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55)화 (55/164)

55화. 

욤뇸뇸뇸-

아빠와 함께하는 간식 시간에 떠먹여 주는 케이크를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으며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작자 미상인 두 개의 소설을 말이다. 분명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자동차 등등이 그려진 삽화였다. 한데 그걸 본 제니는 이상하다고 하지 않았다.

‘고대인의 과학과 상상력은 엄청났나 봐요. 말이 끌지 않는 철갑을 두른 마차라니, 이걸 그린 이도 대단하고.’

실제로 내가 본 두 개의 책은 이미 널리 퍼진 소설 중의 하나라고 했다. 자동차 그림을 그저 고대인의 상상력의 산물로 여기다니.

작자 미상의 두 소설을 쓴 자는 창조주일까. 아니면 나처럼 두 곳을 모두 거쳐 산 고대인일까. 뭐 어쨌든 베네딕트 제국에서 오빠가 전 약혼자를 무찌르고 반란을 잠재웠다는 것에 속으로 안도했다.

오빠의 생사를 알지 못해 안달했던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힘이 쭉 빠졌다. 

그 책 속에서 나란 존재는 반란 중에 죽은 게 끝이었다. 전 약혼자의 손에 죽었는데 갑자기 내가 등장하면 그건 그것대로 혼란을 초래할 게 분명했다. 

잠시 깊게 생각을 하던 나는 볼을 쓰다듬는 느낌에 두 눈을 깜빡였다.

“라피, 무슨 생각을 하기에 맛있는 케이크를 입에 머금기만 하고 안 씹는 거지?”

“웅? 아, 구게여. 부인…… 아니 엄마 방에서 일근 책을 떠올렷써여.”

“음? 세라피나의 방에서 무슨 책을 읽었기에 그럴까.”

얼마 전 기억을 떠올리며 깊게 생각하다가 입 안에 케이크를 머금은 채 가만히 있었던 모양이다. 얼른 꼭꼭 씹어 꿀꺽 삼킨 나는 아빠가 준 우유를 마셨다.

“로맨스 소설이여. 구전 댄 곤데 고대어로 적켜 잇따고 햇써여.”

“아, 그 소설을 말하나 보구나. 세라피나가 특히나 좋아한 책이었지. 그러면서 자신은 이 로맨스 같은 사랑을 해서 결혼을 했다고 자주 말하곤 했지. 크흠.”

말하는 도중, 아빠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드리워졌다. 본인이 말해 놓고 부끄러워하는 아빠를 본 나는 방긋 웃었다.

“우움, 낵아 요 책속에 빙의햇다고 하묜 이상하료나여?”

“갑자기 우리 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내 물음에 조금 당황한 듯한 아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아빠에게 내가 두 세계를 살았는데 단명해서 이곳으로 떨어졌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할 거냐는 물음을 던졌다.

“라피, 넌 누가 뭐래도 나와 세라피나의 아이란다.”

우연의 일치로 닮은 게 아니라 내가 부인인 세라피나와 피가 이어졌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한 아빠는 나를 꼭 품었다.

“네 어미가 서서히 무너지려는 내게 쓸데없는 생각을 할 틈도 없을 정도로 굴려 주기 위해 너를 키우라고 보낸 게 분명해.”

육아를 하면 정신 하나도 없다는데, 어찌 된 게 세 살짜리 제 딸은 사고를 치지 않아서 그게 서운하다고 말하는 아빠였다.

“자면서 저번처럼 세계지도도 그려 줘도 된단다. 난 우리 딸이 팬티 기저귀 차고 아장아장 걷는 게 참 귀여운데 이젠 그러지 못하니 아쉬워서 어쩌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아빠를 본 나는 사고를 치지 않아서 미안해져 헤헤, 웃으며 입을 벌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아빠가 케이크를 떠서 내게 먹였다.

“많이 먹고 쑥쑥 크려무나. 우리 세라피나 판박이라서 남자들이 줄을 설 것 같지만, 괜찮아. 아빠가 다 막아 줄 수 있단다.”

오는 남자 안 막고 가는 남자도 안 막을 예정인 나는 아빠의 말에 순간 흠칫했다. 이러다가 결혼도 못 하고 아빠랑 이 집에서 평생 같이 살아야 하나 싶었다.

뽀짝뽀짝 거리를 줄이며 다가온 씨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녀석이 느른한 표정을 짓더니 내 다리 위로 올라와 비비적댔다.

