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42)화 (42/164)

42화. 

아이고 언니, 왜 그러셨어요. 

저분들은 태교할 때도 분명 동화가 아니라 로맨스 소설을 읽었을 게 분명했다. 정말이지 골 때리는 가족에 나는 웃음이 저절로 지어졌다. 위엄과 기품이 철철 넘쳐흘러야 하는 공작가이지만 이곳만큼은 평민적? 아니 인간적인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태교나 아이 재울 때 로맨스 소설은 읽지 않는다고!

그런데도 밉지만은 않은 가족은 그저 하하호호 웃으며 식사했다. 식사하는 내내 형부가 내 시중을 들어 줬다. 직접 수프도 떠 먹여 주고, 포크로 과일도 찍어 줬다. 흘리지 않게 먹으려고 밥 먹을 때마다 노력한 게 빛을 보기도 전에 형부에 의해 차단되었다. 

“우리 처제는 잘 먹어서 참 이뻐.”

“편식하묜 안 대여. 난 편식하는 사람 시러여.”

내가 말하자마자 접시 한쪽에 피망과 당근을 밀어둔 콜린이 약간 울상을 지었다. 잠시 뭔가 깊게 생각하는 것 같더니 크게 숨을 들이쉬며 남긴 피망과 당근을 한 번에 입에 몰아넣었다.

“우리 콜린, 이제 편식 안 하나 보네. 어휴, 이렇게 잘 먹으니 얼마나 좋아. 나중에 훌륭한 공작님이 될 거야.”

언니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피망과 당근을 남김없이 먹은 콜린을 칭찬했다.

“이모, 나 편식 안 해. 그니까 나 안 시러하지?”

흑심 가득한 말에 언니와 형부는 또 뭐가 그리 좋은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응, 안 시러해. 구로니까 이것도 머거.”

내 접시에 남은 버섯을 포크로 콕 찍어서 콜린의 입 앞에 올렸다. 그러자 콜린은 와앙- 입을 벌리더니 큼직한 버섯을 한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잘 먹는 것치고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미끄덩해.”

아이가 먹기엔 식감이 좋지 않은 버섯을 씹으며 오만상을 지었다. 하지만 콜린은 절대 버섯을 뱉어내지는 않았다. 억지로 씹어 꿀꺽 삼킨 콜린은 물을 마시며 입안을 헹구었다.

“마싯어?”

“응, 이모가 준 거라 마싯어.”

“구럼 하나 더 머거바.”

좀 전보다 더 큰 버섯 조각을 콕 찍어 입 앞으로 올려 주자 콜린이 두 눈을 질끈 감고는 새끼 새처럼 입을 쩍 벌렸다. 입에 버섯을 넣어 주자 콜린은 몇 번 씹더니 그대로 꿀꺽 삼켰다.

“나 이제 버섯도 먹을 수 잇어. 나 어때?”

“응, 잘해쏘. 차카다 차케.”

어깨를 쫙 펴고 고개를 바짝 들어 올린 콜린을 본 나는 픽 웃었다. 오늘부터 편식이 사라진 콜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헤헤, 나 잘해써! 차케!”

“응, 응!”

뿌듯한 표정을 지은 콜린을 본 언니와 형부는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며 웃었다.

“우리 인절미 처제가 아들 조련을 잘하는 것 같아요. 이유식 때부터 시작된 편식을 단 한 순간에 없애 주다니, 정말 대단해요.”

“그럼요. 누구 동생인데요. 후훗, 판테르 공작가의 여자들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요.”

수년간 지속된 편식을 한 번에 없애 준 나는 형부가 준 고기를 양껏 먹었다. 배가 부르자 나는 형부의 손을 옆으로 밀며 배를 두들겼다.

“우리 처제, 배불러?”

“니에, 빵빵해여.”

더 먹었다는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힘내서 조금만 더 먹어 봐.”

“앙 대여. 하부지 지베서도 넘 마니 머거서 낵아 얼마나 힘드럿는데여.”

내 몫의 음식을 다 먹었는데도 계속 입에 넣어 주는 바람에 그곳에 있는 동안 신나게 뛰어다녀야만 했다.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어찌나 바삐 움직였는지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금방 소화가 될 정도였다.

연거푸 거절하자 형부는 어쩔 수 없이 그때야 자신 몫의 식사를 시작했다. 형부의 조금 늦은 식사가 끝나자 차가 나왔다. 나와 콜린 앞에는 따뜻한 우유가 놓였다. 우유를 쪽쪽 빨아 먹을 때 콜린이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이모, 우유 마니 먹고 쑥쑥 커서 내 색시 해.”

