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07)화 (107/164)

107화. 

야망과는 거리가 먼 제이든은 모든 것을 에이든에게 떠넘기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길 원했다.

“동생아, 내가 너를 가만히 둘 것 같으니? 내 뒤에서 신나게 굴러야지, 어딜 혼자 도망가려고 해?”

“일할 땐 일할게. 그래도 야근은 안 돼. 그리고 우리 말랑 콩떡 고모랑 놀아 줄 시간도 필요해. 내가 형 대신 고모랑 같이 나들이도 가 줄게.”

두 살 터울 형제의 말을 들으니 절대 형제의 난이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에이든은 명실상부 후계자로 교육을 받고 제 의무와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에 비해 제이든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절대 형의 것을 탐하지 않을 존재였기에 둘은 가주 자리를 두고 다툼을 할 소지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 녀석들이! 이 아비도 아직 공작이 되지도 못했는데 벌써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냐. 이것이야말로 하극상, 아니 월권행위가 아니더냐.”

분명 화가 나서 큰 소리가 나야 옳은 상황이었지만 이 집안은 살벌한 분위기 대신 웃음만 가득했다.

“라피, 할머니 왔단다.”

“하무니!”

이 집안의 최고 권력자의 등장에 나는 할아버지 품에서 벗어나 도도도- 달려가서 할머니 품에 안겨들었다.

“어휴, 우리 말랑 콩떡이가 나날이 야위는 것 같아. 이 일을 어쩌지.”

“니에? 아닌데요. 저 항상 배 빵빵하게 먹어요.”

“그럼 뭐하니, 공부하느라 금방 배가 꺼지는데. 자! 오늘은 할머니랑 같이 먹자꾸나.”

가끔 생각하는데 할머니랑 같이 밥 먹는 게 어느 순간엔 고문처럼 느껴졌다. 배가 불러도 계속 앙상하게 말랐다며 계속 먹였다. 

이것이야말로 먹을 것으로 고문하는 게 아니고 뭐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할머니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할머니가 매우 슬퍼할 게 뻔하니 말이다.

“하무니, 오늘은 에이랑 제이 먹여야 해요. 조카들이 살 빠졋써요.”

“어휴, 그랬구나. 하지만 에이든과 제이든은 걱정하지 말렴. 다니엘과 헬레나가 알아서 먹일 테니까. 자! 그럼 얼른 가자꾸나. 우리 라피가 좋아하는 것으로 준비하라고 했단다.”

내가 티그리스 공작저에 가는 날엔 항상 식단이 나를 위주로 짜였다. 그렇기에 과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이 먹어서 툭하면 소화제를 입에 달고 다녀야 할 정도일 때도 간혹 있었다.

“오늘은 내가 할머니 밥 먹여 줄게요.”

“정말? 호호호, 할머니는 우리 라피만 봐도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단다.”

“아빠도 매일 그런 말 해요.”

“어련할까. 부모는 자식의 입에 먹을 게 들어가는 것을 봐도 기쁘고 기분이 좋단다. 그래서 사위가 그리 말했을 거야.”

할머니의 손을 잡고 촐랑촐랑 걸음을 옮기자 그때야 티그리스 성을 지닌 남자들이 뒤따랐다.

“오늘 간식은 말랑 콩떡을 먹었으면 하는군.”

할아버지의 말에 수도의 티그리스 공작저 집사인 리안나가 곧장 고용인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시녀 한 명이 부리나케 주방 쪽으로 뛰었다.

“오늘은 말랑 콩떡을 입에 넣고 와랄라라 굴리고 싶습니다.”

다니엘의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니엘, 말랑 콩떡에도 위아래가 있다. 그러니 먼저 침 묻히면 그땐 후계자 자리에서 박탈하고 증손자를 올려 버리겠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에게 허용되는 협박에 다니엘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뭐 해요? 빨리 와서 같이 먹어요.”

“어? 응, 오빠 금방 갈게.”

오빠라고 불러 줄 때마다 매우 좋아한 다니엘은 언제 시무룩해졌냐는 듯이 금세 활짝 편 표정으로 내 곁으로 달려왔다.

