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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8)화 (8/164)

8화. 

품에 안긴 작은 라피를 본 판테르 공작은 이를 사리물었다. 약속해 달라고 조그만 손가락을 내밀었던 품에 안긴 아이보다 조금 더 컸던 아이가 떠올랐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너무나 따스했던 판테르 공작은 작은 라피를 꼭 안았다. 

떨리는 손으로 조그만 등을 다독여 줬다. 혹여나 다독이는 힘이 세서 아이 몸에 멍이 들지나 않을까 해서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엘리오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가씨께서 가주님을 잘 따르나 봅니다.”

“그런가 봐요. 가주님께 안기자마자 우는 것을 그쳤어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던 어린 라피가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칭얼거리듯 우는 소리를 내는 것 외엔 괜찮았다. 

“가주님께서는 아이를 참 잘 돌보시는군요.”

“맞아요. 보통 아이는 남자 품에 안기면 무서워서 울 수도 있는데. 아가씨와 가주님은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엘리오와 제니가 옆에서 뭐라고 하든 판테르 공작은 아직도 훌쩍이는 아이를 봤다. 두 눈이 퉁퉁 부어올라서 짠하게 보였다.

“안 그래도 못생긴 찹쌀떡이 팅팅 불어터졌군.” 

“흐윽, 아니다 모, 라삐 이뿌다 모. 히끅…….”

울면서도 할 말 다 하는 아이를 본 판테르 공작은 피식 웃었다. 이 와중에도 못생겼다는 말에 발끈하는 아이를 다독여 줬다. 그러자 라피는 히끅이더니 어깨에 얼굴을 묻고는 축 늘어졌다. 

더는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세상 더없이 편해진 아이는 무거워진 두 눈을 깜빡이며 판테르 공작의 옷을 꼭 붙잡았다. 조그만 손가락에 힘도 없어 보였는데 덜덜 떨릴 정도로 잡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애처로워 보였다.

아비에게 학대당했다면 남자란 존재를 보기만 해도 무서울 텐데. 얼마나 정에 굶주렸으면 생판 남인 자신을 이리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단 말인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아이를 안은 채 판테르 공작은 안이 아니라 바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깥은 꽃 피는 봄이 오고 있었지만, 판테르 공작저는 을씨년스러웠다. 

음산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로 사늘한 복도를 걷자 고용인들이 두 눈을 큼직하게 뜨며 벽에 붙어 고개를 숙였다. 우는 아이마저 그의 얼굴을 보면 기절한다고 말할 정도로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공작이 아이를 품고 나타난 것이다.

라피를 안은 판테르 공작이 지나갈 때마다 고용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세라피나 아가씨께서 우셨나 보군요.”

많이 울어서인지 라피의 금색 눈동자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럽기만 한 오스카가 제 손수건으로 라피의 눈물을 닦아 줬다. 손수건이 닿자 감겨 가던 라피의 눈이 깜빡였다. 

“우리 아가씨께서 왜 우셨습니까.”

“아까 머리가 아포써여.”

“저런! 머리가 아프셔서 울었군요. 또 어디 불편하신 곳이 있으십니까.”

“머리 아포…… 구래서 넘 술포서 우러써여.”

“어휴. 그러셨어요. 우리 세라피나 아가씨가 머리 아파서 너무 슬프셨군요.”

라피가 코맹맹이 소리로 오스카의 질문에 대답해 주자 판테르 공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대뜸 왼손을 오스카에게 내밀었다.

“손수건 주게나.”

“세라피나 아가씨의 눈물이 묻은 손수건을 가지고 싶은 겁니까.”

“됐고, 주게나.”

빙그레 미소 지은 오스카가 손수건을 건네주자 그걸 받은 판테르 공작은 아이 코에 가져다 댔다.

“킁!”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 아이는 자연스럽게 오스카의 손수건에 코를 풀었다.

“킁흥!”

오스카의 손수건에 질펀할 정도로 코를 풀자 순간 코 안이 개운해진 라피가 방긋 미소 지었다. 그 미소와 더불어 오스카는 콧물에 젖어서 축축해진 손수건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라피의 콧물이 묻은 손수건이니 특별히 가보로 물려주도록.”

“쿨럭!”

