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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37)화 (37/164)

37화. 

언제부터 이러셨을까.

처음엔 관심도 없었을 텐데, 단순히 죽은 판테르 공작부인을 닮아서 그런 걸까. 

그분은 대체 이곳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얼마나 엄청난 존재였으면 단순히 닮았다는 이유로 저렇게 말하는 걸까.

아빠의 보좌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분명 선득하고 무서워할 내용이건만 나도 아빠한테 물들어서인지 그저 귀엽게 옹알이하는 것 같았다.

발을 대자고 말한 사람 옆에 있는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리자 제 의견이 받아들여진 줄 알고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럼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조심해야 하네, 거기는 마법사들이 우글대는 곳이니 말일세.”

“티그리스 공작님의 가신이니 그냥 항의만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 라피 아가씨가 햄 볶을 보상금이라도 많이 타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찌 쫀득 찹쌀떡을 찌그러뜨린 죄를 고작 물질적으로 해결하려 한단 말입니까. 그냥 이번 기회에 발 좀 대 봅시다. 북부 귀족들 낯짝 좀 보게.”

이대로 두다가는 모나코 후작과 마틸다에게 진짜 발을 댈 것만 같았다.

얼른 이 일을 말려 주길 원했지만, 아빠는 듣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의를 부채질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진짜 사달이 날 것 같아서 난 얼른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나드리 가소 우리 씨엘 주어써요.”

다수의 사람이 무서운지 씨엘은 내 품에 안겨서 앞만 본 채 낑낑댔다. 

“라피 아가씨, 동물 좋아하십니까.”

“니에.”

오스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스카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공작저 한쪽에 동물원을…….”

아니야. 그러지 마!

“씨엘만 키울 곤데. 우리 씨엘이 젤 기여버요.”

씨엘을 들어 올려 얼굴에 대고 비비적대자 아빠가 내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다 피부병 걸린다.”

냥.

아빠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씨엘의 노란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이 났다. 하지만 내 눈과 마주치자 귀를 축 늘어뜨린 채 품에 안겨들었다.

낑, 끼잉.

“아빠! 씨엘 깨끄테요. 구로니까 머라고 하디 마세여.”

“라피, 그깟 고양이 때문에 지금 아비한테 뭐라 한 것이더냐. 하아…… 아빠 가슴이 너무 아프구나.”

아빠가 가슴을 문지르며 말했다. 수작 부리는 게 뻔히 보였지만 나는 모른 척하며 그곳으로 몸을 돌려 아빠의 가슴을 손으로 쓱쓱 어루만졌다. 

“호오, 호오, 아푼고, 아푼고 다 나라가라아아아!”

가슴에 입김을 불어 주며 나만의 특급 주문을 외쳐 주자 다들 심장을 움켜쥐었다. 단체로 지병이 도졌나 보다. 

“아, 아가씨 저도 가슴이 아프…….”

“그거 내꼬 아뉜데.”

제 가슴을 문지르던 벤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공작님, 크리스토퍼 후작은 빼고 이만 회의하시지요.”

벤스의 맞은편에 앉은 이의 말에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벤스가 후작이라니, 역시 집안은 잘 타고 봐야 하는 건가. 

“그럼 회의 시작하도록 하지. 우선 이번 안건은…….”

과일맛 캐러멜을 먹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아빠는 지루한 회의를 이어 갔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열성적으로 회의에 임했다. 

“이번에 아가씨를 보내지 않은 것으로 어쩌면 황실과 신전 측에서 압박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아버님과 에리카, 사위도 확실하게 못 박아 뒀으니 함부로 건드리지는 못할 거네.”

“티그리스 공작님과 아퀼라 공작께서 힘을 보태 주신다면 안심입니다. 이대로 서로 앙숙이 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입니다.”

“라피 아가씨는 평화의 상징인 듯합니다.”

