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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68)화 (68/164)

68화. 

티그리스 공작저에 가기 위해 워프 게이트에 서자마자 까만색 무언가가 맹렬히 뛰어왔다. 요즘 연무장에서 지내느라 내 곁에 잘 오지 않는 씨엘은 티그리스 공작저에 간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워프 게이트에 섰다.

“씨엘.”

내 부름에 씨엘이 폴짝폴짝 뛰어 품에 안겨들었다. 그 모습을 본 아빠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봤다.

“하부지네 지베 갈고야. 씨엘도 갈래?”

냐오옹.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비비적댔다.

“수컷이라 그러나. 우리 딸에게 끼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낵아 주인이니까여.”

이곳에서 내 뒷배가 없으면 바로 쫓겨날 거란 걸 씨엘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빠의 눈을 피하면서 가련한 티를 낸 씨엘은 매우 얌전하게 안겼다.

“뭐 어쩔 수 없지. 이만 가지.”

아빠의 한 마디에 마법사는 워프 게이트에 마나를 주입했다. 새하얀 빛무리가 생기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주변 환경이 찰나에 바뀌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티그리스 공작저에 도착하자마자 내 발은 땅바닥과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우리 아가씨, 이제 오셨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나두 새언냐 보고시펏써여.”

“정말요? 그럼 매일매일 오세요. 제가 매일 여기로 마중 나올게요.”

나를 보듬어 안은 헬레나는 볼에 무한 입맞춤 폭격을 가했다.

“아, 고모부님! 어서 오세요. 지금 어머니께서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하고 계시답니다.”

“그런가. 흐음, 직접 만들어 주실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라피 아가씨께서 고모부님 오실 때 꼬꼬 주라는 말을 실천 중이시랄까요.”

통신구로 나와 아빠가 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할머니가 진짜 씨암탉을 잡고 계신 중인 듯했다.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되건만 직접 손수 요리를 준비한 할머니는 우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방에서 뛰다시피 해서 나오셨다.

“하무니, 보고시펏써여.”

“오, 우리 라피! 내 새끼, 이 할미도 우리 손녀가 보고 싶어서 매일 라피 앓이를 하는 중이란다.”

내가 없어도 할머니가 빈자리를 크게 느끼지 않도록 일부러 그림을 그려서 드렸다. 그 결과 할머니는 꼭 하루 중 한두 시간은 내 그림을 보며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고, 다니엘이 몰래 말한 기억이 났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들어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하자 매우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 고모 왔어? 고모할아버지 어서 오시지요.”

이번엔 할머니 품에서 에이든의 품으로 이동했다. 내 볼에 제 볼을 대고 비비적댄 에이든은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 지었다.

“공쥬니미랑 연락햇써?”

“응, 방금 연락하고 왔어. 고모가 이곳에 온다는 말에 사비나가 오고 싶어 하더라.”

사비나는 요즘 티그리스 공작저에 자주 오지 않았다. 에이든이 프러포즈하기 전까진 자유롭게 드나들었는데 말이다.

“공쥬니믄 모해?”

“신부 수업 중이래. 그런 거 안 해도 된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왕실에서 시키는 거라 어쩔 수 없다나. 하긴 우리 티그리스 공작가가 한 끗발 하긴 하지.”

그건 네 힘이 아니라 가문의 힘이란다. 콧대 높은 줄 모르고 하늘로 치솟는 에이든의 코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군데 진짜 신부 수업이 마자?”

“왜?”

“낵아 보기엔 에이랑 겨론시키기 시러서 안 보내는 거 가튼데.”

“에이, 설마! 나 같은 사윗감이 어디 있다고 그래.”

“차자보묜 널리고 널렷찌.”

“쿨럭.”

내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마틸다에게 휘둘리고 있을 팔자인 에이든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안 그래도 뭔가 낌새가 좀 안 좋긴 한데…… 내가 그곳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직 실베스터 왕국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탓에 에이든과 사비나는 생이별 중이었다.

“갠차나. 곧 조은 소식 이쓸 거야.”

“그걸 고모가 어떻게 알아?”

“그럴 거 가트니까.”

그냥 내 감이랄까. 아니면 말고.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에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저번에 사비나와 다리를 놔 준 것 때문에 나를 무한 신뢰하는 것 같았다.

