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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47)화 (47/164)

47화. 

순간 모두 굳어 두 눈만 끔뻑끔뻑였다.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로 자부한 아빠마저도 약간 고장이 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콜린을 봤다.

“겨론하면 이모한테 머든지 잘해줄 자신 잇써요.”

마치 공약하듯 아빠한테 결혼만 하면 뭘 할지 발음도 되지 않은 말로 이것저것 설명했다. 그 말을 듣던 형부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얼른 콜린의 입을 막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버님, 콜린이 말한 것은 그게 아니라…… 애가 결혼이란 게 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하하. 고작 네 살밖에 안 되었는데.”

“세 살인 내 딸은 결혼이 뭔지 알아서 에이든 티그리스와 실베스터 공주 사이에 다리를 놔 줬네만.”

“그건 우리 라피 처제가 매우 특별하게 똑똑해서 그런 것이고요. 세 살에 고대어까지 읽을 정도인데 결혼이란 걸 모를 수는 없겠지요.”

나와 콜린이 말하는 결혼은 서로 다른 것이라며 형부가 두서없이 이것저것 갖다 붙이며 말했다. 그 와중에 아빠는 형부가 내 칭찬을 하자 어깨에 뽕이라도 넣은 듯 조금씩 위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내 칭찬을 함으로써 아빠의 감정을 진정시킨 형부는 어색한 웃음을 지은 채 눈치를 살피며 설명을 이어 갔다.

형부가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말이라고, 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 말을 한 거라며 연거푸 사과했다.

“하여튼 아퀼라 가문의 피를 이은 놈들은 보는 눈이 확실하군. 하지만 콜린, 너는 이모랑 가족이라 결혼할 수 없단다.”

“히잉, 시러요. 저 이모랑 겨론하고 시퍼요.”

“안 돼. 라피는 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했거든.”

저기요. 아빠? 지금 어린아이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마치 나를 두고 어린애와 싸우는 모양새였다.

“아니에요. 이모는 멋찐 남자랑 겨론한다고 햇써요. 제가 멋찐 남자 댈 거에요.”

“네가 멋진 남자가 되기 전에 난 이미 멋진 남자인데 이 일을 어쩌지. 안 그런가 자네? 난 자네랑 내 딸의 결혼식도 허락해 줬는데 말일세.”

“네, 네? 아…… 그, 그렇죠. 아버님처럼 멋진 남자는 없죠. 하하하.”

결혼 때문에 콜린을 버린 형부는 기쁜 와중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히잉, 안 대는대, 이모는 나랑 겨론해야 해.”

곧 울 것 같은 콜린을 본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멋찐 남자는 우는고 아냐. 알겟쏘?”

“응.”

내 한 마디에 콜린은 곧 울 것 같더니 곧장 눈물을 소매로 쓱쓱 닦았다. 그러고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이모, 정말 조아해.”

“어, 구래. 이제 손 놓고, 얼른 머거. 마니 먹고 쑥쑥 커야지.”

“어, 나 많이 먹고 쑥쑥 커서 이모랑 겨론할거야.”

기승전결혼인 콜린은 그날 이후로 절대로 편식은 하지 않았다. 편식하면 키 크지 않는다는 말에 녀석은 싫어한 채소를 입에 한 움큼이나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결혼은 성대하게 할 필요는 없다. 생색내고 싶으면 화려하게 해도 되지만. 뭐 그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나들이에서 돌아와 아퀼라 공작저에서 처음으로 식사를 한 아빠는 차를 마시며 아까 하지 못한 말을 했다.

“저도 굳이 크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요. 이미 아이까지 낳은 마당에 굳이 휘황찬란하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럼 친인척과 가까운 지인 정도만 부르는 것으로 하는 게 낫겠구나. 자네, 생각은 어떤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버님과 에리카의 말은 무조건 맞습니다.”

뭐든 다 좋다고만 하는 형부의 얼굴에서는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엔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난 이만 라피를 데리고 가마. 오늘이 딱 일주일째니까.”

“히잉, 안 대요. 이모랑 가치 잇꼬시퍼요. 할아부지, 이모 두고 가면 안 대여?”

보통 아이라면 아빠의 모습만 봐도 놀랄 테다. 더러는 경기를 일으킬 것 같았다. 한데 콜린은 형부의 피를 진하게 타고 났는지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너도 네 아비랑 같이 있듯이 라피도 아빠랑 같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

“할아부지도 가치 여기 잇쓰면 대잔아요.”

