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아이의 말에 형부와 언니는 웃음을 터트렸다.
“코, 콜린 그게 말이야…… 푸흐흣!”
“어휴, 이 일을 어째.”
얼른 상황 설명을 해 줘야 할 형부와 언니는 자신들끼리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에 콜린이 뽀짝뽀짝 내게 다가왔다.
반짝반짝 빛나는 푸른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본 콜린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안농, 내 이르믄 콜린이야. 근데 너 참 기엽다. 내 색시 해라.”
“댔거든.”
어린 녀석이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말이야. 어디서 쌍팔년도 멘트를 치는지 원.
대뜸 색시 하라는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이 보며 고개를 저었다. 부모가 누구인지 알기에 차마 욕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왜? 내 색시 하기 시러? 나 이래 보여도 우리 어무니, 아부지 아드린데. 담에 공잔니미 댈건데 그래도 시러?”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데 말하는 게 참 유창했다. 아니 어린 녀석이 벌써 권력욕에 빠져든 것 같았다.
공작이 될 거니 색시 하라는 건가? 생긴 것은 귀여운데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권력의 단맛을 쭉쭉 빠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일을 어쩌니, 난 아빠도 할아버지도, 그리고 형부도 공작님인데.
들어는 보았는가.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를!
그런 내가 고작 이런 어린아이의 대시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난 아빠랑 겨론할 거라서 너랑 겨론 안 해.”
원래 어린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아빠와 엄마랑 결혼한다는 말을 하지 않던가. 그래서 나도 아이답게 보이기 위해 아빠랑 결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 오기 전에 아빠랑 결혼하기로 손가락 약속까지 하고 왔다. 그래야 아빠가 깔끔하게 보내 줄 것 같으니 말이다. 손가락 약속을 할 때 무뚝뚝한 아빠의 표정 변화가 슬쩍 보였었다. 입술 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은 못 본 척했다.
양손을 허리에 대고 당당하게 말하자 콜린은 조그만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안 대! 가족끼리 겨론 모타게 대어 잇써. 그니까 나랑 겨론해야 해.”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도는 녀석이 벌써 결혼 타령을 해댔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족끼리 겨론 모탄다고? 구럼 너랑도 겨론 모타겟네.”
“왜?”
“왜긴, 낵아 니 이모거든.”
“이모? 난 이모 업는데.”
이모라는 단어를 들은 콜린이 곧장 언니를 봤다. 그러자 한동안 배꼽 잡고 웃은 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라피는 네 이모란다. 내 동생이거든.”
“말도 안 대요. 어무니한테 동생은 업자나요. 외하부지께서 암도 몰래 아기를 만드신 건가요?”
어린아이치고 참 영특하게 말한 콜린을 본 형부는 픽 웃으며 말했다.
“우리 처제는 하늘에서 굴러떨어져서 아버님의 가슴에 철썩 들러붙었어. 쫀득한 구운 인절미처럼 말이야.”
“하눌에서 떠러져요? 아기는 전부 하눌에서 만드러져서 떠러지는 건가요?”
어린아이치고 똑똑해도 아직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는 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콜린을 본 나는 부러움을 느꼈다. 이곳에는 내 핏줄이 없는데 콜린은 제 아빠랑 똑 닮은 것도 모자라 부모가 있지 않은가.
갑자기 조금 서글퍼진 내가 속으로 나직하게 한숨을 쉴 때 콜린의 질문을 받은 형부는 대답을 회피했다.
“아기는 하늘에 계신 신이 주신 거란다.”
“아부지는 신을 안 믿자나요.”
무신론자인 형부를 보는 콜린의 눈동자가 살짝 가늘어졌다.
“아니야, 맞아. 그러니까 우리 라피 처제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있었던 거지.”
차라리 황새가 물어다 줬다고 하는 게 그럴듯하게 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채운 형부는 집요한 콜린의 물음에 식은땀을 흘렸다.
“유모가 말해써요. 저는 어무니가 배 아파서 나앗다고요.”
“그러니까 하늘에 계신 신이 에리카의 배에 너를 콕하고 심어 놓은 거지.”
