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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32)화 (32/164)

32화. 

쉬야 하려고 가다가 데굴데굴 굴러서 이 녀석을 깔고 앉아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대신 새끼 고양이가 다친 것 같아서 치료해 달라고 내밀었다. 내가 내민 고양이를 본 다니엘은 빙그레 미소 짓더니 곧장 치유 마법을 걸어 줬다.

하얀 기운이 서리더니 쏙 스며들었지만, 고양이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이상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거리자 헬레나가 무언가를 그릇에 따랐다.

“배고픈가 봐요. 새끼 고양이가 이걸 먹을지 모르겠는데…….”

주전자에 담아 온 수프였다. 무엇이든 담으면 따뜻해지는 주전자에 있는 수프가 그릇에 흥건하게 담겼다. 그러자 고양이는 두 눈을 크게 뜨더니 무언가를 경계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핥아먹었다.

“배고팠나 보네요.”

정신없이 수프를 먹은 까만 고양이는 배가 부른지 느른하게 잠들었다. 

“기여버!”

“라피, 아무리 귀여워도 이런 동물은 함부로 키우는 거 아니란다. 정 고양이를 키우고 싶으면 오빠가 족보 있는 놈으로 골라올…….”

“시러여. 이 냥이가 조아여.”

낯선 동물을 경계하는 다니엘이 다른 고양이를 가지고 온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변에 부모가 없었다. 그걸 보아하니 버림받은 것 같았다. 마치 나처럼. 

어미에게 버림받고 아비에게 맞으며 하루하루 버텼던 나는 처음 본 고양이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 요고 키우고 시퍼여. 앙대여? 하부지, 하무니…… 요고 키우고 시푼데.”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두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라피가 원하는 대로 키우렴. 이놈이 우리 새끼한테 해코지하려고 하면 이 할아버지가 막아 주마.”

이 집안 절대 권력자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안겨들었다.

“고마뜹니다. 하부지, 하무니 체고!”

“오냐오냐, 네가 원하는 거라면 이 할아버지가 뭐든 다 해 주마. 허허허!”

내 볼에 할아버지가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된 나는 헤실헤실 웃었다. 즐거운 나들이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사비나와 함께 고양이를 씻겼다. 오랫동안 밖에서 굴러다녔는지 털이 떡진 상태였다. 

꺄옹!

털에 물이 닿자 고양이가 발톱을 드러내며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자 내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안 씨스면 맘마 안 줄꼬야!”

그 한마디에 고양이는 매우 얌전해졌다.

“어머나, 고양이가 고모님 말을 잘 듣나 봐요. 근데 이름은 뭐로 할 건가요?”

이름? 

그냥 고양이로만 부르고 있었던 나는 사비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세라피나니까 고양이는 세라피노로 할까. 아니야. 그건 너무 식상한데. 얌전해진 고양이를 씻기던 나는 고개를 들어 창문으로 보이는 하늘을 봤다.

“씨엘로…… 씨엘!”

“어머나, 우리 고모님은 이름도 잘 지으시네요. 이름은 씨엘로이고 애칭은 씨엘로 하실 건가요?”

“니에.”

많이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이름을 지어 준 나는 막 씻고 나온 씨엘의 털을 수건으로 말렸다. 

“씨엘이 깨끗해진 것 같네요.”

“그쳐? 씨엘, 이뽀!”

“나는?”

사비나와 함께 씨엘을 씻기고 나오자 에이든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런 에이든과 씨엘을 번갈아 보며 나는 방긋 웃었다.

“에이눈 공쥬밈한테만 이뿌묜 대!”

“풉! 그 말이 정답이네요. 우리 고모님은 정말 똑똑해요.”

“나 하부지 달마소 똑똑케여.”

씨엘을 품고 있는 나를 안아 준 사비나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금방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진짜 예쁜 공주님처럼 된 나는 거울을 보며 방긋 웃었다.

“앞으로는 제가 우리 고모님 머리를 책임질게요. 어쩜 이리도 귀여울까.”

“사비나, 우리 결혼하면 바로 아이 낳을까요? 역시 딸이 예쁘겠죠.”

“어머어머! 그, 그건…… 부끄럽게…… 전 아들 딸 구분 안 하고 낳고 싶어요.”

약혼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의 미래 설계를 들은 나는 버럭 소리쳤다.

“앙대! 나 하무니 대기 시러!”

“풉! 미, 미안해. 한 번만 봐줘. 우리 고모는 예쁘고 사랑스러우니까. 고모 닮은 딸 낳아 줄게.”

