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67)화 (67/164)

67화. 

다음 날.

어제 내 생일이라고 아빠가 발표한 탓에 하루 늦게 생일 케이크가 마련되었다.

떡 케이크에 초가 꽂힌 것을 본 나는 짜게 식은 표정을 지었다. 촛불을 불라는 말에 건성으로 후- 하고 불고 끝냈다. 하고 많은 케이크 중에 떡 케이크가 뭐란 말인가.

약간의 실망이 서린 표정으로 앞을 뚱하게 보고 있을 때 동부 귀족들이 급조해서 뭔가를 내게 내밀었다.

“판테르 영애의 생일 선물입니다.”

아빠 품에 안겨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선물이랍시고 내민 것을 본 나는 체면 불고하고 히죽 웃었다.

“라피, 침 흘리는구나. 누굴 닮아서 이리도 물욕이 있는지 원.”

“나, 아빠 안 달맛써여?”

“음? 아빠를 닮긴 했지. 그래. 아빠 닮았다고 치자.”

귀족들이 내민 귀한 물건들을 본 나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마뜹니다. 선물 바다서 라삐 햄볶아요.”

그날 나는 햄이 타들어 가도록 볶다가 너무 피곤해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 * *

우리 셋의 생일 연회가 끝나고 한 달 후쯤 언니와 형부가 결혼식을 올렸다. 버진 로드를 아빠의 손을 잡고 걸은 언니는 평소 당찬 모습과는 달리 눈물을 머금은 눈동자로 앞을 봤다.

그런 언니의 손을 잡고 가던 아빠는 형부가 멋진 제복을 입고 오자 걸음을 옮겼다.

“내 딸 울리면…… 자네 일찍 숟가락 놓을 줄 알게나.”

“밤에만 울릴 테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

“우리 라피도 안 보여 줄걸세.”

“밤에도 절대 울리지 않겠습니다.”

능글능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던 형부는 아빠의 두 번째 말에 얼른 표정을 싹 바꾼 채 말했다. 태세전환의 일인자인 형부는 부케를 든 언니의 손을 아빠에게 건네받았다.

“진작 결혼식을 해야 했는데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괜찮아요. 어차피 결혼식은 올릴 생각도 하지 않았거든요. 한데 아버지가 권하셔서…….”

아비 손을 잡지 않고 걷는 버진 로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언니는 소원 풀이를 했다. 행복한 미소를 지은 두 사람 앞에 나와 콜린이 화동이 되어 그들의 가는 길에 꽃을 뿌렸다. 

꽃길을 걸은 언니와 형부는 무사히 주례 앞에 섰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갑자기 울컥한 표정을 지으며 눈동자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 딸…… 결혼식 봤어야 했는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해 평생 한이 된 할머니 곁에 앉은 할아버지는 죄인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반대하는 결혼이라 참석하지 않은 할아버지 역시 지금 이 모습을 보며 회한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우리 딸, 참 예뻤을 건데.”

“네,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혹시 원한다면 결혼식 그림을 그린 게 있는데 보여 드리겠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본 아빠는 제 딸을 사위에게 보내 주고 온 후 조용히 말했다.

“참말인가? 그때의 그림이 있다고?”

“네, 혹시 몰라서……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부러 화가를 고용해 당시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오! 정말인가? 그럼 다음에 갔을 때 보여 주게나. 꼭 보고 싶어.”

할아버지가 너무나 강경한 성격 때문에 제 뜻을 따르지 않은 딸이라고 당시 존재한 그림마저 모두 떼어서 버렸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티그리스 공작저엔 아주 어린 시절의 엄마랑 같이 있는 외삼촌 그림만 딱 한 장 있다고 들었다.

그게 지금 한이 맺혀 눈물을 흘린 노부부는 아빠의 한 마디에 회생한 표정을 지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이미 혼인신고까지 해서 아이까지 낳은 딸의 손을 잡고 버진 로드를 걸으니 감회가 새롭군요.”

“자네라도 딸 손잡고 버진 로드를 걸어서 다행일세. 난 내 복을 차 버렸지.”

일평생 한 번 있을 경험을 놓친 할아버지는 애써 눈물을 떨치며 나를 봤다. 그러더니 품에 꼭 안았다.

“우리 라피가 결혼할 때 내가 손잡고 가면…….”

“그건 좀 곤란합니다만, 불쌍한 표정 짓지 마시지요. 저도 그건 절대로 양보할 수 없습니다. 아비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걷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단호하게 거절한 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럴 때는 정말 냉정하군.”