“그럼 저 아이는 누구 배에 시믄 건가요? 외하무니는 도라가셧자나요.”
“어, 으음…… 그게 말이다.”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 형부가 언니에게 도움을 구하는 시선으로 봤다. 하지만 언니 역시 제대로 된 답을 구하지 못했는지 형부의 애절한 시선을 못 본 척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눈 아직 애가 오또케 생기는지 모르니?”
“응, 몰라. 신이 어무니 배에 씨앗을 시멋다는대 누가 믿겟써.”
형부의 생각을 철저하게 유린하다시피한 콜린을 본 나는 방긋 미소 지었다.
“낵아 갈쳐 줄테니까 잘 드러.”
“어, 말해바.”
“사실은 마리야. 씨앗이라는 게 신이 아니라 아빠한테 잇는 고야.”
“아, 아부지한테 아가 씨앗이 잇다고?”
“씨를 신이 가지고 이쓰면 그 신이 니 아빠가 대는 거자나.”
형부 말대로면 신이 콜린의 아빠고, 그는 아이의 새아빠가 될 것이다.
우리 언니 능력도 좋아. 본처는 신이고, 후처는 공작님이라니.
콜린의 고개가 슬쩍 제 아버지 쪽으로 움직였다. 순진한 눈동자와 마주친 형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다.
“아빠랑 엄마가 누니 마자서 자묜 아기가 생겨.”
“아기는 아부지랑 어무니가 손만 잡고 자묜 생기는 거야?”
궁금한 게 많아서 질문도 많이 할 네 살 콜린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넌 대체 아는 게 머니, 손만 잡는데 아기가 생기겟니?”
“그럼 어떠케 아기가 생기는 거야?”
“엄마랑 아빠랑 누니 마자서 서로 삐이이 해서 삐이하고…… 읍읍!”
아직 어린아이지만 그래도 알 것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콜린에게 조금은 이른 성교육을 시켜 주려고 했다. 하지만 중도에 언니의 손이 내 입을 막았다.
“라피는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콜린은 좀 더 늦게 알아도 될 것 같아서 말이야. 호호호, 그나저나 누가 알려 준 거니?”
“알료준고 아니라 곰부해써여.”
“판테르 공작저의 도서실에 그런 책이 있었나? 없을 건데…… 내가 뒤져봤…… 크흠흠.”
한창 성에 관련해 호기심이 동할 나이에 이미 판테르 공작저의 도서실을 훑어본 듯한 언니는 얼굴을 슬쩍 붉혔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도서실을 한두 번 뒤져 본 게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니 이모이고, 너는 내 조카야. 알겟쏘?”
“이모는 나보다 나이 마나야 대는 거 아냐?”
본래대로라면 그 말이 맞겠지만 시어머니랑 며느리가 동시에 출산하는 경우가 있기에 희귀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아니거든, 그나저나 또 나이 마는 조카가 생겻네. 에휴휴휴, 내 팔짜야.”
고작 세 살짜리 몸뚱이를 지녔는데 팔자가 사나워도 너무나 사나웠다. 나이 많은 조카가 무려 세 명이 되고 말았다. 이미 에이든과 제이든을 겪어 봤던 나는 그들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나보다는 나이 많은 콜린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이 많은 조카들이 항상 사고를 쳐대서 콩가루가 털릴 지경으로 뛰어다녔다. 그 예로 요 조그만 나이 많은 조카는 에이든과 제이든보다 한술 더 떴다.
“이유가 어쨋든 내 색시 해.”
아, 이것 참. 이래서 인기인은 참 힘들다니까.
조카 놈이 색시라고 박박 우겼지만, 형부와 언니는 뭐라고 하지 못하고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주변에 있던 고용인들도 죄다 웃었다.
“우리 아가씨는 인기가 너무 좋아서 탈이군요. 보좌관들이 죄다 본인 아들을 들이밀 정도니.”
입술을 씰룩이는 카이의 말에 형부가 내게 오더니 꼭 안았다.
