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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98)화 (98/164)

98화. 

21세기를 살았던 내 말에 대신관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하지만 아빠의 부리부리한 눈을 보고 얼른 인자한 척 미소를 지었다.

“그건…….”

“아니, 고모님! 여기 계셨군요. 안 그래도 오늘 여기 오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왔는데 이렇게 만나서 다행입니다.”

대신관의 말을 끊은 익숙한 목소리의 소유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폐하 오늘 또 만나 뵙게 되었군요. 판테르 공작님, 티그리스 공작님, 아퀼라 공작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아! 루피노 공작님, 안녕하셨습니까.”

“크흠, 실베스터 왕자가 여긴 무슨 일로 온 것인가.”

라파엘이 갑자기 끼어들어 황제에게 먼저 인사하더니 아빠와 할아버지, 형부에겐 상당히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고모님을 보러 왔습니다.”

“고모님? 이곳에 왕자의 고모님이 계시는 건가?”

“네! 미래의 매제가 될 에이든 티그리스 군의 고모님을 뵈러 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미래의 사돈이었고, 사비나의 시고모님이었다. 하지만 라파엘은 숙부의 난이 있었던 날 이후로 나를 자꾸만 고모님이라고 부르며 굉장히 살갑게 대했다.

“실베스터 왕자와 판테르 양이 친했던가? 아! 듣기로는 판테르 양이 실베스터 왕국에 갔었다는 말은 언뜻 들은 기억이 나는군.”

“네, 고대어를 매우 잘하셔서 저희가 초빙했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똑똑하신지 저희 왕국의 근심도 해결해 주셨고요.”

라파엘의 말에 세 남자의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치솟았다. 그 모습을 본 황제가 상당히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판테르 양이 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그리 반갑게 말하는 건가.”

황제의 물음에 라파엘은 나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불미스러운 일이 터졌을 때 고모님께서 우리 아이가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그리고…….”

싱글벙글 웃으며 신나게 떠들어대는 라파엘을 본 미네르바는 뒤에서 연방 탄성을 질렀다. 미래의 며느리에 비해 아들놈이 변변찮아서 안타깝다는 말도 했다. 그러곤 아빠가 나를 안을 때 제 어깨에 올라탄 씨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미심장하게 봤다.

“오호! 그런 인연이 있었군. 판테르 양이 나이에 비해 참 똑똑하군.”

“네, 정말 똑똑한 고모님이십니다. 하하하.”

꼬르르륵-

황제와 라파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아빠를 할아버지가 찔러 죽일 듯한 눈빛으로 쏘아봤다.

“자네, 우리 말랑 콩떡이 굶겼나?”

“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분명 아침에 배불리 먹였습니다.”

“우리 집에선 절대 들리지 않은 소리를 여기에서 듣게 하다니! 이제 보니 말랑 콩떡이 폭 들어간 것 같은데.”

“아닙니다. 제가 직접 우리 라피를 먹이는데 그럴 리가요.”

아침에 간단히 먹고 싶었지만, 아빠의 성화에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정도로 먹었다. 한데 조금 걸었다고 금방 배가 꺼진 것 같다.

“이런, 고모님! 배고프십니까? 마침 저희가 머무는 숙소에 구운 치즈랑 설향이 있는데 드시러 가실까요?”

“진짜? 완존 좋아! 아빠, 하부지, 형부! 나중에 봐요. 뭐 해? 얼른 가자.”

내 재촉에 라파엘은 환하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한데 고모님, 저 진짜 효능이 있긴 했습니다.”

“웅? 그게 무슨 말?”

“그 왜…… 크흠, 뉴트리가 정력에 좋다는 말씀이요. 솔선수범하기 위해 저도 먹어 봤습니다만…… 미카엘라가 지금 둘째를…….”

“때끼! 애 낳은 지 얼마나 되엇다고 벌써 둘째인데!”

라파엘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내가 혼내도 그저 좋다고 웃기만 했다.

“이번에 우리 고모님의 남편감을 낳아 볼 생각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러다가 우리 아빠한테 죽는 수가 잇써!”

