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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83)화 (83/164)

83화. 

적당히 개사해서 이어 불렀더니 다들 두 눈을 휘둥그레 뜨다가 이내 부드럽게 곡선을 그렸다. 나중엔 왼쪽 가슴을 움켜쥔 채 바르르 떠는데 단체로 뭘 잘못 먹은 게 분명했다.

우유 송이 끝나서 앉으려고 할 때 국왕이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당근 노래도 있을까? 하하하.”

“잇써여. 불러주까여?”

“그래 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군. 이런 기분 처음이라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 심장이 간질간질하니 몸이 절로 들썩거리네.”

국왕의 부탁에 나는 물을 마셔 목을 풀었다. 다시 자세를 잡고 간단한 율동을 하며 당근 송을 간단하게 불렀다.

“라삐, 보고 싶니, 당근! 라삐 생각하니, 당근!”

나를 내 이름으로 바꿔서 생각나는 부분까지만 불렀지만, 라파엘만 빼고 다들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춰 줬다. 마치 어린 딸이 재롱부리는 모습을 보며 잘한다고 추임새를 넣는 것 같았다.

“나 이제 힘드러서 모타겟써여.”

의자에 철퍼덕 앉아서 손부채질을 하니 사비나가 급히 물을 따라서 먹여 줬다. 뒤에 서 있던 시녀들이 우르르 오더니 갑자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부채로 부쳤다.

“우리 고모님은 그런 노래를 어디서 배우신 건가요? 대단하세요. 티그리스 공작저에서도 재롱부리는 것도 귀여웠는데.”

“우웅, 몰라여. 구냥 생각나소…….”

차마 대한민국에서 배운 노래라고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공주님도 참, 어디서 배웠으면 어떤가요. 귀엽고 예쁘기만 하면 되는 것을. 오늘 만찬에 잘 왔다고 생각해요.”

미카엘라가 제대로 된 태교를 했다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부푼 배를 쓰다듬었다.

“요게 태교? 구롬 아조씨가 배워서 미까 언냐한테 해 주면 되겟다.”

“뭐, 뭐라고?”

“낵아 공짜로 갈쳐주께여.”

“억만금을 줘도…….”

“아조씨는 아가한테 태교 안 해조여? 아빠 마자?”

팔짱을 낀 채 조금 피곤한 표정으로 라파엘을 봤다. 태교를 해 주지 않은 태명도 없는 아가의 미래의 아빠는 굳은 채 미카엘라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왕자님께서 태교해 주시면 우울증이 조금 가실 것 같습니다.”

잔잔한 웃음을 지은 채 말하는 미카엘라를 본 라파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씩, 웃었다. 왕자라는 위치에 있는 자가 우유 송과 당근 송을 부른다고 생각하니 절로 음흉한 웃음이 지어졌다.

“크흠흠,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고모는 재롱부리는 거 잘 가르쳐 줍니다.”

이미 몇 개나 배워 본 적 있는 에이든이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아, 마자. 삐나 언냐, 낵아 에이한테 귀요미 송 갈쳐줫는데 본 적 잇써여?”

“네? 귀요미 송이요? 그건 뭔가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사비나를 본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구론 게 잇써여. 담에 에이한테 부르라고 하묜 대여.”

“고, 고모 그건…….”

“왜에? 삐나 언냐한테 해 준다고 배워노코!”

“크흠, 그, 그렇지만 직접 할 생각하니 좀 부끄러워서.”

생각만 하고 차마 체면상 하지 못한 것 같다.

“갠차나. 두리 잇쓸 때 하묜 대지.”

사비나 앞에서 에이든이 귀요미 송을 부르고 있을 때 라파엘이 불쑥 튀어나올 리가 없었다. 당분간은 우유 송과 당근 송을 배워서 태교를 해야 하니 말이다.

“흐음, 그럼 티그리스 군이 한 귀요미 송? 그걸 보고 배운 사비나가 내게 보여 주면 되겠구나.”

잠시 음료를 마시며 주변을 살핀 실베스터 국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사비나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바마마, 제 나이가 몇인데 그걸 배워서 보이겠어요.”

“네 나이가 많아 봤자 나보단 적겠지. 게다가 미래의 시고모가 손아랫사람에게 한 것을 딸이 나이를 핑계 대고 해 주지 않겠다니 섭섭하구나.”

“아, 아바마마…… 어렸을 때도 한 적 없는 것을 어찌…….”

