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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88)화 (88/164)

88화. 

매일 라피와 통신을 하며 딸 없는 외로움을 달래는 게 일과가 된 판테르 공작이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맥스와 벤스가 딸 없는 서러움을 어디에 풀어야 할지 몰라 매일 둘이 술을 마시러 다닐 정도였다.

“허허, 우리 딸이 말일세.”

보좌관들을 불러들여 회의를 하다가도 판테르 공작은 라피의 칭찬을 하기에 바빴다. 이러다가는 화장실 가서도 볼일 보는 것까지 칭찬하게 생길 것 같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판테르 공작은 라피와의 통신을 기다렸다. 통신구가 반짝반짝 빛이 나자 판테르 공작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아빠!] 

저를 부르는 목소리와 더불어 구운 찹쌀떡 같은 얼굴이 나타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라피! 몸은 괜찮더냐? 감기는 안 걸리고? 자면서 이불 차면 안 되는데 걱정이로구나.”

평소 자면서 이불을 차고 자는 버릇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곳보다 더 추운 곳에 있기에 감기에 걸리면 힘들어 할 것 같았다. 타지에서 아프면 서러운 법 아니겠는가.

간단히 안부를 물은 후에 라피는 평소처럼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까 무슨 일이 잇엇냐묜요.]

조그만 입술을 놀리며 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 판테르 공작의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었다.

“그래서 그 개새…….”

저도 모르게 전쟁에서 자주 쓰는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뒤에 서 있는 오스카 덕분에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라피와의 통신이 끝난 후 판테르 공작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빠져든 판테르 공작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오스카가 판테르 공작의 옆으로 움직여 빛이 사라진 통신구를 쓱 들어 올렸다.

쾅-

여지없이 판테르 공작의 단단한 주먹이 통신구가 있었던 부위를 가격했다. 오늘도 통신구를 지켰다는 안도를 함과 동시에 오스카의 얼굴에서 부드러운 미소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라피가 조잘조잘 이야기한 게 무슨 뜻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주옥같은 베이비의 뚫린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감히 그대로 지나치면 안 되었다.

잠시 깊은 상념에 젖은 판테르 공작이 한숨을 내쉬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라피가 에리카와 아버님께도 통신을 했겠지?”

“네, 그럴 것입니다.”

라피가 자신과 통신한 후에 항상 티그리스 공작가와 아퀼라 공작가에 연락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충 모든 연락이 끝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오스카가 가까스로 지켜낸 통신구를 앞에 내려놓았다.

“에리카, 라피와 이야기 다 끝났지?”

[네.]

판테르 공작의 물음에 에리카는 잔뜩 굳은 표정을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이쪽으로 너 아니면 그놈 보내라. 이야기 좀 해야 할 것 같으니.”

[네, 제롬을 보낼게요. 제롬도 옆에서 다 들었으니 다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짤막한 통신이 끝났고 아퀼라 공작은 판테르 공작저에 갈 준비를 서둘렀다. 사위가 오고 있을 때 판테르 공작은 티그리스 공작과의 통신 중이었다.

“아버님! 라피가 한 말 들으셨습니까?”

[들었네. 어린아이가 한 말이라고 가벼이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았어. 그러니 우리 집으로 오게나.]

통신이 끝났고 아퀼라 공작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티그리스 공작저로 이동했다. 티그리스 공작의 방에 모인 세 사람은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새끼가 우리 인절미 처제가 듣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따위 말을 했다는 것은 이미 마음이 완전히 기운 게 분명합니다.”

“자네 생각도 나와 똑같네. 한데 문제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곳에 있다고 한들 우리가 함부로 갈 수는 없다는 거네.”

“자네 말이 맞네. 우린 엄연히 타국인일세. 한데 우리가 먼저 나서게 되면 내정간섭을 한다는 오명을 쓸 수도 있지. 한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대동단결한 세 공작을 본 해럴드가 직접 차를 가져와 앞에 내려놓았다. 얼마 전 남부에서 보낸 커피였다. 최상급의 원두를 로스팅해 내린 커피의 향이 진하게 휘감았다.