씨엘을 옆에 두고 캐러멜을 먹던 나는 순식간에 평화의 닭둘기가 되어 버렸다. 캐러멜을 먹던 중 보좌관들 앞에 차가 놓였다. 까만색 차를 본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구수한 향기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커피가 분명했다. 

“남부 아퀼라 공작령에서 재배된다는 커피로군요. 간혹 맛을 보긴 했는데 여기에서 맛볼 줄은 몰랐습니다.”

“사위가 우리 라피를 나중에 데려갈 거라고 선전포고를 한 후 뇌물로 주고 갔네만. 괘씸하지만 향은 좋군.”

옆에 있는 보좌관의 말에 아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며 표정을 풀었다.

“나두!”

“응?”

“나두 주떼요.”

마시고 싶어. 나 커피 좋아해요. 무지무지.

반짝반짝 빛내는 눈빛에 아빠는 못 이긴 척 커피를 내밀려다가 딴 사람에 의해 막혔다.

“안 됩니다. 아이는 커피 마시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

“맥스, 그 말이 정말인가?”

“네, 남부에서는 어린아이도 커피를 마시곤 한다는데 그로 인해 남부 지역 아이는 다른 지역보다 키가 작다고 합니다.”

그의 한마디에 아빠는 내게 주려던 커피를 얼른 잡아당겼다. 

“라피, 이건 안 되겠구나.”

커피를 마시고 싶은 나는 아빠에게 말한 사람을 돌아보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그리 귀여운 표정을 지어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고지식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아빠의 보좌관의 말에 나는 주변을 휙 둘러봤다. 그러자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다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쳇! 나 삐쳐쏘!”

씨엘 털을 쓰다듬으며 주둥이를 삐죽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연기가 통하지 않았다. 

“삐쳐도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대신 주스를 드시지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미래의 며느님, 아니 아가씨, 워렌 후작님이 고지식하긴 하지만 틀린 소리는 하지 않으니까요.”

벤스의 말에 옆에 있는 남자가 워렌 후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삐친 것은 풀지 않았다. 그저 캐러멜을 주물럭거릴 뿐이었다. 

“한데 티그리스 공작저에서는 뭘 하신 겁니까. 돌아오셨을 때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카를로스의 물음에 아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네스트로를 마셨네. 아버님이 선대 황제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하더군.”

다니엘이 미네스트로를 마신 후 신나서 한 말이 떠올랐다. 멱살만 잡지 않았을 뿐 할아버지가 삥 뜯었다고 했었다. 근데 여기 와서는 삥이 선물로 둔갑했다.

“미, 미네스트로를 마셨다고요? 그 귀한 것을!”

애주가인 듯한 이들은 단번에 반응이 왔다. 맛이 어땠냐는 둥, 향기 어쩌고 하는데 아빠는 승리자의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은 애간장이 녹을 것 같은 표현을 했다. 

“그리고 말일세. 우리 라피가 글도 읽고 고대어도 읽을 수 있다네. 티그리스 공작가에서 어찌나 칭찬하던지 말도 못 할 정도였네.”

“네? 아가씨께서 글을 읽는 것도 모자라서 고대어까지 읽을 수 있다니…… 역시 공작님의 따님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군요.”

“아무렴. 아버님께서 마법사로 키우겠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똑똑하네. 마법사로 대성할 수 있을 정도의 떡잎이라고 하더군.”

“역시 판테르 공작부인의 작품이로군요. 허허!”

회의하던 중 말이 삼천포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우리 라피가 이제 기저귀도 떼었다네.”

하지 마!

별것도 아닌 것으로 딸 자랑 삼매경에 빠진 아빠는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그걸 들은 이들은 다들 탄성을 질렀다. 기저귀 뗐으니 축하 파티를 열어야 한다는 벤스의 입에 캐러멜을 물려 주며 다물게 했다. 

나를 물고 씹고 뜯고 쭉쭉 빨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를 때 벤스가 뭔가를 내밀었다. 

