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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30)화 (30/164)

30화. 

서로 말랑 콩떡을 안겠다고 라피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에이든과 제이든은 헬레나를 보고 움찔했다.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더 무서웠다. 어미의 웃음을 피해 라피를 안고 튀자 헬레나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오랜만에 마련한 티 파티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들이 고모를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실례가 많았어요.”

헬레나가 먼저 사과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좋게 넘어갔다.

“두 아드님께서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요. 정말 따스하고 멋지게 보여요.”

남자들 중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만 봐 온 사비나는 제 앞에서 어린 고모를 안고 도망가는 에이든과 제이든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가 이상형이었던 사비나는 에이든이 라피를 보고 미소 짓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이미 사귀는 여자가 있어서 곁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음에도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런 질문하면 실례인 줄 아는데 실베스터 공주님께서는 언제 결혼하실 건가요. 지금이 결혼 적령기인데, 혹시 이미 결혼이 내정된 건가요?”

“아니요. 아직…….”

자주 이곳에 와서 혹시 북부 귀족 중 한 명을 좋아하는 건가 싶었던 부인의 질문에 사비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든을 좋아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에이든이 옆에만 있으면 심장이 뛰면서 얼굴이 붉어져 오래 있을 수도 없었다. 그가 손수건을 주워 줬지만, 손이 닿자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거칠게 낚아채고 말았다. 

그 외에도 몇 번이나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사비나는 에이든을 싫어하는 듯한 행동을 해 버렸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가 버린 상황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래서 에이든이 다른 여자를 만나더라도 끙끙 앓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말없이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한데 그럴수록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워지는 에이든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팠다.

사비나가 혼자 가슴앓이를 할 때 차를 마신 부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차가 정말 맛있군요. 이 차는 무슨 차인가요?”

“요번에 아가씨께서 여기 오실 때 판테르 공작님께서 챙겨 주신 찻잎이랍니다. 이아르너 지역에서 생산된 차예요.”

“네? 이아르너요? 세상에! 엄청 귀해서 황궁에만 진상한다던데 대단해요. 얼마나 딸을 귀하게 여겼으면 예쁘게 봐달라고 이아르너 차를 보내 주셨을까요. 호호호!”

평소 얌전하게 차를 마신 이들은 헬레나의 말을 듣자마자 전투적이 되었다. 어디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차 맛에 빠져든 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라피 덕분에 한껏 콧대를 높인 헬레나가 그들에게 찻잎을 조금씩 나눠 주겠다고 말하자 다들 미소 지었다.

“한데 티그리스 정원에 붉은 눈동자를 지닌 조그만 애가 돌아다니던데, 여긴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건가요.”

차를 내려놓은 마틸다의 말에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정원에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아이는 라피가 유일했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서 재롱부리며 말로 녹인 라피를 떠올린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할아버지에게 눈 색을 바꾸는 약을 받은 것 같았다.

“외부인이 들어오지는 못하지요. 아마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은 말랑한 콩떡 천사님이 다녀간 거라면 모를까. 한데 모나코 양은 그곳에 어찌 들어갔나요?”

“전 에이든 님의 허락을 받아서 갈 수 있었지요.”

에이든의 연인이니 다른 이들에게 티그리스 공작부인 자리는 탐내지 말라는 듯 마틸다가 콧대를 세우며 말했다. 그러자 사비나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에이든이 허락해 줬군요. 하지만 다음부턴 조심해 주세요. 그곳에 우리 라피 아가씨도 자주 드나드니까요.”

우리 아가씨 갈 땐 들어오지 말라는 뉘앙스로 말한 헬레나가 미소 지으며 다른 이들에게 차를 권했다.

“어머나! 아가씨께서 주신 사탕을 먹으면서 차를 마셨는데 이것도 콩떡궁합이네요. 달콤한 것도 상당히 잘 어울려요.”

“우리 아가씨가 괜히 사탕을 주실 리 없잖아요. 호호호! 우리 아가씨가 얼마나 똑똑한데요.”

사실은 그냥 얻어걸린 것이지만 헬레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제 인생에서 제일 성공한 티 파티가 끝나자 손님을 보낸 후 헬레나는 사비나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실베스터 공주님, 아까 우리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은 사과할게요. 혹 불쾌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아, 아닙니다. 티그리스 부인, 전 보기 좋았는걸요. 제 이상형이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라서…… 그런 아이라면 제가 먼저 납치했을지도 몰라요.”