“앗! 말랑 콩떡 고모, 왜 이제 온 거야. 내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뒤이어 나타난 제이든이 에이든의 품에서 나를 빼앗다시피 하더니 그대로 도주를 시도했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나 고모랑 공부할 거니까 방해하지 마!”

검술 수련도 하는 제이든을 에이든이 따라잡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아빠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에서 합법적으로 납치를 당했다. 

제 방으로 들어간 제이든은 나를 아이용 의자에 앉혔다. 아주 뽕을 뽑으려는 듯 제이든은 내 의자까지 미리 준비한 듯했다. 그러자 씨엘이 책상 위로 올라가 얌전히 식빵을 구우며 내가 하는 고대어 수업을 제이든과 함께 들었다.

그러다 지겨워졌는지 씨엘은 훌쩍 뛰어내리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으휴, 넌 아직도 모타니? 대체 누굴 달믄거야!”

“으음, 아무래도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

“끄응, 모타는 말이 업써!”

내게 혼나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제이든은 헤실헤실 웃기만 했다. 한동안 신나게 고대어 수업을 한 제이든은 저녁 시간이 되자 책을 덮더니 나를 안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하부지, 보고시펏써여. 하부지는 나 안 보고 시펏써여?”

“왜 안 보고 싶었겠니. 이 할아비는 꿈속에서 매일 봤단다. 하하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난 당연히 할머니 옆에 앉았다. 예전엔 침대에서 식사하셨는데 서서히 나은 할머니는 이젠 식당에서 같이 식사할 수 있게 되었다.

“자! 이것 좀 먹게나. 우리 귀한 사위!”

할머니가 직접 만든 닭요리를 아빠 앞에 놓아 줬다. 아니 놓아 준 것도 모자라서 할머니가 직접 닭고기를 찢어 주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언제든지 우리 라피를 데리고 오기만 하게나. 내 언제든지 직접 요리를 만들어 줄 테니.”

닭고기 요리를 먹은 아빠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음을 표정으로 표현한 아빠를 본 할머니는 매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소피아! 나는?”

“당신은 평소에도 맛있는 거 드시잖아요.”

“아니 그건 주방장들이 만든 요리이고…… 나도 여보가 만든 음식 먹고 싶은데.”

“젊었을 때 많이 해 주지 않았습니까. 제가 해 준 음식이 아니면 안 드시려고 해서 제가 매일 삼시세끼 차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그거야, 여보의 음식 맛에 내 혀가 길들어져서 그런 거 아닙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를 들은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할머니도 상당히 귀한 집안 출신이라고 했는데 그런 집안에서 할머니께 요리를 가르친 건가 싶었다.

“하무니는 요리 배운 거예여?”

“응? 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요리하는 거였단다. 한데 티그리스 가문에 시집온 다음엔 정말 정신없이 바빠서…… 후우…….”

오죽이나 바빴겠는가. 일개 가문도 아니고 북부를 호령하는 티그리스 공작가의 안주인인데. 음식 재료 준비는 주방에서 해 준다고 하더라도 할머니가 직접 요리를 했을 것이다. 게다가 안주인으로서 공작가의 광활한 안살림을 책임져야 했기에 그 책임감도 만만치 않았을 테다.

“우리 라피 할아버지가 입이 고급이라 꼭 전날 먹은 음식은 안 먹으려고 해서 세끼를 다른 요리로 만들어야 했단다.”

“우와, 하부지 대단해여. 딴 사람이묜 쪼껴낫을 건데.”

“크흠흠, 내가 쫓겨날 정도로 못생기진 않았었단다.”

젊었을 때 할아버지가 잘생겼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마리아와 함께 역대 티그리스 공작의 초상화들을 본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소싯적 모습을 말이다.

정말이지 잘생긴 남자는 복지라고 했던가. 당시에 할아버지가 무리한 부탁을 해도 할머니가 도망가거나 쫓아내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과거의 내 멱살을 잡고 끌어내고 싶을 지경이란다. 당시에도 잘생긴 사람이 상당히 많았는데.”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가 할아버지를 봤는데 한눈에 반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힘줘 말씀하셨다.

처음 본 후 이상하게 초대받은 파티에 갈 때마다 마주쳤다는 말에 나는 픽, 웃었다.

“하부지가 하무니한테 반햇써여?”

“당연하지. 순간 천사님이 내 앞에 강림하신 줄 알았단다. 그래서 일부러 소피아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었지. 그리고 끈질기게 프러포즈를 했고.”

