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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86)화 (86/164)

86화. 

오스카가 들었으면 놀랄 말을 서슴없이 말한 나는 비장한 눈으로 앞을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내 눈은 누군가에 의해 가려졌다.

“저런 건 아이들이 보면 안 돼.”

“갠차나여.”

“내가 안 괜찮아.”

아이들이 보기엔 험한 모습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저런 상황을 겪어 본 내게 사람이 죽는 모습은 익숙했다.

“눈 가리면 나 스크롤 못 써여.”

“하지만…….”

“나눈 울 아빠 딸이에여. 글고 하부지 손녀구, 혐부의 처제에여.”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맥을 한 번에 쏟아낸 나는 내 눈을 가린 미카엘라의 손을 밀어냈다. 그러곤 그녀의 앞에 섰다.

“미까 언냐랑 아가눈 낵아 지쿄여!”

어린아이가 한 말이 미덥지 못하겠지만. 우선은 가방에 있는 스크롤을 죄다 꺼내 놨다. 고가의 스크롤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스크롤에 담긴 마법으로 공격해 봤자 철갑을 두른 기사들에게 충격을 주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크롤을 손에 쥐었다.

“아이스!”

두 번째 아이스 마법에 발을 디딘 기사가 움찔하자 우리 기사들이 그의 오금을 몽둥이로 거칠게 올려붙였다. 그 결과 앞으로 쓰러진 이는 버둥대며 일어나기도 전에 저세상으로 가 버렸다.

그렇게 우리를 공격하던 이가 더는 들어오지 않자 얼른 문을 닫기 전에 까만색 물체가 쏜살같이 뛰어왔다. 순간 기사들이 잔뜩 긴장한 채 검을 쥐고 노려봤다.

“씨엘, 오디 갓썻어?”

나옹.

이제껏 보이지 않았던 씨엘이 이곳으로 들어오자 나는 한결 안심이 되어 녀석을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급히 문을 닫고 안에 있는 모든 가구를 끌어모아 앞을 막았다,

“얼른 치우게.”

미카엘라의 말에 급히 시신과 기절한 기사들을 한쪽으로 끌고 갔다. 죽은 이들은 거적때기로 가렸고 기절한 이들은 옷을 죄다 벗겨서 밧줄로 꽁꽁 묶었다.

“왕자비 마마,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네만 아무래도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것을 들킨 것 같군.”

“네, 아무래도 배신자가 있는 듯합니다.”

이곳을 은신처로 정할 때 같이 있던 이들을 하나하나 떠올린 듯한 미카엘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아바마마의 호위기사 중 한 명인 것 같군. 왕족 외에 호위기사 셋이 서 있었는데.”

“국왕 전하께서 위험해진 것은 아닐까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우린 우리를 걱정해야만 할 것 같…… 으윽!”

제 호위기사와 이야기를 하는 중 미카엘라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배를 붙잡았다.

“왕자비 마마, 혹시 진통이 느껴지신 겁니까? 아직 예정일이 아직 남았는데…….”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전부 출산과 거리가 먼 기사들이었다. 미카엘라가 출산 징후를 보이자 아까완 다르게 허둥지둥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예정일이 남아서 산실청의 시녀를 데려오지 않았는데.”

전투에 소용없는 이들을 이곳에 데려올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산실청 소속 시녀를 데려오지 않음을 서로 탓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미카엘라를 봤다.

“나, 난 괜찮네. 괜찮으니까…… 후우…….”

진통이란 게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안도의 숨을 푹 내쉰 미카엘라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곁으로 뽀짝 다가간 나는 미카엘라에게 허락을 받고 치마를 슬쩍 들어 올렸다. 치마가 젖은 것을 본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양수가 터졌는데 아까 발컨 백작의 기사를 죽이는 등 충격적인 장면을 봐서 이걸 깨닫지 못한 것 같았다. 

“미까 언냐, 쫌 이따 또 아플지도 몰라여. 양수 터졋써여.”

“음?”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간격이 줄어들 거에여.”

“그걸 라피가 어떻게 아니?”

