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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50)화 (50/164)

50화. 

판테르 공작부인의 방에 있다가 제니의 부름에 얼른 나갔다. 나와 판테르 공작부인이 완벽하다 못해 완전히 판에 박아 찍어 놓은 듯이 똑같다는 사실만 안 나는 제니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뀨우웅.

아빠와 함께 나가면서 씨엘을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내게 찰싹 붙어 어리광을 부리듯 비비적댔다.

“미아내. 아빠랑만 가서.”

아빠는 이상하게 씨엘을 싫어했다. 잠도 절대 한 침대에 같이 자지 못하게 했다. 식사 역시 같은 식탁에서 먹는 게 금지되었다.

지금처럼 외출을 할 때도 아빠는 씨엘을 떨어뜨렸다. 마치 딸내미의 남자친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씨엘을 보며 적당히 거리를 두게 했다.

“제니, 아빠는 냥이 시러해여?”

“으음, 잘 모르겠어요. 애초에 이곳에서 동물을 키운 적이 없어서.”

한마디로 씨엘이 판테르 공작저의 1호 반려동물이 되었다. 씨엘을 쓰다듬어 준 나는 잠시 시선을 바깥으로 던졌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눈을 찔러 시큰했다.

오늘이 판테르 공작부인의 기일인데 묘하게 저택은 고요했다. 이 시대에 제사는 지내지 않더라도 고인을 기리는 게 정상일 텐데.

“이런 날엔 머 해여?”

“으음,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각자의 방식으로 부인의 명복을 빌며 그분을 기린답니다.”

“흐음…… 구로쿠나. 언냐랑 하부지도 오묜 조을건대.”

하긴 내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서로 얼굴도 안 보고 살았다는데 이곳에서 기일을 보내기 위해 올 리가 없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공작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 벤스 님과 상의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마 지금쯤이면 벤스 님이 혼자 계실 거예요.”

“낵아 벤이랑 말하라구여?”

“네, 공작님은 혼자 가족묘로 가셨을 시간이니 지금 이 집안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아가씨와 공작 대리인으로 계신 벤스 님이거든요.”

생각해 보니 베네딕트에서 오빠가 잠시 부재중이면 굳이 마법탑까지 찾아와 내게 의견을 묻는 귀족들이 있었다.

“흐음, 구롬 벤 만나로 갈래여.”

내가 손을 뻗자 제니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꼭 잡았다. 제니와 함께 걷자 씨엘이 쫄랑쫄랑 따라왔다.

역시 그날이라 그런지 오늘은 분위기가 촥 가라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고용인들이 나를 보고는 말랑 찹쌀떡 볼을 만지려고 할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옆으로 물러나 고개 숙인 채 서 있다가 내가 지나가면 그때야 제 갈 길로 갔다.

“저기가 벤스 님의 집무실이랍니다.”

“벤한테 일하는 곳이 있는 줄은 몰랏써여.”

“집에 가 봤자 처자식이 없어서 심심하다며 이곳에서 살림을 차리다시피 하신…… 크흠, 헛소리했습니다. 자! 얼른 들어가 보세요.”

제니가 나를 대신해서 노크했다. 나직한 노크 소리가 울렸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다른 곳에 가셨나 봐요. 워낙 바쁘신 분이니 한곳에 오래 계시지 못하거든요.”

“그짓말.”

벤스가 바쁘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어딜 가더라도 툭하면 벤스가 튀어나왔다. 아마 이 안에서 제일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벤스를 찍을 것이다.

“거짓말 아닌데…… 아! 저기 오시네요.”

제니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안은 채 돌아가려 할 때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벤스의 모습이 보였다. 옆엔 오스카와 이레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벤, 오쓰, 이레냐!”

“음? 우리 찹쌀떡 아가씨가 아닌가요. 제가 그리도 보고 싶으셨습니까. 이곳까지 찾아오시다니.”

분명 표정을 잔뜩 굳히고 있었는데 내가 부르자 벤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 지으며 달려왔다. 그러고는 평소처럼 내 볼을 잡고 몇 차례 늘리더니 제니에게서 나를 인계받아 안아 올렸다.

“오쓰, 이레냐! 안냐세여.”

“아가씨, 힘들 텐데 이곳까지 오셨군요. 제 집무실이 아가씨 방에서 더 가깝습니다만.”

