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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29)화 (29/164)

29화. 

온 힘을 다해 외친 것까지는 괜찮았다.

꼬르르륵-

진중한 분위기 속에서 나이 많은 조카님에게 이것저것 충고해 주기도 전에 배꼽시계가 울렸다. 

오늘 오전에 짧은 다리로 미친 듯이 뛰어다닌 터라 허기가 졌다. 

우렁찬 소리에 에이든은 나를 데리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장 물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아 주고는 마리아에게 내 옷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고모, 배고파?”

“구론고 가타.”

그 한 마디에 내 앞엔 맛있는 치즈 케이크가 놓였다. 에이든이 미리 준비해 둔 게 분명했다. 치즈 케이크와 따뜻한 우유를 마시자 조금 살 것 같았다. 

“고모, 나 진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모나코 양이 앙칼져서 티그리스 가문의 안살림을 하면서 고용인들을 휘어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뇸뇸뇸 소리를 내며 먹고 있는 내 앞에서 에이든은 탄식하며 고개를 숙였다. 어제 내가 짜둔 플랜대로 잠시 숨어서 지켜보라고 했고 그 결과물에 에이든은 기가 팍 죽었다. 자신이 결혼할 여자라고 생각한 마틸다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어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어또케하긴, 헤어죠! 그 여자보다 이뿐 여자는 마나.”

특히 미래의 티그리스 공작가의 안주인이 되고자 할 여자들은 수두룩했다. 그걸 에이든만 모를 뿐이었다. 

“근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없는걸.”

“나눈 이쏘, 공쥬니믄 어때?”

“공주? 혹시 실베스터 공주님을 말하는 거야? 후우, 그건 안 돼. 자고로 며느리는 좀 못한 집에서 데려오는 거라고 하던데.”

그건 또 어디에서 주워들은 것이더냐. 

“구래서 공쥬니믄 시러?”

“싫은 것은 아닌데 조금 부담스러워. 그 까만 눈으로 나를 보는데 완전히 옭아매지는 것 같달까.”

내가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흘릴 때마다 주변을 치운 에이든이 그간 사비나를 보고 느낀 것을 말했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예전에 손수건을 주워 줬는데 손이 닿으니까 거칠게 빼더라고. 그리고 또 어떤 일이 있었냐면…….”

한마디로 처음 사비나를 보고 호감을 느꼈지만, 그녀의 경계에 더는 곁에 가지 않았단다. 후대의 티그리스 공작이 될 사람인데 굳이 자신을 싫어하는 여자와 함께하고 싶지 않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데 구고 아라? 여자 중에눈 조으묜소도 빼눈 경우가 잇쏘, 구래소…….”

에이든에게 손짓해서 귀를 가까이 대게 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연애에 관련된 내용을 말해줬다. 그러자 에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공주님 앞에서 이미 다른 여자랑 교제한다고 말했는데.”

“과거옵눈 사람은 옵쏘! 공쥬니미 조아하묜 눈가마줄꾸야.”

점심까지 에이든에게 강의 아닌 강의를 해 준 나는 우유를 빨며 겨우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연애 숙맥이면서 일단 결혼은 해야 하기에 이 여자, 저 여자를 만났지만, 에스코트 정도만 해 줬다고 말을 한 에이든이었다. 

결단코 자신은 순수, 순결한 몸이라고 말하는 에이든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천연기념물이 분명했다. 조만간 대마법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구래, 요즈믄 남자도 겨론 전까지 조신하게 이써야 해.”

* * *

할머니 앞에 앉은 나는 앞에 놓인 것을 보며 방긋 웃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살수프에 함박웃음을 짓자 할머니 역시 빙그레 웃었다. 

“요고 요기엔 업짜나여.”

북부라 바닷가가 없었다. 그런데 게살로 만든 수프가 있자 할머니에게 물었다.

“없지만 배송은 된단다. 바닷가에 말해서 갓 잡은 게를 워프 게이트로 공수했단다. 우리 손녀 먹을 거니까.”

워프 게이트 이용하는 게 상당히 비싸다고 알고 있는데 겨우 수산물을 옮기는 데 사용하다니,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그저 수프를 먹으며 한껏 맛있음을 표현했다. 

“마싯쪄여.”

“그렇지? 맛있지? 이 할미랑 있으면 평생 이런 거 먹을 수 있단다.”

게살수프로 나를 유혹하는 할머니가 귀엽게만 보였다. 

“한데 아가, 손에 상처가 난 것 같구나. 어찌 된 것이지?”

“아까 꼿 따다가…… 군데 안 아포여.”

“안 아프긴, 여보! 우리 새끼가 다쳤어요. 이 일을 어쩌면 좋을까요.”

