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04)화 (104/164)

104화. 

“모르간 후작가로 가게.”

“네? 모르간이라면…… 거기 가도 괜찮겠습니까?”

마부 역시 우리 외가와 모르간 후작가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아는지 오빠의 말에 움찔하며 물었다. 보통 때라면 절대 반문 따윈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괜찮으니까 그쪽으로 가게나.”

“네, 알겠습니다.”

비록 가문 깃발은 다 떼어놨지만, 주변에 선 기사들로 인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것도 곧 시선에서 멀어졌다. 인적이 없는 곳으로 들어서자 귀족가의 저택이 띄엄띄엄 있는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모르간 후작님이 이 아이 찾는 거 맞아? 그 많은 인원을 동원하고도 못 찾은 게 용하다.”

오빠의 물음에 엘런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리에 찾느라고 그런 것 같아. 그게 아니면 가주 몰래 내부적으로 파이퍼를 찾지 못하게 훼방을 놓았을 수도 있고 말이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도는 마차 안에서 파이퍼가 꼼질대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제 사촌 형이 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의 눈에 엘런은 그저 남일 뿐이었다.

“무셔? 걱정하지 마. 이제 파이퍼의…… 파이라고 불러도 될까?”

끄덕끄덕-

파이퍼의 작은 고갯짓에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엄마랑 아빠 보러 가는 거니까 갠찬아. 앞으로는 파이를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으, 응…….”

한 번 잃었으니 두 번은 잃지 않을 것이다. 만약 또 잃었다간 그건 모르간 후작가가 썩어 문드러질 정도로 무능한 것이 되니 말이다.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꼭 붙잡고 방긋 웃어 주자 파이퍼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몸뚱이의 나이 또래인 파이퍼의 행동이 귀엽게 보인 나머지 꼭 안아 줬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은 오빠의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씨엘 역시 꼬리를 바짝 세웠다.

잠시 후-

“이곳은 모르간 후작가다. 약속된 자가 아니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마차가 멈추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경비가 앞을 가로막고 경고성 말을 하며 정체불명의 마차를 돌려보내려 하는 투였다.

그 말을 들은 엘런이 마차 창문을 열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외삼촌을 만나러 친구와 함께 왔네만.”

“아! 어서 오시지요. 문장을 달지 않은 마차라서 저희가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엘런의 얼굴을 아는 이들은 곧장 모르간 후작저의 정문을 열었다. 가문장은 달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마차가 부드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가지 않아 마차가 멈추자 엘런이 마른 숨을 내쉬더니 천천히 마차 문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엘런 도련님. 그리고 친구분.”

모르간 후작저의 집사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정중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여 맞이했다.

“지금 가주님께서는 바쁘셔서…… 어, 아…… 자, 작은 도련님?”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연스럽게 말을 하던 집사의 놀란 듯한 목소리에 주변에 있는 고용인의 시선이 전부 이쪽으로 향했다. 순간 놀란 파이퍼가 내 뒤로 숨어서 몸을 움츠렸다.

“지금 당장 외삼촌을 뵈어야겠으니 응접실로 안내하게.”

“네, 알겠습니다.”

집사가 손을 펼쳐 안내하고자 했지만 파이퍼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엘런이 파이퍼를 안아 올리려고 시도를 했지만 장렬하게 실패했다. 파이퍼가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으며 내 치맛자락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파이, 손!”

“…….”

내가 손을 내밀자 파이가 가까스로 내 손을 잡았다. 축축한 것을 봐서는 긴장해서 땀을 흘린 것 같았다.

“나랑 같이 가자. 그럼 안 무셔.”

“으, 응…….”

“여기가 파이 집이래.”

“…….”

마치 처음으로 온 것처럼 낯선 곳을 보는 듯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더니 내 손을 힘줘서 잡았다.

“엘런, 뭐 해. 얼른 움직여. 나 이곳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아버지께도 연락이 갔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가고 싶어.”

“아! 그래. 알겠어. 얼른 가자.”

파이퍼의 등장에 다들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가운데 엘런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런 엘런의 뒤이어 내가 파이퍼를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와 파이퍼의 등 뒤를 오빠가 맡아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했다.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가주님께는 연락이 갔을 터이니 금방 오실 겁니다.”

