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77)화 (77/164)

77화. 

스노우 젬이라는 보석은 처음 봤다. 눈 결정이 세공된 것 같은 보석에 나도 모르게 침을 줄줄 흘렸다.

“라피, 아무리 그래도 보석의 유혹에 넘어가다니.”

“우웅, 라삐눈 구론게 아니라…… 우리 에이 겨론시키려고 구론거에여.”

“말이나 못하면.”

에이든의 결혼 문제는 두 번째였다. 지금은 스노우 젬이 먼저였다. 이젠 내 보물 창고에 보석과 돈이 그득하게 쌓였지만 아홉 가진 자가 열을 가지고 싶어 한다고 했던가.

그렇다고 내가 남을 괴롭혀서 강제로 빼앗지는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젤리 같은 돌멩이가 굴러들어 왔다. 하지만 그중에 스노우 젬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노우 젬이 얼른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사비나가 쥔 스노우 젬이 내 눈에 박혀 들었다.

“당장 짐 싸 올게.”

“에이든, 아직 보낸다고 결정한 게 아닌데 호들갑 떨지 말거라.”

에이든이 당장 뛰어나가려는 것을 본 할아버지가 소리쳐 그의 발을 붙들었다.

“라피, 할아버지 눈을 보면서 진심으로 말해 보거라. 저 보석 때문에 가는 것이더냐, 아니면 순수하게 고대어 해석 및 에이든의 결혼 문제로 가고 싶은 것이더냐.”

전자라면 절대 결사반대할 것 같은 할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둘 다여.”

나는야 욕심쟁이! 우후훗!

이왕이면 둘 다 해결하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의기양양하게 말한 나를 본 가족들은 에이든을 제외하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우움, 라삐눈 새로운 문물 배우고 시퍼여. 구로묜 앙대여?”

두 손을 꼼지락꼼지락 대며 주변을 슬쩍 돌아봤다. 아직도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라피는 오빠가 없어도 괜찮아?”

“우웅, 요고 잇써서 갠차나.”

통신구를 가리키며 말하자 오빠는 스노우 젬이 없는 자신이 잘못이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누구 딸 아니랄까 봐 도전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사위, 이왕 이리된 거 라피를 보내도록 하는 건 어떤가. 라피가 저 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을뿐더러 우리 에이든 소원 풀이도 해 줄 수 있으니 말일세.”

할머니의 최종 결정에 아빠는 나를 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 안 찹쌀떡처럼 갇혀 있는 건 원치 않으니 저 나라에 가서도 많은 것을 경험하렴. 아빠랑 오빠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징짜 가도 대여? 히야, 아빠 체고!”

아빠의 목을 두 팔로 꼭 감싼 채 방방 뛰었다. 그런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아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내 딸 몸에 생채기가 생긴 그 즉시 저 나라는 내가 먼저 손보러 갈 것이다.”

목을 좌우로 움직이며 말할 때마다 관절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상당히 무섭게 들렸지만 나는 못 들은 척했다.

“갠차나여. 에이가 지쿄줄꼬에여.”

“차라리 지나가는 씨엘이 지켜 준다고 한 말이 더 믿음직스럽구나.”

미야옹.

마침 곁을 지나가던 씨엘이 폴짝 뛰어 테이블 위에 착지했다. 분홍 젤리 솜방망이로 테이블 바닥을 탁탁 내리치면서 마치 자신을 믿어 달라는 듯 쳐다봤다.

“제가 라피를 따라가겠습니다.”

“넌 아카데미에 가야지. 이제 아버님 생신 연회도 끝났으니 말이다.”

할아버지 생신 연회를 핑계를 대고 합법적으로 출석을 인정받은 오빠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라피는 아직 어려서 누가 꼭 지켜 줘야 하잖아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켜 줄 수 있습니다. 크흠, 저 이래 보여도 티그리스 공작가의 후계자입니다.”

빈약한 가슴을 팡팡 친 에이든은 내 눈치를 살피더니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내가 가는 게 낫겠다. 우리 고모는 빈약한 가슴은 싫어한다고.”

“누가 들으면 넌 가슴 큰 줄 알겠다? 고모할아버지에 비하면 넌 새 발의 피야.”

“저 가슴은 어느 누가 와도 이길 수 없다고! 고모할아버지는 천상계야. 우린 인간계에서 겨루자. 절벽 중에서 깎아지른 듯한 절벽 가슴 형님!”

“깎아지른 절벽이나 일반적인 절벽이나, 절벽은 그냥 절벽이야. 떨어지면 죽는 거!”