“그런 걸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으니 그러한 것이지. 한데 지금은 아니지 않더냐. 다 큰 자식의 재롱을 보는 것도 크나큰 기쁨이라고 하던데.”

성인이 된 사비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도 한 적 없는 재롱을 다 커서 하려니 거부감이 든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정 그러하다면…… 판테르 양, 앞으로 고대어 해석 시간이 끝나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겠는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었지? 보물 창고 관람은 어떤가?”

“보물 창고여?”

“그래, 알록달록한 보석도 있고 스노우 젬도 잔뜩 있다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몇 개 주도록 하…….”

“조아여. 역시 절믄 오빠 체고!”

“안 돼요!”

내일부터 당장 창고로 가자고 할 참이건만 두 곳에서 동시에 안 된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비나는 나와 놀아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카엘라는 나를 보면서 확대시키는 와중에 태교해야 한다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결정은 판테르 양이 하는 것이란다. 그러니 네가 노래를 배워서 불러 주든지 아니면 당분간 판테르 양이 나와 함께하는 걸 지켜보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면 된단다.”

“알겠어요. 제가 배워서 노래를 부를게요.”

일국의 공주가 노래를, 그것도 음유시인의 노래도 아닌 동요를 배운다는 것에 굴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굴욕감보다 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싫은 듯했다.

“판테르 양 덕분에 오늘 참 귀한 경험을 하게 되었군. 하하하.”

평소 가족 같은 분위기를 동경했는데 오늘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말한 국왕의 얼굴엔 매우 밝은 미소가 걸렸다.

“머 이 정도쯤이야, 후훗!”

만찬이 끝난 후 다과가 들어왔다. 한데 내 앞엔 과일이 아닌 뜨거운 돌판이 대령되었다.

“요곤 머에여?”

“우리 고모님은 처음 보겠군요. 이건 구워 먹는 치즈랍니다.”

“웅? 치즈를 구어여? 치즈 구우묜 녹아버리눈데.”

“본래 치즈는 열에 녹아내리지만 이건 안 녹아요. 한번 보세요.”

방긋 웃은 사비나가 눈짓을 하자 아직도 부채질 중인 시녀 중 한 명이 꼬치에 꿰인 치즈를 돌판 위에 올렸다.

치이이익-

경쾌한 소리와 동시에 치즈는 녹아내리는 게 아니라 그 모양 그 상태를 유지했다. 신기한 모습에 연신 탄성을 질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치즈를 뒤집었다.

“웅? 꼬기 가타.”

“맞아요. 고기 같죠? 호호호.”

돌 판에 닿은 치즈 부분은 마치 삼겹살처럼 노릇노릇 구워졌다. 한데 본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신기한 치즈를 물끄러미 보다가 앞뒤로 구워진 치즈를 먹기 좋게 잘라 줘서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아뜨뜨!”

“많이 뜨거워? 여기 뱉어.”

에이든이 제 손을 내 입 앞에 펼쳤다. 하지만 에이든의 손에 치즈를 뱉기보다는 천천히 씹어 먹었다. 일반 치즈보다 담백하고 쫄깃쫄깃했다.

“히야, 싱기해.”

“그렇죠? 특별히 실베스터 왕국에서 개발한 구워 먹는 치즈랍니다.”

“요긴 징짜 싱기한 게 마나여, 설향도 구로쿠, 안 녹는 치즈도 잇구.”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문물을 보고 배우러 온 내 목적에 잘 맞는 먹거리였다. 입에 구운 치즈를 넣고 옴뇸뇸뇸- 씹어 삼키자 사비나가 계속해서 입에 넣어 줬다.

“앞으로는 구운 치즈와 설향은 매 끼니마다 드실 수 있게 해 드릴게요. 호호호.”

“징짜여? 조아여. 완존 조아.”

주먹 쥔 손을 양 볼에 댄 채 바르르 떨며 말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을 질렀다. 치즈를 먹는 건 나인데 왜 다른 사람이 녹아내리는지 모를 일이다.

“오늘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볍고 즐거운 만찬은 처음이로구나. 이 모든 게 판테르 양 덕분이네.”

“머 이론거 가지고 그러세여.”

넣어둬 넣어둬 하는 것처럼 한쪽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국왕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저녁 먹으며 태교해 보기는 처음이네요. 라피, 우리 앞으로는 더 오래 만날까?”

