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43)화 (43/164)

43화. 

목소리를 살짝 낮춘 나는 콜린의 어깨에 팔을 걸며 말했다. 인형이 비싸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물품으로 갖고 놀 수밖에 없음을 말하려다가 멈췄다.

이름도 몰라요, 나이도 몰라요 중인데 과거에 어떤 놀이를 하고 놀았는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라떼는 왜?”

“으, 음? 아냐. 구냥 라떼가 갑자기 머꼬 싶어져서.”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옆에서 대기 중인 시녀가 새하얀 우유를 건넸다. 라떼라고 했더니 우유를 가져다주는 센스에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꿀꺽꿀꺽 삼켰다.

“이모!”

“왜?”

우유 한 잔을 다 마시자마자 콜린은 제 소매로 내 입술을 꾹꾹 누르며 우유 자국을 닦아냈다. 역시 아이 재울 때 로맨스 소설을 읽어서 뜻하지 않게 조기교육을 한 티가 났다.

“나 이제는 아프로 이모랑 겨론 모태?”

내기에서 진 콜린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울망졸망한 눈동자로 나를 보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떼를 썼다. 어린아이다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픽, 웃어 버렸다.

“구곤 담에 생각하자. 나 지금 넘 피곰해. 후아아암.”

체스에서부터 구슬치기까지 섭렵하고 나니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하품이 터졌다.

“아가씨, 안으로 들어가셔서 좀 쉬시지요.”

이제껏 멀찍이 서서 지켜만 보며 절대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은 카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모랑 가치 이쓸래.”

“죄송하지만 공자님, 가정교사가 도착했습니다.”

“머? 아니 머 이런 경우가 다 잇써! 이모가 왔는데.”

이모가 왔는데 이런 날까지 공부를 해야겠냐고 콜린이 항의하는 눈빛으로 아놀드를 봤다. 미래의 아퀼라 공작의 날카로운 눈빛에도 집사 아놀드는 꿈쩍하지 않았다.

“히잉, 어무이.”

아놀드가 물러서지 않자 이번엔 제 어미를 불렀다. 뒤쪽에서 키득키득 웃던 언니는 콜린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였다.

“이모는 내가 잘 돌볼 테니까 우리 아들은 얼른 공부하러 가렴. 참고로 이모는 고대어도 읽을 줄 알 정도로 똑똑하단다.”

“징짜요?”

“그럼, 우리 라피는 똑똑한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러는구나.”

“저 열씨미 공부해서 똑똑칸 사람 될래요.”

아니 이 언니가 지금 나를 팔아서 아들 공부를 시키려 하다니.

언니의 말을 들은 콜린은 내게 와 나중에 보자는 말을 남기며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 맞췄다. 그 모습을 본 고용인들은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내비쳤다.

“히유, 언냐! 그르다가 약빨 떨어지면 어또케 하려구 구래여.”

“걱정하지 말렴, 콜린이 네 형부를 똑 닮았으면 첫사랑한테 푹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할 테니까. 이모가 똑똑한 사람 좋아한다고 했으니 열심히 공부할걸.”

뭐래? 결론은 형부의 첫사랑이 언니라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내가 콜린의 첫사랑이 되는 건가?

말도 안 되는 언니의 말에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콜린은 공부하러 갔고 제롬은 일하러 갔으니, 지금부터 언니랑 놀까?”

“니에, 군데 머 하고 노라요?”

“으음, 이런 거?”

이런 것이 뭔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린 나를 안아 올린 언니는 내 볼때기를 조물조물 만졌다.

“갓 만든 인절미처럼 쫀득쫀득하고 차지게 달라붙는구나. 티그리스 공작저에서는 말랑 콩떡이라고 불렸지?”

“니에.”

“티그리스 공작가의 대식구를 챙기느라 콩가루 털린 말랑 콩떡이 되었겠지만 여긴 그럴 일 없단다. 인절미에 묻은 콩가루를 보존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할 테니.”

방긋 웃은 언니는 나를 안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아, 여기부터는 안 됩니다. 가브리엘 백작.”

“저는 판테르 공작님의 명을 받고 라피 아가씨를 호위하기 위해 온 수행원입니다만. 만일 저를 떼어놓는다면…… 저는 당장 판테르 공작님께 연락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어야 한다며 카이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협박했다. 카이가 아빠한테 말하는 그 순간 당장 달려와서 나를 데리고 판테르 공작저로 돌아갈 확률 100%였다.

