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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56)화 (56/164)

56화. 

애매모호한 말을 한 소년은 내 뒤에 서 있는 맥스를 봤다.

“오랜만이로군요. 맥스 워렌 후작님께서 마중 나오실 줄은 꿈만 꿨습니다만.”

“하하하, 유진 도련님, 못하시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아! 이분은 라피 아가씨랍니다. 아가씨, 오라버니 되시는 유진 도련님이세요. 인사하셔야죠.”

맥스의 소개에 멀뚱멀뚱 오빠를 본 나는 마지못해 치맛자락을 살짝 구겨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안농, 오빠! 라삐라고 해. 글고 얘눈 씨엘이야.”

간단명료한 소개를 하며 씨엘을 불쑥 내밀자 오빠의 눈은 가늘어졌다.

“라피?”

“웅, 아빠가 지어졋써. 글고 씨엘은 내가 지엇써.”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오빠는 대놓고 눈을 찡그렸다. 역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은 투였다.

“참고로 말씀드리지만 세 공작가 모두 라피 아가씨를 인정하셨습니다.”

맥스가 팩트만 추려서 말했지만, 오빠의 눈은 풀리지 않았다.

“세 가문이 동시에 정신을 놓은 겁니까?”

“그럴 리가요. 지금은 어색하겠지만 유진 도련님도 라피 아가씨와 함께 있으면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됐고, 얼른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며 경계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은 오빠의 말에 서둘러 움직였다. 그 결과 나는 오빠와 함께 마차에 태워졌다.

어색한 분위기에 질식해 죽을 것만 같았다. 남매끼리 이야기하며 정 붙이라고 일부러 빠져 준 맥스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하릴없이 씨엘을 쓰다듬은 나는 가방을 끌어안았다. 외출할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크로스백이었다. 얼마 전에 아빠가 너무 작다며 조금 큰 것으로 바꿔 준 가방엔 이것저것 구겨 들어가 있었다.

“쪼기, 오빠!”

“입 다물어. 나 지금 너랑 이야기할 기분 아니야.”

여전히 가면을 벗지 않은 오빠의 노란색 눈동자가 상당한 강도로 흔들렸다. 대놓고 거리를 둔 오빠의 말에 더는 말을 붙일 수 없었다.

이 나이에 어린 오빠의 눈치나 살펴야 함에 속으로 짜증이 일어났지만, 꾹꾹 참았다. 어쩌겠는가. 현실 나이가 어린 내가 참아야지. 

덜컹-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지 덜컹대는 소리와 흔들림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폭신한 쿠션이 덧대어져 있었지만 덜컹거릴 때마다 충격이 엉덩이에 느껴졌다.

“마차는 자주 안 타 봤나 보네?”

“우웅, 나드리 갈 때만 타밧써.”

“나들이? 후우, 언제부터 이 집안에 그런 게 있었는지 모르겠군.”

오빠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나이에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후웅, 마봅으로 가묜 금방인데.”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알고 잇쓰면 마봅으로 가는 게 빠르자나.”

“누가 그걸 모르는 줄 아나. 난 마법은 질색이라 그래.”

명색이 이 제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마법 가문의 외손자인데 멀미 때문에 워프 게이트조차 사용하지 못하다니.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배꼽 잡고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아빠도 나도 언냐도 눈 깜빡하묜 금방 도착햇는데.”

“…….”

“오빠눈 구게 안 대는구나. 머 어쩔수 업찌.”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지 못하니 몸이 고생하면 그만이었다. 한데 고생길에 왜 내가 함께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빠가 집에 오면 그때 맞이하면 되는데 굳이 경계선까지 마중 가서 워프 게이트 대신 마차를 타는 신세라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잊지도 않은 우애가 먼지처럼 흩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움직였을까. 밖에서 격렬한 소리가 터졌다.

“도련님, 아가씨!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

채앵 챙 챙-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자 순간 어깨가 움찔했다. 나는 씨엘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껏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빠의 나직한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그렇다는 것은 혹시 누군지 모를 이의 최종 목표는 나란 말인가. 만일 오빠가 목적이었다면 이곳에 오기 전에 거사를 일으켰을 게 분명했다.

이를 사리문 나는 마차 창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 은빛 날카로운 병장기가 부딪치는 모습이 보였다.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들과 붙는 검은 복면을 쓴 존재 중 한 명이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치려는 찰나에 오빠가 내 눈을 제 손으로 가리더니 마차 창문을 닫았다.

“너 미쳤어? 저 사람과 눈 마주치면 안 돼.”

자신 쪽으로 나를 끌어안은 오빠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러곤 이를 갈았다. 이제 열세 살짜리 남자애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검을 들고 설치는 성인 남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아찌들…… 울 기사 아찌랑 똑가치 싸워.”

기사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시험을 봐서 들어온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와 대등하게 검을 맞댔다. 그렇다는 것은 고도로 훈련을 받은 기사나 아니면 암살자가 분명했다.

“감히 판테르 공작가의 혈족이 탄 마차를 향해 검을 겨누다니, 역시나 네가 문제인 것 같은데.”

“…….”

“너 말이야. 황도에 파멸의 아이라고 소문이 짜하게 났어. 아무래도 너를 데려가려고 하는 것 같아.”

내가 없는 곳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진 듯했다. 파멸의 아이라니, 아직 뭔가 파멸시킬 정도로 힘이 강하지 않는데 말이다.

“나눈 세 짤이라 암것두 모타눈데, 낵아 파멸의 아이야?”

“…….”

두 손을 꼼지락대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상태로 눈을 질끈 감은 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야만 했다.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와 비등하게 싸우는 존재들이었다. 몇 명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만일 재수 없어서 우리 기사들이 지고 난 후의 일을 대비해 온갖 시나리오를 짰다.