“자식 문제에 한해서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은한 미소를 지은 아빠는 언니의 결혼식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 와중에 나는 입으로 오렌지를 집어넣었다.

이건 뭐 결혼식이 아니라 고문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엄청 시간이 오래 걸렸다. 특히나 주례가 문제였다. 대체 이 따사로운 햇볕 아래 한 시간 이상 설교 아닌 설교를 해대니 사람들의 집중력이 죄다 흐트러졌다.

고픈 배를 오렌지로 대충 채운 나는 성혼 선서 이후 반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손뼉을 쳤다.

“이뿌다. 울 언냐가 체고로 이뻐.”

“원래 오늘의 신부가 가장 예쁜 법이지.”

아빠 역시 내 말에 동의하듯 말했지만, 오빠만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어딜 가서도 변하지 않는 현실 남매를 잠시 본 후 오렌지를 먹으려다가 무언가 날아오자 나도 모르게 잡아 버렸다.

잡는다고 잡힌 게 신기한 부케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자 콜린이 쪼르르 달려왔다.

“이모, 이제 겨론해?”

“우웅…….”

“요고 바드면 겨론해야 한대.”

그던 또 어디서 들은 말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아빠가 대답했다.

“그렇지, 우리 라피는 크면 결혼할 거란다. 나랑.”

이 와중에도 이제 다섯 살이 되어 가는 손자랑 말싸움하는 듯한 아빠를 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냐옹, 냐아앙.

비록 형부가 동물은 싫어한다지만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 초대받은 씨엘은 내 품으로 폴짝 뛰어 안겼다. 그러곤 부케가 신기한지 말랑말랑한 분홍 젤리 발바닥으로 톡톡 건드렸다.

“씨엘, 요곤 먹이 아냐.”

한창 호기심이 동할 나이대의 씨엘은 부케에 제 볼을 문지르더니 향기를 맡듯 냥냥- 소리만 냈다.

얼떨결에 받은 부케를 테이블에 올려 두고 본격적으로 오렌지를 먹으려고 할 때 내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씨엘은 눈치를 보며 얼른 내 품에서 뛰어내려 테이블에 얌전히 착지해 식빵을 구웠다.

“우리 처제가 부케를 받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낵아 받고 시퍼서 바든 거 아니에여.”

환하게 웃은 형부는 아빠 앞에서 당당하게 나를 대여한 후 언니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면사포를 쓰고 있었지만, 언니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힌 채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언냐, 겨론 추카해여.”

“응, 고마워. 우리 라피.”

면사포를 살짝 들어 올린 언니는 내 볼에 쪽쪽- 입맞춤을 했다. 그러고는 나를 꼭 안아 올렸다.

“우리 처제가 에리카, 여보 아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으음, 아버지가 안 계시면 제 호적에 올리고 싶네요. 우리 라피, 어쩜 이리도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입맞춤한 볼에 이젠 언니가 제 볼을 꾹꾹 비비적댔다. 진한 신부 화장을 했음에도 언니의 미모를 화장이 더하거나 가리진 못했다.

“나두 아빠 달맛쓰면 언냐처럼 이뿔껀데.”

“어머,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언니는 우리 라피가 새어머니를 닮아서 정말 좋은데. 라피마저 아버지를 닮았으면 언니는 좌절했을지도 몰라.”

새신부가 되어 이제 새신랑과 하객들에게 인사를 해야 옳았다. 한데 콜린도 아닌 나를 안고 그들과 인사를 하느냔 말이더냐. 덕분에 진이 쫙 빠진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축 늘어졌다.

“우리 인절미가 열에 녹아내린 것 같습니다.”

“으음, 생각해 보니 우리 라피 낮잠 잘 시간이네요.”

“콜린이랑 같이 재울까요?”

“구곤 앙대!”

반쯤 눈이 감겼던 나는 형부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뜬 채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두 번 같이 잤다고 책임져 달라던 아이였다. 콜린을 어르고 달래느라 약간 고생했는데 세 번 같이 자면 아예 졸졸졸 따라다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 콜린이 처제한테 밉보인 거야?”

“기찬아여. 자꾸 가치 잣다고 채김져 달라고 그러자나여.”

이제 네 살 생일이 지났을 뿐이다. 한데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조카를 책임지기엔 내가 나이가 너무 창창했다.

“우리 콜린, 섭섭해서 이 일을 어쩌지.”