“아가씨, 이거 읽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워렌 후작님이 제게 써서 준 쪽지인데 읽을 줄 몰라서요.”

벤스가 내민 쪽지를 본 나는 워렌 후작을 봤다.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봐서는 읽어 줘도 될 것 같았다. 

“아가씨,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응, 너 바보.”

“아니 그거 말고 얼른 읽어 주세요.”

“그니까 응, 너 바보 라고 저켜 잇눈뎅.”

가감하지 않고 쪽지를 읽어 주자 벤스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워렌 후작을 봤다.

“역시 우리 아가씨, 고대어를 읽을 줄 아시는군요. 똑똑하십니다. 아! 앞으로는 저를 맥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그리고 저런 바보랑 놀면 바보 병이 옮으니 조심하시고요.”

“니에.”

“우리 아가씨 대답도 잘하시지. 이건 선물입니다.”

고지식의 끝을 달린다는 맥스가 내게 뭔가를 내밀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내민 비단 주머니를 풀자 그 안엔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 들어 있었다. 

“요고 머거도 대여?”

“당연하지요. 참고로 아이스 마법이 걸린 주머니라 사탕이 녹거나 붙지는 않을 겁니다.”

마법 주머니까지 덤으로 얻은 나는 방긋 웃으며 맥스를 보며 말했다.

“고마뜹니다. 잘 머글게여.”

인사를 하며 맥스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카를로스가 급히 나를 떼어내며 자신이 안아 줬다.

“워렌 후작님한테는 아들만 다섯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카를로스의 충고에 맥스를 본 나는 나직하게 한숨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맥, 죽디마요. 힘드러도 내일의 해는 떠요.”

아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다섯이라니. 괜히 짠해 보인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위로해 줬다. 내 위로를 받은 맥스는 고개를 푹 숙였다. 비록 유모와 시녀, 시종이 키운다고 하더라도 다섯 형제가 뭉치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맥, 오래오래 요기서 일하세요. 아드리 다서시면…… 지블 최소 네 채 사져야겟담.”

큰아들은 합가해서 살면서 집을 이어받으니 빼고, 나머지 아들에겐 집을 사 줘서 분가시켜야 할 테니. 

“하아, 걱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우리 아가씨밖에 없네요. 그런 김에 우리 며느님은 되지 않…….”

꺄앙!

캐러멜을 발로 굴리고 있던 씨엘이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걸 본 벤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양이가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군요. 그러니 우리 미래의 며느님 넘보지 마십시오.”

회의장이 갑자기 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오늘따라 엉덩이가 무거운 이들은 회의가 끝났는데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라피, 이제 이리 온. 카를로스도 힘이 들 테니까.”

카를로스의 품에 안겨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빠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맥스가 준 사탕을 오물오물하며 카를로스를 보며 물었다.

“힘드러여?”

“아닙니다. 우리 아가씨 정도면 하늘 높이 던졌다가 받을 수도 있답니다.”

인자한 미소를 짓는 카를로스의 말에 나는 아빠를 봤다.

“라피, 이리 온. 이걸 주마.”

쉬이 가려 하지 않자 아빠는 뭔가를 내밀었다. 이미 캐러멜과 사탕이 잔뜩 있는 상태에서 뭘 주려나 하며 돌아보자 아빠의 손엔 뭔가 반짝이는 게 보였다. 

금색 동전을 본 나는 방긋 웃었다. 내가 웃자 아빠도 미소 지었다. 돈으로 나를 회유하려 하다니, 우리 아빠지만 참 순진해 보였다. 

“하부지랑 하무니가 나 쩰리같은 돌멩이 마니 줘서 햄 볶앗써여. 요고는 제이가 사탕 사머그라고 졋어여.”

내 머리에 꽂힌 머리핀을 본 아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처가댁엔 안 보내는 게 낫겠군. 구운 찹쌀떡에 보석칠을 해 놨을 줄이야. 안 그래도 물욕이 있는 애한테 아주 퍼다 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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