“시른데.”

단호하게 쳐낸 나는 우유를 마시며 나를 보는 콜린과 시선이 마주쳤다. 울망울망한 눈동자가 반짝이며 희망을 버리지 않은 듯했다.

아직은 어려서 이모랑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거니 이해는 된다만. 

“이모, 나 옴총 멋찐 남자 될 거야. 그니까 나랑 겨론하자.”

색시로 시작해서 색시로 끝날 것 같은 콜린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난 연하가 조아.”

“풉!”

순간 형부와 언니가 동시에 차를 뿜어냈다. 아니 연하가 좋다는 말이 그리도 웃긴 건가 싶어 카이를 봤다. 매우 평온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그의 어깨가 조금씩 바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이곳은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남자가 여자보다 수명이 적으니 같이 오래 살려면 연하랑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아부지, 연하가 머에요?”

“어? 아…… 연하는 나이가 어린 사람을 뜻하고 연상은 나이 많은 사람을 말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우리 콜린은 연하가 아니라서 이모랑 결혼 못 해.”

형부가 현실적으로 말했지만, 콜린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잠시 생각한 듯한 콜린이 고개를 번쩍 올리며 내게 말했다. 

“연하 가튼 연상 어때?”

그건 그것대로 구미가 당겼지만, 저 말이 누굴 가리키는지 알기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른 아페서 쓸데업는 얘기 고만하고 얼른 우유나 머거.”

찹쌀떡처럼 진득하게 들러붙는 콜린을 방어해낸 나는 하얀 우유를 전부 마셨다. 입 주변에 우유가 묻어 냅킨을 닦기도 전에 콜린이 먼저 제 손을 내밀어 내 입가를 닦았다.

그 모습을 본 형부는 차를 마시다가 그대로 뿜어냈다.

이런 것도 로맨스 책에 나오는 거니?

내 입가를 닦은 콜린은 제 손에 묻은 우유를 혀로 핥았다. 순간 뒷골이 띵한 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재우기용 책으로 로맨스 책을 선택해 제 욕심을 채운 언니는 헛웃음을 지었다.

성인이 되어서 해도 될 것을 이제 네 살짜리가 하다니, 로맨스 소설로 익힌 조기 교육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냐, 아프로는 콜린한테 다른 책 일거주세여.”

“으, 응. 알겠어.”

언니도 제 실수를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모, 이거 다 먹고 머 할 거야?”

잠시 침묵이 감돌 때 우유를 쪽 빨아들인 콜린이 나를 보며 물었다.

“우웅, 글쎄…… 머 해야지?”

“뭐하긴 당연히…….” 

“정한 거 업스면 나랑 가치 노라.” 

콜린이 우유를 쪽 빨며 형부가 말하는 중에 끼어들었다. 마치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는 듯 콜린은 형부를 보며 슬쩍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을 본 형부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움, 머 하고 놀곤데?”

“으음, 체스?”

체스는 황녀였을 적에 신물나게 해 본 놀이였다. 황궁 밖을 나가지도 못하던 시절 시녀들과 함께 체스만 뒀던 나는 피식 웃었다. 콜린을 가소롭다는 듯이 본 나는 두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덤뵤!”

그 한 마디에 형부의 방에서 곧장 체스판이 깔렸다. 이 정도쯤이야 나한테는 껌이었다. 콧방귀를 뀐 나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표정으로 콜린을 봤다.

“우리 콜린은 체스 배운 지 반년은 되어 가는데. 처제가 이길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헹, 길고 짤븐거슨 대바야 알져.”

“처제, 져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마음 편히 해. 내가 가르쳐 줄까?”

“어허! 숭부의 세게는 냉호칸 것! 껴들지 마세여.”

“풉!”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언니의 입에서 바람 빠진 소리가 들렸다.

“내 동생이니 이건 기본으로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제롬은 우리 콜린 걱정이나 하세요.”

“당연하지요. 판테르 공작가의 딸들은 다들 똑똑하고 멋지니까요.”

카이가 언니의 말에 동의하듯 말하더니 내 뒤에 서서 조그만 어깨를 조물조물해 줬다. 긴장을 풀라는 뜻일 것이다. 

“아가씨, 기필코 이기십시오!”