까만 액체를 본 판테르 공작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 라피가 이걸 보고는 먹고 싶다고 했는데, 주지 않았었지.”

“어째서입니까? 처제가 달라고 하면 그냥 주시죠.”

“워렌 후작이 말하기로는 커피를 마시면 아이의 키가 크지 않는다고 하더군. 그래서 안 줬더니 삐쳐서는…….”

“우리 말랑 콩떡이 삐친 모습을 보다니, 부럽군. 이곳에는 나이 많은 조카가 둘이나 있어서 녀석이 너무 어른스러워 보여서 그게 좀 안타까웠는데 말이야.”

뭔가 하나가 놓이면 곧장 그것과 관련된 라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되면 다시 세 공작은 대동단결했다.

진하고 그윽한 향을 음미하며 커피를 마시며 셋 다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통신구가 반짝였다. 그러자 해럴드가 곧장 통신구를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았고 이윽고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났다.

“실베스터 국왕께서 무슨 연유로 이 늦은 저녁에 연락하셨는지요.”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저음으로 내려간 티그리스 공작의 물음에 실베스터 국왕은 두 눈을 슬쩍 크게 떴다. 이 시간에 세 공작이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탓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다름이 아니라 논의할 게 있어서 그러합니다. 마침 세 분이 같이 계시니 말하겠습니다.]

좀 전에 라피가 한 말을 에이든이 듣고 사비나에게 말한 것을 마지막으로 전해 들은 실베스터 국왕이었다. 비록 라피가 어린아이긴 하지만 고대어도 할 줄 알고 스스로 분위기를 이끌어 갈 정도로 어른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런 아이가 한 말을 가볍게 듣고 흘릴 리가 없었던 실베스터 국왕은 조용히 양해를 구했다.

[이번 기회에 역모의 싹을 자르려고 합니다. 한데 판테르 양과 티그리스 군을 돌려보내면 녀석이 제 흉계가 드러났음을 눈치채고 꼬리를 말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 딸을 목숨이 오가는 역모의 현장에 그대로 놓아둬야 한단 말입니까.”

청안이 위험하게 반짝였다. 지금이라도 실베스터 왕국으로 쳐들어가고도 남을 위험한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서 제가 정중하게 요청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리 연락드렸습니다.]

실베스터 국왕의 말을 들은 세 공작은 잠시 미간을 좁히더니 팔짱을 꼈다. 동시에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그러도록 하지요.”

세 공작의 뜻이 한데 모이자 실베스터 국왕은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통신을 끊었다. 커피를 다 마시지도 못한 세 사람은 동시에 일어났다.

“최정예로 꾸려 며칠 후에 오겠습니다.”

판테르 공작과 아퀼라 공작이 동시에 말한 후 제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실베스터 국왕이 지정한 날에 최정예로 꾸려진 이들이 티그리스 공작저에 도착했다.

“오늘 특별히 워프 게이트를 연결한다고 했으니 얼른 가세나. 우리 라피와 에이든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말일세.”

실베스터 국왕이 직접 세 공작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 나랏일에 외세를 끌어들인 치욕적인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 될 사이이니 낯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만 했다. 실베스터 왕국과 워프 게이트가 연결된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대기했다.

“라피에게 연락은 왔던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후우, 아무래도 연락을 하지 못할 곳으로 간 게 분명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번씩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며칠간 라피의 연락은 없었다. 애가 바짝 타들어 간 판테르 공작은 이를 사리물었다. 세라피나가 남긴 분신이다. 눈곱만큼의 생채기가 나서도 안 될 아이였다.

“라피가 누구인가. 우리 새끼일세. 무사할 거니 걱정하지 말게나.”

판테르 공작을 다독여 주는 티그리스 공작의 얼굴도 잔뜩 굳어 있었다.

“할아버지, 저도 가겠습니다. 제 아들과 동생이 거기 있는데 여기 있다가는 미쳐 버릴지도 모릅니다.”

이제껏 묵묵히 티그리스 공작의 명을 따르던 다니엘이 제 의견을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세 공작의 눈빛에 묻혔다.