“그렇죠? 호호! 눈 뜨고 우리 아가씨를 납치당할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세상에나. 저기에서 뭐 하고 있담.”

정원을 걷던 헬레나와 사비나의 눈엔 에이든과 제이든 그리고 라피가 보였다. 초보 마법서를 보면서 라피에게 가르쳐 주는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 이렇게 마나를 집중하면…… 파이어!”

에이든이 먼저 시범을 보인다면서 손을 내밀어 외치자 불덩어리가 생겼다.

“이햐, 싱기해! 에이 천재여꾸나.”

“에헴, 내가 좀 해.”

“아니야. 그건 기본이라고. 나도 꽤 잘해!”

라피가 에이든을 칭찬하자 제이든이 보란 듯이 자신도 마법을 선보였다. 그 모습을 본 라피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입을 삐죽였다.

“군데 제이는 고대어도 모타자나.”

“그, 그건…… 괜찮아. 고모가 여기에 머물면서 나 가르쳐 주면 되지. 안 그래?”

“야! 고모가 너 가르쳐 줄 시간 없어. 됐으니까 좀 꺼져 줄래. 너랑 같이 있으면 고모한테 바보병이 옮아.”

“싫거든! 꺼지려거든 형이나 꺼지시지.”

라피를 앞에 두고 두 형제가 어린아이처럼 아옹다옹했다. 그 모습을 본 라피는 이마에 손을 얹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애드리 싸우묜서 큰다지만 니드른 눈만 마주치묜 싸우니! 으휴.”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여자보다 정신연령이 낮아서 어린아이 같다고 했던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형제가 다투는 모습에 라피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새언냐가 키우느라 고생한고 안 바도 알거가타. 댔고, 얼룬 요고나 알료죠.”

조그만 라피의 한 마디에 형제는 언제 말다툼했냐는 듯이 얌전해졌다. 그러고는 열성적으로 라피에게 마법 기초에 대해 알려 줬다. 그 모습을 본 헬레나와 사비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말 아이가…… 아니 세라피나 아가씨는 귀여운 것 같아요. 에이든 님과 제이든 님도 꼼짝 못 하네요.”

“그 꼼짝 못 할 사람 중에 어쩌면 실베스터 공주님도 포함될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우리 아가씨의 말랑함에 빠져들면 쫀득하게 붙어 버리거든요.”

헬레나의 말에 사비나도 저 틈에 포함되고 싶었다.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고, 이야기하며 같이 노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았다. 부러울 정도였다. 

“전 이미 붙어 버린 것 같아요.”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사비나를 본 헬레나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녀만 한 며느리도 없을 건데 바보 아들이 엉뚱한 여자한테 정성을 들이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한데 이리 보니 그녀도 제 아들에게 마음이 아예 없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아! 혹시 이거 알아요? 지금 우리 집안에서 라피 아가씨의 말씀이 곧 법이라는 것을요.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아가씨랑 친하게 지내는 것도 한 방법이랍니다.”

약간의 팁을 준 헬레나는 바보 아들과 똑똑한 사촌 시누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며 그곳을 지나쳤다. 그러자 사비나도 아쉬운 마음을 접고 걸음을 옮겼다.

* * *

다음 날-

아침을 먹은 라피는 정원으로 나와서 꽃을 구경하다가 에이든과 만났다. 어제보다는 조금 환한 미소를 지은 에이든은 라피를 번쩍 안아 올렸다. 

“우리 고모, 꽃이 그렇게 좋아?”

“응, 조아.”

라피의 말랑말랑한 콩떡 볼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아예 차지게 철썩 들러붙은 라피가 에이든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에이눈 마봅사라서 요기 안 빵빵해. 아빠는 징짜 빵빵한데.”

“어? 으, 응. 그건 어쩔 수 없지. 마법 공부하느라 몸을 수련할 시간은 없거든. 근데 제이든은 나름 검술 훈련도 하나 보더라고.”

둘이 조잘조잘 말하고 있을 때 마틸다가 등장했다. 초대하지 않은 여인의 등장에 라피는 보란 듯이 에이든의 가슴에 간격 없이 찰싹 달라붙었다. 그러자 마틸다의 눈이 움찔했다.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오늘은 초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직한 에이든의 목소리에 마틸다는 마른침을 삼켰다. 평소라면 초대를 하지 않았어도 자신을 보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반가이 맞이하던 사람인데. 