“난 바쁘다. 그러니 라피가 보고 싶거들랑 나중에 정식으로 허락받고 오거라. 그리고 에리카, 결혼 준비에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하고. 그럼 진짜 가 보마.”

나를 안아 올린 아빠는 곧장 워프 게이트에 섰다. 그러자 카이와 오스카도 따라 들어왔다.

“이모오오오! 가지 마아아아.”

이 와중에 형부의 품에 안겨 애처롭게 손을 휘적이며 울먹이는 콜린이었다. 이래서 첫사랑이 무서운 것인가.

“잘 이써. 담에 보장.”

콜린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가 무섭게 눈 깜짝할 사이에 판테르 공작저로 이동했다. 일주일 만에 돌아온 곳은 변함이 없었다. 능글대는 벤스의 표정을 보니 이제야 집에 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라피 아가씨, 그곳에서 무슨 일은 없으셨는지요?”

“무순 일은 마니 잇썻써여. 콜린이 겨론하자고 졸랏써여.”

“콜린이라 함은 아퀼라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우리 마성의 아가씨가 이젠 조카마저 홀리고 말았군요. 이리되면 제 입지가 점점 좁아져서 좀 슬퍼지려고 합니다.”

훌쩍이듯 어깨를 잔망스럽게 떤 벤스가 가까이 다가왔지만 이내 아빠의 시선을 피해 거리를 벌렸다.

“라피, 이제 안으로 들어가서 쉬어야지. 구운 찹쌀떡이 찌그러졌어.”

내가 무슨 겉은 바삭, 속은 쫀득한 구운 찹쌀떡인 줄 아나. 진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나를 떡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우웅, 아빠랑 가치가고 시퍼여.”

“그래, 아빠랑 같이 들어가자꾸나.”

앞에 벤스가 두 손을 벌리고 있었지만 나를 안은 아빠는 그를 개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벤스는 뒤에 있는 카이에게 바짝 붙었다.

“그곳에서 우리 아가씨 뭐 하고 지내셨습니까?”

“데굴데굴 굴러다니셨습니다.”

아퀼라 공작저에서 일주일간 있었던 나의 행적을 매우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카이는 픽, 웃었다. 그렇다고 차마 술에 취해 형부의 꽃밭에서 굴렀다고 말할 수 없는 카이는 나를 보더니 한쪽 눈을 살짝 찡그렸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에 나 역시 두 눈을 찡긋했다. 윙크하고 싶었지만, 눈이 내 명령 한도를 초과했는지 두 눈이 동시에 감겼다. 

“아니 두 분, 이젠 윙크까지 나눌 정도로 사이가 친밀해진 겁니까.”

뒤따라오다가 나와 카이의 눈짓을 본 벤스가 거의 좌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아빠의 걸음도 멈추고 나와 카이를 번갈아 봤다.

“아빠, 힘드러요.”

“하긴, 그러겠구나. 얼른 방으로 가자꾸나.”

아침부터 씨앗 뿌리고 나들이 가서 장단 맞춰 주느라 고된 나는 아빠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비비적댔다. 잠시 후 나는 내 방이 아니라 아빠 방에 떡하니 들어오게 되었다. 들어오자마자 아빠는 소파에 앉히더니 가방을 풀어냈다. 그러고는 나를 정면으로 보며 물었다.

“정말 콜린이 멋진 남자가 되면 결혼할 생각이더냐.”

저, 저기요? 아빠? 지금 그걸 물어볼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요.

장난으로 응 이라고 대답하기엔 아빠의 표정이 매우 진지했다. 거짓으로라도 긍정의 대답을 하면 콜린은 영원히 이곳에 발도 디디지 못할 것 같았다. 더불어 형부도.

“나눈 아빠랑 겨론할곤데. 구로묜 앙대여?”

“그렇지, 우리 딸은 아빠랑 결혼할 거지? 역시 우리 딸이 제일 귀엽고 사랑스럽다니까.”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아빠는 그때야 표정을 풀었다. 그러고는 이레나에게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아 놓으라고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살짝 고개 숙인 이레나는 고용인들에게 아빠의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으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의 넓은 욕조엔 따뜻한 물이 가득 담겼다. 한데 욕조에 입욕제로 넣는 꽃잎이 아니라 다른 게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오리?”