“판테르 공작가의 보좌관들 아들놈보다는 차라리 우리 아들이랑…….”
“제롬!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언제는 딸로 입양하고 싶다더니…… 개 족보 만드는 것은 제가 용납하지 않겠어요.”
언니의 단호한 말에 형부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콜린을 봤다.
“콜린, 안타깝구나. 이모 대신 멋진 신붓감을 아비가 찾아 주마.”
“시러요. 전 이모가 조아요. 우리 어른 대면 가치 겨론하자.”
콜린이 뽀짝뽀짝 오더니 형부 품에 있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올망졸망한 눈동자로 나를 보는데 차마 그 손을 외면할 수 없어서 콜린의 손끝만 조금 잡았다.
“겨론은 안 대지만 만나는 거슨 대.”
“겨론해서 어무니랑 아부지처럼 가치 먹고 자고 시퍼.”
네 살짜리 애가 너무나 멀리 앞서갔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 보인 나는 콜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콜린이 내게 더 가까이 오더니 대뜸 볼에 쪽 소리 나도록 뽀뽀를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카에게 볼을 내준 나는 두 눈을 껌뻑였다.
“갠차나. 들어 보니까 사랑은 움지기는 거라고 햇써.”
“모라는거야?”
“헤에,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이모가 나를 사랑할 거니까 도장 찌것써.”
아퀼라 공작가에서 애한테 대체 뭘 가르쳐 놓은 거야!
필독 도서가 경제, 사회, 역사 같은 게 아니라 로맨스 소설인가.
콜린의 말에 어이가 콩가루처럼 탈탈 털린 나는 언니와 형부를 봤다. 한데 언니와 형부는 콜린을 혼내기는커녕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리 아들이 너무 귀여워서 어쩌지. 나중에 이모랑 결혼 못 하면 난리 날 것 같은데.”
“에리카, 그 말 절대로 아버님께 말하지 마. 그러다가 우리 모두 판테르 공작저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할 거니까.”
형부와 언니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안으로 식사가 들어왔다. 오늘은 식당이 아니라 형부의 방에서 식사하는 것 같았다.
“가브리엘 백작도 같이 식사하시죠. 어제 신나게 굴려 줘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덕분에 기분 좀 풀었습니다. 크흠!”
어제 형부가 카이에게 본인 기사들을 맡겼는데 뭔가 성과가 있는 듯했다. 의자에 앉아서 식사하려고 하자 형부가 내 목에 냅킨을 걸어 주고 다리 위에 깔았다. 음식물이 떨어져도 옷이 망가지지 않게 해 준 형부는 콜린이 아닌 나를 먼저 챙겨 줬다.
보통 이럴 때면 아이가 질투하곤 하는데 콜린은 나와 눈만 마주쳐도 배시시 웃기만 했다. 입에 소스가 묻은지도 모르고 웃는 콜린을 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콜린, 앞에 어여쁜 아가씨가 계신데, 입에 소스를 묻히면 어떻게 하니.”
언니가 콜린의 입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며 웃었다. 그러자 콜린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안 대요! 이러케 입가에 머 무치고 먹으면 서로 닥아준다고 햇는데…….”
그 말인즉 내가 닦아 주길 원해서 일부러 묻혔다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대체 애가 누굴 달마서 저래여? 누나가 잇지도 안눈데.”
누나가 많으면 남자애들도 여성처럼 따라 하는 경향이 있었다. 누나와 형을 언니와 오빠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데 독자이니 누나들에게 뭘 배우지 않았을 텐데 저런 것은 또 어떻게 알고 말하는 건지 원.
“솔마 아이 태교를 하거나 재울 때 로맨스 소설 일거준 곤 아니져?”
흠칫-
언니가 움찔하는 것을 본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보통은 아이 재울 때 동화책을 읽어 주는 거 아니었나. 어느 부모가 애를 재우면서 로맨스 소설을 읽어 준단 말인가.
“로맨스 소설 일고 시픈데 시간이 업어서 그때 일근 거슨 아니겟져?”
순간 언니의 고개가 슬쩍 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