“평소에도 이렇게 왔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으면서 갑자기 그리 말씀하시니 거리감이 느껴지네요. 호호.”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오늘은 고모랑 같이 공부하기로 했으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제 가슴에 찰싹 붙은 라피를 매우 귀하게 쓰다듬은 에이든을 본 마틸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마 진짜 그 아이를 키우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키우고 싶어도 키울 수 없으니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지요. 그럼 이만!”

“잠시만요.”

라피를 안고 가는 에이든을 마틸다가 붙잡았다. 

“뭡니까.”

“뭐냐니요.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엄청 귀찮지만 그래도 이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요.”

“아! 그 문제? 앞으로 그런 귀찮은 일 하지 않아도 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으로는 사적으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단호하게 말하는 에이든을 본 마틸다가 놀라서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뜻대로 움직였던 에이든의 달라진 모습에 마틸다는 미간을 찡그리며 라피를 봤다. 왠지 에이든이 이리 변한 게 이 아이 때문인 것 같았다. 

“전 아이를 사랑해 주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한데 모나코 양은 어제 우리 고모를 고의로 밀쳤어요. 빨간 눈동자를 지닌 그 아이, 우리 고모였어요.”

나직한 에이든의 목소리에 마틸다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지나치다가 부딪쳐서…….”

“그럼 얼른 일으켜 주셔야지요. 우리 집에서 고모를 건드린 사람은 처음이라 저도 황당하더군요. 그럼 우리 앞으로 만날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라피를 안은 에이든이 쌩하니 지나가자 마틸다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갈았다. 그런 마틸다를 본 라피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만나소 더러벗고,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장.”

* * *

마틸다를 떨어뜨린 나는 에이든의 방에서 이것저것 물었다.

“징짜 공쥬밈 만한 여자 업찌?”

“응, 그런 것 같아. 후우, 모나코 양을 만나느라 쓴 시간이 너무 아까워지기 시작했어. 그 시간에 마법 공부를 더 할걸.”

처음엔 괜찮게 보였지만 한 꺼풀 벗겨 보니 치가 떨렸다. 그녀의 속사정을 알게 된 에이든은 여자 보는 눈이 없는 자신을 탓했다.

“근데 공주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후우…….”

연거푸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에이든을 본 나는 손을 뻗어 나이 많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갠차나. 낵아 알아소 해 주께. 에이, 넌 징짜 고모 잘 둔지 아라.”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말한 나는 에이든과 예행연습을 했다. 모든 걸 끝마친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곧장 몇 가지 도구를 가지고 사비나를 만나러 갔다. 

“어머나, 어서 와. 세라피나 아가씨, 아니 계속 라피라고 불러도 될까? 그 붉은 눈동자를 지닌 아이가 라피 아가씨 맞지?”

“니에, 구롬 나두 삐나 언냐라고 부를게여.”

나를 보자마자 사비나는 반갑게 맞이해 줬다. 사비나를 만난 나는 그녀를 바깥으로 유도해서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았다. 

“에이든 님과 제이든 님을 만나서 잘 놀았어?”

“니에, 군데 조카드리 마나서 넘 피곰해여. 에효효효.”

“왜? 두 분이 참 다정하게 대해 주시는 것 같던데.”

“히유, 말도 마여. 말을 잘 안 드러서 낵아 늘글 것 가타여.”

“풉!”

내 말에 사비나는 허리를 굽혔다. 배를 잡고 웃는 사비나 뒤에 있는 시녀도 입술을 깨물며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춘 사비나는 내가 가져온 종이를 이용해 잘 놀아 줬다. 종이를 곱게 접어 내게 학을 만들어 줬다. 

“이뽀!”

“예뻐서 다행이네. 근데 라피는 뭐 만들고 있어?”

한지와 비슷한 재질의 붉은색 종이를 사비나의 도움을 받아 접었다. 초록색 금속 줄기에 이파리를 이어 붙여 완성된 것은 빨간색 장미꽃이었다. 

“어머, 진짜 예쁘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비나의 시녀조차도 탄성을 지를 정도였다. 비록 한 송이었지만 상당히 예쁜 편인 종이꽃에 사비나가 방긋 웃었다. 그녀를 본 나는 장미꽃을 내밀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라, 라피? 뭐 하는…….”

“우리 조카가 숙맥이라소 미아네여.” 

“어, 응?”

“구래소 마린데 우리 조카 마누라가 대어주세여.”

“…….”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사비나를 본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두 눈을 부릅뜬 채 말했다.

“내 조카 며누리가 대어주묜 안 자바먹찌! 라고 콩가루 털린 말랑 콩똑이 말햇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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