모르간 후작저의 응접실에 앉아 차 한잔할 여유도 없이 화려한 여자와 그보다 수수한 옷차림을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파이퍼! 오, 우리 아들!”

“세상에나, 엘런! 파이퍼를 어떻게 찾았느냐. 고맙구나. 정말 고마워.”

젊은 여인이 거의 맨발로 달려오다시피 해서 파이퍼를 꽉 끌어안았다. 파이퍼를 꼭 안은 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봐서는 거짓 눈물은 아닌 듯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왔니. 어미가 얼마나 너를 애타게 찾았는지 아느냐.”

남자보다 훨씬 젊은 여자를 봐서는 아무래도 두 번째 부인 같았다. 절대 엘런보다 나이 많은 사촌 형을 낳은 여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파이퍼의 얼굴을 쓰다듬은 여인의 눈빛엔 사랑이 그득했다. 그 모습을 본 중년의 남자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엘런의 어깨를 다독였다.

“제가 찾은 거 아닙니다. 제 친구의 동생이 찾았습니다. 저는 파이퍼의 특징을 기억하고 있던 친구가 연락해서 급히 뛰어나와 이곳으로 데려왔을 뿐입니다.”

엘런이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말했다. 그러자 남자의 시선이 나와 오빠에게 향했다.

“나는 밀리언 모르간이라고 하네. 한데 엘런의 친구라면…… 혹시 유진 판테르 군인가.”

“네, 처음 뵙겠습니다. 유진 판테르입니다. 이 아이는 동생 세라피나 판테르입니다. 우리 동생이 우연히 저 아이를 발견해서 저희가 잠시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모르간 후작가와 티그리스 공작가의 반목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마치 늑대 굴에 뛰어들어온 호랑이 같은 신세였다.

그렇기에 다들 응접실 안에 있는 모르간 후작가의 고용인이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세라피나 판테르라 함은…… 파멸…….”

“아닙니다. 우리 동생입니다. 세 공작가가 모두 확인 절차를 마쳤습니다. 그러니 모르간 후작님이라 하더라도 그런 말씀은 하면 저희가 상당히 섭섭해할 것입니다.”

실종된 작은 아들을 데려왔는데 그딴 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런 분위기를 풍긴 오빠였다.

“내가 실언을 했군그래. 판테르 양, 정말 고맙다. 한데 어떻게 우리 아들을 찾을 수 있었지? 이런 말하기 민망하고 집안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 같지만, 우리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못 찾았는데.”

애써 표정을 푼 모르간 후작의 물음에 나는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냥 이상한 느낌이 들엇써요. 그래서 뒷골목에 갓써요.”

“그, 그렇구나.”

“거기서 파이가 거지처럼 잇는 거 봣써요.”

너무 가감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말을 해서 그런지 파이퍼를 붙든 부인이 통곡을 하듯 울었다. 모르간 후작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것만 봐서는 그들이 파이퍼를 직접 버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상한 느낌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이었지?”

“으음, 뭔가 땡기는 느낌이요.”

“그렇구나. 그래. 파멸, 아니 판테르 가의 딸이 확실하군. 티그리스 공작가의 피를 매우 진하게 타고난 것 같구나. 그걸 바로 라이벌이라고 한다.”

“아항, 저번에 하부지가 갈쳐줫써요.”

마법사에겐 라이벌이 있는데 만나게 되면 이상한 느낌이 든다고 말해 준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파이퍼가 내 라이벌이자 선의의 경쟁자가 되는 건가.

“우리 아들의 라이벌이라니, 판테르 양도 대단한 마법사가 되겠군 그래.”

“니에, 마법사가 돼서 우리 가족 지킬 거예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하자 모르간 후작이 할아버지네와 반목한다는 것을 잊었는지 미소를 지었다.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미소였다. 마법사라고 해서 상당히 까칠할 것 같았는데 말이다.

“근데 파이가 충격 받앗는지 기억 못 해요.”

“음? 그게 무슨…… 엘런, 방금 판테르 양이 한 말이 무슨 뜻이지?”