이제 나이 세 살이었다. 잘못하면 다섯 살쯤에 할머니가 될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자 에이든이 거래를 신청했다. 나를 닮은 딸이라니. 그건 어떤 의미로 조금은 귀엽겠지만 한편으로는 끔찍할 것 같았다. 드라마 보면 너 닮은 애 낳아서 고생해 보라고 하던데. 

냐옹, 냥.

털이 아직 덜 마른 씨엘이 내 품에 안긴 채 비비적댔다. 그런 녀석을 품에 안은 나는 깨 볶는 곳에서 나왔다. 밖엔 마리아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 새언냐한테 가고 시퍼여.”

“부인께서 정말 좋아하실 거예요. 호호호!”

가족이 많으니 한 명씩 만나러 다니는 것도 힘들었다. 마리아의 안내를 받아 총총총 뛰어서 헬레나의 방에 들어갔다. 연로하신 할머니 대신에 안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헬레나는 나들이가 끝난 후 쉬지도 못하고 상당히 바빠 보였다. 

“어머나! 우리 아가씨, 그새 저 보고 싶어서 오셨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방긋 웃은 헬레나는 나를 안더니 대뜸 책상 위에 앉혔다. 그러고는 서류 한 번, 나를 한 번 봤다. 나를 향한 중독성에 빠진 헬레나를 보다가 물끄러미 서류를 봤다. 주판을 튕기며 셈을 하는 걸 보며 고개가 갸우뚱 움직였다.

“조기 새언냐, 요기요기 이상해여.”

“음? 뭐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헬레나를 보던 나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을 유심히 보던 헬레나는 빙그레 웃더니 곧장 숫자를 고쳤다.

“세상에나, 우리 아가씨 누굴 닮아서 이리 똑똑할까요. 세 살인데 셈도 할 줄 알다니 천재가 분명해요.”

겨우 덧셈 뺄셈으로 천재로 등극한 나는 저녁에 반찬거리가 되었다. 매우 신나게 물고 빨아대서 콩가루가 탈탈 털린 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저 내일이라도 당장 본국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얼른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 이 사실을 알려 드리고 싶어요.”

내 볼을 만지작대는 사비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에이든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직접 가족에게 말하고 싶은 건 당연할 것이다. 방긋 웃는 사비나를 보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저흰 왕국에서 서신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다니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곳에서도 티그리스 공작가가 공주에게 밀리는 혼처는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어휴, 우리 고모님 두고 어찌 가려나 모르겠어요.”

“하긴, 사비나가 올 때면 우리 고모는 판테르 공작저에 있을 테니까요.”

내가 영원히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 없기에 다들 나직하게 한숨 쉬었다. 그런 그들을 본 나는 방긋 웃으며 씨엘을 쓰다듬었다.

“아빠한테 마래소 자주 오께여.”

“그래, 그러려무나. 근데 사위가 허락해 줄지 모르겠구나. 우리도 이리 보내기 싫은데 사위는 오죽이나 할까.”

이번엔 할머니가 내 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녁 후 티타임이 끝나자 다들 나가면서 내 볼을 꾹꾹 누르거나 늘려 잡은 후 굿나잇 뽀뽀를 했다. 

오늘도 내 볼은 말랑 콩떡처럼 질질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볼을 조그만 두 손으로 비비며 달래 준 나는 내 품에서 안 떨어지는 씨엘을 쓰다듬었다.

“씨엘, 내꿍꼬.”

* * *

라피가 티그리스 공작저로 간 후부터 판테르 공작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졌다. 서류를 멍하니 보기만 할 뿐 사인은 하지 않았다. 이따금 한숨을 쉬며 북쪽 하늘을 보더니 식사는 라피의 방에서 했다. 

라피가 북부로 간 이후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구운 찹쌀떡에 조청을 찍어 먹었다.

“우리 아이한테 연락이 왔나.”

이 집안에 고용된 마법사의 근육을 긴장시켜 줄 요량으로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직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컥컥거리는 마법사를 돌려보낸 판테르 공작은 괜히 시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라피를 알지 못했을 땐 시간만 잘 갔다. 그리고 평소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먹고 자기만 했다. 한데 조그만 아이가 등장하고서부터 그의 리듬이 완전히 깨져 버렸다.

“우리 미래의 며느님이 티그리스 공작저에 가셔서 그런지 공작님이 안절부절못하시는 거 같습니다만.”

“내가 언제!”

“지금 서류에 검은 깨가 수두룩합니다.”