“흐음, 어쩔 수 없군요. 그럼 나랑 같이 자고 씻을 때만 빼고 옆에 있는 것을 허락하겠어요.”

“당연한 말씀을요.”

카이의 협박에 마지못해 방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 언니를 본 나는 아까 한 말이 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으잉, 요게 머야.”

“뭐긴, 우리 라피 사이즈에 맞춰서 언니가 옷을 몇 벌 맞춰 놨단다.”

아들놈은 옷을 갈아 입혀도 재미없다면서 언니는 내가 입을 원피스를 미리 구해 놓았다. 문제라면 옷걸이에 걸린 옷이 족히 수십 벌은 되어 보인다는 거였다.

“라피 아가씨…… 죄송합니다. 이건 제가 도와드리지 못할 것 같군요. 미리 명복을 빌어 드리겠습니다.”

카이마저도 옷걸이에 걸린 옷을 보고는 탄성을 지르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체 언제 이 옷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시간부로 나는 옷걸이가 되어야만 했다.

“흐음, 노란색 원피스라 그런지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 같구나. 이건 우리 라피 머리색이랑 색깔 맞춤은 은색…….”

옷만 있으면 말을 안 하겠다. 옷에 맞춰 모자와 신발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옷을 한 벌 갈아입을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치장당했다. 서너 벌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이상이 넘어가자 몸이 처지기 시작했다.

“언냐, 나 힘드러여.”

“뭐? 아직 조금밖에 안 입어 봤는데…… 그러지 말고 몇 벌만 더 입어 보자. 응? 딸아이한테 옷 입혀 보는 게 소원이었단 말이야.”

“구롤거면 차라리 아가를 나으세요. 제바아…….”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딸이 나오리란 법은 없단다.”

“구롬 따리 나올 때까지 혐부랑 손 잡고 자세여. 그때까지 나눈 독쑤곰방하께여.”

“풉!”

순간 여기저기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터졌다. 그렇지만 애써 모른 척한 나는 헥헥대며 언니를 올려다봤다. 얼굴을 살짝 붉힌 언니는 헛기침을 하더니 냉차를 들이마셨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우리 라피가 혼자 자다니, 말도 안 돼. 티그리스 공작저에서는 내게 오지도 못할 만큼 인기가 높았잖니.”

“우움? 질투에여?”

“말도 안 된단다.”

“질투하지 마세여. 언냐한테는 혐부가 잇짜나여.”

곰 같은 남편과 새끼 곰 같은 아들이 있으니 남부러울 게 없어 보였다.

“언니한테는 남편과 아들도 있지만, 우리 귀여운 동생도 있지.”

“글고 아빠도 잇써여.”

“그래, 아버지도 계시지.”

옅은 미소를 지은 언니는 나를 안아 올리더니 제 볼에 내 볼을 비비적댔다. 한동안 말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다독여 준 언니는 밖에서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갔다가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렴.”

“니에, 다녀오세여!”

배꼽 위에 손을 얹고 인사하자 언니가 내 눈높이에 맞춰 몸을 숙이더니 볼에 입 맞췄다.

“어디서 이런 인절미 같은 애가 떨어져가지고는…… 어휴, 귀여워라. 이러니까 아버지가 애한테 푹 빠지지.”

방긋 웃은 언니가 밖으로 나가자 나는 소파에 앉아 푹 퍼질러졌다. 인형처럼 옷 갈아입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졸렸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왔다.

“우웅? 구곤 머에여?”

시녀가 들고 온 것을 본 내 입가에 저절로 침이 흘러내렸다. 그러자 카이가 자연스럽게 손수건으로 내 입가를 닦아 줬다.

“귀여운 판테르 아가씨, 이건 초콜릿이랍니다. 에리카 님이 초콜릿을 좋아하셔서요.”

“헤에, 언냐가 쪼꼬 조아하는구낭.”

“네, 이건 에리카 님의 초콜릿이고, 이건 아가씨가 드실 초콜릿이랍니다.”

두 개 종류의 초콜릿을 본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리 봐도 똑같은데 왜 초콜릿을 나눈단 말인가. 설마하니 내가 다 먹을까 봐 그런 것인가.

“이건 어른 전용 초콜릿이랍니다. 그러니 아가씨는 이걸 드세요. 참 맛있을 거예요.”

“니에, 고마뜹니다. 잘 머글게여.”

“어휴, 어쩜 이리도 귀여우실까. 볼 한 번만 만져 봤으면 좋겠…… 어머! 방금 제가 무슨 말을 한 거죠?”