“처조카님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야지. 자넨 여기 후계자이니 아버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곳을 이끌어 갈 존재가 아닌가.”

“맞습니다. 우리 처제의 늙은 오빠는 그냥 이곳에 계시지요. 괜히 나섰다가 화라도 당한다면 우리 처제의 나이 많은 둘째 조카가 이어받아야 하니까요.”

“두 사람 이야기를 잘 들었다면 넌 내가 없는 이곳을 제이든과 함께 지켜라. 그게 네 임무다. 몰래 오려고 하다가 괜히 소피아와 헬레나에게 얻어터지지 말고.”

세 공작의 말에 다니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든과 라피가 그곳에 묶여서 연락조차 되지 않자 자도 자는 것 같지도 않고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우리 라피랑 에이든을 책임지고 구출할 터이니.”

황제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판테르 공작의 확신에 다니엘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곳은 걱정하지 마세요.”

헬레나가 소피아를 부축해 티그리스 공작의 방에 들어섰다. 다들 각기 후계자를 남겨 두고 온 이들의 얼굴엔 비장함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말랑 콩떡이랑 에이든을 데려오세요.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여기 올 생각은 접으시는 게 빠를 겁니다.”

소피아가 두 눈을 부릅뜬 채 세 공작을 훑어보며 말했다.

“특히 우리 콩떡이 찌그러져 있으면…… 알죠?”

그 한 마디에 세 공작은 자신들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아의 압박감이 느껴지는 말을 들을 때 통신구가 반짝였다.

“대체 왜 이리 연락이 늦었…….”

[지금 워프 게이트를 연결했습니다. 얼른 오시지요. 배신자 때문에 다 잡은 놈을 놓친 것도 모자라 출산을 앞둔 왕자비와 판테르 양이 있는 곳이 위험합니다.]

그 한 마디에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정예부대를 끌고 워프 게이트 앞에 섰다. 어떻게 이 세상으로 온 아이인데 허무하게 제 어미 품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라피와 에이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판테르 공작과 가브리엘 백작을 위시한 비밀 친위대가 섰다. 친위대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이들의 눈엔 형형한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판테르 공작의 말을 들은 이들은 고개를 숙여 복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아퀼라 공작은 탄성조차 지르지 못했다. 비밀리에 키워진 판테르 공작가의 비밀 친위대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우리도 얼른 가지. 독수리처럼 날렵하게 낚아채듯 적을 맞이하고, 다치거나 죽으면 처자식들한테 국물도 없을 테니 그리 알게나.”

어처구니없는 아퀼라 공작의 말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저리 해도 자신들이 죽는다면 최상의 예우를 해 주며 가족에게 연금을 지급해 편히 지낼 수 있게 해 주리란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도 이만 가지. 다들 정신 차리고!”

기사이지만 마나를 다룰 줄 알아 미약하게나마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티그리스 공작가의 마검사 부대가 선보였다.

다들 소수지만 최강의 인원을 데려온 세 공작은 워프 게이트가 연결되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실베스터 왕궁에 들어선 세 공작은 얼른 주변의 지형을 눈에 담았다.

“이곳에서 이런 연유로 만나게 되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에슐리 밀레니어 후작이라고 합니다.”

라피가 처음으로 새로 선보인 고대어를 읽을 때 실베스터 국왕의 곁에 모습을 보인 인물임을 떠올린 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는 됐고 빵빵한 가슴을 좋아하는 우리 구운 찹쌀떡은 어디에 있나?”

“우리 인절미 처제는 어디 있습니까? 콩가루가 많이 털리면 안 되는데.”

“우리 말랑 콩떡이 찌그러지거나 하진 않았겠지?”

역모로 인해 사방이 불안한 와중에 들리는 떡 이야기에 밀레니어 후작은 뭔가 떠올린 듯 손뼉을 쳤다.

“혹시 치즈떡 아가씨를 찾으시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저기로 가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왼쪽으로…….”

밀레니어 후작의 말에 세 가문의 대표는 제 기사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한데 셋이 다 각기 다른 곳으로 향했다.

“길치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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