벤스의 말에 그때야 판테르 공작은 고개를 숙여 서류를 봤다. 사인해야 할 곳엔 잉크 묻은 펜으로 계속 콕콕 찍어대서 깨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걸 본 판테르 공작은 서류를 벤스에게 건넸다.

“다시 써 오게.”

결재를 기다리고 있던 벤스는 앓는 소리를 하며 새 종이에 다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라피가 북부에 간 지 이제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유독 시간이 가지 않았다.

“라피가 좋아할 만한 것들 좀 넉넉하게 사 놓게. 특히 인형 눈은 보석으로 박힌 놈으로.”

일전에 라피가 인형에서 눈알을 빼려는 모습을 봤던 판테르 공작이었다. 누구 딸인지 몰라도 물욕이 있는 딸을 떠올리며 얼른 일주일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허벅지에 펜촉을 꽂아 가며 참기를 어언 일주일, 이제 라피가 곧 올 것이라고 여겼다. 

“가주님,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통신이 왔습니다.”

한 번 멱살 잡힌 게 효과가 있었는지 마법사는 통신구를 들고 눈썹이 휘날려라 뛰어왔다. 반짝이는 통신구는 이내 선명해지더니 은발에 금안을 지닌 조그만 아이가 헤벌쭉 웃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저도 모르게 미소 짓다가 짐짓 표정을 굳혔다.

“라피! 오늘이 오는 날이로구나.”

그곳에 간 지 일주일 만에 연락하는 조금 무심한 딸이었다. 하지만 라피는 제 심정을 모르는지 방긋 웃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조금 섭섭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얼른 이곳으로 올 거라고 말할 거라고 여겼건만 무심한 딸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저 요기서 쫌만 더 놀묜 앙대여?]

“응?”

[요기엔 하부지랑 하무니, 오빠랑 새언냐, 글구 비글가튼 조카드리 이써여.]

“뭐? 그게 어땠다고……?”

[요기 이쓰면 넘나 잼이써여.]

딸이 하는 말을 들은 판테르 공작은 마른세수를 했다. 이곳에는 자신만 살지만, 티그리스 공작저엔 많은 핏줄이 모여 살았다. 그런 가족을 낯설어하기 보다는 더 좋다고 말하는 라피를 본 판테르 공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누가 네게 협박이라도 한 것이더냐.”

[아니에여. 요기 이쓰면 조아여. 징짜 조아여. 헤헤. 쫌만 더 이따가 가묜 앙대여?]

두 손을 맞잡고 꼼지락거리며 말하는 딸을 본 판테르 공작의 얼굴은 사늘하게 식어 버렸다. 자신은 딸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건만 정작 딸은 그곳에 더 있고 싶어 했다. 오늘이 약속한 날이니 얼른 오라고 말하려는 찰나에 누군가가 난입했다.

[앗! 라피, 여기 있었구나. 안 그래도 지금 헬레나가 간식 싸들고 나들이 간다고 하는구나. 얼른 준비해야지.]

처음 보는 인물이었지만 은발에 금안을 보니 티그리스 직계 핏줄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제 딸을 번쩍 안은 고얀 놈이 빙그레 웃으며 먼저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모부님, 다니엘 티그리스라고 합니다. 오늘은 우리 가족 모두 나들이 가는 날이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말은 정중했지만 다니엘의 표정은 그러지 못했다. 라피를 안은 다니엘은 웃음이 흘러넘쳤다. 

[마싯눈고 쌌어여?]

[당연하지. 라피가 좋아하는 거로만 다 준비했단다. 그러니 얼른 가자꾸나.]

[씬난다. 나드리 나 첨 가보눈데. 헤헤, 구롬 담에 연라하께여. 뺘뺘!]

“아, 아니 잠깐만! 딸! 라피!”

애타게 불렀지만 라피는 통신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렸다. 그걸 본 판테르 공작의 얼굴은 사늘해졌고 마법사는 괜히 미안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는 죽어 나갈 것 같을 때 판테르 공작은 이를 갈며 말했다.

“가, 감히…….”

“가주님, 진정하시지요.”

멀찍이 서 있던 오스카가 말하며 통신구를 얼른 들어 올려 마법사에게 주고 보냈다. 비싼 통신구 대신에 받치고 있는 책상이 판테르 공작에 의해 박살이 났지만, 오스카는 그러려니 했다. 책상을 박살 냈음에도 화가 풀리지 않은 판테르 공작이 외쳤다.

“감히! 나도 못 가 본 나들이를 우리 구운 찹쌀떡이랑 먼저 가 보다니! 이런 고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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