일찍이 유모가 아이를 돌볼 때 몇 번 봤었던 판테르 공작은 그걸 흉내 냈고, 성공하자 흐뭇한 마음에 라피의 등을 다독였다. 눈물을 머금으며 라피의 콧물이 진득하게 묻은 손수건을 갈무리한 오스카를 지나친 판테르 공작이 아이에게 말했다.

“라피, 밖에 나가 보지 않겠느냐.”

“가고 잇눈고 아니어쏘여?”

“그냥 확인차 물어본 거야.”

자신이 말할 때마다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듣는 아이를 보며 픽, 웃었다. 제 품에 안겨 있는 아이가 낯설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든 판테르 공작이 밖으로 나오자 싱그러운 봄바람이 살갗을 훑고 지나갔다.

아직 약간 찬 기운이 담겨 있었지만, 겨우내 얼어붙었던 겨울바람이 무색할 정도로 따뜻한 편이었다.

봄바람을 맞으며 라피를 한 손으로 지탱한 판테르 공작이 정원으로 향하자 정원사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꽃인지 아느냐.”

봄이 되어 갓 피어난 봄꽃 한 송이를 꺾어 라피 앞으로 올려줬다. 향기를 맡으라는 듯한 자세에 라피는 물오른 봄꽃을 앞에 대고 ‘킁킁’댔다.

“모르게써여. 오빠는 아라여?”

“나도 모른다.”

본인도 모르면서 왜 꽃 이름을 물어보냐는 듯 흐린 금색 눈에 판테르 공작은 그 꽃을 라피에게 건네줬다. 꽃을 든 라피는 은은한 향을 맡으며 저도 모르게 입 안에 넣었다. 약간 신 듯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느껴졌다.

“그런 거 먹는 거 아니다.”

먹을 게 없어서 꽃을 먹냐는 듯 라피의 손에 들린 꽃을 빼앗으려 하자 뒤에서 따라온 오스카가 한마디 했다.

“우리 세라피나 아가씨께서 뭘 아시나 봅니다. 그 꽃은 진통해열제로 쓰입니다.”

그 말에 판테르 공작은 근처에 있는 꽃을 죄다 꺾어서 라피에게 줬다. 순식간에 꽃에 파묻힌 라피는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입술을 뚜웅 내밀었다.

마치 내가 토끼냐고 묻는 듯한 시선에 판테르 공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걸음을 옮겨 커다란 나무 밑에 돗자리도 깔지 않고 앉았다. 판테르 공작의 다리 위에 놓인 라피는 그를 멀뚱멀뚱 봤다.

봄꽃이 막 피어나려는 나무인지 휑해 보였다. 그런 나무 밑에 앉은 판테르 공작은 제 다리에 앉아 꼼지락대는 라피를 보며 얼굴을 만졌다.

보들보들한 감촉의 자그마한 뺨이 찹쌀떡인 듯 차지게 달라붙은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쓸어 만지는 수준이었지만 나중엔 라피의 얼굴을 조물조물 만졌다. 두 손으로 볼을 잡아당겼다가 놓기를 여러 번, 당하고 있던 라피의 얼굴이 부풀어 올랐다.

“하디 마여.”

“알겠다.”

조그만 아이의 말에 판테르 공작이 피식 웃었다. 마치 복어처럼 부푼 두 볼을 보고 있노라니 저와 헤어져서 돌아가야만 해 불만 많던 다섯 살짜리 그녀를 보는 듯했다. 그때 당시 그녀도 불만이 있으면 두 볼을 부풀리곤 했었는데.

“이잉, 하디 마여.”

분명 하지 않겠다고 대답해 놓고서는 판테르 공작의 두 손은 여전히 라피의 볼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쫀득하게 들러붙는 그 찰진 감촉은 중독성이 있었다. 판테르 공작이 계속 주물럭대자 라피가 벌떡 일어났다. 

방에서 나왔기에 신발을 신지 않았건만 라피는 판테르 공작의 품을 떠나서 정원을 돌아다녔다. 맨발로 돌아다녔지만 판테르 공작은 절대로 말리지 않았다. 

이 정원에는 어린아이의 발에 상처 낼 만한 게 없으니까. 

라피가 깡충깡충 뛸 때마다 멀리서 지켜보는 정원사들의 심장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댔다. 저 아이 발에 상처라도 나면 자신의 목이 잘릴 것만 같았다. 

“오빠, 요고 모에여?”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곤충을 가리킨 라피의 물음에 판테르 공작이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나비다.”

