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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6)화 (16/164)

16화.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머물기 위해서는 에리카를 꼬셔 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 사탕을 주며 말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였건만 딸기 사탕을 쥔 에리카는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딸기 알레르기라도 있는 건가? 

순간 흠칫했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서 이번엔 다른 사탕을 꺼내 들었다.

“요고 포도마시에여. 요고로 주까여?”

보라색 포도맛 사탕을 그녀의 손 위에 올려 주며 조심히 눈치를 살폈다. 한데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기만 했다. 그런 에리카의 시선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는지 제롬이 옆으로 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에리카, 아무리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면…… 에리카?”

제롬이 그녀를 달래며 이야기하던 중에 갑자기 에리카의 푸른 눈동자에 뭔가가 엉겨 붙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릴 정도로 포도맛도 싫어했던 건가. 난 너무 당황해서 얼른 사탕이 든 가방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 분홍색 사탕을 내밀었다.

“요고 복쑹아마신데, 사탕 시러해여?”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인데. 좋아하는 맛으로 골라 에리카의 손에 얹어 줬다. 그러자 에리카의 눈에서 눈물이 터졌다. 

“으흑…….”

“에리카,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에리카?”

“어흑, 모, 몰라. 몰라요.”

난 단지 호감을 사려고 사탕을 준 것뿐인데. 이렇게 울 정도로 사탕을 싫어한 줄 몰랐던 나는 일이 어그러지자 울상을 지으며 판테르 공작을 올려다봤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러니까 울먹이지 말렴.”

앞에서 에리카가 우니까 나도 모르게 울적해져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 했다. 그런 나를 안아 준 판테르 공작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 줬다. 

“오빠, 이뿐 언냐가 우러여.”

판테르 공작의 손수건을 받은 나는 그걸 에리카에게 내밀었다.

“낵아 잘모해쏘여. 우지마여. 자모해쏘여.”

“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구냥 다 잘모해쏘여. 미아내여.”

내 손에 들린 손수건을 빼앗다시피 한 에리카가 버럭 소리치더니 다시 제롬의 어깨에 기댄 채 울었다. 에리카에게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사과한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오스카, 에리카를 방으로 안내해 주게나. 좀 진정해야 할 것 같으니.”

펑펑 우는 에리카를 본 오스카는 급히 방을 안내해 줬다.

“자네는 왜 가나.”

“에리카 가는 데 제롬이 가니까요. 아버님.”

“난 자네를 사위로 인정한 적 없네만.”

“괜찮습니다. 사위는 아니더라도 에리카의 법적인 남편이니까 저도 판테르 가문의 가족이랍니다. 그러니 괜한 고집 그만 부리시고 우리 인절미, 아니 라피, 잘 돌봐 주세요.”

에리카를 다독여 주며 움직이는 제롬을 보며 판테르 공작이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특유의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간 제롬이었다. 

제롬이 에리카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판테르 공작을 본 나는 가슴에 찰파닥 들러붙었다. 

“저놈이 네게 해코지한 것은 아니더냐?”

“우웅, 버둥버둥하는데 도아조써여. 군데 볼을 막 이케조케하며서 조물락거려쏘여.”

그때야 분홍색으로 물든 내 볼을 본 판테르 공작의 두 눈이 새파랗게 불타올랐다. 

“나도 이렇게까지 만져 본 적 없는데 감히! 하여튼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군.”

그 말을 하면서도 판테르 공작의 손이 내 볼에 닿아서 주물러댔다. 탱글탱글 쫀득쫀득 질척질척한 볼때기의 매력에 폭 빠진 판테르 공작의 손은 한동안 내 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공작님, 계속 아가씨의 볼을 주무르면 아플지도 모릅니다.”

곁에서 본 벤스가 나서서 말해 줬다. 그때야 판테르 공작의 손이 내 볼에서 떨어졌다. 아까보다는 더한 열감이 볼에 느껴졌다. 

“가주님, 아가씨께서 낮잠 잘 시간입니다.”

내 가방을 전부 수습한 제니가 붉은 눈시울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낮잠? 그런 거라면 내가 재우지.”