“우리 아가씨, 얼른 오세요. 오늘은 회심의 역작이랍니다. 수도라 그런지 식자재가 풍부해서 이것 하나는 정말 좋네요.”

식당에서 기다리던 헬레나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직접 요리를 한 듯했다.

“헬레나는 요리해 본 적이 없잖아요.”

“어머, 왜 이러세요. 여보, 저 요즘에 시간 날 때마다 할머님께 요리를 배우고 있다고요.”

새침한 표정을 지은 헬레나는 마침 주방에서 음식이 나오자 곧장 내 쪽으로 밀었다.

“이거 드셔 보세요. 제가 직접 만들었답니다.”

뭔가 기대한 듯한 표정의 헬레나가 직접 접시에 조금 덜어 줬다. 분명 고급 식자재가 맞긴 할 건데 요리가 좀 뭔가 수상해 보였다. 매우 조심히 한 입 먹어 본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건 오빠가 좋아할 것 같아요. 오빠 드세요.”

“어? 정말? 이야, 살다가 헬레나가 한 음식을 먹게 될 줄이야. 이게 꿈……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한 입 먹은 오빠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본 에이든과 제이든은 절대 눈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제가 처음으로 한 요리인데 어때요?”

“정말 꿈 같은 맛이에요. 헬레나, 직접 만들면서 간은 안 보셨나요?”

“네, 진정한 요리사는 요리하는 동안 간을 안 본다고 들은 기억이 있어서요.”

이제 요리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헬레나가 진정한 요리사 운운하는 것을 들은 나는 할머니가 준 음식을 야무지게 먹었다.

“지금 한 번 드셔 보세요. 자고로 본인이 한 음식은 본인이 직접 먹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다니엘의 권유에 헬레나가 한 입 넣고 씹는 순간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서, 설탕을 넣는다는 게 소금을 넣었나 봐요. 첫 요리인데 실패했어요.”

제아무리 실수해서 소금을 넣었다고 한들, 설탕을 소금 넣은 분량만큼 넣었다면 혀가 아릴 정도로 달았을 것 같다.

“그래도 첫 시도치고 겉모양은 합격이에요. 그러니 앞으로 조금씩 고쳐나가면 분명 라피가 좋아할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분명 소금 덩어리를 통째로 입에 넣은 듯 짠데 다니엘은 헬레나를 다독여 주며 그 요리를 다 먹었다. 물론 물도 양껏 마시면서. 저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니고 뭐겠는가. 절대 다른 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저런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저리 아끼고 사랑하는 게 티가 났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다니엘 같은 성격의 남자와 결혼하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레나를 기쁘게 해 준 다니엘은 티타임이 끝나자 곧장 방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리에 제 머리를 비비적대는 씨엘을 안아 올렸다.

“나도 저런 사랑 해 보고 싶어. 아빠 같은 가슴과 오빠 같은 성격인 남자 어디 업쓸까.”

뀨우, 뀨우.

“뭐? 멀리 보지 말고 가까이 보라는 건 아니겟지?”

하긴 나무 신발도 제 짝이 있다고 하긴 했지만. 내 짝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개의 지옥을 건너야 가능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신체가 그 누구보다도 튼튼하고 유연해야 우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의자에 앉아서 씨엘의 온기를 흠뻑 느끼며 달을 보던 나는 그대로 잠이 들려고 했지만 약간의 소란스러움에 깼다.

“라피, 아빠 왔다!”

오늘은 분명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자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듯했다.

“아빠?”

눈을 비비며 부르자 아빠가 급히 달려와 내 손을 잡았다.

“손으로 눈 비비면 안 된다고 했잖니.”

“니에.”

“이제 가자. 여긴 대가족이니까 상관없지만 큰 집에 아빠 혼자 있으려니 옆구리가 아니 가슴이 시리구나.”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빠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게 해 줄 수 있는 나는 방긋 웃으며 안겨들었다.

* * *

황궁 연회 마지막 날-

오늘도 열심히 신나게 연회 갈 준비를 할 때 밖에서 스칼렛이 약간 속도를 높여 내 방으로 들어왔다.