“나비? 나비 이룸이 모에여?”

“……그냥 나비다.”

나비 이름 따위 공작이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냥 나비라는 것만 알면 될 뿐, 자세한 것은 돈을 주고 고용한 보좌관들이 알고 있으면 그만이다. 판테르 공작의 시선을 느낀 오스카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나비는 황금색이라 해서 금나비라고 합니다.”

“구로쿠나, 오쓰 아찌가 오빠보다 똑또케여.”

“네, 제가 좀 똑똑합니…… 크흠.”

라피의 말에 밝게 웃으며 대답하던 오스카는 옆에서 쳐다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입을 닫았다. 하지만 조그만 아이의 칭찬은 오스카도 날뛰게 한다고 했던가. 라피가 나비를 잡기 위해 팔짝팔짝 뛰어다니자 오스카도 잡아 준답시고 뛰어다녔다.

“저거 치워.”

판테르 공작이 나이에 맞지 않게 뛰어다니는 오스카를 흐린 눈으로 보며 한 말에 기사들이 중간에 난입해 그를 끌고 갔다. 그러자 조그만 아이가 나비 잡겠노라고 뛰어다니는 모습만 남았다.

“너무하십니다. 아가씨랑 같이 놀고 있는데.”

“오스카, 나이를 생각해. 저런 손녀가 있을 나이지 않은가.”

“전 비혼입니다!”

“일이 바빠서 뛰는 것은 상관없네만. 보기 흉하니 나비 잡아 준다고 뛰어다니지 말게나.”

감수성이 결여된 판테르 공작의 말에 오스카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단지 여전히 나비를 잡지 못해 통통거리는 찹쌀떡을 볼 뿐이었다. 

“오빠, 나비 자바 주떼여.”

날아다니는 나비를 조그만 손가락으로 가리킨 라피가 판테르 공작을 향해 말했다. 

“내가 네 시종인 줄 아느냐. 그런 것은 스스로 잡아야지.”

“자바 주떼여.”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하며 입술을 뚝 내밀자 판테르 공작은 저도 모르게 일어났다. 조그만 아이의 부탁이 마치 명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앞으로 걸어갔다.

“언제는 보기 흉하다가 뛰어다니지 말라면서요.”

“안 뛰면 된다.”

한쪽에 끌려 나온 오스카의 말에 판테르 공작이 대답하며 라피의 주변을 약 올리듯 날아다니는 나비를 두 손으로 잡았다. 단 한 번의 손놀림으로 나비를 잡자 라피가 탄성을 질렀다.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우와, 우와. 오빠 체고!”

파닥파닥 뛰어온 라피가 판테르 공작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러자 콧대가 한 뼘이나 높아진 판테르 공작이 기뻐하다가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환기했다.

“보여 주떼여.”

라피의 말에 판테르 공작은 자세를 낮춰 두 손을 살짝 벌렸다. 그 안에서 날개를 바르작대는 노란 나비가 얌전하게 갇혀 있었다.

“히야, 이뿌다.”

나비를 본 라피는 판테르 공작의 두 손을 조금 더 벌렸다. 그러자 잡혀 있던 나비가 팔랑이며 다시 날아올랐다.

“다시 잡아 줄까?”

“아녀, 나비 나라다니는고 더 이뽀여.”

판테르 공작가에 절대 없을 생명 존중 사상이 박힌 라피는 무심결에 하품했다. 조그만 입을 쩍 벌리며 하는 하품이 너무나 귀여운 이들은 얼른 안고 자신들이 재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판테르 공작이 조는 라피를 안더니 등을 다독이면서 말했다.

“방에 들어가서 자자꾸나.”

아이를 안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판테르 공작은 침대에 눕히다가 그대로 멈칫했다. 조그만 손이 제 옷깃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고사리처럼 작은 손에서 괴력이라도 있는 듯 판테르 공작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지쳐서 잠든 것 같은데 옷을 놓아주지 않아 판테르 공작은 라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눈감은 아이의 입술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무엇을 기억하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파멸의 아이이든 평범한 아이이든 난 상관하지 않는다. 네가 거짓말을 해도 난 무조건 믿을 것이다.”

방싯방싯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 것을 본 판테르 공작은 아픈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미소를 보고 있노라니 그녀가 웃는 것만 같았다.

“세라피나…… 이젠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 줄 테니 떠나지 마. 우리를 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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