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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27)화 (27/164)

27화. 

절대 내가 보석에 혹해서 선생이 된 것은 아니었다. 고대어 하나 못해서 쩔쩔매는 제이든이 불쌍했을 뿐이다.

짧게 가르쳐 줬는데 제이든은 선생님이 가르쳐 준 것보다 내가 알려 주는 게 더 쉽고 간단하다나, 어쨌다나. 그날 이후로 제이든은 나의 광팬이 되었다. 

“고모, 나 어제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어.”

“웅, 잘해쏘.”

칭찬을 바라는 듯한 제이든을 본 나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제이든이 빙그레 웃으며 더 머리를 들이밀었다. 칭찬이 고픈 철부지 어린애처럼 보였다. 

“음? 라피가 제이든과 친해졌나 보구나. 허허허! 제이든, 고모랑 잘 놀아 주려무나.”

“아냐, 낵아 노라주고 있는 고에여.”

마침 지나가던 다니엘의 말을 내가 정정했다. 그러자 다니엘이 씩 웃으며 잘했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우쭈쭈, 잘했어. 우리 동생, 누굴 닮아서 이리 똑똑할까.”

“하부지 달마찌롱!”

“그런 말은 여기에서는 해도 괜찮지만 판테르 공작님 앞에서는 자주 하지 말렴. 서운하실지도 모르니까.”

“니에.”

잠시 시간이 났는지 다니엘은 얼른 일하러 가지 않고 내 곁에 주저앉아서 내 볼을 쭉쭉 늘렸다. 그리고는 마리아가 준비해 준 콩떡을 먹었다. 

“콩떡보다 우리 라피 볼이 더 말랑한 것 같아.”

“아냐! 자꾸 그러문 하무니한테 이룰꼬야.”

“미안미안, 한데 진짜 너무 찰지게 달라붙어서 좋은 걸 어떻게 해.”

다니엘이 한동안 내 볼을 잡고 쓰다듬고 콕콕 찔렀다. 그러자 제이든도 내 볼을 조심히 잡아당겼다.

“흡! 그래. 이 쫀득함이야. 이야! 나 고모 닮은 딸 낳고 싶어졌어.”

“응, 끄졍!”

제이든의 손을 쳐낸 나는 다니엘을 노려봤다. 그때야 볼에서 손을 뗀 다니엘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한데 형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통 안 보이던데.”

“좀 뭐라고 해 놨더니 여자를 만나는 것 같더구나. 연애 사업하느라 바쁠 거다. 정원에 누군가랑 들어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자세히는 모르겠구나.”

그 말을 남긴 다니엘은 갑자기 할아버지가 시킨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후다닥 달려갔다. 달려가는 내내 뒤돌아서 내게 손을 흔들다가 나무에 부딪친 것은 안 비밀이었다.

“제이는 안 바뽀?”

“응, 나 지금은 한가해.”

“안 바뿌면 가서 공부나 해. 나 기찬케 하지 말구.”

할머니랑 식사한 후부터 계속 제이든이 나를 귀찮게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덕분에 마리아는 멀찍이서 나를 지켜만 보는 실정이었다. 자꾸만 들러붙는 제이든을 모른 척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장 정원 쪽으로 향했다. 

“어디 가?”

“쪼기!”

“거긴 왜? 꽃구경하고 싶어?”

“아뉜데.”

꽃은 판테르 공작저에서도 실컷 봤었다. 그렇기에 굳이 여기까지 와서 꽃구경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도 같이 가 줄게. 그러다가 길 잃으면 어떻게 해.”

그럴 가능성은 제로였다. 설사 길을 잃었다고 해도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난 이곳에서 인기인이니까. 

“대쓰니까 쫌 떠러질래?”

손을 휘휘 저었지만, 제이든은 접착제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나는 제이든을 떨어뜨리는 대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중간중간에 꽃을 꺾어 머리와 귓가에 마구마구 꽂았다. 

“고모, 지금 뭐 하는 거야?”

“모하긴! 은시술 하눈 중이야.”