한 번은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그 이후엔 우연은 아니다. 즉 할아버지가 할머니 눈에 새기기 위해 일부러 파티장을 쓸고 다녔다는 말에 다니엘과 헬레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프러포즈를 할 때마다 소피아가 거절했었지.”

“저도 보는 눈이 있답니다. 얇실한 귀공자 타입은 별로였거든요. 튼튼하고 단단한 기사 타입이 좋았는데 내가 어쩌자고 당신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는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결혼 전에 연애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히죽 웃었다. 할머니한테 반해서 죽자 살자 따라다닌 할아버지의 끈질김에 탄성을 질렀다.

“라피는 꼭 네가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하려무나. 싸움도 잘하고 능력도 좋고 몸매도…… 크흠.”

할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랑 겨론하기로 햇써여.”

“뭐? 하하, 원래 딸은 아빠랑 결혼한다고 약속하곤 한단다.”

내 말에 할아버지가 쾌활하게 웃었다.

“여보, 우리 세라피나는 절대 아빠랑 결혼한다는 말은 예의상으로도 안 했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사위한테 한눈에 반했으니까요.”

“마, 말이 그렇다는 거죠. 크흠흠, 어쨌든 라피는 아빠랑 결혼하지 못하니 딴 남자를 알아보려무나.”

자그마한 질투가 묻어나는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곤 할머니가 먹여 주는 음식을 욤뇸뇸뇸- 소리를 내며 먹었다. 

보통 귀족가의 자식들은 먹을 때 소리를 절대 내지 않게 교육받는다. 하지만 아빠는 내게 그런 교육을 강요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기 있는 이들은 내가 소리 내어 먹는 모습을 보며 더 좋아했다.

“맛있니?”

“니에, 하무니가 머겨조서 더 마싯써여.”

“오구오구, 그랬쪄요? 많이 먹으려무나. 우리 라피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차렸단다.”

내가 오는 날이면 이 집안의 식단이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었기에 가리지 않고 먹여 주는 대로 얌전히 먹었다. 

아빠 역시 할머니가 만든 요리를 맛보며 미소 지었다.

“이것도 좀 먹어 보게나. 저것도…… 어떤가, 맛은 괜찮은가?”

할아버지가 요리를 집으려고 할 때마다 할머니가 그것을 아빠 앞으로 밀었다.

“네, 정말 맛있습니다. 어머님.”

“그렇지? 많이 먹게나. 우리 라피를 키우려면 많이 먹고 건강해야지.”

이미 건강함의 기준을 넘어선 아빠였지만 할머니는 계속 사위에게 요리를 권했다. 그 모습을 약간 흐린 눈으로 본 할아버지가 아빠에게 술을 권했다.

“자! 이왕 이리 온 거 내 술 한 잔 받게나.”

“아, 주신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평소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이곳에만 오면 할아버지가 주는 술을 마다하지 않은 아빠였다. 할아버지가 따라 준 술을 받은 아빠는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또 할아버지가 빈 잔에 그득하게 따라줬다.

“아버님, 저는 더는 못 마시겠습니다.”

“어허, 장인이 권하는 건데 안 마실 참인가.”

오랜 금주 상태에서 벗어난 아빠는 할아버지가 권한 술이 몇 잔이 넘어가자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렇기에 아빠가 다음 잔을 거절했지만, 할아버지가 강요했다.

“여보, 술은 그만 권하세요.”

“괜찮습니다. 남자라면 이 정도는 마셔야지요.”

아빠의 주사를 보겠노라고 말한 할아버지는 술과 요리를 먹다가 고개를 꾸벅이는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저리 주량이 약해서야…….”

그때 할아버지가 들고 있는 붉은색 술이 담긴 병을 본 다니엘이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할아버지…… 그거 45도나 되는 센 술인데요.”

“뭐? 45도? 여보! 미치셨나요? 아니 그렇게 독한 술을 사위에게 계속 권하다니요.”

놀란 할머니가 내게 밥을 먹이다가 멈추고 할아버지에게 한 소리를 했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봇! 사위도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신 사돈의 귀한 아들이라고요. 사돈의 귀한 아들한테 독주를 마시게 하다니요. 정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날 할아버지는 식사 시간에 할머니의 웃음기 뺀 나긋나긋한 말로 조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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