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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26)화 (26/164)

26화. 

다니엘과 헬레나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지만 두 조카는 다른 의미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 저희는 나이가 많아서…….”

“웅, 구로니까 나이 마눈 하부지, 하무니한테 해바.”

너희보다 나이 많은 사람 많으니까 얼른 해 보라는 말에 에이든과 제이든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그래. 생각해 보니 증손자들 재롱 한 번 못 봤구나. 얼른 해 보렴.”

“죄, 죄송합니다. 할머니, 저는 그런 거 못 해요.”

할머니의 말씀에 나이 많은 조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때끼! 모타는 게 오디써! 안 하눈고지. 자! 나 따라해바. 얼룬!”

내가 허리에 손을 얹고 따라 하라고 말하자 두 조카는 눈치를 살피며 어쩔 수 없이 똑같이 했다. 

“무룹 구피면서 따라해바. 올치! 구로케 하눈 고야. 노래도 따라해바. 파란 하눌, 파란 하눌 꾸미.”

“파,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그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칠십 평생 처음으로 증손자들의 재롱을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전부 가능하게 한 나는 그날부터 떠받들어지기 시작했다. 티그리스 공작저에 온 지 하루 만에 이룩해낸 쾌거였다. 

* * *

저녁에 식사하고 할머니 옆에서 놀며 이야기하다가 늦은 시간이 되자 그때야 각자 방으로 빠져나갔다. 나는 당연히 할머니 옆에 누웠다. 

한동안 잠을 안 주무시며 내 얼굴을 쓰다듬은 할머니가 자상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잠결에 할머니가 어떤 상자를 만지며 눈물짓는 게 보였다. 하지만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아, 쉬 마려.”

자는 중에 너무나 쉬가 마려웠다. 그래서 얼른 일어나서 주변을 살폈지만, 화장실이 보이지 않았다. 급히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렸다. 어스름한 새벽에 깨어난 나는 세 개의 건물이 보이자 곧장 허둥지둥 뛰어갔다. 

문을 활짝 열어 보자 화장실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더러웠다. 아무리 급해도 바로 쉬를 눌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한데 그곳에 있는 화장실은 말 그대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구멍만 뚫린 것을 보자 나는 배를 움켜잡았다. 저곳에서 싸다가 잘못하면 뽕 빠질 것만 같았다. 

“오또케, 오또케!”

너무 급해서 다시 옆에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도 화장실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문짝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볼일 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들어오면 다 보이는 구조였다.

“앙대, 주굴거 같단 마리야.”

좌절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고 눈을 떠보자 옆에 할머니가 보였다. 

“아가, 쉬 마렵니?”

“헉!”

그때야 난 꿈을 꿨다는 것을 알고 바로 발딱 일어나서 침대를 만지작거렸다. 다행히 사고를 치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할머니가 설렁줄을 잡아당겼다.

“기침하셨습니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아이가 쉬가 마려운 모양이니 도와주게나.”

“네, 그리하겠습니다. 아가씨, 이리 오시지요.”

나를 안은 시녀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쾌감에 온몸이 짜릿짜릿해질 정도였다. 시원하게 볼일을 본 나는 세상 편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씻으시겠습니까.”

“니에.”

짤막한 대답을 함과 동시에 곧장 욕조에 따뜻한 물이 담겼고 홀라당 벗겨져 욕조 안에 잠겨들었다. 따뜻한 물이 몸에 닿자 나도 모르게 축 늘어졌다.

“어머나, 우리 아가씨. 축 늘어진 말랑말랑한 콩떡 같아요. 어쩜 좋아. 너무나 귀여워요.”

나를 씻기던 시녀가 내 볼을 잡더니 그곳만 집중적으로 닦았다. 그러더니 내 목걸이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끈한 물로 깨끗하게 씻겨진 나는 곧장 아빠가 챙겨 준 새 옷으로 갈아입혀졌다. 

“세상에나, 어쩜 이리도 예쁘답니까. 저도 판테르 공작저에 취업하고 싶어요. 그래야 우리 아가씨를 실컷 볼 테니까요.”

“후암, 내 시녀는 제니인데여.”

“전속 시녀도 있는 건가요? 세상에나. 그분이 너무 부럽네요.”

내 머리카락을 말려 준 후 빨간 리본을 묶어 줬다. 강제로 치장당한 나는 할머니 옆에 앉혀졌다.

“하무니, 군데 요기 너무 깜까메여. 라삐는 어두운 거 무셔.”

아침임에도 검은 커튼이 쳐져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내가 깜빡했구나. 어린아이는 어두운 것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미안하구나, 우리 새끼.”