결론은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제야 마나를 겨우 모으기 시작한 단계였다. 아직 제대로 된 마법을 시전할 수 없었던 나는 이를 사리문 채 오빠를 봤다.

닫힌 창문을 노려본 오빠는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했음에도 오빠는 나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보지 않았다. 그저 그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으아악.”

“크윽!”

병장기 소리와 더불어 온갖 비명이 난무했다. 순간 몸이 위축된 나는 오빠를 슬쩍 올려다봤다.

“내, 낵아 나가묜 오빤 갠차나?”

“뭐?”

“기사 아찌들 더눈 안 다칠 수 잇써?”

“너 지금 그게 무슨…….”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린 오빠는 어이없다는 듯 숨을 뱉었다.

“낵아 나가묜…….”

“네가 저놈들에게 잡혀서 죽기 전에 내가 먼저 아버지한테 맞아 죽어. 알겠어? 그러니까 허튼 소리하지 마. 어린아이답게 가만히 있으라고.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못마땅한 호박색 눈동자로 나를 노려본 오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치만 이러케 잇따가 오빠가 다치묜 다들 술포할꼰데.”

나야 어차피 판테르 공작부인의 판박이라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고 쳐도 오빠는 누가 뭐래도 가문의 후계자였다. 그렇기에 오빠가 다치거나 죽으면 큰일이었다.

“내가 미쳐도 너한테 신세 질 일은 없어. 자존심이 있지 꼬맹이한테…….”

덜컹-

오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문이 잠긴 마차 문을 억지로 여는 듯했다.

“오, 오또케, 오또케!”

발을 동동 굴렀지만,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복면을 한 남자에게 붙잡혀 갈 것만 같았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나는 오빠의 눈치를 살폈다. 덜컹거리는 쪽을 노려본 오빠는 갑자기 나를 뒤로 밀어냈다.

“너, 무슨 일이 있어도 얌전하게 있어. 네가 움직이면 내가 완벽하게 커버할 수 없으니까.”

“웅?”

언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봐 놓고는?

동생으로 인정한 게 아니라 그저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행동을 하는 건가.

어쨌든 오빠의 조그만 등을 본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 가다가는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전생에도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십대에 죽었는데 이젠 세 살에 죽게 되다니.

아직 못 해 본 게 많았다. 제대로 된 마법사도 되지 못했고 내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에이든과 사비나의 결혼도 봐야 했다. 할머니가 제대로 식사하는지 감시도 해야 하고, 일에 파묻힌 아빠를 데리고 나가 산책도 시켜 줘야 했다.

이대로 죽으면 너무나 억울할 것 같아 나는 오빠의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줬다.

미야옹.

씨엘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가방을 뒤적였다.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넣어놔서 원하는 게 빨리 잡히지 않았다.

뭔가 결연해 보인 씨엘이 앞으로 나서기 전에 굳게 잠긴 마차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대 판테르 공작의 아들 유진 판테르다. 네놈들은 누구기에 감히 판테르 공작이 다스리는 동부에서 설치는 것인가.”

열세 살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나직한 목소리가 마차 안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온몸에 피칠을 한 성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뻗었다.

챙-

언제 뽑았는지 모를 오빠의 검에 막혀 날카롭고 소름 끼친 금속성 소리가 마차 안의 공기를 타동했다.

“넌 필요 없으니 뒤에 있는 여자애 이리 내놔. 그럼 너와 네 기사는 무사할 것이다.”

아빠가 다스리는 곳에서 딴놈들이 이렇게 설치고 다닐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오빠는 단순히 집으로 돌아오는 거라 호위기사를 많이 두지 않았다. 나 역시 오빠를 마중 온 역할이었기에 맥스 외엔 같이 온 자가 없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으면 공작가에 속한 기사를 줄줄이 데려왔을 텐데.

후회는 이미 늦었고 앞의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도련님, 아가씨! 피하십시오!”

맥스의 외침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반대편 문을 열었는데 판테르 공작가의 기사가 아니라 앞에 있는 놈과 같은 놈이 있다면 그것 또한 문제였다. 앞뒤로 막힌 상황에서 오빠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앞에 있는 남자를 노려볼 뿐이었다.

“네놈한테 애를 넘기면 내가 먼저 죽는다. 그리고 네놈은 세 개 가문의 원수가 되는 영광을 누릴 텐데,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군.” 

오빠의 말에도 복면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오빠는 픽, 웃었다.

“너, 황실이나 아니면 신전 쪽에서 파견한 놈이시냐? 그렇지 않고서는 동부에서 감히 내게 검을 들이밀 생각은 하지 못할 건데.”

오빠가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아는 존재가 개입했다. 그리고 내가 오빠를 마중 나갈 거란 것을 아는 자가 말한 게 분명했다. 판테르 공작저에 첩자가 있을 줄은 생각하지도 못한 나는 얼른 씨엘을 어깨에 올렸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오빠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복면인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목표물을 확인한 남자는 내게 손을 뻗기도 전에 오빠에게 막혔다.

“앤 건드리지 말고 나랑 먼저 해결하지?”

아무리 오빠가 아카데미에서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기사급 실력을 지닌 성인 남자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가방 속에서 가장 값비싼 것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한 손으로 오빠를 잡은 채 거침없이 입으로 찢었다.

찌이익-

기이한 소리에 오빠가 슬쩍 뒤를 돌아보고는 뭐라고 한마디 하기 전에 미약한 마나를 쏟아 부으며 외쳤다.

“워프!”

그렇게 나는 오빠와 씨엘을 달고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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