그 말을 하고는 뒤를 힐끔 보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봄바람을 닮은 예쁜 미소를 지은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자 주변에 있는 이들이 죄다 손을 흔들어 줬다. 다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내린 나는 대기 중인 실베스터 기사를 향해 방긋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고모님! 그간 잘 계셨는지요.”

“고모님, 덕분에 저도 셋째를…… 크흠흠.”

다들 나를 고모님이라고 부르기로 통일했나 보다. 기사들과 간단하게 안부를 물었다. 숙소까지 가는 동안 이야기를 나눌 때 저 멀리서 낯익은 모습이 보였다. 사비나가 아리따운 드레스를 입은 채 수많은 젊은이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실베스터 공주님, 저는 터너 백작가의 미첼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 소문처럼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실베스터 공주님의 아름다움에 꽃들마저 빛을 잃은 듯합니다.”

“오늘 연회 때 공주님과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십시오.”

닭살이 저절로 돋게 하는 말을 하며 사비나의 눈에 어떻게든 들기 위해 안달난 총각들을 본 나는 픽 웃었다. 아무리 봐도 에이든보다 나은 남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나는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이미 미래를 약속한 분이 계시답니다.”

사비나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청을 거절하는 뜻이 담긴 말을 했다. 그런데도 사비나에게 흠뻑 빠진 남자들은 그녀를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귀찮을 정도로 들러붙은 모습을 멀찍이 서서 지켜본 라파엘은 당장 달려가서 동생을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 도와조?”

“귀찮아서요.”

“언제는 우리 에이랑 떼어 놓으려고 온갖 방해를 하더니.”

“그건…… 크흠흠. 당시 미래의 매부의 매력을 몰랐을 때입니다만. 지금은 우리 사비나와 결혼하는 것을 그 누구보다 반깁니다.”

나는 미카엘라와 갇혀 있었지만 에이든은 사비나의 곁에서 라파엘과 함께 반란을 잠재웠다고 한다. 그때 화려한 불꽃쇼를 연상케하는 마법으로 확 쓸어 버렸단다. 한데 그걸 보고 혹한 국왕 쪽 귀족들이 서로 제 딸과 결혼시키려고 난리 쳤다는 후문이 들렸다.

“원래 경비가 있다고 집이 안 털리진 않습니다만.”

“뭐라고요? 그렇다는 것은 대놓고 실베스터 공주인 나를 보쌈이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공주님 정도 되시는 분이니 곁에 남자가 몇 명쯤 있는 것은 당연하지요.”

“미안하게도 난 단 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니…… 어머! 고모님, 오셨어요.”

마침 고개를 든 사비나와 눈이 마주쳤다. 방긋 웃자 사비나가 이곳으로 뛰어오려다가 남자들에게 가로막혔다.

“좀 비켜 주세요. 고모님 뵈러 가야 한……단 말입니다.”

사근사근 말하던 사비나가 순간 남자들을 밀었다. 그녀가 밀어낸 방향으로 밀려난 이들을 봤다. 어쩐지 나날이 확대되어 가는 나를 안을 때마다 힘든 기색이 없더니. 역시나 사비나는 보통 공주치고는 힘이 센 듯했다. 갑자기 에이든의 생명이 위험해 보이는 것 같았다.

“고모님! 오셨어요?”

“니에, 라엘이 찾아와서 왓써요. 오랜만이에요.”

라파엘에게서 나를 빼앗다시피 안은 사비나는 제 볼에 내 볼을 대고 비비적댔다.

“역시 이 말랑 콩떡의 찰진 느낌은 언제나 그대로예요. 호호, 자! 얼른 안으로 들어가요. 제가 머리도 제대로 만져 줄게요.”

“사비나, 그것보다 고모님께서 배고프시니까 우선 확대시킨 후에 시작하는 게 어떻니?”

“그런 거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오라버니가 혹시 몰라 고모님이 좋아하시는 거 챙겨 왔답니다. 우리 얼른 먹으러 가요.”

나긋나긋하게 웃는 사비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씨엘이 업써.”

언제나 내 곁을 떨어지지 않았던 녀석이 나를 따라오지 않았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씨엘이라면 언제나 고모님이 계신 곳을 정확히 알고 오잖아요.”

