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아침부터 빈약한 가슴을 공격당한 벤스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공작님의 가슴은 정상이 아니에요. 아무리 커도 아가씨께 줄 쭈쭈는 안 나온다고요.”
“나 쭈쭈 머글 나이 아니다모.”
자신도 기사 출신으로서 탄탄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 벤스가 옷을 벗어 보여 주려 하자 오스카가 급히 말렸다.
“벤스 크리스토퍼, 아이 앞에서 무슨 추태인가. 쯧쯧.”
판테르 공작이 혀를 차면서 아직도 제 가슴에 대고 얼굴을 문지르는 나를 보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누굴 닮았는지 보는 눈은 확실히 있군.”
“에헤헤.”
판테르 공작을 위해 한 번 웃어 준 나는 눈치를 보면서 자리를 비켰다. 옷도 못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의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이레나가 한쪽으로 나를 데려간 후 수건을 풀더니 팬티 기저귀를 입혔다.
“이게 요즘 나온 신제품이래요. 기저귀가 움직이지 않아서 쉬야 팍팍 싸도 새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신제품 팬티 기저귀고 뭐고, 나는 답답함에 몸을 배배 꼬았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레나는 새로 가져온 속옷과 옷을 입혔다.
“우리 세라피나 아가씨, 기저귀 하셨습니까.”
토실토실해진 엉덩이로 뒤뚱뒤뚱 걷자 벤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이레나의 손을 잡은 내게 오더니 가볍게 안아 올렸다. 그의 가슴에 찰싹 붙었던 나는 바로 떼어냈다.
“아찌, 요기 안 빵빵해.”
“세라피나 아가씨, 남자는 말이지요. 가슴으로 평가를 하면 안 된답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으로 평가해야지요. 참고로 저는 아기를 좋아하는 따뜻한 도시 남자랍니다.”
자신의 매력을 내게 어필하던 벤스의 발이 바깥으로 향했다. 그러자 방 밖에 대기하고 있던 제니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었지만 벤스는 나를 옮겨 주지 않았다.
“내가 안고 가겠네.”
벤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가는 내내 내 연약한 볼을 잡으며 제니에게 말했다.
“어쩜 이리도 부드러울까. 한데 살이 덜 붙은 것 같군.”
“안 그래도 세라피나 아가씨의 식사엔 신경 쓰고 있답니다.”
벤스가 제 얼굴을 자꾸만 내 얼굴에 비비적대자 조그만 손으로 낑낑대며 밀어냈다. 그런데도 이 눈치 없는 벤스는 자신의 얼굴을 내가 만지작거리는 줄 알고 더 가까이 댔다.
“아가씨, 제가 얼른 결혼해서 아들 낳을 테니까 시집올래요? 요즘엔 연하남이 인기라던데.”
그건 좀 당기는데?
하지만 난 도도하고 새침한 아가씨였다. 단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몰라도 제 아들이면 엄청 멋지고 잘생겼을 거예요.”
그건 결혼을 먼저 하고 말하련?
결혼도 하지 않은 벤스가 벌써 내 배필을 낳을 생각을 하자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한데 아직 얼굴 근육마저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어 침이 주룩 흘렀다.
“역시나, 우리 아가씨!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우리 세라피나 아가씨의 남편감을 낳아 올게요.”
“시러, 아찌 달므묜 요기 안 빵빵해.”
다시 한번 벤스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했지만, 그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아가씨, 남자는 자고로 허리입니다!”
당당하게 자신은 허리가 튼튼하다고 말하는 벤스를 보던 제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찌 허리 부시래.”
“아, 아닙니다. 제 허리가 얼마나 강한데요. 제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저를 거쳐 간 아가씨들은 전부 만족…….”
“죄송합니다. 벤스 님, 어린 아가씨께서 듣기엔 심의 규정에 걸릴 말이기에…… 흠흠!”
제니가 벤스의 입을 과감하게 틀어막고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노려봤다. 그러자 푼수 같은 벤스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슴 정도는 빵빵한 남자로 키워 줄게요. 후훗, 그나저나 언제까지 아저씨라고 부르실 겁니까. 공작님은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할아버지인데 오빠라고 부르시더니.”