“라피, 간식 먹을 땐 고양이랑 거리를 둬야 하지 않을까.”

“갠차나여. 씨엘이 조으니까여.”

“하지만…….”

“그치만 아빠랑 잇눈 게 젤 조아여.”

역시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본적으로 눈치란 것을 달고 있어야만 했다. 그 예로 아빠의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잘생긴 남자가 미소 지으니 그것만큼 멋진 것도 없었다.

씨엘과 거리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인지 아빠는 나를 번쩍 안아 올려 제 무릎에 앉혔다. 탄탄한 허벅지와 빵빵한 가슴은 더없이 안정감을 줬다.

역시 남자는 가슴과 허벅지였다. 나중에 결혼할 남자는 기본적으로 아빠 같은 몸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했다.

“이런, 우리 딸은 또 무슨 생각을 하기에 음흉한 눈빛을 한 채 아빠를 보는 거지? 그것도 침을 질질 흘리면서 말이다.”

아빠의 말에 얼른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케이크의 크림 말고는 침이 묻어나오지는 않았다. 아빠의 장난에 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자꾸 입술 삐죽이면 아빠가 뽀뽀할 거야.”

그 말에도 입술을 넣지 않자 아빠는 나를 품으며 연방 입술과 얼굴 이곳저곳에 입 맞췄다. 원래 아빠와 딸은 이런 스킨십을 자주 하는 건가. 워낙 거지 같은 아빠를 둔 채 살았던 나는 현재 아빠의 스킨십이 어색했지만 억지로 밀어내지 않았다.

“아빠눈 나랑 오래오래 가치 살 거져?”

“당연하지. 라피가 아빠랑 결혼한다고 했으니까 평생 옆에 두고 같이 살아야지.”

방긋 웃은 아빠는 다시 내게 케이크를 먹이는 데 집중했다. 그 모습을 약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본 벤스의 눈동자가 약간 흐려진 듯했다. 마치 못 볼 꼴을 본 듯한 모양새였다.

“공작님, 아가씨께 중요하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오셔 놓고는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계십니다만.”

실시간으로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는 귀여운 서류를 두고 여기 와 놓고 딴 것만 한다고 불평을 말한 벤스는 아빠의 시선에 고개를 쓱 돌렸다.

“아, 그리 중요한 건 아닌데 잠시 집무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긴급을 요한 사항이라고 말하고 나오긴 했지.”

“즈기여. 아빠, 그짓말하묜 때찌해여.”

“우리 딸이 아빠를 때리겠다니…… 기분 좋아지는데. 때리는 것도 살아 있어야 가능하니 말이다.”

천륜을 저버린 희대의 악녀가 되어도 아빠는 마냥 좋다고 할 것 같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내 입술에 묻은 케이크 크림을 손으로 쓱 닦은 아빠는 본인 입에 쏙 넣었다.

이성적으로 봤으면 끼 부린다고 말할 텐데. 안타깝게도 아빠한테 이성적으로 반할 정도로 정신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군데 할 말이 모에여?”

“아, 진짜 별것 아니란다. 조만간 유진이 온다는 말을 해 주러 왔단다.”

유진? 유진이라 함은 이 집안의 둘째이자 판테르 공작부인이 낳은 아들?

일전에 제니가 말해 준 것을 떠올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도 방학이 되어 오는 것 같았다.

“네 오빠가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무뚝뚝해서 정다운 느낌이 안 들 것이야. 그리고 우리 라피를 보고 마냥 좋아하진 않을 테니 너무 상처받지 말렴.”

그 누가 아빠 같아 보이는 이유가 뭘까.

아빠의 말에 고개만 끄덕였다.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동생이랍시고 어린애가 떡하니 앉아 있으면 기분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열세 살이면 사춘기에 서서히 접어들 나이가 아니겠는가. 우선 반항하고 볼 것 같은 성격의 소유자를 떠올린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유진이 오면 일대의 파란이 일어날 게 분명했다. 설마하니 나를 죽이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진 않겠지만 가볍게 무시하며 없는 사람처럼 여길 것 같았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날 이후로 오빠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며 씨엘의 궁둥이를 팡팡 두들겼다. 한데 며칠이나 지났는데 오빠란 인간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워프 게이트만 타면 바로 올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고개를 갸웃한 나는 궁금한 점을 물으려 했지만, 그 전에 아빠가 먼저 말했다. 

“참고로 유진에겐 치명적인 단점이 있단다.”

“구게 모에여?”