뭐라고 하는 거니 대체.

에이든과 제이든의 대화를 들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에휴, 저것드른 온제 철이 들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 놓고 말하는 게 꼭 미운 다섯 살과 미친 일곱 살의 대화 같았다.

“죄송해요. 제가 저렇게 안 키웠는데…… 대체 누굴 닮은 건지 원.”

“아니 헬레나, 설마 나를 닮았다고 하는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어요. 맞는데요.”

헬레나가 죄송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며 다니엘을 봤다. 그러자 다니엘은 형제가 절대로 자신은 닮지 않았다고 고개를 격렬하게 저었다.

“자식이 부모 닮는 것은 당연한데 어찌 서로 안 닮았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안 그래요?”

“제롬, 설마하니 콜린이 저를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아무리 봐도 당신 판박이인데. 안 그런가요? 아버지?”

“그건 에리카의 말이 맞지. 콜린은 자네를 빼다 박아 놨네. 우리 에리카 좀 닮았으면 더 예뻤을 건데! 그에 비해 라피는 제 어미를 닮아서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어.”

가족들이 한 마디씩 보태자 금세 북적북적해졌다. 사람 수가 많다 보니 그러한 것이다.

“넌 그냥 여기 남아서 고대어 공부나 해. 가긴 어딜 따라간다고…… 훠이훠이, 귀찮게 하지 마.”

“그러는 형은?”

“이 형님은 말랑 콩떡을 사이에 두고 미래의 형수님과 돈독하게 사랑을 쌓을 거니까, 방해하지 마.” 

어깨에 힘을 주고 가슴을 활짝 편 에이든의 말에 제이든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쳇! 고모만 아니었으면 저리 기세등등하진 않았을 건데. 우리 고모가 큰 조카 버릇을 너무 안 좋게 들였다니까.”

차마 어른들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었던 오빠는 에이든과 제이든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 나이 많은 조카님들은 라피보다 정신연령이 떨어지는 것 같군. 라피, 저런 건 절대 보고 배우는 거 아니야. 알겠지?”

“웅, 알겟쏘!”

오빠의 말에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에이든과 제이든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어색하게 웃었다.

“삐나 언냐, 요곤 못 본 척 해 주세여. 흐유, 낵아 못 가르쵸서 구래여.”

[풉! 고, 고모님 너무나 재미있어요. 저도 얼른 그 틈에 끼어들고 싶어요.]

실베스터 왕국 통신구가 아직도 켜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비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웃음을 가까스로 참아내고 있었다. 실베스터 국왕은 입술 꼬리가 슬쩍 오르락내리락했다.

“가족이 많다 보니 잡음이 좀 있습니다. 그러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크흐흠, 아, 아닙니다. 오히려 보기 좋군요.]

3대 공작가의 평범한 모습에 실베스터 국왕은 헛기침을 하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나를 수행할 인원이 매우 조촐하게 꾸려졌다. 사비나를 봐야 하는 에이든은 차출 1순위였다. 그리고 더는 없었다. 실베스터 국왕이 호위는 확실하게 책임져 주기로 한 조건을 달고 우리 둘 외의 인원은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허락했던 아빠가 반대하려 했지만 사비나가 제 신용을 걸고 보증하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라피, 아빠가 말했듯이 오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바로 와도 된단다.”

“우리 호박떡, 거기 가서도 박힌 돌멩이 빼면서까지 눌어붙지 않아도 돼.”

아빠와 오빠는 내게 얼른 돌아와도 된다는 투로 말하며 할아버지와 함께 가방에 이것저것 챙겨 넣었다. 내 작은 가방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크로스백은 너무 작아서 할머니가 만들어 준 백팩을 맨 나는 몸이 저절로 뒤로 쏠렸다.

“대체 뭘 집어넣었기에 라피가 제대로 몸을 못 가눈 겁니까.”

“혹시 몰라 비상식량과 돈이 될 만한 것을 좀 넣어 줬습니다. 크흠흠.”

누가 보면 극한 오지에 가는 줄 알 정도였다. 이 계절과 어울리지 않은 도톰한 옷을 입은 나는 뒤뚱뒤뚱 걸음을 옮겼다.

“귀, 귀여워! 저 모습을 그림으로 담아야 하는데.”

아쉽다는 듯이 보는 언니의 시선에 방긋 웃었다.

“언냐, 다녀오겟쑵니다.”

“그래, 몸 조심하고.”