판테르 공작보다 나이가 적은데 아저씨라고 불리는 게 싫었는지 벤스가 내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
“벤스입니다. 아가씨, 자! 따라해 보세요. 벤스!”
“벵츠?”
“아뇨, 벤스입니다. 벤, 스!”
“베엥쓰!”
미안해. 내가 혀가 아직 제 역할을 못 해.
얼른 발음 연습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벤이라고 불러 보세요.”
“벤!”
“옳지. 잘하셨습니다. 앞으로는 벤이라고 부르세요. 자! 이건 잘했으니 선물이랍니다.”
벤스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내밀었다. 투명하고 단내가 풍기는 구슬을 본 나는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사탕.”
“네, 사탕 맞습니다. 이건 제 이름을 불러 주신 것에 대한 선물이랍니다.”
침이 제멋대로 질질 흘러내린 나는 얼른 그 사탕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전에 제니가 벤스의 손에 있던 사탕을 빼앗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됩니다. 아직 아가씨께서는 식전이랍니다. 이건 식후에 드셔야 해요.”
“히잉, 머꼬시픈데…… 머그면 앙대여?”
먹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바라보니 마주친 제니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제니, 다음부터는 식후에 드시게 하고 오늘만 지금 드리면 안 되나.”
“하지만 아이들은 사탕을 먹으면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했단 말이에요.”
“아니야. 나 맘마 마시께 머글 수 이쏘여.”
자고로 식전엔 달콤한 거지.
얼른 내게 사탕을 다오.
제니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에 손가락을 물고 쪽쪽 빨았다. 그러자 제니가 마지못해 사탕을 내 입에 넣어줬다.
“마씨써! 벤, 고마뜹니다.”
“다음에도 제가 사탕 갖다 줄게요.”
제니 몰래 내 귓가에 속삭인 벤의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탕을 쭙쭙 빨던 나는 어느새 기거하던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조심히 내려놓은 벤스는 여전히 내 볼을 주물럭댔다. 접착제라도 붙인 것처럼 떨어지지 않은 벤스가 주물러대자 보다 못한 제니가 한 마디했다.
“이만 나가보시지요. 바쁘신 분이 계속 여기 계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미래의 며느님을 본다는 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자꾸 그렇게 주물러대시면 나중에 가주님께 혼나실 수 있답니다. 우리 아가씨는 피부가 상당히 연약하니까요.”
제니의 말에 벤스는 마지못해 내 볼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내게 손을 흔들어 줬다.
“나중에 또 보러 올게요.”
응. 잘 가. 오지 마. 귀찮아.
손을 흔들어 주자 벤스가 뒤돌아서서 나를 보면서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저도 내게 손을 흔들어 준답시고 문 스텝을 밟다가 그대로 문에 박았다. 몸 개그를 선사해 주며 사라진 벤스를 본 나는 사탕을 빨며 얌전하게 생각에 잠겨 들었다.
앞으로 내가 이곳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마법을 배워서 이 세상에서 돈을 벌며 살아가야 할지, 아니면 본디 살았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연구할지.
“아띠, 어또카지.”
뇌까지 어려졌는지 어려운 생각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지 머릿속이 멈췄다. 결론은 오빠가 살아 있든 죽었든 난 베네딕트 제국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본래는 그곳에서 죽었어야 하는데 이 목걸이 덕분에 이 세상으로 어려진 채 떨어져 살 수 있었던 것일까.
“오또카지, 오또케 가지.”
역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제니에게 내 표정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얼굴을 이불에 묻었다. 우선 이곳에서 당장은 안 쫓겨나고 살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 일이 틀어질지 모르는 거였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최대한 뭉그적대며 마나와 돈을 모아야만 했다. 막 이곳에서 깨어났을 땐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실낱같은 희망이 조금 생겼다.
좀 전에 마나를 느끼기 위해 온몸에 힘을 줬더니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이대로 조금만 더 힘을 줘 볼까 생각하던 나는 낑낑댔다.
뿌지지직-
응? 이 익숙한 소리는 무엇인가.