옆에서 식사하시던 할아버지가 호출되었다. 내 손을 본 할아버지의 황금색 눈동자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정원을 확 쓸어 버리…….”

“여보! 우리 라피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그러니 잔말하지 말고 치료나 해 주세요.”

할머니가 도끼눈을 뜨자 할아버지가 헛기침하더니 내 손에 마나를 불어 넣어 주기 시작했다. 엄청난 수준의 치유 마법에 내 손은 깔끔하게 나았다.

“이햐, 싱기해! 나두 배우고시퍼여.”

“그렇지? 배우고 싶지? 이 기회에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같이 살까? 우리 라피가 여기에 있어 준다면 공작위는 다니엘한테 넘기고 매일 우리 손녀한테 마법 가르쳐 줄 건데.”

“군데 아빠 술포해여. 구니까 지베 가야 해여.”

미우나 고우나 가슴 빵빵한 아빠를 내가 놓아줄 리가 없었다. 

“고모, 그러지 말고 우리랑 같이 있자. 나랑 같이 공부하는 건 어때? 나도 고모한테 마법 가르쳐 줄 수 있는데.”

“그래, 고모! 우리랑 같이 놀자. 내가 시간 날 때마다 같이 놀러가 줄게.”

얼마 전까지 데면데면하던 조카들이 갑자기 내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은 참 보기 좋다고 웃었다. 

“그건 안 된단다. 조금 있다가 티 파티 할 건데, 우리 라피 아가씨를 데려갈 거니까 오늘은 내가 찜!”

갑자기 헬레나가 내게 티 파티에 가자고 말했다. 황녀였던 적에도 참석해 본 적 없었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언니는 티 파티에 참석해서 얌전하게 간식만 먹으면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헬레나, 그런 곳에 가기엔 아직 어리니 다음에 라피가 좀 더 크면 데려가세요.”

“싫어요. 요즘 티 파티 준비하면서 우리 아가씨랑 같이 있을 시간이 줄었단 말이에요. 밤엔 할머님이랑만 같이 주무시니까요. 그러니 오후엔 우리 아가씨랑 같이 참석할 거랍니다.”

여기 오자마자 내 일정은 바쁘게 돌아갔다. 난 분명히 이곳에 마법을 배우려고 왔는데, 계획한 모든 것이 어긋났다.

얼떨결에 밥을 먹자마자 나는 다시 씻겨지고 치장을 당했다. 사비나가 만져 준 머리가 풀려서 조금 시무룩해질 시간도 없이 발음 연습을 했다. 창피당하지 않게 최소한 내 이름 정도는 또박또박 말할 수 있어야 하지는 않겠는가. 

“아가씨, 우리 같이 가요. 호호호.”

나를 품에 안은 헬레나는 걸음도 당당하게 티 파티가 준비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북부에서 난다 긴다 하는 집안의 여자들이 모여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 안엔 사비나도 보였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티그리스 부인, 얼른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아직은 할아버지가 공작위를 다니엘에게 주지 않아서 헬레나는 그냥 부인으로만 불리는 듯했다. 미리 준비된 아이용 의자에 나를 앉힌 헬레나는 옆에 앉았다. 

“어머나, 티그리스 부인! 옆에 앉은 아이는 누구인가요? 세상에나, 혹시 저희 몰래 늦둥이를 낳으신 건가요. 티그리스 님을 쏙 빼다 닮았군요.”

은발에 금안은 티그리스 공작가의 핏줄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유전이었다. 

“어머나, 베아체 후작부인, 이 아이가 그 정도로 닮은 건가요? 호호호, 이분은 우리의 아이가 아니라 제 사촌 시누이랍니다.”

헬레나의 말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사비나만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혹시 티그리스 공작님의 늦둥이 따님이신 세라피나 님의 따님인 건가요?”

“어머나, 실베스터 공주님은 이해가 빠르시네요. 맞아요. 우리 고모님의 딸인 세라피나 판테르랍니다.”

둘의 말에 다들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자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안뇽하세요. 제 이룸은 세라피나 판떼르에요. 만나서 방가워요.”

최대한 발음을 또박또박 말하자 너무 놀란 나머지 다들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앞에 놓인 케이크를 먹었다. 

욤뇸뇸- 

마시쪙!

“세상에나, 하지만 판테르 공작부인께서는 이미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아이를…….”

“이미 판테르 공작님과 할아버님께서 확인하셨답니다. 우리 남편의 사촌 동생이 맞아요. 그렇죠?”

“네, 언냐랑 혐부도 말해써요.”