“맏겨져여. 설마하니 낵아 저런 어린애한테 지겟어여.”

“아가씨는 더 어리지만, 아퀼라 도련님보다는 어른이니까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체스는 언제 배우셨습니까?”

순간 훅 치고 들어온 카이의 물음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낵아 할아부지네 지베서 놀고 머근 것은 아니거든여.”

이 세상에서 체스 경력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은 나는 앞에 있는 콜린을 봤다. 비장한 표정을 지은 콜린은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체스에서 내가 이기면 겨론해죠.”

기승전결혼인 콜린을 본 나는 방긋 웃었다.

“찹쌀똑 줄 사람은 생각도 안는데 앙꼬 먼저 먹지 말라구!”

비장함이 깃든 체스 경기에서는 매우 당연하게 내가 이겼다. 어린아이를 이겼다는 것에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지만, 콜린의 눈치를 살폈다. 졌다고 펑펑 울거나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콜린은 묵묵히 제 패배를 받아들였다. 

“역시 우리 처제는 천재가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잘할 리는 없어. 체스를 배운 지 며칠 안 되었을 건데.”

“아빠랑 하부지 달마서 그래여. 후훗!”

승리의 미소를 지을 때 콜린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말했다.

“한 번으로 겨론을 결정하는 건 넘나 빠른 것 가타.”

“구래서 또 하자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다른 거스로 해. 이번엔 이모가 정해.”

이미 체스에서 진 콜린은 다른 종목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어쩌다 보니 결혼을 조건으로 하는 게임이 되어 버렸다.

“머 어쩔 수 없지. 언니, 저 피료한 게 잇써요. 빌료주실 수 잇써여?”

“뭐가 필요하니? 말만 하렴. 언니가 전부 가져다줄게.”

말만 하라는 언니의 말에 나는 아퀼라 공작저의 창고를 털었다. 금괴 두 개와 비취 구슬을 가지고 나온 나는 시녀에게 부탁해서 마법사에게 강화마법을 걸어 달라고 했다. 

“이것 가지고 뭐 할 거니?”

“놀 거에여.”

고개를 갸웃한 언니를 본 나는 콜린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흙바닥에 줄을 긋고는 금괴 하나를 세워뒀다. 

“지금부터 금괴치기 할꼬야. 요걸 던져서 저기 잇눈 금괴를 맛히는 고야.”

고개를 갸웃하는 콜린을 위해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 줬다. 낯선 놀이에 콜린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승부욕이 발동하는지 빨빨대며 말했다.

“앙대! 이모, 내 꼬 맛히지 마.”

“앙대! 숭부의 세게에서 바주눈 거 업써!”

제 금괴를 맞히자 콜린은 두 손을 얼굴에 얹고는 소리를 질렀다. 세워진 금괴가 넘어지자 콜린 역시 넘어졌다. 금괴치기 놀이는 당연히 내가 이겼다. 그러자 이번엔 또 다른 것을 하자는 말에 나는 비취 구슬을 꺼내 들었다. 

“구슬 던지기 하자. 요러케!”

선을 긋고 최대한 가까운 지점에 던지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했다. 간단한 룰에 콜린이 먼저 구슬을 던졌다.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이 빛에 닿아 반짝반짝했다. 나와 콜린이 구슬을 던질 때마다 같이 따라온 고용인들이 탄성을 지르며 본인들이 더 좋아했다. 

“헤에, 요번엔 내가 이겻써.”

아슬아슬한 차이로 콜린에게 진 나는 피식 웃었다.

“구럼 요번엔 구슬치기하자. 손꾸락 사이에 구슬을 끼어서 이캐 저캐…….”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동네 친구들과 이런 놀이를 자주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인형은 비싸서 살 수 없으니 친구들이 가진 구슬로 구슬치기를 했었다. 

비록 구슬치기 경력단절녀였지만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콜린 정도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걸 사실로 만들었다. 콜린의 구슬을 무려 열 개나 따먹은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도합 3대1로 진 콜린은 고개를 푹 숙였다.

“콜린, 삐쳐쏘?”

기분이 나빠 보인 콜린 곁으로 가서 다독여 주려고 할 때 녀석이 고개를 번쩍 쳐올렸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이모, 징짜 대다네. 여자애는 인형 노리하거나 책만 일던데.”

콜린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콜린의 조금 축 처진 어깨에 손을 올린 후 말했다. 

“후우, 라떼는 마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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