화들짝 놀라 그대로 굳은 나를 본 제니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어휴, 우리 아가씨 응가하셨군요.”
제길, 몸에 힘을 준다는 게 아랫배로 전부 몰린 것 같았다. 생각도 하지 않은 응가를 싸게 된 나는 울상을 지었다. 이 빌어먹을 아이 몸은 참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듯했다.
“흐윽, 히잉.”
“울지 마세요. 아가씨, 아이가 응가하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아까부터 궁딩이를 들고 씰룩쌜룩하더니 응가하려고 신호를 준 거였군요.”
“아냐여.”
“괜찮아요. 아가씨!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나를 안아 든 제니가 새 기저귀를 챙기더니 곧장 욕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심의 사정상 삭제할 부분을 과감하게 행하며 씻긴 제니는 내게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를 입혔다.
세상에나. 내가 응가를 하다니. 그걸 날것 그대로 보인 나는 부끄러움에 제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말도 이 정도로 할 수 있고, 혼자서도 이 정도 움직일 수 있으면 대충 기저귀 뗄 수 있는 나이인 것 같은데 난 왜 보통 애들보다 더 퇴화가 된 것인가. 어른이었다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니 이 몸이 아직 적응하지 못해서 사건 사고를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아가씨, 황금 응가를 싸셨네요. 장이 매우 튼튼한가 봐요.”
그런 건 말로 읊어 주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이불 속으로 꼼지락대며 기어들어 갔고, 제니는 환기하기 위해 문을 열었다. 잠시 후 식사가 왔다. 구워서 고소하고 부드러운 커다란 생선살이 앞에 놓였다.
“응가도 했으니까 많이 드셔야 해요.”
안 그래도 생각하지도 못한 배변 활동으로 인해 속이 텅텅 빈 것 같은 나는 포크로 생선을 푹푹 찍었다. 제대로 집어지지 않자 제니가 뼈를 발라 놓아 줬다.
“요고 머거여?”
“아가씨, 이젠 그렇게 안 물어봐도 된답니다. 그러니까 마음껏 드세요. 이거 다 드시고 또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만 하세요. 한밤이라도 대령할 수 있으니까요.”
옴뇸뇸뇸-
생선과 수프 그리고 아기용 샐러드를 먹자마자 아가페가 맛있는 케이크를 가지고 왔다.
“와, 케꾸다, 케꾸!”
생크림 듬뿍 발린 딸기 케이크를 본 내가 환하게 웃자 아가페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가씨, 저 기다렸어요?”
“응, 기다려쬬여.”
“우리 예쁜 아가씨, 오늘은 제가 딸기 케이크 먹여 드릴게요.”
제니를 밀친 아가페는 내 옆에 앉더니 케이크를 소복하게 담은 포크를 들어 올렸다. 두 눈 감은 채 앙 하고 포크를 물었다. 그러자 입 안에 들어온 사르르 녹는 크림과 새콤달콤한 딸기의 맛에 나는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맛있어요?”
“요고 마시써여.”
오물오물 딸기 케이크를 먹는 내내 나는 잠시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딸기 케이크에 사로잡힌 나는 아가페의 포크질이 느려지자 그녀의 손을 잡고 얼른 내 입으로 포크를 넣었다.
“어머, 우리 아가씨 의외로 힘이 세네요.”
이게 다 떨어져 죽지 않기 위해 판테르 공작의 옷을 잡느라 생긴 근력이었다.
“여기 오기 전에 봤는데 벤스 님이 갑자기 검술 연습하던데 아까 무슨 일 있어?”
내게 케이크를 먹이던 아가페가 제니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제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아가씨께서 벤스 님이 가주님보다 가슴이 안 빵빵하다고 거절했었거든.”
“진짜? 가주님께서 검술 연습 좀 하라고 해도 자신은 천재라서 안 해도 된다고 하더니 끝내는 아가씨에게 거부당한 후에 하는구나. 푸웁!”
벤스가 검술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게 된 아가페는 케이크 하나를 깔끔하게 해치운 내 입 주변을 닦아 주며 말했다.
“역시 우리 아가씨는 뱃속에서부터 배우신 분…… 자고로 남자는 가슴이니까요. 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