“니에.”

이곳에 남는 가족과 한 명 한 명 인사하다가 늦잠을 자고 이제야 온 콜린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모 갓따가 올게.”

“시러, 나도 가치 가.”

“앙대, 나눈 일하러 가눈고야.”

“히잉, 이모랑 가치 있고 시픈데.”

따라가고 싶다고 떼를 쓰는 콜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올 때 찰똑 아이스 갖고 올게.”

일전에 사비나에게 듣기로는 실베스터 왕국에서 제일 맛있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찰떡 아이스가 있었다.

“이모가 꽁꽁 얼어서 오는 거야?”

“머라는 거니. 댔고 기다료. 나 올 때까지.”

“웅, 멋찐 남자는 기다릴 줄 안다고 햇써. 난 멋찐 남자가 댈거니까.”

콜린의 말에 나는 언니를 뚫어지게 보다가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분명 콜린 재울 때 로맨스 소설 읽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돌아간 이후에 다시 읽기 시작한 듯했다.

“자! 얼른 가렴. 그래야 빨리 오지.”

“니에, 다녀오겟쑵니다.”

할머니의 볼에 쪽쪽- 입맞춤을 한 나는 곧장 에이든에게 안겼다.

“윽! 고모, 갑자기 무거워졌어.”

가방에 든 게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에이든과 내가 워프 게이트에 서자 씨엘이 당연하다는 듯이 곁에 섰다. 가족의 배웅을 받을 때 워프 게이트가 번쩍였다. 마나가 주입되자 곧장 주변 환경이 달라졌다.

“여기가 실베스터 왕궁인가 봐.”

에이든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폈다.

“어서 오세요. 고모님, 그리고 에이든 님! 정말정말 보고 싶었어요.”

우리를 마중 나온 사비나가 미소 지으며 대뜸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나를 안은 에이든에게 손을 내밀더니 덥석 안았다. 덕분에 샌드위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비나, 뭐 하고 있는 거니.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공주가!”

사비나와 닮은 젊은 남자가 와서 그녀를 억지로 떼어놨다. 그러고는 나와 에이든을 보더니 콧방귀를 꼈다.

“자네 집에서는 문제 될 게 없겠지만 여기에서는 행동 똑바로 하게나. 알겠나? 후우, 사비나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데려온 모양이군.”

“오라버니, 고모님은 정식으로 초빙되어 오신 분이라고요. 예의를 갖추세요.”

“초빙? 무슨 초빙?”

남매의 말을 듣다 보니 실베스터 왕자는 나와 에이든이 이곳에 왜 왔는지 자세히 모르는 것 같았다.

“우리 고모가 고대어를 매우 잘하셔서요. 국왕 전하께서 직접 고모를 초빙해서 제가 보좌하기 위해 같이 왔습니다. 라파엘 실베스터 왕자님.”

에이든이 정중하게 말하자 라파엘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잘생긴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잘생김이 어디 가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 조그만 애가 고대어를 할 줄 알다니. 사기 치는 거 아니겠지?”

라파엘의 말에 난 눈을 조금 찡그리며 말했다.

“낵아 고대어 하눈 거에 머 불만 잇써?”

“뭐, 뭐라고?”

“두리 겨론하면 낵아 사돈 어룬이 되는데, 말버릇 하고눈. 쯧쯧.”

혀를 차며 고개를 흔들자 라파엘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약간 늦게 도착한 학자 무리와 실베스터 국왕을 본 나는 에이든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러곤 씨엘과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가 인사했다.

“안냐세여. 세라삐나 판떼르에여. 요긴 조카 에이든 티그리스에여.”

나름 예의를 차려 소개하자 실베스터 국왕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나라를 다스리는 앤더슨 실베스터라고 한단다. 판테르 영애, 만나서 반갑군. 티그리스 공자, 어서 오시게나.”

아빠와 비슷한 나이대의 국왕을 본 나는 방싯방싯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은 그는 자연스레 손등에 입맞춤했다.

“에스코트 해 줄까? 판테르 양.”

고대어를 읽을 줄 아는 나를 상당히 높게 대우해 주는 것 같아 어깨에 뽕이 들어갔다. 그의 손을 잡은 나는 라파엘 쪽을 쓱 보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어디로 모실까? 어린 아가씨.”

장난기가 섞인 실베스터 국왕의 얼굴을 본 나는 매우 자연스럽게 맞받아쳤다.

“절믄 오빠, 우리 따땃한 아랫목에서 귤이나 까머글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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