사비나의 말이 끝난 후 그들의 숙소에서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있을 때 느지막하게 씨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게 찰싹 안겨든 씨엘은 분홍젤리 발바닥으로 꾹꾹이를 해댔다.

“씨엘, 어디서 배 채우고 왓써?”

뀨우우.

가슴에 대고 비비적댄 씨엘은 원피스에 이런저런 장식이 많아 걸리적대는지 다리 위에서 얌전히 식빵을 굽듯 앉았다. 그런 씨엘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준 나는 사비나에게 머리를 만질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라파엘이 안은 라피가 보이지 않자 그때야 세 공작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분명 내 딸이 맞는데 왜 이리 다른 놈들이 데리고 사라지는지 모르겠군.”

이대로 라피를 데리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중간에 라파엘에게 스틸 당한 판테르 공작은 고갤 좌우로 저었다.

“뭐 어쩌겠는가. 우리 새끼가 저리 인기가 좋은 것을…… 허허허, 사비나 공주가 참 좋아하겠군. 우리 에이든을 보는 것보다 더 좋아해서 탈이지.”

이곳에 사비나도 왔음을 익히 알고 있었던 티그리스 공작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비나와 라파엘이라면 라피가 다른 곳으로 새지 않게 잘 돌볼 것이다.

“흐음, 판테르 양의 나이가 몇이라고 했더라.”

“네 살입니다.”

파멸의 아이랍시고 납치를 시도하더니 갑자기 황제가 라피에게 관심을 자자 세 공작이 경계했다. 그때 물증이 없어서 추궁하지 못한 이들은 두 손을 꽉 쥐었다.

“아직도 우리 라피를 파멸의 아이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판테르 공작이 대놓고 묻자 황제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대신관을 봤다. 지금 라피를 파멸의 아이라고 말하는 순간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참고로 친자 검사를 마쳤고, 라피가 제 친딸임을 여기 계신 아버님과 사위놈 아니 사위가 증인을 설 겁니다.”

“뭐라? 진짜 그 아이가 자네 친딸이란 말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묻는 황제를 본 티그리스 공작과 아퀼라 공작이 픽,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 딸의 새끼가.”

“제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인절미 처제가 우리 부인의 진짜 동생임을.”

다섯 있는 공작 중 셋이 동의했다. 아이를 살리고자 셋이 입을 맞춘 것은 아닌 듯했다. 순간 황제는 대신관을 봤다. 

그들이 만들어낸 예언대로라면 라피는 파멸의 아이가 되어 죽임을 당해야 옳았다. 한데 세 공작이 판테르 공작부인의 딸임을 인정하고 증명한 것을 봤다 하니 더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분명 판테르 공작부인은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데 다 큰 아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 파멸의 아이와 생명의 아이가 있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대신관!”

“신전에 적의를 품으셨다고 해도 제 예언에 거짓은 없습니다.”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본 세 공작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백설기가 판테르 공작님의 양녀가 아니라 친딸이라 이거로군요. 으음, 어쩐지 처음 보자마자 판테르 공작부인을 똑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하하하. 그렇지? 씨엘!”

미야옹.

라피 찰떡 고양이인 씨엘이었다. 항상 라피가 가는 곳이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쫓아갔다. 그런 씨엘이 라피를 쫓아가지 않고 루피노 공작의 어깨에 매달려 쓰다듬에 냉큼 대답하며 느른한 표정을 지었다. 

서부 공작은 고대에 존재한 수인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자이지만 남자들 못지않은 힘과 스피드 그리고 체력을 타고났다고 한다.

그래서 씨엘이 루피노 공작의 곁에서 떠나지 않은 것이라고 여긴 판테르 공작의 두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누가 보면 씨엘이 루피노 공작님과 관련 있는 줄 알겠습니다. 우리 곁엔 오지도 않는데 말이지요.”

“귀한 딸내미 곁에 오니까 경계한 건 아니고요?”

루피노 공작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잊은 세 공작은 헛기침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맞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할 말이 없어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할 때 눈에 익은 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할아버지, 고모부님, 매제! 큰일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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