속내가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듯한 시녀는 제가 말해 놓고 당황해 얼굴을 슬쩍 붉혔다. 그런 시녀의 손을 제 얼굴에 대고 비볐다. 

“오때여? 쫀독캐여?”

“네, 세상에나. 너무 귀엽고 예쁘고…… 하아, 심장이 쫀득해질 것 같아요.”

내 볼을 어루만지며 살짝 꼬집듯이 만진 시녀는 마치 그 행위를 음미하듯 잠시 눈을 감았다.

“엔지, 빨리 안 나오고 뭐 하니. 어머! 엔지 너 진짜…….”

누군지 몰라도 엔지라고 불린 시녀를 본 여자는 입이 아니라 눈으로 욕을 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의 눈동자는 사르르 풀렸다.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볼에 대자 굳게 다물린 입이 힘을 잃고 벌어졌다.

“내 볼때기 부드러?”

“부, 부드럽다 뿐이겠어요. 어휴, 정말 이런 게 인절미 볼이로군요. 어쩜 손에 착착 감기는 게 너무 촉감이 좋아요. 크흠흠.”

제정신을 차린 여자는 아직도 몽롱한 눈으로 보는 엔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아가씨의 볼은 마성의 힘이 깃들어져 있나 봅니다.”

“구로케 말하고 웃지 마여.”

“이런 들켰군요.”

어깨를 파드득 떠는 카이를 잠시 본 나는 다시 초콜릿 쪽으로 시선이 갔다.

“요곤 언냐꼬, 요곤 내꼬!”

엔지가 말한 대로 내 것을 한 입에 넣었다. 달콤한 초콜릿이 입안에서 살살 퍼지는데 너무 달콤하고 맛있었다.

“이햐, 마시써! 요고 드세여.”

내 몫의 초콜릿을 카이에게 준 나는 언니의 초콜릿을 봤다. 겉보기엔 내가 먹은 초콜릿과 다른 점이 없었지만, 자고로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었다.

얼른 내 것과 언니 것을 바꾼 후 카이 몰래 어른용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

엥? 뭐야. 맛은 똑같잖아.

맛이 똑같은데 굳이 나눈 이유를 모른 나는 힘껏 깨물었다. 초콜릿이 부서지면서 뭔가가 안에서 톡 터지듯 흘러내렸다. 달콤하고 씁쓸한 맛이 입안에 확 퍼졌다.

이건 뭐지? 아, 리큐르인가.

베네딕트 제국에서도 초콜릿에 리큐르를 넣곤 했다. 그렇기에 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몸은 술에 면역이 없었다.

이 작은 몸뚱이로는 처음 접한 리큐르에 나는 두 눈을 연방 깜빡였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면서 뭔지 모르게 나른해졌다.

“아가씨, 혹시 큰 아가씨의 초콜릿을 드신 것은…….”

나를 본 카이가 얼른 손을 내밀었지만, 그 손을 탁 쳐냈다.

“언냐 쪼꼬가 더 마시서 보여서 머것는데 디따 마시써여. 헤헤헤.”

“아, 아가씨? 마치 낮술 드신…… 음? 혹시 리큐르 초콜릿을 드신 건가요?”

얼른 언니 몫의 초콜릿을 먹은 카이의 눈동자가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두다다다 달려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나를 내려다보는 고용인의 눈길에 담뿍 웃었다.

“안농, 라삐에요.”

“흐읍, 아, 안녕하세요.”

“라삐눈 딴 데 가고시퍼여. 라삐, 여기 심심해.”

“그렇게 귀여운 눈동자로 보셔도 안 됩니다. 에리카 님이 곧 오신다고 하셨답니다.”

고용인의 말에 나는 토라지듯 주둥이를 삐죽 내밀었다. 그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언니 대신 형부가 들어왔다.

“우리 처제, 미안해. 갑자기 바쁜 일이…… 으, 으잉?”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서 형부를 올려다본 나는 픽, 웃으며 주변을 느른한 눈길로 쓱 봤다. 너무 심심해서 어린아이답게 방 안을 좀 어질러 준 것 외엔 딱히 한 것도 없었다.

“평소 처제답지 않게 왜 이런 심통을 부렸을까.”

짧은 발을 힘껏 내밀어 테이블 위에 간신히 끝이 걸리게 한 나는 팔짱을 낀 채 형부에게 말했다.

“히끅, 몰바! 술똑 첨 바? 구럼 마니 바.”

아 몰랑. 이왕 떡이 된 거 개떡같이 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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