“은시술? 아! 은신술? 은신술은 왜?”

“나 따라오려묜 쉿!”

입술에 손가락을 올리며 말하자 제이든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도 꽃을 꺾어 제 머리를 장식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살금살금 정원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걸음을 멈추자 제이든도 피식 웃더니 내 뒤에 섰다. 그러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서로 입술 위에 손을 올렸다. 더는 말해서는 안 될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와 눈높이를 맞춘 제이든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화초로 장식된 곳 너머엔 장미가 그득한 터널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벤치에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나만 보면 썩은 미소를 짓던 큰 조카 에이든과 정체 모를 여자였다. 

“아! 나 저 여자 알아. 모나코 후작가의 딸인데 예쁘긴 해.”

예쁘기만 하면 기준점 통과인 듯한 제이든의 속삭임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태를 살폈다.

“에이든 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을 묻고 싶은 건지요.”

빛에 닿아 반짝이는 탐스러운 금발을 지닌 여자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아이가 이곳에 돌아다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아이, 혹시 에이든 님의 아이인가요?”

“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그 아이는 제 아이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낳은…… 혹시 에이든 님의 아버님과 어머님의?” 

여자의 푸른 눈동자가 살짝 가늘어졌다. 그러자 에이든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아이는 사실 고모할머니의 딸입니다.”

“네? 에이든 님의 고모할머니라니요? 그분은 이미 돌아가셨지 않습니까. 한데 돌아가신 분의 딸이라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돌아가신 분이 아기를 낳을 리는 없잖습니까.”

왜 가만히 있는 내가 저 여자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싸돌아다니는 것이 소문났을 거니 이젠 숨길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숨길 일도 아니었는지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맘껏 뛰어놀라고 하셨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지금은 판테르 공작저에서 생활하는 중이고요. 판테르 공작님이 어떤 분인데 가짜 아이를 친딸로 거두겠습니까.”

에이든이 이성적으로 이야기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요. 그럼 제가 에이든 님과 결혼하면 그 꼬마가 제 시고모님이 되신다는 건가요?”

“아마도요.”

“전 절대로 싫어요. 그런 꼬마를 시고모님으로 모셔야 하다니, 하늘 같은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계시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고모를 모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고모는 판테르 사람이니까요.”

저 말이 나올 정도면 둘이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제이든은 피식 웃었다. 

“저 여자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왜?”

“왜긴, 내가 모나코 후작 아들놈을 알거든. 근데 평소에 동생이 사치가 심하고 시댁 식구가 최대한 적은 곳이랑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어.”

“아…….”

내 옆에 엎드린 제이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 줬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군데 왜 에이는 저 여자 조아해?”

“글쎄, 숫기가 없기도 하고 저 여자가 예뻐서? 나도 저런 여자가 후대의 티그리스 공작부인이 되는 것은 원치 않지만, 형이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제이든의 말을 듣던 중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가세요. 당분간은 에이든 님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센데? 남의 집에서 집주인 증손자이자 후대에 이 집의 주인이 될 남자한테 나가란다. 대단한 자존심인가 아니면 초장부터 기를 죽여서 휘어잡으려 함인가. 

나한테는 싸늘하게 대하며 데면데면하던 에이든은 쩔쩔매며 여자 말에 따라 나갔다. 

저런 멍청이 같으니라고. 

나한테 하는 것 반의 반만 저 여자한테 해 봐라. 남자 망신 다 시키는구나.

“낄낄, 남자 망신 다 시키네. 아! 고모, 나 다음 수업 있어서 이만 가 볼게. 나가는 방향은 저쪽이야. 알았지?”

뒤로 엉금엉금 기어서 후퇴한 제이든이 윙크하더니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난 그 자리에 남아서 모나코 후작 여식을 지켜봤다. 

아무리 나를 없는 셈 치고, 못된 행동을 한다고 해도 조카는 조카였다. 내 조카를 내가 꼬집고 발로 차도, 남이 차면 기분이 더러운 법이었다.

