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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69)화 (69/164)

69화. 

이건 무조건 할아버지가 잘못하신 거다. 한국에서 인사할 때 혹여나 딸내미한테 술 마시고 해코지할까 봐 여자 쪽 아버지가 예비 사위에게 술을 과도하게 권한 사례가 있었다.

그 결과 남의 집 귀한 아들이 정신을 잃었고, 다음 날 여자가 파혼당한 전적이 있다는 말을 몇 번 들은 기억이 났다.

“우리 딸을 채간 것도 모자라 귀여운 말랑 콩떡이 결혼하겠다고 말하니…….”

한마디로 지금 할아버지는 아빠한테 질투를 하신 것이다. 그 결과물로 아빠는 지금 할머니가 해 주신 맛있는 요리를 앞에 두고 인사를 하는 중이다.

“그걸 지금 이유라고 대는 겁니까. 여보, 평소엔 이러지 않으셨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여보, 자꾸 이렇게 심술을 부리시다가 사위가 우리 말랑 콩떡이 안 보내 주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그건…… 끄응, 죄송합니다. 내일 사위가 깨어나면 직접 사과하겠습니다.”

역시 이 세계에서는 할머니가 제일 셌다. 할머니가 두 눈에 약간 힘을 주고 크게 뜨니 할아버지는 꽁지를 팍 내린 채 마지못해 대답했다.

“고모부님, 괜찮으십니까?”

옆에 있는 다니엘이 아빠의 어깨를 조심히 흔들며 물었다. 그러자 언제 꾸벅꾸벅 인사했냐는 듯이 고개를 바짝 든 아빠는 괜찮다고 말했다.

“어머님이 만들어 주신 거, 다 먹기 전까진 괜찮네.”

약간 목소리에 힘이 빠진 듯했지만, 아빠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다시 입에 넣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내일 일어나서 토하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헤럴드, 주치의에게 숙취 해소제를 만들어서 달라고 하게나.”

“네, 알겠습니다.”

뒤에서 대기 중인 헤럴드에게 말한 할머니는 곧장 내 비어 있는 위장을 음식으로 채웠다.

“우리 라피, 맘마도 잘 먹어서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어.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이 할미가 더 예쁘게 확대했을 건데.”

난 지금도 위로 그리고 옆으로 커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직도 나를 빼빼 마른 아이 취급을 하며 배가 부르다는 말에도 계속 음식을 입에 넣어 주셨다.

오물오물 씹고 주스를 마시며 부른 배 위로 할머니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봉긋 솟은 배를 쓰다듬은 할머니는 그때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부른 배를 통통 두들기며 다른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볼 때 헤럴드가 숙취 해소제를 가져왔다. 요리를 먹다가 잠시 꾸벅꾸벅 졸던 아빠는 헤럴드가 준 숙취 음료를 한 번에 털어 넣었다. 그러곤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잘생긴 남자가 웃으니 주변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라면 그 잘생기고 가슴 빵빵한 남자가 내 아빠라는 것이지만.

아쉽다. 내 아빠만 아니라면 꼬셔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움에 입을 쩝쩝 다셨더니 할머니가 내 입에 오렌지를 물려 줬다. 단단한 과육이 톡 터지며 농후한 과즙이 입안에서 휘몰아쳤다.

오렌지를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취 해소제를 마셨어도 취한 상태이니 티타임을 갖기는 어려울 터이다.

“자네는 이만 가서 쉬게나. 헤럴드, 사위에게 쉴 방을 안내해 주도록.”

취해서 보기 좋게 얼굴이 달아오른 아빠는 방긋 웃으며 헤럴드의 안내를 받지 않고 이쪽으로 왔다. 그러고는 할머니 옆에 앉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우리 예쁜 딸,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잘 거지? 응? 내 사랑스러운 딸.”

높이 나를 들어 올린 아빠는 이마, 코, 볼 할 것 없이 쪽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췄다. 애정이 가득한 입맞춤에 나는 슬쩍 할머니 눈치를 살폈다. 본래 이곳에 오면 항상 할머니랑 같이 잤으니까.

“그래,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자렴.”

“니에, 아빠! 낵아 아빠 재워줄께여.”

나를 빵빵한 가슴으로 안은 아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는 곧장 헤럴드를 따라 움직였다. 약간 비틀거리긴 해지만 중심이 완전히 흐트러지진 않았다.

