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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3)화 (3/164)

3화. 

쪽, 쪼오옥-

빨대로 우유를 빠는 나를 판테르 공작이 기가 찬다는 듯 봤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꼰 판테르 공작은 앞에 놓인 우유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물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자는 거지?”

“오빠, 몃 짤이에여?”

“풉! 크크큭.”

판테르 공작 옆에 서 있던 벤스가 입을 틀어막으며 웃었다. 그런 벤스를 판테르 공작이 죽일 듯이 보자 곧장 정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어깨가 가녀린 마지막 잎새처럼 흔들렸다.

“올해 서른아홉 살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한 판테르 공작을 보며 헤벌레 웃었다. 첫째 나이가 스물한 살이니 열여덟 살에 아이를 낳았다는 게 되었다.

“아. 구로쿠나. 나눈…… 헤에, 모르게써여.”

조그만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하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서 온지는 더더욱 모른다?”

“니에, 하나두 모르게써여. 어또카지, 하나두 모라서.”

이럴 땐 기억상실증 연기가 최고지. 대충 아침 드라마 급 연기력을 선사한 나는 우유를 쪽쪽 빨아 먹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제니는 벽을 짚은 채 심장을 부여잡았다. 갑자기 지병이 도졌나 보다.

“이런 아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다니. 참 희한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부를 해 봐야 하나.”

순간 놀랐지만 나는 가까스로 티를 내지 않았다.

“오빠, 해부가 모야여?”

어려운 단어는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이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깜빡깜빡하며 묻자 판테르 공작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공작님, 아이를 상대로 협박하는 것은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옆에 있던 벤스가 수위 조절하라는 듯 판테르 공작에게 한마디 던졌다.

“가릴 것이 정말 많군. 귀찮아. 매우 귀찮아.”

못마땅하다는 듯이 나를 째려봤지만 그럴 때마다 세상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우유를 빨았다.

쪼륵, 쪼르르륵-

우유 한 잔을 빨아 먹은 나는 판테르 공작을 봤다. 정확히는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그의 우유를 봤다.

“정말 이 아이가 그놈의 예언의 아이가 맞는 건가. 내가 보기엔 예언의 아이는커녕 먹다 남은 찹쌀떡이 떨어진 것 같은데.”

“구원의 아이는 이미 태어난 것으로 확인되었으니, 파멸의 아이일 확률이 매우 높긴 합니다.”

“그놈의 구원의 아이는 태를 빌려 태어났는데 이 찹쌀떡은 떨어지지 않았는가. 하늘에서 이 땅이 멸망하라고 씹다 만 구운 찹쌀떡을 던져 놓진 않았을 거 아닌가.”

나를 본 판테르 공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신화에 보면 신들은 변덕쟁이라서…… 한데 저 아이가 파멸의 아이이거나 평범한 아이이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벤스의 말에 판테르 공작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선택의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하긴 난 이 집 자식도 아니고 고용인도 아니니까.

크림수프 한 번밖에 못 먹어 봤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어린 나를 쫓아내진 않겠지.

온갖 생각을 하며 나는 엄지손가락을 빨며 판테르 공작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평범한 아이면 갖다 버리고, 파멸의 아이면 여기에 기거할 수는 있게 해 줄걸세.”

“공작님?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버리면 죽습니다. 그리고 공작님 앞에 떡하니 떨어진 것을 보아하니…… 어쩌면 그분께서 점지해 주신 거 아닐까요?”

그분? 그분이 누구?

알 길이 없는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빈 컵을 꽉 붙든 채 판테르 공작과 벤스를 봤다.

“한동안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기어코 떠올리게 하는군.”

쓰게 웃은 판테르 공작은 마른세수하더니 거칠게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러곤 쫓겨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하던 나를 유심히 봤다.

“은발에 금색 눈동자라…….”

뭔가 깊게 생각하던 판테르 공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낮게 비속어를 내뱉은 판테르 공작을 보던 제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벤스 님의 말마따나 정말 그분을 똑 닮으셨어요.”

대체 그분이 누구란 말인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진 않았지만, 그분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다들 수심에 찬 표정을 지으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분을 닮아서 일부러 이곳으로 데려오신 거 아닙니까. 안 그랬으면 아이가 하늘에서 떨어졌든 땅에서 솟았든 신경 쓰지 않으셨을 텐데요.”

“벤스, 그만하게나.”

“그분께서 아기를 낳으셨다면 딱 이 나이쯤 되었을 것 같군요.”

“벤스, 그만! 후우…… 오늘 심문은 이것으로 끝내고 난 이만 가 보도록 하겠네.”

자리에서 일어난 판테르 공작은 나가기 전에 나를 봤다. 그런 공작에게 나는 방긋방긋 아무것도 몰라요 웃음을 펼쳤다. 한동안 나를 뚫어지게 보던 판테르 공작이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커다란 손이 순식간에 좁혀 오자 나도 모르게 들고 있던 컵을 놓쳤다.

쨍그랑-

떨어진 컵이 깨지자 난 바닥에 바짝 엎드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히익! 자, 자모해써여, 자모해써여. 요서해 주세여. 제바아…….”

* * *

은발에 금안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다. 판테르 공작의 두 번째 아내이자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매우 멋진 여성을 말이다.

그녀는 이 삭막한 집안의 오아시스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다들 그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나중엔 열게 되었다. 그녀가 방긋 웃으며 영원히 인사하지 못하게 되던 때.

가슴을 치며 마음껏 후회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눈앞에 있는 아이와 비슷한 또래가 되어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낯선 아이였지만 아무도 아이에게 해코지하지 않았다. 아이의 존재만으로 과거 자신들이 한 잘못을 되새기게 했다.