손가락을 꼼질대며 말하자 모든 게 금방 이뤄졌다. 커튼이 젖혀지며 아침에 갓 떠오른 따스한 햇볕이 들어왔다.

“우리 새끼 덕분에 얼마 만에 햇빛을 보는지 모르겠구나.”

“하무니, 깜깜한데 이쓰면 더 아푸댔어요. 구니까 아프로는 발근데서…….”

아침부터 내가 약간의 잔소리를 했지만, 할머니는 그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시녀가 밝게 웃으며 커튼을 꼭 묶었다.

잠시 후 식탁이 놓였고 티그리스 성을 지닌 이들이 들어왔다. 다들 간단하게 문안 인사를 하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하무니, 요고 머그세여.”

아침이라 입맛이 없어서인지 할머니는 쉽게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초 필살기를 시전했다. 

“아프로 하무니가 안 머그면 나두 안 머글 꺼에여.”

“오! 미안하구나. 이것 보려무나. 할머니는 잘 먹고 있으니까 우리 아가도 얼른 먹으렴.”

내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안 먹고 버티자 그때야 할머니가 식기를 든 채 드시기 시작했다.

“허허, 우리 라피가 있으니 부인도 드시는군요. 그제까지만 해도 안 드시더니.”

“입맛이 없어도 이젠 어쩔 수 없지요. 제가 안 먹으면 우리 새끼가 빼빼 마를 것 같으니.”

아동 확대범들은 나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곧장 간식이 들어왔다. 케이크를 먹으며 두 손을 볼에 대고 바르르 떨었다. 그 모습이 좋은지 조카님들을 제외하고 다들 미소를 지었다.

간식 시간이 끝나자 할머니는 주치의 손에 맡겨졌고 할아버지는 가주로서 일하느라 바쁘셨다. 오빠는 할아버지 보조, 헬레나는 티 파티 준비로 바빴다. 두 조카님은 공부해야 한다면서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혼자 남겨진 나는 시녀 마리아와 함께 티그리스 공작저를 구경해야만 했다. 

“여긴 역대 티그리스 가문의 가주님들 초상화가 걸린 곳이에요.”

“헤에, 나랑 또가테.”

“네, 우리 아가씨랑 머리카락 색과 눈동자가 똑같아요. 티그리스 공작가의 피가 흐른다는 뜻이지요.”

티그리그 공작가의 직계는 은발에 황금색 눈동자를 지녔다. 그런 것으로 치면 난 이곳의 직계는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닮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초상화를 다 보자 다른 곳을 알려 주며 마리아가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묘하게 변한 마리아였다. 마치 화장실이 급한 표정이었다.

“아, 아가씨 제가 너무 급해서…….”

“가따와여. 요기 이쓸께여.”

“네, 혼자 어디 가시면 안 돼요. 아셨죠?”

내게 몇 번이나 다짐을 받은 마리아가 급히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복도에 서 있다가 옆에 있는 방문이 조금 열려 있기에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봤다. 

“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짜증나네.”

둘째 제이든이었다. 이곳이 제이든의 방인 듯했다. 뭔가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린 제이든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해결되지 못해서 안절부절못한 듯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뭔지 몰라도 잘되었다는 듯 씩 웃었다. 

“뭐, 뭐야. 왜 여기에 애가 있는 거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가 제이든과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안농, 요기소 모해?”

“여긴 내 방이거든. 그러니까 좀 나가 줄래?”

“어룬이 왔는데 나가라니, 오디서 배어머근 버르시야.”

“발음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됐고, 나가. 안 그래도 정신 사나운데 거기에 더 보태지 말고.”

어른들이 있을 때만 내게 존댓말을 쓰는 제이든은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그런 제이든을 본 나도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나이가 씨팔이묜 모해. 암거도 모타묜서.”

“아니거든. 나 충분히 잘하거든. 단지 이것만 못해서 그런 것일 뿐이야.”

내 말에 발끈한 제이든을 본 나는 안으로 뽀짝뽀짝 들어갔다. 그러고는 예쁜 얼굴을 험상궂게 만든 제이든 앞에 놓인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걸 본다고 뭘 알겠어. 이건 말이야. 어른도 하기 힘들다는 고대어야. 그러니까 어린애는 어린애답게 먹고 자고 싸기나 하지. 여기에서 어수선하게 돌아다니지 말고.”

제이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나는 피식 웃었다. 고대어라고 적힌 글씨가 낯설지 않았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로판 기본 규칙 중 하나! 

바로 고대어는 대부분 영어나 한국어이다. 그리고 내 예상은 꼭 맞아떨어졌다.