아퀼라 공작가에서도 인정했다는 말에 다들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중에서 한 명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전에 듣기로는 동부에 파멸의 아이가 나타났다고 하던데 혹시 그 아이가…….”

딸깍-

소리 내지 않고 찻잔을 차 받침대에 놓는 게 예의였다. 하지만 헬레나는 마틸다의 말에 대놓고 소리를 내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말도 안 되는 유언비어랍니다. 이것 보세요. 우리 할아버님과 남편을 그대로 닮았는걸요. 게다가 판테르 공작님이 호적에 남의 아이를 올릴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한 번만 그딴 개소리 짖으면 삼복더위에 개 패듯이 팬다는 시선으로 헬레나가 마틸다를 보며 방긋 웃었다. 웃는 모습이 더 무서워 보였지만 헬레나는 나를 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아가씨, 어른이 마시는 차는 맛이 없을 테니까 우유 갖다줄까요?”

끄덕끄덕-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나는 최대한 말을 아끼기 위해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곧장 따뜻한 우유가 대령되었다.

“귀여운 아이랑 티 파티라니 정말 분위기가 아기자기해진 것 같아서 저는 더 좋은 것 같아요. 한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안면인식장애는 없는 듯 사비나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자 나도 방싯방싯 웃으며 우유를 꿀꺽꿀꺽 삼켰다. 

“아이 얼굴은 다 비슷비슷해서 저는 잘 모르겠던데. 호호! 그나저나 판테르 공작부인을 정말 빼다 닮았군요.”

“그렇죠? 역시 셀레스 백작부인,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요전번에 내 손을 잡고 측정을 했던 할아버지 보좌관의 부인인 듯했다. 

“나 아라요! 하부지 옆에 있던 아찌! 둘이 달마써여.”

내가 방긋 웃으며 셀레스 백작부인에게 말했다. 그런데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내가 말을 잘못한 건가. 고개를 갸웃하자 셀레스 백작부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세라피나 아가씨의 따님이 맞군요. 아주 오래전에 세라피나 아가씨께서 저와 남편을 보고 닮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랬던 적이 있었나? 뭐 어쨌든 좋게 받아들이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나는 방긋 웃으며 가방 속에 있는 사탕을 내밀었다.

“요고 마시써여. 드세여.”

“어머나, 선물을 주시는 건가요? 정말 감사해요. 예전에 세라피나 아가씨도 제게 사탕을 주신 적이 있거든요.”

이 집안의 세라피나도 사탕으로 사람을 홀리고 다닌 게 분명했다. 배시시 웃은 나는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서 일어나서 티 파티에 초대받은 이들에게 사탕 하나씩을 건네줬다. 그랬더니 다들 미소 지으며 받아 줬다. 마틸다가 썩은 미소를 지은 것만 빼고.

“한데 아드님께서는 어린 고모를 받아 주셨나요? 상당히 자존심이 센 분이라서 뭐라고 했을 것 같은데.”

사탕을 전부 돌리고 오자 다른 부인이 물었다. 그러자 헬레나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매우 좋아하고 있답니다. 판테르 공작저에 가지 말고 이곳에 계속 있으라고 말할 정도예요.”

“정말 에이든 님과 제이든 님이 그리 말했다고요? 이상하네요. 아이를 싫어하는 분들이신데.”

마틸다가 피식 웃으며 나를 본 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헬레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너희, 레이디의 티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내가 그리 가르쳤더냐.”

에이든과 제이든이 나타난 것이다. 본래 여인의 모임에 남자들이 오지 않은 것이 불문율이었다. 한데 그걸 깨고 모습을 드러낸 형제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름답고 소담스러운 모임에 모습을 드러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흰 하나만 빼 갈 터이니 멋진 티 파티를 이어 가시지요.”

에이든이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내 몸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제이든이 나를 안아 올렸다.

“꾸엑, 무슨 지시야! 감히 하눌가튼 고모를 이러케 들다니!”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이든을 나무랐다. 하지만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

“고모, 우리 같이 놀자. 여긴 말만 하는 곳이라 재미없어. 아마 여기 있다가는 잠들어 버릴걸.”

제이든은 이곳에 있는 여인들이 놀라든지 말든지 그저 환하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허, 오디서 배어머근 버르시야!”

다시 각 잡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형제의 귀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 고모는 저희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그럼 저녁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제이든, 고모 이제 내가 안을 거야. 이리 건네줘.”

“싫어! 내가 안고 갈 거야. 이 말랑 콩떡을 놓칠 수는 없지.”

서로 나를 안겠다고 다툼을 하는 중에 난 소리를 질렀다.

“때끼, 콩똑 줄 사람은 생각도 안눈데, 오디서 콩가루만 털어 머그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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