내가 직접 진통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텔레비전으로 탄생의 기적과 같은 프로를 몇 번 본 기억이 있었다.

“책 일거서 알아여. 아무래도 아가가 나오고 시픈가 바여.”

출산과 관련된 게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들 발을 동동 굴렀다. 아까의 긴장감과 더불어 출산에 대한 긴장감이 더해지자 안은 혼란 그 자체가 되었다.

“얼룬 아가 나을 준비를 해야 해여.”

“네? 뭐, 뭘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우선 뜨건 물 피료해여.”

안타깝게도 이 안에는 뭔가 태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낵아 불 피우묜 대여.”

처음으로 워프 스크롤을 찢었을 때보다 내 마나량은 늘어난 상태였다. 그렇기에 난 무늬만 벽난로에 파이어 스크롤을 찢었다. 파이어 스크롤 같은 경우엔 임의로 끄지 않은 이상 하루 이상 타올랐다. 그리고 마법으로 피운 불은 연기가 나지 않은 게 특징이었다.

불이 피어오르자 곧장 기사들이 철제 세숫대야를 걸었다. 식수로 쓸 물이 있었지만,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다시 스크롤을 찢었다.

“워러!”

세숫대야엔 곧 마법으로 생긴 물이 가득 찼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수증기가 생겼다.

“으흑, 하아…….”

간간이 찾아오는 진통에 미카엘라는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식은땀을 흘리는 그녀의 이마를 할머니가 챙겨 준 손수건으로 닦아 줬다.

덜컥-

철문 쪽에서 소리가 들리자 우린 순간 하던 모든 행동을 중지했다. 이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그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얼른 문을 열어!”

너 같으면 문을 열고 싶겠니? 여는 그 순간에 다 죽일 게 분명한데.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다들 긴장한 채 그곳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씨엘 역시 털을 바짝 세운 채 앞을 노려봤다.

“큰일이군. 하필 이런 순간에 아이가 나오려고 하다니. 후우.”

기사였지만 이 상황에서 검을 들고 싸울 수는 없었던 미카엘라는 자식을 책망하는 듯한 말을 했다.

“미까 언냐는 아가한테 신경 써여.”

내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오려는 아이한테 신경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엔 문이 열리면 그땐 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올 게 분명했다.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자 철문이 들썩였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그쪽으로 달려가 제 몸으로 열리지 않게 밀어냈다.

열려고 하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힘겨루기가 시작될 때 나는 뒤를 돌아봤다. 초산일 경우 출산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했다. 몇 시간에서 하루 이틀 정도 걸릴 각오를 해야 했다.

지금은 아이가 빨리 태어나도 문제고 늦게 태어나도 문제였다. 아이가 태어나도 우리가 뭘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으윽…….”

이를 꽉 깨문 미카엘라를 본 나는 가방에서 다른 손수건을 꺼내 돌돌 말아 그녀의 입에 물렸다.

“이 깨물묜 빠진댔어여.”

이 시대엔 임플란트나 틀니가 없었다. 이가 한 번 빠지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영구치가 빠지면 치열이 엉망이 되거나 윗니나 아랫니가 솟아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된다면 나중에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하거나 다른 이가 빠지는 악순환이 될 것이다.

미카엘라의 이 건강을 챙겨 준 나는 땀에 젖은 손을 꼭 잡아 줬다. 내가 산파가 아닌지라 아이가 언제 나오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아파하는 미카엘라 곁을 지켜 주며 얼굴의 땀을 닦아 주는 게 전부였다. 

“아가가 효자묜 조을 거 가타여. 엄마 고생 덜 하게.”

초산이지만 극히 드물게 진통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얼른 문 안 열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

밖에서 고래고래 외친 소리가 내 귀에 쏙쏙 들려왔다. 문을 열어 줘도 죽일 거면서 말이 참 많았다.

“흐읍, 하아…….”

“미까 언냐, 힘 주떼여. 글구 숨 내쉬고…….”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처럼 나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흉내를 냈다. 내 말에 박자를 맞추든 미카엘라는 힘을 줬다가 뺐다. 점점 진통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미카엘라는 엄청 고통스러워했다. 