내 눈에 보이는 고대어는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이었다. 역시 갓 세종! 

고대에 한국인이 나처럼 차원이동을 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15년간 보고 써 왔던 글을 내가 잊어버릴 리가 없었다.

“나 요고 아눈데.”

“헹! 거짓말하지 마.”

“징짠데.”

“꼬맹이 주제에 어른들한테 예쁨받으니까 겁도 없이 까불고 있어. 됐으니까 썩 꺼져 줄래? 여긴 아이들이 올 만한 곳이 아니야.”

내 말을 거짓말로 여기는지 제이든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도 나는 기를 쓰고 글씨를 노려보며 말했다.

“쓰펜타 대류력 오배오십이뇬, 나이쩰 화산 폭바리 이러나소…….”

고대어라고 적힌 글을 읽자 제이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고는 다른 곳에 놓여 있는 책을 뒤적여 보고는 두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최대한 또박또박 다섯 줄 정도 읽어 내려가자 책을 들고 있던 제이든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 더 일거?”

“아, 아니. 그, 그 정도면 충분해.”

손이 떨리더니 이젠 입마저 떨렸다. 수전증에 이어 이젠 입술도 떠는 건가. 제이든의 상태를 본 나는 고대어에서 눈을 뗐다.

“요기 잼 업써. 나눈 딴 데 갈끄야.”

이젠 이곳에 흥미가 떨어진 나는 얼른 마리아가 기다리라고 했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급한 볼일을 다 끝내고 와서 두리번거리던 마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아가씨, 잃어버린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 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요.”

“미아내여. 구치만 요기 잼 업써여. 바께 나가고 시퍼여.”

“그랬어요? 그럼 우리 밖으로 나가요.”

마리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갑자기 방에서 제이든이 튀어나왔다.

“안 돼!”

“네? 도련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놀란 마리아가 두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러자 제이든이 갑자기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잠시 꼬맹이, 아니 고모는 내가 대여 좀 할 테니까 부르면 그때 오게나. 그럼. 크흠흠!”

“하지만 아가씨랑 밖에서 놀기로 했는데…….”

“그것도 내가 할 테니까 자네는 부르면 오게나. 내가 뭐 꼬맹이 고모를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놀라는 건지 모르겠군.”

내 의견 따위는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온 제이든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곧장 고대어가 적힌 곳으로 나를 안고 갔다. 아기용 의자가 없었던지라 제이든은 나를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말했다.

“꼬맹, 아니 고모님! 이거 어떻게 읽은 거야?”

“구냥 누네 보여서. 나 요고 아눈 거 가타.”

“그렇구나. 그럼 말이지. 나 좀 가르쳐 주면 안 될까? 우선 뜻은 모르더라도 읽고 쓰는 거라도. 응? 제발!”

어허! 이제 세 살짜리한테 뭘 바란 것인가. 언제는 고모 취급도 안 해 주더니. 

난 입술을 쭉 내민 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나 삐쳤소를 시전하니 그때부터 제이든이 온갖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케이크 좋아해? 말랑한 콩떡은 어때? 갖다 줄까? 사탕은? 응?”

“시로.”

“고모 제발, 나 이거 못하면 선생님한테 혼나. 내가 혼났으면 좋겠어?”

“응, 나뿐 아이는 혼나도 대.”

“나 나쁜 아이 아니야. 앞으로 착한 아이 할게. 그러니까 제발 도와줘. 응?”

옆에서 제이든이 두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었다. 하지만 쉽게 허락해 주지 않자 이번엔 다른 것을 가지고 왔다.

“이거 어때? 아직 어린애라 잘 모르려나. 사파이어라고 하는 건데 나중에 이걸로 사탕도 맘껏 사 먹을 수 있…….”

제이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사파이어에 홀려 버렸다. 할아버지가 준 루비보다 더 색감이 영롱해 보였다.

“에뿌다. 마싯써 보여.”

“이건 먹을 거 아니야. 먹으면 큰일나. 이건 나중에 돈으로 바꿔서 쓸 수 있어. 그러니까…….”

사파이어 따위에 내가 현혹될 성싶더냐. 고개를 다시 돌리려 했지만, 이번엔 다른 것을 꺼내 왔다. 에메랄드 머리핀을 내게 찔러 줬다.

“우리 고모 예쁘네. 이거 선물로 줄게.”

“징짜? 히야, 이뽀!”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머리핀을 받은 나는 그날 제이든의 선생이 되기로 했다.

“아프로 난 선생이고, 넌 학쌩이야. 모타면 맴매 하꼬니까 정신 차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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