“이곳에서 편히 주무십시오.”

헤럴드가 문을 열자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씨엘이 먼저 쏜살같이 뛰어들어 갔다. 그 모습을 본 아빠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나는 곧장 아빠의 볼에 입을 맞추며 시선을 돌렸다.

“아빠, 얼룬 옷 가라입어여.”

“응, 그래야지.”

나를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티그리스 공작저의 고용인들이 들이닥쳤다. 딱히 여벌의 옷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아빠와 내 잠옷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와 아빠는 잠옷으로 갈아입혀졌고 고용인들이 나가자 곧장 침대에 누웠다.

술에 취해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아빠를 본 나는 가슴을 작은 손으로 토닥토닥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내 꿍꿔여.”

“응, 우리 라피도 아빠 꿈꾸렴.”

손을 뻗어 나를 안은 아빠는 곤히 잠들었다. 그러자 씨엘이 침대 위로 폴짝 뛰어 올라와 내 옆에서 잠을 잤다.

“후우.”

별것 아닌 하루였지만 너무나 피곤한 나는 아빠의 가슴에 볼을 비비적대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기나긴 하루를 일찍 마감한 나는 다음 날 더 일찍 일어났다. 내가 일어난 줄도 모르고 곤히 잠든 아빠의 흐트러진 머리를 본 나는 차마 그대로 나갈 수 없었다.

난 효녀니까.

다른 사람에게 흐트러진 머리를 보여 줄 수 없었던 나는 내 머리에 느슨하게 묶인 리본을 풀어서 아빠의 머리를 대충 묶어 줬다.

“이 정도면 갠찬을 거 가타.”

아빠의 머리를 매우 흐뭇하게 보다가 나는 침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가까스로 내려왔다.

잠자는 아빠와 씨엘을 내버려 두고 두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갔다. 그곳엔 마리아가 대기 중이었다. 

“우웅, 마리아!”

“어휴, 우리 아가씨, 깨어나셨어요. 이런 맨발이네요. 근데 머리 리본은 어떻게 된 건가요? 한쪽만 있네요.”

“우웅, 아빠 줫써여.”

아직도 반쯤 졸려 하는 나를 안아 든 마리아는 방긋 웃더니 곧장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씻겨진 나는 헬레나가 들고 온 복장을 보고 물었다.

“새언냐! 구곤 머에여?”

“어머, 우리 아가씨! 뭐긴요. 천사님 옷이죠. 우리 아가씨한테 딱 어울릴 것 같아 일부러 주문 제작했답니다. 호호호.”

헬레나가 오늘따라 해사하게 웃으며 나를 맞춤 복장으로 갈아입혔다. 바람만 불어도 천사의 날개처럼 팔랑팔랑 움직일 것 같은 재질의 옷이었다. 다 갈아입자마자 곧장 할아버지 손에 인계되어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마법 연습을 해 볼까? 우리 강아지는 바람 계열 마법에 정통할 거라고 했으니, 기본적으로 플라이 마법부터 배워 보자꾸나.”

아침부터 내게 뽀뽀 세례를 퍼부은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 우와! 하눌을 날고 잇써여.”

“그래. 이번엔 할아버지가 도와줄 테니 다음엔 우리 라피가 직접 해 보렴.”

“니에.”

이른 아침부터 상층의 공기를 마시게 된 나는 할아버지를 봤다. 아직 마나가 쌓이지 않아서 플라이 마법까지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대로 바람을 느껴 보라고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플라이 마법을 시전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엄청난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자! 이제 스스로 날아 보거라. 마나를 모아서 하늘을 난다는 느낌으로 정신 집중하면 될 것이다.”

“하, 하부지! 꾸에엑!”

우렁차게 멱따는 소리를 내지른 나는 할아버지의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급히 두 팔을 파닥였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

할아버지 손을 벗어나자마자 그대로 밑으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사자는 새끼를 낳으면 절벽에서 굴린다고 했던가. 나는 하늘에서 굴려지고 있었다. 

목숨과 맞바꿔서.

“말랑 콩똑 살료!!”

그날 아침 나는 콩가루가 털릴 정도로 파닥파닥 날아다녀야만 했다.