희미한 미소를 지은 오스카가 나를 보며 살짝 고개 숙였다.

“아가씨, 여긴 멀답니다. 그러니 제 집무실로 오셔요. 참고로 집사님 집무실보다 제 집무실이 더 가깝답니다.”

평소처럼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상한 느낌이 든 이레나를 본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를 어루만졌다.

“우럿써여?”

“아, 아뇨. 아직 울진 않았어요. 호호호, 역시 우리 아가씨는 부인을 닮으셔서 참 세심하세요.”

그래요. 닮긴 오지게 닮았죠. 외모만.

진짜 어디 가서도 엄마라고 불러도 절대 오해받지 않을 정도로 빼닮은 외형이었다.

“잠시 말이 다른 곳으로 샜군요. 저 보려고 오신 건 아닐 거고……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니에, 오늘이 부인의 기일이자나여.”

“네, 그렇지요.”

“군데 왜 언냐랑 하부지 안 불러여?”

누구보다도 그분들이 오고 싶어 할 것 같았다. 기껏 얼굴 트고 말도 섞었는데 오늘 같은 날 따로따로 각자 집에서 기일을 지내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판테르 공작부인이 세 집에 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흐음, 저도 그 생각은 했는데 아무래도 공작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셔서 머뭇거리다가 타이밍을 놓쳐 버렸답니다.”

잘한다. 아주 잘하는 짓이야. 딱 보니 아빠 눈치 보느라 아무 말도 못한 것 같았다.

“구롬 지금은 앙대여? 나 언냐랑 하부지 보고 시픈데.”

“티그리스 공작님과 에리카 아가씨가 보고 싶으셨군요. 그렇다면 당장에 연락을 넣겠습니다.”

내 한 마디에 벤스는 곧장 주변에 있는 기사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자 곧장 뒤돌아서 오늘도 놀고먹으며 거저 돈을 버는 마법사의 집무실로 뛰어갔다.

“역시 우리 아가씨는 배우신 분이세요.”

“구론고 아니고…… 부인께서 세 군데 다 돌아다니려묜 힘드러 할 것 가타서여.”

“아무렴요. 그렇고말고요. 이런 날에 가족끼리 모이는 것도 매우 뜻깊을 것 같아요. 역시 우리 아가씨는 참 착해서 탈이라니까요.”

이레나가 그나마 미소 지으며 내 볼을 조물조물 만졌다. 오늘도 만인의 찹쌀떡 볼때기가 된 나는 이젠 해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좀 전에 마법사에게 보낸 기사가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벤스의 물음에 기사는 숨을 고르고는 고개를 숙였다.

“하, 하멜 경이…….”

“하멜 경?”

나는 생전 처음 들어 본 이름이었지만 다들 아는지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하멜 경은 실종 상태이지 않나.”

“네, 그러하온데 지금 하멜 경이 왔습니다. 진짜입니다.”

“말도 안 되네. 실종되었다가 4년 만에 오다니.”

“저도 처음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말이 됩니다. 제가 그놈이랑 기사 아카데미 동기인데 못 알아볼 리가 없지 않습니까.”

기사의 말에 그때야 다들 숨을 들이마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판테르 공작부인과 연관이 있어 보였다. 실종된 지 4년 만에 이곳으로 돌아온 사람은 곧장 이곳으로 안내되었다.

“누구에여?”

“저스틴 하멜이라고 공작부인의 호위기사였습니다.”

내 물음에 오스카가 말하며 이를 꽉 깨물었다. 마치 혐오스러운 물건을 보는 듯한 눈동자로 저스틴 하멜을 봤다.

“무슨 염치로 4년 만에 이곳에 온 것인가. 저스틴 하멜 경!”

벤스가 평소답지 않게 나직한 목소리로 묻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최근에야 기억이 났습니다. 전쟁 중에 절벽에서 떨어져 급류에 휩쓸렸는데…….”

기나긴 말을 전부 듣고 있을 정도로 이 안에 있는 존재는 인내심이 그리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됐고 결론만 말하게나. 실종 상태에서 풀어 달라는 건가. 그걸 원한다면 지금 조치를 취해 주겠네.”

“그, 그게 아닙니다. 공작님께 드릴 게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세라피나 님께서 제게 남기신 유언이 된 편지입니다. 그러니 공작님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두 눈이 벌겋게 변할 정도로 눈물짓는 남자를 본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언이 담긴 편지가 존재한다고 쳐도 급류에 휩쓸렸는데 그게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했다.