입에 손수건이 안 물려 있었다면 아마 라파엘의 욕을 할 것만 같은 눈동자가 통증으로 물들었다.

“미까 언냐, 힘내세여. 낵아 옆에 잇짜나여.”

“흐으윽…….”

진통이 느껴질 때마다 미카엘라가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나마 이성은 남아 있었는지 부서질 정도로 꽉 쥐진 않아 통증이 느껴지진 않았다.

반대쪽 손에도 손수건을 돌돌 말아 준 나는 고통에 일그러진 미카엘라의 얼굴을 쓸어 만졌다. 혹여나 통증으로 손을 꽉 쥐다가 손톱에 손바닥이 상하지 않게 막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연신 땀을 흘리는 미카엘라의 얼굴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 주며 말했다. 

“언냐는 할 쑤 잇써여. 미까 언냐, 힘 주떼여.”

“흐읍!”

“숨 셔여.”

“후우…….”

콰앙 쾅-

철문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밀어내지 못하니 도구를 사용해 밀어내는 듯했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문이 열리지 않게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서서히 문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런…… 하윽!”

아이 낳는 것에만 신경 쓸 수 없었던 미카엘라의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내가, 내가 도와야 하는데…… 흐읏!”

“미까 언냐눈 아가 낳는 게 도아주는 거에여. 자! 다시 힘!”

이를 꽉 깨물며 힘을 준 미카엘라의 눈동자가 부릅 뜨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면서도 도와줄 수 없었다. 그저 곁에서 앉아 있는 것 외엔 할 수 없었던 나 역시 이를 앙다물었다.

그러다가 조심히 미카엘라의 치마를 슬쩍 올렸다. 뭔가 보이는 것 같았다.

“어, 아아…… 아, 아가, 아가 나와여. 미까 언냐 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아이를 잡고 빼내야 하나,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할 때 미카엘라가 힘을 줘서 아이를 밀어냈다. 머리부터 모습을 보인 아이는 새빨간 핏덩어리라고 해도 과언 아닐 모습이었다.

쪼글쪼글하고 조그만 아이의 어깨까지 보이자 발을 동동 굴렀다.

“오또케, 오또케!”

이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도움을 청할 어른이 없었다. 다들 문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기, 흐윽…… 아기 나왔니?”

“나왓써여. 어깨까지…….”

“후우, 그럼 손 씻고 아기 잡아 줄래?”

미카엘라의 말에 나는 급히 물에 손을 씻었다.

“미안, 충격적일 건데 이런 거 시켜서…….”

출산 장면을 날것 그대로 보는 것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아기와 미카엘라에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아까보다 더 나온 아기를 조심히 잡았다.

그러고는 힘을 줬다. 아이가 천천히 끌려 나오듯 나왔다. 아직은 모체와 탯줄이 연결된 아이를 조심히 꺼내 미리 깔아 둔 깨끗한 천에 올렸다.

“태, 탯줄…….”

“소독한 가위로 잘라 줄래? 후우.”

고개를 들어 갓 태어난 아기를 본 미카엘라는 기뻐할 틈이 없었다. 가위를 찾아낸 나는 혹시 모를 일에 준비된 소독약을 바른 후 두 눈을 질끈 감고 탯줄을 잘랐다.

“잘했어. 이젠 소독한 실로 묶고…….”

잘린 탯줄을 꼭 묶었다. 예전에 베네딕트 제국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탯줄을 제대로 묶지 않아서 피가 많이 흘러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기에 조그만 손으로 있는 힘껏 탯줄을 묶고 거즈를 덧대어 반창고로 고정한 후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클리어!”

이 시대에 산모와 태아 사망률이 높은 이유가 바로 위생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클리어 마법으로 아기와 더불어 미카엘라와 주변을 깨끗하게 했다. 아이까지 마법으로 깨끗하게 씻긴 나는 있는 힘을 끌어모아 조심히 아이를 들어 미카엘라의 품에 안겼다.

“오, 세상에…….”

“추카해여. 공쥬니미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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