“하아, 시고모? 내가 그깟 꼬마를 모실 일 있어? 어차피 에이든 님은 나를 사랑하니까 내 말 대로 해 줄 거야. 결혼하면 이 집도 재산도 다 내 것이 될 거니까.”

응, 그건 너 혼자 생각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나는 잠시 후 머리에 꽂은 꽃을 떼어내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뛰어가다가 처음 보는 여자를 봤다. 까만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를 지닌 여자는 청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봤다.

“모야, 에이 보고 이써?”

창가에서 책을 읽는 에이든을 보는 눈빛이 아주 살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마침 이곳으로 오는 마리아를 보며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쉿!”

내 손가락을 본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안아 올렸다. 마리아의 품에 안긴 나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마리아! 이짜나. 군데 나 궁구만고 이써여.”

“뭐가 그리 궁금할까요? 저한테 다 말씀해 보세요.”마리아의 귓가에 조심히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이며 방긋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 *

나의 일과는 매우 바빴다. 아침을 먹고 제이든과 놀아 주기, 점심 먹고 자유 시간, 저녁 먹고 모두 앞에서 재롱부리기, 조카님들에게도 재롱 전가 시키기.

매우 빼곡한 일정이었지만 재롱을 부린 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빠져나왔다.

“그게 왜 필요한 거니?”

“피료해서여, 주시믄 안 대여?”

“상관없긴 하다만, 그래. 우리 손녀 부탁이니 내가 들어줘야지. 너한테 뭐든 해 주마.”

할아버지에게 뭔가를 받아든 나는 방긋 웃으며 볼에 살짝 입 맞췄다. 그러자 할아버지의 입술에 곡선이 그려졌다. 

“어휴! 요 귀염 말랑 콩떡 같으니라고. 왜 이리 늦게 떨어진 것이더냐. 이왕 떨어진 거 할아버지 집에 떨어졌으면 사위한테 비밀로 하고 길렀을 것인데.”

그게 원통하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품에서 빠져나온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저녁 먹고 공부하러 들어가는 제이든을 만났다.

“제이!”

“어랴? 고모가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이야? 할머니 곁에 있을 시간 아니야?”

“나두 바뿐 여자야.”

“당연히 바쁘겠지. 이왕 온 김에 나 고대어 공부 좀 봐주라. 선생님이 과제 내줬는데 잘 안 풀리네.”

얼떨결에 제이든의 방으로 들어가서 조카님의 과제물을 해결해 줬다.

“요것두 몰랑? 제이 바부.”

“아니야. 이게 어려운 것뿐이라고.”

“군데 나눈 아눈데!”

“그건 고모가 똑똑해서 그런 것일 뿐이지. 암 그렇고말고! 고모는 우리 집안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서 똑똑한 거야.”

갖다 붙일 말이 없자 핏줄 타령하는 제이든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군데 에이 방 오디야?”

“내 옆방이야. 가고 싶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카님 방 시찰은 해 봐야 하지 않겠니. 침대 밑에 요사스러운 책이 있을 수도 있고 눈이 휘둥그레질 내용이 적힌 책이 커버만 바꿔 책장에 꽂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이든은 곧장 나를 안고 에이든의 방문 앞에 서서 노크했다.

“누구?”

“나야. 문 연다.”

안에 에이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제이든은 허락도 받지 않고 벌컥 문을 열었다. 아무리 봐도 이런 전적이 자주 있는 것 같았다.

“넌 여기 왜 왔…… 뭐야. 꼬맹이는 왜 데려왔어. 언제는 모르는 척하더니 이젠 아주 죽이 잘 맞나 보네.”

비아냥대는 에이든을 본 제이든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형은 모르나 보구나. 고모가 얼마나 똑똑한지.”

“꼬맹이가 똑똑해 봤자지. 그나저나 여긴 왜 온 거야?”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에이든을 본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에이, 너 연애사옵 잘 안 대지?”

“음? 그걸 어떻게…….”

내 말에 에이든이 흠칫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나눈 어룬이라서 다 알지.”

“거짓말!”

“아뉜데. 군데 너 구로케 연애사옵하면 망해. 이 똥몽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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