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24)화 (24/164)

24화. 

내가 판테르 공작부인과 닮았다는 말은 심심하지 않게 많이 들었다. 한데 판테르 공작부인을 낳은 친모까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완전한 판박이처럼 닮은 게 분명했다. 

“여보, 이 아이는 우리 딸이 아닙니다. 우리 딸이 어미가 얼른 낫길 바라면서 하늘에서 보내준 아이라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딸 세라피나가 맞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안은 채 가까이 가자, 앙상한 손가락이 나를 어루만졌다. 내 조그만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살짝 닿기만 해도 생채기 날 것 같은 약한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 딸은…… 손바닥에 점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내 손바닥은 매우 깨끗했다. 그런 내 손을 계속 만지작거리더니 물었다.

“네가 진정 우리 세라피나의 딸이더냐.”

그 질문에 순간 내게 다수의 눈빛이 쏟아졌다. 역시나 이럴 때도 필요한 것은 눈치였다. 

“니에, 아빠가 마마랑 이룸을 똑가치 지어 주셔써여. 나이는 세 짤이구여. 하무니 보고시퍼쪄여.”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자 할아버지와 헬레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할머니는 눈물을 그쳤다.

“아빠 이름은 무엇이더냐? 엄마 이름은?”

“우웅, 아빠눈 조쓔아, 마마눈 쎄라삐나, 언냐눈 에리까, 혐부눈 쩨롬, 오빠눈 유찐, 하부지눈 뻬레쓰에요.”

내가 알고 있던 이름을 총동원해서 말하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줬다. 

“그래, 우리 세라피나의 딸이 맞나 보구나. 난 네 어미를 낳은 할머니란다.” 

희미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를 본 나는 방긋 웃었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하무니 마니 아포여? 라삐가 호, 해 주면 굼방 낫눈데.”

“그렇구나. 그럼 할머니한테 호 해 줄래? 할머니 가슴이 막 아픈데.”

다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검은 눈동자를 본 나는 할아버지 품에서 벗어나 침대에 섰다. 지금이라도 멈출 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뛰는 할머니의 왼쪽 가슴을 쓰다듬어 주며 그곳에 호하고 불어 줬다. 

“호오, 호오, 아푼고, 아푼고 다 나라가라.”

주문을 외쳐 주자 할머니가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나를 꼭 품어 줬다.

“그래, 내 새끼, 우리 새끼가 여기 있었구나.”

나를 안고 등을 다독여 준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할머니의 눈물을 할아버지가 닦아 줬다. 

“여보, 힘내시구려. 우리 딸이 낳은 라피가 여기 있는데 세상과 연을 끊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어린 것을 두고 제가 어찌 먼저 눈을 감겠습니까. 우리 새끼가 커서 결혼하고 애 낳는 것까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뭔가 새로운 목표를 세운 듯한 할머니는 나를 품으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의 품에 안긴 나는 얼른 가방 속에 있는 것을 꺼내 들었다.

“요고는 젤 아끼눈곤데 하무니 주께여.”

달콤한 캐러멜을 꺼내 할머니의 입에 넣어 줬다. 그러자 할머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그려졌다.

“세상에나, 우리 라피가 줘서인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구나. 내 새끼, 고맙구나.”

“니에, 하무니, 좀 이따가 저랑 가치 맘마 머거여.”

“오냐, 오냐. 그리해야지. 암! 우리 새끼랑 같이 밥 먹으마.”

내 볼에 쪽쪽 소리 나도록 입맞춤한 할머니가 밝은 미소를 짓자 뒤에 서 있던 할아버지랑 헬레나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자! 할머님도 이제 쉬셔야 하니까 우리 밖으로 나갈까요. 라피 아가씨.”

“니에, 하무니 이따가 바여.”

“그래, 그러자꾸나.”

처음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할머니의 볼에 입맞춤한 나는 헬레나의 손을 잡았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벗어난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계에 떨어져서 이젠 팔자에도 없는 손녀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게 마냥 싫지는 않았던 나는 헬레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판테르 공작부인의 오빠의 아들 즉 항렬로 따지면 사촌 오빠의 부인인 올케 되는 사람을 보며 물었다.

“군데 라삐는 세 짤인데 새언냐는 몃짤이에여?”