제니가 나를 달라며 손을 뻗었지만 판테르 공작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내 꼼지락거리던 손이 그의 옷깃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가 아이를 안정적으로 안을 수 있게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커 버릴 것 같았다. 

마법을 쓴답시고, 나뭇가지에 걸려 파닥파닥 움직이다가 제롬을 만나서 판테르 공작에게 인수되었다. 그리고 에리카에게 사탕을 주다가 퇴짜 맞은 게 오늘 한 일이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유독 피곤했다. 

판테르 공작의 가슴에 안긴 채 끔뻑 졸자 그의 손이 내 등을 감쌌다. 조금은 안정적이 되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아이들에겐 먹고 자고 싼 후 노는 게 너무나 버겁고 힘들었다. 

* * *

판테르 공작가의 무남독녀인 여덟 살 에리카는 입술을 삐쭉였다. 지금 눈앞에 닥친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때리고 학대한 어머니가 이혼을 당했고 그것을 묵인한 유모가 쫓겨났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지만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났다. 기사 아카데미를 조기에 졸업한 천재 기사가 이곳으로 면접을 보러 왔다. 

기사치고 예쁜 여자는 대뜸 아버지에게 대시했다. 알고 보니 어렸을 때 알고 있었던 사이라나? 쟁쟁한 집안의 딸임에도 연을 끊고 이곳으로 올 정도로 그녀의 열정은 엄청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엮이면서 그녀가 자신의 새어머니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새어머니? 새어머니 좋아하네. 누구 멋대로 새어머니래!’

친모에게 학대당한 기억이 남아 있던 에리카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처음엔 제게 점수 따려고 이 짓 저 짓 다 하겠지만 아버지와 결혼한 순간 변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애라도 낳으면 새어머니는 제 핏줄만 싸고돌 게 뻔했다. 

정원에 앉아서 혼잣말을 내뱉던 에리카는 씩씩댔다. 나이도 자신과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새어머니가 아니라 언니뻘이었다. 그런 여자에게 새어머니란 호칭은 절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오늘따라 생각할 게 많은 에리카는 한동안 성을 내다가 기가 죽기를 여러 번이었다. 기분 차가 극심한 에리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을 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녕, 나는 세라피나라고 한단다. 만나서 반가워.’

그녀였다. 아버지를 홀린 불여우! 아니 은여우가 맞나. 은발에 금안을 지닌 세라피나가 제 허락도 받지 않고 앞에 앉았다. 

‘어머나,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말하는 세라피나를 본 에리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뭡니까.’

사근사근한 세라피나의 인사에 에리카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런 에리카를 본 세라피나가 방긋 웃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예쁜 아가씨, 사탕 빨면서 나랑 이야기할래?’

빨간색 사탕을 본 에리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을 본 세라피나가 주머니에서 다른 것을 꺼내들었다.

‘이거 포도맛이야. 이것으로 줄까?’

보라색 사탕을 에리카의 손 위에 올려 준 세라피나가 방긋 웃었다. 하지만 그 사탕을 보고도 에리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거 복숭아 맛인데, 사탕 싫어하니?’

여덟 살짜리 아이이니 사탕을 좋아할 것이라고 여긴 세라피나가 가지고 온 분홍색 사탕을 에리카에게 줬다. 하지만 에리카는 사탕만 볼 뿐이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사탕을 먹다가 어머니한테 회초리를 맞은 후부터 먹지 않았다. 

‘전 사탕 안 먹어요.’

‘아이들은 사탕을 좋아하는데, 아니었니?’

‘안 먹는다고 말했잖아요. 안 먹어요. 이거 먹으면 어머니가 날 때렸단 말이에요.’

버럭 소리 지른 에리카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이거 하나 먹고 싶어서 사정하고 빌었는데, 끝내 어머니와 유모는 주지 않았다. 

양치질 잘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또 약속했는데. 

한데 세라피나가 아이들이 사탕 먹는 것을 자연스럽다는 듯 말하자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우는 에리카를 본 세라피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했다.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세라피나를 본 에리카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당신이 뭘 잘못했는데!’

‘그냥 다 잘못했어. 미안해.’

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우는 제게 건네는 세라피나를 본 에리카는 그걸 낚아채듯 잡고는 돌아섰다. 