‘어? 잘생긴 오빠다.’

그녀, 아니 그때만 해도 다섯 살 꼬마였던 아이가 판테르 공작, 당시엔 공작가의 셋째인 조슈아에게 처음 한 말이었다. 열네 살이었지만 세상 모든 이치에 통달이라도 한 듯한 조슈아는 이상한 꼬마를 봤다.

무려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 한참 어린 꼬마는 세상 무서운 것도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를 본 조슈아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꼬마가 쪼르르 달려와서 조슈아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말했다.

‘잘생긴 오빠, 우리 같이 우유 빨면서 이야기할래요?’

‘푸핫!’

생각도 하지 못한 말을 들은 조슈아는 순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아니라 맹랑하기만 했다.

‘안 돼, 난 바빠.’

‘히잉, 그러지 말고 이야기해요.’

어느 귀족가의 아이 중 하나라고 여겼다.

‘싫은데, 난 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야기하지 않아.’

‘그럼 내가 강한 사람이 되면 이야기해 줄 거예요?’

‘응.’

‘그럼 나중에 내가 강한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면 결혼도 해 주는 건가요?’

꼬마가 세속에 찌든 것 같기도 했다. 한데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보니 마냥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

‘그럼 약속해 주세요. 약속!’

어린아이가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던 그는 똑같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손을 꼭 옭아맸다.

‘이제 약속했으니까 꼭 지켜야 해요.’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꾸나.’

그 말을 남긴 조슈아는 곧장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나중에 조사해 보니 판테르 공작가와 사이가 안 좋은 집안의 자식이었다.

2년 후 정략결혼을 한 조슈아는 집안을 쓸어 버렸다. 원치 않은 결혼을 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형제가 그의 목숨과 부인의 배 속에 있는 아이의 목숨까지 앗아 갈 것이라고 경고를 했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의 판테르 공작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을 정리하는 게 옳았다. 천재적인 실력으로 이미 보좌관들에게 인정받은 조슈아는 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하게 형제를 도륙했다.

마침내 판테르 공작에게 인정받은 4년 후에 선대 공작이 병환으로 죽자마자 그 자리를 손에 쥐었다. 첫 번째 부인은 조슈아와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이혼을 요구했고 그걸 받아 줬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부인이 딸을 학대했기에 과감하게 잘라내 버렸다. 그 후 몇 년이 지났을까. 

공작가를 이끄는 주인이 되었지만 버석하게 말라 가고 있을 때 기사 모집 광고를 냈다. 그때 갓 기사 서임을 받은 이들이 도착했고 그중엔 은발에 금안을 지닌 여인도 존재했다.

사반나 역사상 유일하게 기사 아카데미를 조기 졸업할 정도로 천재로 인정받은 여인은 조슈아를 보자 미소 지었다.

‘잘생긴 오빠, 우리 우유 빨면서 이야기할래요? 저 이제 좀 강해진 것 같으니까 약속 지켜 주세요.’

그 꼬마가 집안과 연을 끊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조슈아는 꼬마에서 여인이 된 기사와 두 번째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해 바로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조슈아는 절대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았던 조슈아는 그녀에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살갑지도 않고 그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조슈아를 본 그녀는 절대 불평을 터뜨리지 않았다. 그가 웃지 않은 만큼 웃고 그가 말하지 않은 만큼 사랑을 표현했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나 이 삭막하고 음습한 곳을 밝게 비춰 주리라 생각했던 빛은 이미 지고 없었다. 그랬는데 바로 앞에 그녀를 닮은 조그만 아이가 있었다.

꼬마였던 그녀가 한 말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보며 놀라워했다. 혹시나 자신에게 십 수년간 미행이라도 붙어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 제 앞에서 잘못했다고 경기를 일으키듯 빌고 있었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한 채.

단지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아 주려고 손을 뻗었을 뿐인데. 조그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잘못을 빈 아이는 기절하고 말았다.

“주치의를 데려오라.”

짤막한 말에 문밖에 대기 중이던 기사가 뛰어갔고 벤스가 아이를 안아 침대에 눕혔다. 사색이 된 아이는 기절한 상태였지만 매우 괴로워하는 듯했다. 그런 아이를 제니가 다독였다. 

잠시 후 주치의가 도착해서 아이를 진찰하며 조금 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 그런 것인가.”

벤스의 물음에 주치의가 판테르 공작 앞에 고개 숙이며 말했다.

“몸이 약하기도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미간을 찌푸린 판테르 공작의 물음에 주치의는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가주님께서 손만 뻗은 것만으로도 바들바들 떨면서 머리를 붙잡고 잘못했다고 빌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학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학대?”

“네, 기억은 나지 않더라도 아마도 손을 뻗을 때 순간적으로 자신을 학대한 누군가와 가주님을 동일시한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심한 반응을 보일 정도면 한두 번 맞은 게 아닐 거라는 말도 곁들인 주치의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아이를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학대했다는 건가.”

“네. 아무래도 어른이 아이를 때린 것 같습니다만, 아이와 가장 가까운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라든지…….”

주치의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설명하고 아이의 이마에 진정제가 묻은 거즈를 붙인 후 곧장 밖으로 나갔다.

“세상에나. 이 어린애를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울먹이는 제니의 목소리에 조슈아의 입술 꼬리가 살짝 떨렸다. 꼬르르륵 소리가 나자 미안하다고 말하던 것을 보아하니 밥도 제대로 먹이지 않고 때린 게 분명했다.

“앞으로 이 아이를 잘 돌봐 주거라.”

“네, 알겠습니다. 한데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는데 그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작정 아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 제니의 물음에 판테르 공작은 잠시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

“세라피나, 나이는 세 살. 이렇게 알고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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