* * *

처가댁인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엄청난 양의 술을 마시고 정신을 잃고 잠든 판테르 공작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으음…… 라피?”

분명 안고 잔 것 같은데 라피가 있어야 할 곳에 뻗은 손에 아무것도 닿지 않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라피의 자리엔 까만 고양이가 식빵을 굽고 있었다. 벌떡 몸을 일으킨 판테르 공작은 온기마저 사라진 곳을 보다가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처가인데 라피가 돌아다녀 봤자 그들의 시선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언제든지 라피를 데려다가 눈에 넣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으니 말이다. 

“기침하셨는지요. 세숫물을 올리겠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세숫물과 수건을 들고 급히 안으로 들어오다가 멈칫했다. 한 가문의 가주이자 동부를 호령하는 판테르 공작의 헤어스타일에 저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는데 참는 게 고문 수준이었다.

“라피는?”

안 그래도 저음인데 숙취로 인해 동굴에서 울린 듯한 낮은 목소리에 시종은 이를 사리물며 말했다.

“크흐흠, 일찍 깨어나셔서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시녀 마리아가 데리고 가서 씻긴 후 티그리스 부인께서 아가씨께 새 옷으로 갈아입혔는데 지금은 천사님이 되셨습니다.”

세수한 판테르 공작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딸이 천사가 되었다고?”

“네, 특별히 주문한 옷을 입고 공작님의 품에 안겨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크흠, 이곳에서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뭔가 참는 듯 이따금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진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한 시종의 말에 판테르 공작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마른 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고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테라스로 발을 옮겼다. 

차가운 바닥이 맨발에 닿자 서서히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다. 테라스에 선 판테르 공작은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진짜 하늘을 나는 천사를 봤다.

“내가 아직 술에서 덜 깬 건가. 분명 숙취 해소제를 어제 마셨는데…… 왜 천사가 추락하고 있는…… 라, 라피!”

라피가 두 팔을 파닥파닥 움직이며 떨어지는 모습을 본 판테르 공작은 두 번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다.

2층에서 바로 뛰어내린 판테르 공작은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충격을 완화한 후 곧장 달려갔다. 씨엘 역시 바로 뛰어내려 판테르 공작의 어깨에 안착했다.

“라피! 라피이이이이!”

사랑하는 부인을 허무하게 잃었다. 한데 제 부인이 목숨 걸고 소원을 빌어 살려낸 아이가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에 판테르 공작은 라피를 목청껏 불렀다.

“아, 아빠!”

“라피, 아빠가 곧 갈게. 아빠가…….”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라피가 떨어지는 곳까지 단숨에 뛰어갔다. 평소 단련한 허벅지가 단단하게 뭉쳤지만 발을 멈출 수 없었다. 제 몸이 뭉개지더라도 아이를 받아내야만 했다. 

“아가, 내 딸…… 여보, 제발 안 돼!”

아이가 보고 싶더라도 지금 데려가면 안 된다고,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절박한 표정을 지은 판테르 공작은 두 팔을 활짝 편 채 떨어진 아이를 가까스로 받는 데 성공했다. 

분명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찹쌀떡이 일그러지기는커녕 치아를 드러내며 방긋 웃는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라피…… 괘, 괜찮더냐. 라피, 우리 딸, 라피…….”

라피를 꼭 끌어안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쉰 판테르 공작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제 딸을 할짝할짝 핥는 씨엘의 목덜미를 잡더니 휙 던졌다. 그러고는 한쪽에서 매타작하는 소리를 듣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여봇!”

“소, 소피아…….”

처음으로 듣는 부인의 날카로운 외침에 노년의 티그리스 공작은 움찔했다. 그러고는 곧장 널찍한 등짝을 단단하게 여문 손에 내줘야만 했다.

“제가 다 봤어요! 우리 새끼를 공중에서 냅다 던지면 어쩌자는 거예욧!”

“부, 부인…… 난 그저 우리 손녀가 얼른 마법을 익혔으면 해서…… 제가 조종하고 있어서 바닥으로 떨어지진 않았을 건데…… 라피도 나중에 하늘을 나는 걸 즐기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를 하늘에서 던지다니! 여보 미치셨어요?”

팡팡-

그날 티그리스 공작은 칠십 평생 처음으로 54년을 같이 산 부인의 손이 맵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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