“아가씨, 모르간 후작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왜요? 싸우재요?”

“그게 아니라 뭔가를 잔뜩 가져왔습니다. 가주님께서 가셨지만, 아가씨도 한 번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서 이리 왔습니다.”

스칼렛의 말에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서 쫄랑쫄랑 걸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이제 가요.”

“네, 네? 네.”

약간 당황한 듯한 스칼렛의 표정이 이내 부드럽게 펴졌다. 스칼렛의 손을 잡고 응접실로 들어간 나는 저번에 언뜻 본 듯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세라피나 판테르 아가씨, 두 번째로 뵙습니다. 저는 모르간 후작님의 명을 받고 온 일리나스 자작입니다.”

일개 고용인을 보낸 게 아니라 자작을 보낸 것으로 봐서 상당히 중요한 일인 듯했다.

“흐음, 그래. 내 딸이 오면 그때 말하겠다고 했으니 이제 말해 보지.”

나를 안아 올려 옆에 앉힌 아빠의 물음에 일리나스 자작은 저와 함께 온 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약간 크고 묵직한 상자 세 개를 건네받아 내 앞에 있는 테이블에 올렸다.

“확인해 보시지요. 저희 모르간 후작가의 성의입니다.”

아빠의 시선에 뒤에 서 있던 맥스가 조심히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엔 휘황찬란한 보석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다음 상자엔 알록달록한 보석이 가득했고 그다음 상자엔 반짝반짝 빛나는 금화가 그득했다.

아무래도 내가 나간 후 오빠가 언질을 준 게 분명했다. 반짝이는 보석을 손으로 쓸어 만진 나는 순간 침을 흘릴 뻔했지만, 그 찰나에 아빠가 손수건으로 닦아 줬다. 이건 누가 봐도 조건반사적인 속도였다.

“우리 딸에게 이 정도의 보상금을 줄 정도라면 그 집 둘째 아들은 상당히 귀한 존재인가 보군.”

“죽은 줄 안 자식을 찾아 주었는데 이보다 더한 것도 줄 수 있습니다. 하니 더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시라는 모르간 후작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그 집안 재산 반을 뚝 떼어 주라고 해도 줄 수 있나?”

“네, 가능합니다.”

감히 자작이란 존재가 모르간 후작의 재산을 거덜 낼 수 있는 발언을 당당하게 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모르간 후작의 진심이 느껴진 나는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더는 필요 업써요. 대신에 어디 가서든 마주치게 되면 모르는 척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아가씨께서는 나이에 비해 마음이 하해와 같이 넓으시군요.”

원 별말씀을.

어깨를 으쓱인 나는 꽤 만족스러운 선물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일리나스 자작이 조용히 운을 띄웠다.

“우리 도련님의 라이벌이라고 들었습니다.”

“니에.”

“예전엔 라이벌임을 알게 되었을 경우엔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몰라요.”

할아버지가 라이벌을 만나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말해 줬을 뿐 더는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른다고 이야기하며 내 옆에 쫄랑쫄랑 붙어 따라온 씨엘을 안았다.

“같은 성일 경우엔 절친이 되었지요. 그리고 이성일 경우엔 결혼시켰습니다.”

순간 아빠의 고개가 삐끗하듯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사방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 듯했지만 애써 무시한 나는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왜요?”

“진정한 선의의 경쟁자이기에 서로를 잘 알게 되니, 반려로 더없는 조건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지요.”

“아항, 그래서 내가 파이랑 결혼하길 원하는 건가요?”

“아니요.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구시대적 관습을 들먹이며 강제로 엮겠습니까. 단지, 두 분이 마법탑과 티그리스 가문 간의 다리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 일리나스 자작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가 되어 두 가문을 이어 주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서로 원한다면 교류 정도는 할 수 있게 운은 떼 줄 수 있었다. 물론 지금 할아버지의 상태를 봐서는 절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부디 다음에 만날 때까지 그 웃음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일리나스 자작이 일어나 본디 속한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곧장 응접실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 안의 물건을 쓸어 만졌다.

“완전 좋아!”

내 새끼들,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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