모르간 후작의 물음에 엘런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 그대로예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실종 당시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그렇다면 이 어미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니? 파이퍼, 어미야. 기억 안 나니? 으흐으윽…….”

엘런의 말을 들은 후작부인이 제 가슴을 치며 파이퍼에게 물었다. 아이의 고개가 좌우로 움직이자 후작부인은 소리 내어 울었다. 부인의 모습에 모르간 후작이 깊은 한숨을 쉬며 어깨를 다독였다.

“이곳에서 사랑으로 돌보면 다시 기억을 찾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인, 너무 울지 마십시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파이퍼가 불안해할지도 모릅니다.”

그 한 마디에 후작부인이 울음을 그쳤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누른 후작부인은 파이퍼의 조그만 손을 어루만졌다. 여기저기 상처가 난 손을 보더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비록 파이퍼가 기억을 못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은인임이 분명하네. 판테르 양, 그리고 판테르 군! 고맙네.”

“천만에요. 저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 라피의 라이벌이 아니었다면 아마 찾아내지도 못했을 겁니다.”

“이것도 운명이 분명하네. 자네가 우리 엘런의 친구인 것도, 그리고 우리 파이퍼의 라이벌이 판테르 양인 것 모두 말일세.”

모르간 후작의 인사를 받은 나는 방긋 웃었다. 그러고는 소파에서 내려왔다.

“이제 가야 해요. 아빠가 기다려요.”

“이름이 세라피나라고 했던가요. 세라피나 양, 정말 우리 아들 찾아 줘서 고마워요. 한데 이리 보내면 섭섭할 것 같으니 차라도 아니, 우유라도 한 잔 마시고 가는 게 어떤가요.”

후작부인의 바람에 나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내 앞엔 온갖 맛있는 간식과 우유가 놓였다.

“파이, 같이 먹자.”

“응.”

후작부인이 저를 안은 채 울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파이퍼가 내 말에 곧장 대답했다.

“이렇게 떠서 먹는 거야. 어때? 쉽지?”

내가 먼저 케이크를 잘라 먹는 것을 시범 보이자 파이퍼가 곧장 따라 했다. 케이크를 입에 넣자마자 탄성을 지른 파이퍼는 곧장 내게 한 조각을 퍼서 내밀었다.

“라피, 이거 맛있어. 먹어 봐.”

나도 손이 있건만 갑작스레 파이퍼가 먹을 것을 내미는데 거부할 수 없었다. 마지못해 파이퍼가 먹여 준 케이크를 삼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싯어. 파이도 많이 먹어.”

“응, 라피도 많이 먹어.”

내 말에 파이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심히 케이크를 먹었다. 오빠와 엘런은 차를 마시며 잠시 말을 아꼈다.

“판테르 군은 동생 사랑이 각별한 것 같군요. 월터도 파이퍼를 이리 사랑해 주는데.”

“아니 어떻게 우리 호박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요 말랑말랑한 볼도 그렇고 서서히 확대되는 모습만 봐도 안 먹어도 배부를 정도인데요.”

후작부인의 말에 오빠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 와중에도 오빠의 시선은 내게 떨어지지 않았다. 컵을 두 손으로 들 때마다 혹시나 떨어뜨리지 않을까 싶어 바로 대비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케이크를 다 먹어 갈 무렵 갑작스레 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파이퍼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 진짜구나. 진짜 돌아왔구나. 오! 내 동생.”

약간 과장된 행동을 하며 달려온 이의 푸른 눈동자가 찌푸려졌다가 찰나에 사라졌다. 파이퍼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몸을 구부린 그를 본 나는 느낌이 쎄했다.

“파이퍼, 대체 어디 있다가 온 거니. 형이 얼마나 걱정한 줄 알아?”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묻자 파이퍼는 갑자기 발발 떨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후작부인이 아닌 내 등과 소파 사이에 최대한 몸을 욱여넣었다.

“파이퍼의 기억에 혼란이 생겨서 그런 거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모르간 후작의 말에 월터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의 얼굴은 파이퍼의 한 마디에 무너졌다.

“저, 저 사람이 나를 버렸어요.”

음? 너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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