오후에 나를 독점하는 것으로 부족해서 저녁까지 예약하려 하는 미카엘라를 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앙대여, 맘마는 아조씨랑 가치 드세여. 아조씨가 태교해 줄꾸에여.”

아마도?

나의 음흉한 미소를 본 라파엘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카엘라와 같이 식사하는 건 괜찮지만 율동을 곁들인 노래를 부르는 것은 못 하겠다는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봐주지 않았다.

“그럼 만찬은 이것으로 파하도록 하지. 다음에 또 자리를 마련하겠네.”

에이든과 나를 보고 말한 국왕이 먼저 나가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모, 오늘 수고 많았어. 얼른 가서 쉬자.”

서서히 내 체력이 방전되어 가고 있음을 안 에이든이 내 손을 잡았다.

“앙대, 아직 할 게 잇써.”

“뭔데?”

“오늘 아조씨한테 갈쳐줄꾸야. 생각난 김에.”

자고로 쇠뿔도 단김에 뺀다고 하지 않던가. 태교를 하려면 하루라도 더 빨리 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건 나중에…….”

“그러다가 아가 나오겟네. 아빠가 대어서 자꾸 빼지마여.”

양손을 허리에 대고 근엄하게 말하자 미카엘라가 키득키득 웃었다.

“라피랑 있으면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서 우울해할 틈이 없어요. 그런 라피에게 노래를 배워서 해 주신다면 아기가 더 좋아할 것 같아요.”

미카엘라가 배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라파엘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는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라파엘을 가르쳤고 깨어나 보니 미카엘라의 옆이었다. 그녀의 품에 안겨 고롱고롱 잠들었는지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라피는 절대 혼자 자면 안 될 것 같아.”

부스스 깨어나 두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내 얼굴을 쓸어 만진 미카엘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웅? 왜여?”

“자는 중에 자꾸만 이불을 차던데.”

“이불 덮고 잇엇눈데.”

“아마 같이 잔 사람이 덮어 준 게 아닐까?”

미카엘라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초기에만 혼자 잤고 그 이후로는 항상 아빠랑 잤다. 그러다가 오빠가 오면 오빠랑 자고 언니를 만나면 같이 잤다. 즉 나는 아빠가 바쁜 날이 아니면 혼자 자지 않았다.

“라피랑 같이 잔 분들이 요 조그만 발로 이불 찰 때마다 자다가 깨서 계속 덮어 준 것 같아. 라피는 사랑받고 있구나.”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만든 말에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니에, 나 사랑받구 잇써여. 넘 햄보까요.”

* * *

그날 이후로 라파엘은 나를 피해 다녔다. 내가 노래를 강압적으로 가르친 것은 아닌데 말이다. 물론 노래를 가르쳐 주고 미카엘라와 같이 감상하긴 했지만.

“아조씨, 은근히 태교 잘하드라.”

“음? 혹시 라파엘 왕자님을 말하는 거야?”

“웅, 에이도 가치 밧으면 나처럼 말햇쓸걸.”

고대어 해석이 끝난 후 점심에 구운 치즈를 옴뇸뇸- 먹으며 하는 말에 에이든의 입술 사이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터졌다.

“그걸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게 안타깝네.”

라파엘이 노래하며 태교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에이든이 약간 아쉬워하는 투로 말했다.

“글애두 그 덕부네 아조씨가 안 와서 바께서 편히 데이트 할 수 잇짜나.”

“그건 그래. 가끔 밖에 나가서 데이트할 때마다 불쑥 튀어나와서 얼마나 놀랐는데. 그래서 안에서만 데이트하는 중이지만.”

“군데 삐나 언냐는 오디 갓써?”

“아, 오늘은 숙부님이 오신다고 거기 갔어.”

현 실베스터 국왕에겐 동생이 한 명 있다고 했다. 남의 집안 가계도는 궁금하지 않았던 터라 고개만 끄덕이고는 계속 치즈만 입에 넣었다.

“요즘 씨엘이 잘 안 보이던데 또 어디로 간 거야?”

에이든이랑 밤에 같이 잘 땐 침대로 꼬물꼬물 올라왔는데 아침만 되면 사라지곤 했다.

“후움, 외도하나 바.”

“어?”

“요기에 맘에 드는 냥이 잇나바. 미혼 냥이 만들묜 안 대는데.”

동물이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씨엘이 내 허락도 없이 미혼 냥이를 만들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땅콩 떼까?”

“흡! 안 돼!”

뭐래? 갑자기 네가 웬 과민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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