엘과 닮은 듯한 남자아이는 내게 안겨 방긋 웃으며 입맞춤을 했다. 순간 놀라 깨어나서 이게 뭐지 싶을 때 내 눈에 엄청난 양의 보물들이 보였다.

특히 스노우 젬이 상자째로 들어 있었다. 내 머리맡에 놓인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가 상자에 담기다 못해 넘쳐 흘러내렸다. 그걸 본 나는 방금 꾼 꿈을 떠올리며 탄성을 질렀다.

“돼지꿈보다 더 좋은 길몽이었나. 우와. 대박! 씨엘이랑 자서 그런 꿈을 꾼 건가. 앞으로 씨엘이랑 같이 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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