“여자의 나이는 비밀인데 우리 라피 아가씨에게만 조심히 말해 줄게요. 제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랍니다. 아가씨의 사촌 오빠와 동갑이고요. 좀 일찍 결혼했답니다.”

“우웅, 구로쿠나. 구롬 삼초는 오디쪄여?”

“신께서 일찍 부르셔서 아버님과 어머님을 데리고 가셨어요. 그리고 다른 형제분들은 없고요.”

결론은 외삼촌과 외숙모는 돌아가셨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티그리스 공작가엔 1남 1녀가 있었는데 자식들이 부모보다 앞서갔다는 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인생도 참 기구하기만 했다.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늦둥이 고모님이 돌아가셔서 두 분이 쓰러지셨는데 할머님의 상태가 좋지 않으신 바람에…….”

굳이 물어보지 않았는데 헬레나는 내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줬다. 자식을 모두 앞세우고 할머니가 쓰러져서 몇 년째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 사촌 오빠는 지금 할아버지의 보조로 일하고 있다는 것, 아들 두 놈은 마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헬레나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가씨, 방에 가면 제가 동화책 읽어 줄까요?”

“니에.”

항상 제니가 자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 줬었기에 헬레나가 읽어 준다는 말이 낯설게 들리지는 않았다. 곧장 아까 나왔던 방으로 들어간 나는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헬레나가 몇 권의 동화책을 꺼내 읽어줬다. 

“아주 오랜 옛날에 과자로 만든 집에서 마녀가 살았답니다. 한데 길을 잃은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과자로 만든 집을 먹어 버렸어요.”

“우웅, 아이들 나뽀, 마녀 집 다 머거써여. 군데 사과도 안 해. 나뽀.”

배가 고파서 남의 집을 뜯어 먹은 아이들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전에 집이 뜯긴 마녀의 손해가 눈에 보였다. 내 말을 들은 헬레나가 뭐가 그리 좋은지 웃었다. 

“오! 아가씨가 해 준 말을 들어 보니 그렇게 해석이 될 수도 있군요. 전 이제껏 마녀가 나쁘다는 이야기만 들어서 세뇌가 되어 버렸는데. 역시 우리 아가씨 최고예요.”

내가 좀 한 해석 하지. 음! 암 그렇고말고. 

헬레나가 동화책을 읽어 주는 것을 듣던 나는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나도 모르게 제니에게 한 것처럼 무릎베개를 벤 것이다. 얼른 일어나려 했지만, 헬레나가 배를 다독다독해 주며 동화책을 읽어 줬다. 

처음엔 정신이 맑았는데 동화책 읽는 소리와 헬레나의 손길에 눈꺼풀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다시 까무룩 잠이 들 것 같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요?”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처음엔 몰랐는데 식사 준비가 되었다는 말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

“맘마 머그러 가여.”

“그래요. 아가씨, 우리 맘마 먹으러 가요.”

내가 손을 내밀자 동화책을 내려 둔 헬레나가 내 손을 잡았다. 헬레나의 손을 잡고 이끌고 복도로 나오자 몇몇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별채에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알겠어요. 라피 아가씨, 우리도 서둘러서 별채로 가요. 호호호.”

헬레나의 말에 시녀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아까 갔던 곳을 다시 간 나는 아까보다는 환한 공간에 차려진 요리를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리 온. 우리 새끼, 저기 앉아서 할아버지랑 맘마 먹으렴.”

할머니의 부름에 나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지 할머니는 등에 커다란 베개를 대고 몸을 일으켜서 침대 위에서 식사하셨다. 침대에 놓인 테이블엔 할머니 몫의 식사가 놓여 있었는데 할아버지와 헬레나가 먹는 식사와는 달랐다. 

“하무니, 하부지, 새언냐! 마니 드세여.”

“오냐, 많이 먹으마. 어휴! 어쩜 저리도 말하는 게 예쁘더냐.”

“헤헤, 하부지 달마서 구래여.”

식사 시작도 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러자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의 시선도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라피 아가씨, 혼자 먹을 수 있나요?”

“니에, 연숩 마니해쪄여.”

할아버지가 먼저 숟가락을 들자 그때야 나도 조그만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떠먹었다.

“마시쪄.”

“그리도 맛있더냐. 많이 먹으렴.”