내가 말한 것을 들었는지 콜린이 입술을 댓발이나 내밀었다. 그 모습을 봤지만 나는 강경했다. 비록 콜린이 내 조카라지만 같이 자지는 않았다. 그저 다시 아빠의 품으로 되돌아와 빵빵한 가슴에 기대어 졸 뿐이었다.

언니와 형부의 결혼식까지 무사히 끝이 났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 언니는 아빠 앞에서 펑펑 울더니 나까지 같이 끌어안았다고 한다.

이미 잠에 빠져든 나는 그때의 기억을 하지 못했다. 옆에 앉아 있었던 오빠가 본인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해 줬을 뿐이었다.

“오빠, 뺘뺘!”

방학이 끝나 아카데미로 돌아갔던 오빠는 언니의 결혼이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결석하고 왔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돌아가는 날이었다. 평소엔 마차를 이용했을 텐데 오빠는 과감하게 워프 게이트 앞에 섰다.

마차를 오랫동안 타느니 차라리 마법 멀미를 당해도 눈 깜짝할 사이에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쓰려는 것 같았다.

“우리 라피, 오빠가 자주 연락할 테니까 내가 없다고 울거나 하진 마. 알겠지?”

“웅, 알겟쏘!”

오빠의 볼에 작별의 입맞춤을 해 준 나는 쫄랑쫄랑 걸어서 아빠 곁에 섰다.

“잘 가고, 앞으로는 방학 때만 와도 되겠구나.”

만약 오빠가 마법 멀미만 해결할 수 있다면 매주 이곳에 올 수 있었다. 그걸 염두에 두고 귀찮다는 듯이 말한 아빠를 본 오빠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법 멀미 걸리는 것은 많이 연습해서 이겨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앞으로는 자주 이곳에 오겠다는 말에 아빠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대놓고 자주 오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언니의 결혼식이 끝나고 오빠가 아카데미로 돌아가니 판테르 공작저엔 다시 고요함이 가득했다.

아빠는 지치지 않고 귀엽고 사랑스럽게 부풀어 오르는 서류더미와 씨름을 했다. 식사 때와 잘 때를 제외하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후우음, 하부지 지베 가고 시퍼여.”

조용해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무료했다. 마법도 혼자 익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집안에 고용된 마법사에게 물어봐도 되었지만, 굳이 최고위급 마법사를 썩혀 두고 싶지 않았다.

“북부에 가고 싶다고?”

“니에.”

가고 싶어요. 엄청, 매우, 많이, 겁나!

밤에 자기 전에 아빠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두 분에겐 우리 라피가 손녀니까 가끔 가는 것도 괜찮겠지.”

아빠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다음 날 일어나서 크로스백에 이것저것을 욱여넣었다. 대부분 알록달록한 사탕이나 캐러멜 종류였다. 비상식량을 잔뜩 챙긴 나는 헤죽 웃었다.

“북부에 가는 게 그리도 좋으세요?”

“웅, 조아여. 하부지네 지벤 사람드리 마나여.”

즉 나와 놀아 줄 잉여 인력들이 널렸다 이 말씀이다. 물론 내가 거기 가서 노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방긋방긋 웃으며 워프 게이트 앞에 선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아빠가 미리 나와 있었다. 아무래도 배웅하기 위해 나오신 것 같았다.

“아빠, 다녀오겟쑵니다.”

“음, 아빠도 같이 가려고 하는데.”

“니에? 왜여?”

“왜긴, 나한테는 처가댁이 아니더냐. 어머님이 씨암탉 잡아 준다고 오라고 하시더구나.”

역시 사위 사랑은 장모님인가. 일국의 공작을 먹을 것으로 유혹해서 오라고 한 할머니가 대단해 보였다.

“구로묜 누가 일해여?”

아빠가 이곳을 벗어나면 그만큼 할 일이 쌓여서 며칠간 서류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봤다. 그렇기에 이번에 가면 또 서류와 씨름하며 정신을 놓을 것 같아 잔뜩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 걱정과는 달리 매우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겐 매우매우 훌륭하고 능력 좋은 보좌관이 있지 않느냐. 지금도 뽀송뽀송한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달곰한 서류와 아이 컨택하는 존재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아빠가 말하며 어딘가를 봤다.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건물 안에서 울먹이며 커튼을 물어뜯는 벤스와 맥스가 보였다. 오늘부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서류와 씨름할 그들에게 묵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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