그 이후로 에리카에게 세라피나는 진심을 다해서 노력했다. 절대 에리카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세라피나를 보고는 마지못해 허락했었다. 

환하게 웃으며 결혼한 세라피나는 에리카를 친딸로 여기고 키웠다. 아버지가 주지 못한 사랑만큼 세라피나에게 흠뻑 받았다. 그녀에게 사랑을 배운 에리카는 우연히 무도회에서 제롬을 만나게 되었다.

제롬에게 빠진 에리카는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에 결혼하고자 했다. 아버지는 결사반대했지만 세라피나는 제롬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결혼해도 좋다고 허락해 줬다. 그녀의 허락에 아버지는 자리를 떴다. 

끝까지 결혼을 허락해 주지 않은 아버지의 눈치를 살핀 에리카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아퀼라 공작가로 들어갔다. 이른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인 것이다. 그깟 결혼식 안 해도 된다는 시위였다. 

속상해하는 에리카를 불러 마음 풀어 준 사람도 세라피나였다. 좀 더 데리고 있고 싶은데 딸이 너무 일찍 결혼해서 서운한 바람에 아버지가 그리 행동한 것이라면서 웃으며 설명해 줬다. 

그 정도로 아버지가 티는 내지 않아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니 마음 풀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아버지에게 서운했던 게 조금은 풀어져 갈 무렵 에리카는 세라피나를 잃고 말았다. 그녀가 이 세상을 떠난 후 에리카는 아버지에게 독설을 퍼붓다시피 했다. 

지켜 주지 못했다고. 

지켜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데도 에리카는 할 말 못 할 말 다 해 버렸다. 아퀼라 공작저로 돌아온 에리카는 판테르 공작저 쪽으로는 다리를 뻗지도 않았다.

그렇게 인연 끊다시피 하며 3년을 살았고, 3년 만에 왔을 땐 세라피나를 닮은 아이가 존재했다. 저와는 달리 아버지에게 사랑받는 듯한 아이가 조금은 부럽게 느껴졌다. 단 한 번도 안겨 본 적 없는 아버지의 가슴에 붙어 있는 모습에 짜증이 났다. 

“에리카, 대체 무슨 일 때문인데 그러는 겁니까.”

처음으로 에리카가 아가씨일 적에 사용했던 방에 들어온 제롬이 그녀를 품으며 조심히 물었다. 

“혹시 아버님이 아이를 안고 있어서 질투하셨습니까?”

“흐윽, 네에…….”

강인해 보였지만 속은 여린 에리카였다. 또한 여자이고 딸이기도 했다. 그러니 자신에게 해 준 적 없는 스킨십을 하는 판테르 공작에게 섭섭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세요. 제가 먼저 만나 본 그 아이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다고 하더군요.”

에리카를 다독이며 제롬이 조용조용 말했다.

“부모가 없음에도 그리워하기는커녕 웃더군요. 부모가 없다는 것에 그 아이가 적응했을 정도로 매우 오랜 시간이 흘렀거나 아니면 학대받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다. 그렇기에 제롬은 조곤조곤 설명해 줬다. 그 설명을 들은 에리카는 라피가 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울었습니까. 결혼 허락해 주지 않은 아버님 앞에서도 울지 않더니, 그 아이가 그리도 부러우셨습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아이가 똑같은 말을 했어요.”

“무슨 말을 했기에 그렇습니까.”

에리카가 라피가 준 세 개의 사탕을 내려다볼 때 제롬이 그걸 하나 집으려 했다. 그러자 에리카가 사탕을 감추듯 주먹을 쥐었다. 

“아이가, 아이가 준 사탕이요. 예전에 새어머니가 내게 줬던 것과 똑같아요.”

“우연의 일치 아니었을까요.”

딸기와 포도 그리고 복숭아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일이었다. 그렇기에 라피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탕을 에리카에게 줬다고 생각한 제롬이었다. 그런 제롬을 본 에리카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사탕도 같았지만, 이걸 주면서 하는 말이 똑같았어요. 새어머니가 사탕을 주면서 해 주던 말, 제가 울자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거 다 똑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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