할아버지가 손수건으로 내 입가를 닦아 주며 말했다. 아무리 연습했다고 해도 입술에 수프가 묻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배고픔에 허겁지겁 수프를 먹는 모습을 본 할머니는 근처에 있는 고용인들에게 말했다.

“우리 애가 너무나 깡말랐네. 뭐 하는가. 얼른 맛있는 것을 더 가져다주지 않고는.”

“안 말랐눈데여.”

지금도 충분히 통통했다. 이곳에 떨어지고 나서 판테르 공작저의 아동 확대범들 때문에 살이 찐 상태였다.

“아니야. 대체 판테르 공작저에서는 뭘 먹인 것인지 원. 저것 보게나. 우리 새끼의 손에 뼈밖에 없어. 세상에나, 거기에서 우리 애를 굶긴 것인가.”

“마니마니 머거써여. 징짠데.”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고 해도 할머니 귀에는 들리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덕분에 내 앞에는 할아버지와 헬레나 앞에도 없는 음식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여보, 뭐 하고 있나요. 얼른 우리 손녀한테 먹이세요.”

“안 그래도 먹이고 있으니 당신도 식사하세요.”

“전 우리 강아지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릅니다.”

내가 뭘 먹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너무나 많이 먹어서 배가 빵빵해졌다. 더 먹으면 배탈이 날 것 같아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도 내 앞에 있는 음식들은 도저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불러서 아야할 거 가타여.”

“그래? 그럼 소화제 먹고 마저 먹자꾸나.”

어마어마한 소리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할머니 침대 위로 올라갔다. 

“하무니, 배 빵빵해여.”

앙상한 할머니의 손을 내 배에 올려 문질렀다. 그때야 할머니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데 왜 하무니는 맘마 안 머거여?”

“음? 아, 할머니가 입맛이 좀 없어서.”

“낵아 머겨주께여.”

나만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할머니 수프에 숟가락을 퐁당 담가서 가득 떴다.

“아아, 하세여.”

“음? 아…….”

살짝 벌려진 할머니의 입 안에 수프를 담은 숟가락을 넣었다. 그러자 수프를 머금고 있는 모습을 본 나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베 담찌마고 꿀꺽 삼키세여.”

“꿀꺽 삼켰단다.”

“구럼 더 머그세여.”

약초를 넣었는지 수프 색깔이 푸르스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다이어트가 될 것 같은 색감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연거푸 수프를 떠먹였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내가 준 수프를 꿀꺽 삼키셨다. 

수프를 다 드시자 이번엔 샐러드를 포크로 찍어 드렸다. 처음엔 어색해하시더니 이젠 곧잘 내가 드린 것을 자연스럽게 드셨다. 샐러드까지 전부 비우자 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히유, 힘드러. 하무니 아프로는 편식하문 앙대여. 편식하문 때찌해여.”

“그, 그래. 앞으로는 편식하지 않으마. 내 새끼, 우리 새끼 덕분에 얼마 만에 안 남기고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구나.”

두 개의 빈 접시를 본 할아버지와 헬레나들은 전부 놀라워했다. 나중에야 평소 할머니는 수프 한 숟가락 들까 말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식을 앞세우고 마음에 병이 들어 음식 섭취를 잘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내 덕분에 몇 년 만에 식사를 제대로 하셨다는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여보, 우리 라피가 하는 말 잘 들으십시오. 편식하면 때찌한다고 하는군요.”

“네, 우리 라피가 무서워서라도 꼭 다 먹어야겠어요.”

음식을 다 먹자 힘이 나는지 할머니는 내 엉덩이를 다독다독해 줬다. 아까 등을 다독다독해 줄 때보다 약간 힘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 아가씨가 정말 최고예요. 손자랑 증손자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아 버렸어요.”

식후 차를 마시며 헬레나가 환하게 웃었다. 어른들이 차를 마시고 있을 때 나는 물을 마시다가 고개가 저절로 꾸벅여졌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더니 다시 졸렸다.

“하무니, 졸려여, 요기서 자묜 앙대여?”

“왜 안 되겠니. 여기서 자렴.”

하품하는 나를 꼭 안아 준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너무나 따뜻하고 포근해 막 자기 직전에 나도 모르게 뭔가를 말하고 말았다. 

“엄마, 보구시퍼…… 나 버리디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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