“허튼 소리하지 말게나. 급류에 휩쓸렸는데 편지가 남아 있다니? 그걸 지금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참말입니다. 이 편지는 방수 처리가 되어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다 치더라도 기억을 잃었어도 편지를 봤다면 없던 기억도 날 건데 4년이 되니 나타난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

평소 며느리가 되어 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들러붙기만 한 벤스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리 후작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저를 구해 준 여인과 결혼했는데…….”

“그 여자가 아찌 도망갈까 바 이거 안 준고에여?”

“네, 맞습니…… 히익!” 

대답하며 고개를 든 하멜 경이 나를 보며 기겁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의 놀람을 뒤로하고 벤스가 오스카를 봤다. 그의 눈빛이 뭘 뜻하는지 안 오스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금 그곳에 가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 누가 되었든.”

“하지만 공작님께서 나오실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일세. 후우…….”

지하 묘지로 들어가 아빠를 데리고 올 사람을 뽑는 듯했다. 다들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다가 나를 빤히 봤다.

“안 돼요. 우리 아가씨는 그곳에서 길 잃어버릴 수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아직 어린데 그런 곳에 보낸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제니가 크게 놀란 투로 말하곤 얼른 벤스의 품에서 나를 빼앗아 안아 들었다. 그러고는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외, 외람되지만 누구신지…….”

“우린 구운 찹쌀떡, 그리고 티그리스 공작가는 말랑 콩떡, 아퀼라 공작가에서는 인절미로 통하는 우리 아가씨일세. 참고로 부인께서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서 우리에게 보낸 것이지.”

하멜 경의 궁금증에 벤스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곁들였다.

“안냐세여. 라삐에여. 울 아빠 딸이구여.”

“부, 부인께서 아기를 어떻게 낳으…… 정말 똑 닮으셨습니다.”

제 처지를 망각한 채 나를 보고 놀란 듯한 하멜 경을 본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오쓰, 아빠한테 가고 시퍼여. 낵아 갈게여.”

“하오나 아가씨, 그곳은 어린아이가 가기엔 좋지 않은 환경입니다.”

제니가 끝까지 나를 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말이 옳긴 했지만, 지금은 얼른 아빠를 모셔 와야 할 것 같았다.

이 저택에 있는 사람 중에 아빠 앞에서 개겨도 절대 혼나지 않을 존재인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나눈 울 아빠 딸이라서 모타는 게 업써여. 할 쑤 잇써여.”

나는 지원하자마자 곧바로 임무에 투입되었다.

“아가씨, 안 되겠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말씀하세요.”

“갠차나여. 난 용감하뉘까.”

걱정되어 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제니를 뒤로한 채 오스카가 알려 준 방향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석관을 끌어안은 채 아련한 눈동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아빠는 아파 보였다. 마음이 아파서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그대로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아슬아슬한 찰나에 아빠는 나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부인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빼앗은 나는 아빠에게 안겨 지상으로 올라왔다.

하멜 경을 본 아빠의 표정은 매섭게 변했다. 하지만 부인이 남겼다는 편지를 받아든 아빠는 나를 안은 채 읽었다.

「나의 여보, 내 유일한 사랑 조시에게

조시, 미안해요. 여보한테 허락을 받지 않고…… 기사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참전했어요.

한데 너무 늦게 알아 버렸어요. 제 배 속에 당신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요.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겠지만 딸이었으면 해요. 저를 꼭 닮은 딸이길 바라요. 그래야 여보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 딸이 배 속에 있다는 걸 알면서부터 저는 그간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전부 들려주는 중이랍니다. 아이에게 말해 주는데 너무 그립네요.

저는 이번 전투에서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요. 아마 우리 딸이 저를 많이 미워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은 살릴 거예요.

먼 곳으로 보내서 다양한 삶을 살게 해 주고 아빠의 품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거예요. 한데 언제 우리 딸이 다시 돌아올지는 모르겠어요. 저를 원망해서 늦게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우리 딸이 돌아오면 한눈에 알아보고 키워 주세요.

조시 정말 사랑해요. 당신이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도 제가 그 맘 모를 줄 아셨죠? 저는 다 알아요. 왜냐하면 전 당신의 아내가 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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