단점이라니, 우선은 파악하고 볼일 일이었다.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지 못한단다. 뭐 진찰 결과 성인이 되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워프 게이트를 이용하지 못한다니, 그렇다는 것은 단숨에 이곳으로 날아오지 못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어쩐지 아빠가 느긋하게 말하더라니. 지금 당장 출발한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일이 걸릴 게 분명했다.

“구롬 기절시켜서 데꼬오묜 안 대여?”

“풉! 기, 기절이라니 상당히 참신한 방법이로구나. 하하하. 근데 유진 그놈의 성질머리가 누굴 닮았는지 몰라도 그건 거절하더구나.”

깔끔하게 뒷목을 쳐서 기절시켜 이곳으로 데려와 본 적이 있는데 이후론 거절한다고 중얼거린 아빠를 본 나는 픽, 웃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뒤를 쳐서 기절시켰다니, 싫어할 만했다.

“니에, 알겟써여.”

이 집안의 후계자가 온다는데 내가 오지 말라고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씨엘을 쓰다듬었다.

미야오옹.

늘어지게 하품하는 씨엘을 보고 있을 때 아빠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울렸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을 치우려는 의도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라피를 치장시키게나.”

“네, 알겠습니다.”

이레나와 제니가 동시에 대답하더니 나와 씨엘을 떨어뜨렸다. 나만 번쩍 안아 올린 이레나는 욕실로 데려갔다. 따뜻한 물을 받아 뽀독뽀독 소리가 나도록 씻긴 후 머리카락도 살살 감았다.

뽀얀 살결이 연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맛있는 것을 먹고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니 노곤해져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어휴, 우리 아가씨 마치 물 먹은 찹쌀떡 같아요.”

방긋 웃은 이레나의 말에 난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집안은 아니 이 세계는 뭘 하듯 기승전 떡인 것 같았다.

이레나의 말처럼 어묵 국물에 푹 잠겨 물 먹은 물떡처럼 부들부들 쫄깃쫄깃하게 변한 나는 나른한 하품을 했다.

“어휴, 우리 아가씨 벌써 하품하시면 안 되는데. 얼른 도련님 뵈러 가셔야지요.”

유진은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지 못한다는데 어떻게 보러 간다는 것인가. 설마하니 나더러 오빠를 마중 나가라는 말은 아니겠지? 

물떡이 되어 뇌까지 흐물흐물하게 변해 녹진녹진 흘러내릴 것만 같은 나를 일으킨 이레나는 커다란 수건으로 돌돌 말았다. 절대 옆구리가 터지지 않은 구운 찹쌀떡 김밥을 본 아빠는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하게 씻긴 몸엔 새 옷과 더불어 머리 장신구를 찔러 머리카락이 앞으로 넘어오지 않게 했다.

“아빠!”

“지금쯤이면 거의 당도했을 거란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딸이 오빠를 마중 나갔으면 하는구나. 이렇게라도 해서 없던 정을 쌓아야지.”

“니에? 구게 무슨…….”

“지금쯤 영지 경계선에 도착했을 거야. 그러니 우리 딸이 워프 게이트를 타고 그곳에 가서 오빠랑 만나서 손잡고 집으로 마차를 타고 왔으면 하는구나.”

남매끼리 사이좋게 지내길 원하는 아빠의 바람대로 나는 거부 한 번 제대로 할 시간조차 없이 워프 게이트 앞에 섰다. 얼떨결에 씨엘만 간신히 챙겼지만, 아빠는 미리 내 짐을 워프 게이트 쪽에 쌓아 놨다.

“그럼 잘 부탁하겠네.”

“염려 붙들어 매십시오.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라피 아가씨, 얼른 공작님께 인사하셔야지요.”

이번에 특별히 동행한 맥스의 말에 나는 썩어들어 가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빠, 뺘뺘! 담에 바여.”

내가 이곳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면.

뒷말을 삼킨 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낯선 곳에 도착했다. 영지를 유리하게 운영하려고 경계선 쪽에 워프 게이트를 하나씩 둔 아빠 덕분에 마차로 길게 이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돌아갈 땐 마차를 타고 올 내 엉덩이가 짓무를 테지만.

맥스의 손을 잡고 워프 게이트에서 내리자마자 못 보던 일행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중 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뭐 그리 잘났다고 가면을 쓴 까만 머리카락에 금안을 지닌 소년은 나를 보더니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아? 이건 뭐야. 호박이 떡이 되어 굴러들어온 건가?”

이거 욕이야, 칭찬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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