“아이들은 욕조에 장난감을 띄워 놓는다고 해서 특별히 공수해 온 것이란다.”

오리를 띄워 놓고 놀 나이는 아니었지만, 아빠는 매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마지못해 웃어야만 했다.

“우리 아가씨, 아퀼라 공작저에서 실컷 드셨나요? 어머나! 처음 봤을 때보다 살이 찐 것 같아요.”

아퀼라 공작저에도 아동 확대범들이 즐비했다. 특히 형부와 언니가 더 심했다. 제 자식은 알아서 먹으라고 하면서 내 입으로 이것저것 몰아넣었다. 덕분에 난 매일 배가 빵빵한 상태였다.

“언냐랑 혐부가 막막 머겨줫써여.”

“아퀼라 공작님과 에리카 아가씨의 작품이로군요. 살이 포동포동 쪄서 더 보기 좋아 보이네요.”

내 옷을 능숙하게 벗긴 이레나가 욕실 밖으로 나갔다. 저번엔 이레나가 씻겨 줘서 그녀가 나를 뽀독뽀독 씻길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을 불러오려나 보다.

따뜻한 물에 발만 담근 채 물장구를 칠 때 뒤에 그림자가 쓱 드리워졌다. 순간 놀란 나는 미끄러져서 욕조 안으로 빠질 뻔했지만 커다란 손이 단번에 잡아 잠수하는 것을 막아 줬다.

“우리 딸, 오늘은 아빠랑 같이 목욕하자꾸나.”

“니에에?”

조금 어색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아빠랑 자주 목욕하자꾸나.”

조금이 아니라 매우 어색했다. 원래 아빠는 아들과 같이 목욕하는 거 아닌가. 실제로 아들이 태어나면 같이 축구하고 목욕하러 가는 게 꿈인 남자도 존재했다.

한데 딸인 나와 함께 목욕하자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눈 아드리 아뉜데여.”

“꼭 아들이랑 같이 목욕하란 법은 없다. 그리고 시커먼 아들놈이랑 목욕할 바엔 욕조를 쪼개고 말지.”

그 시커먼 아들이 아빠랑 판박이라는 말은 주변에서 들어 알고 있었지만,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가릴 곳은 가린 아빠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나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욕조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아빠의 가슴팍까지 닿는 따끈한 물이 내 등을 남실거리며 간지럽혔다. 탄탄한 다리에 앉은 나는 아빠의 가슴에 기댄 채 물과 하나가 되어 갔다.

“이런, 우리 구운 찹쌀떡이 물에 팅팅 불다 못해 녹아내리는 듯하구나.”

잠시 물에 잠긴 채 몸을 불린 아빠는 내 짤막한 팔을 잡더니 부드러운 천으로 조심히 닦았다.

“아프니?”

“아녀.”

매우 얇은 유리 장식품을 닦듯 꼼꼼하게 문질러 아퀼라 공작저에 묻은 때를 완벽하게 닦아 줬다.

“이제 아빠도 씻어야 하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거라.”

갖가지 동물 모양 인형을 내 쪽으로 몰아준 아빠는 나를 닦은 천으로 탄탄한 살결을 문질렀다.

촤아악 촤악-

물소리가 들렸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랑 노는 척하며 아빠를 봤다.

대한민국에서 15년, 베네딕트 제국에서 18년을 살았지만 아빠 같은 근육을 지닌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순수하게 검술로 다져진 탄탄한 가슴을 보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라피, 아빠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거니? 아까부터 힐끔힐끔 보는 것 같다만.”

“라삐가 아빠 보묜 시러여?”

아빠의 말에 나는 오리를 만지작거리며 약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빠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딸이 아빠를 본다는데 싫어할 리가 있겠느냐. 아빠가 죽을 때까지 라피가 곁에서 봐 줬으면 하는데.”

“구곤 시러여. 아빠 안 쥬거여. 라삐랑 오래오래 사라여.”

“그래그래. 우리 라피랑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자꾸나.”

다 씻은 아빠가 나를 앉아 올리더니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 맞췄다. 입맞춤에 답을 하듯 나도 아빠의 볼에 쪽쪽-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아빠의 얼굴에 촉촉하게 젖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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