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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2)화 (2/164)

2화. 

말랑말랑 쫀득쫀득한 감촉이 아직도 손에 남은 판테르 공작은 보좌관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기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우리를 적대하는 놈들이 보냈거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황제조차 무서워하지 않는 판테르 공작 앞에 말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악당이라도 된단 말입니까.”

아무리 봐도 악당처럼은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태양을 박은 듯한 금빛 눈동자와 달을 부숴서 뿌린 은발을 지닌 아이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겉모습으로 현혹하는 천하의 악당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선은 옆에 두고 살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동안 저희가 조사를 하겠습니다.”

정보부 수장인 카를로스 벤야민 백작이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 그러자 판테르 공작이 피식 웃었다.

“천하의 악당이라…… 이왕이면 이 나라를 통째로 지옥으로 떨어뜨렸으면 좋겠군. 회의는 이것으로 끝내지.”

싸늘한 눈초리로 말한 판테르 공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보좌관들이 일어나 고개 숙였다. 그들을 뒤로한 판테르 공작은 집무실로 가서 업무를 보던 중 펜을 멈췄다.

“그 아이는 지금 뭘 하는 건가?”

가서 뭐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인사를 하는 것으로 봐서는 대충 의사소통은 가능해 보였다. 

“수프를 먹은 후 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판테르 공작가의 집사인 오스카가 살짝 고개 숙이며 말했다. 

“아니 무슨 아이가 먹고 바로 자는 건가.”

“아이니까요.”

자식은 있었지만 1녀 1남을 제 손으로 키우지 않은 판테르 공작은 미간을 찌푸렸다. 자고 있다는데 억지로 깨울 수 없어 고개를 흔든 판테르 공작은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잠시 후 간식이 들어왔고 그걸 본 판테르 공작이 오묘하게 변했다. 구운 찹쌀떡과 조청을 보고 있노라니 검댕 묻은 채 떨어진 아이가 떠올랐다. 시계를 본 판테르 공작은 일을 더 미룰 수 없기에 아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 간 판테르 공작은 순간 못 볼 것을 본 표정을 지었다. 

“내 보좌관 놈이 미쳐 가고 있군.”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딸랑이를 든 벤스가 아이 앞에서 놀리듯이 흔들고 있었다.

* * *

긴장이고 뭐고 간에 본능대로 잠이 든 줄도 모르게 자고 있을 때 얼굴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뜰까 말까 생각하다가 실눈을 떴다.

‘벤스 크리스토퍼?’

나가면서 내게 손까지 흔들어 줬던 벤스의 손에는 이상한 것들이 쥐어져 있었다.

딸랑이-

아니 아무리 내가 아이가 되었다고 저런 것에 반응할쏘냐.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닌데.

“아기야, 여기 장난감 있네.”

“…….”

때륵때륵-

벤스가 두 개의 딸랑이를 흔들자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가 부딪쳐 소리가 났다. 맑고 투명한 구슬 소리에 내 손이 반응을 보였다.

손을 뻗으며 딸랑이를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재밌는지 벤스는 양손으로 딸랑이를 든 채 흔들어댔다.

“어때? 재밌지?”

“니에…….”

계속 흔들어대는 것을 보던 나는 그 딸랑이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일반적인 구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황녀 생활 18년, 내 눈엔 지금 딸랑이 안에 있는 구슬이 진주로 보였다. 하얀색, 검은색, 분홍색. 색색의 진주로 채워진 딸랑이를 본 나는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돈이었다. 돈만 있으면 집도 사고 호위도 살 수 있으니까. 비록 이곳이 내 집은 아니지만, 최대한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안전하게 커서 다시 오빠에게 돌아갈 기회를 엿볼 수 있으니까.

살기 위해 딸랑이를 잡으려 하는 나를 보더니 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금 더 멀어졌다. 제게 가까이 오라는 듯한 벤스를 보며 나는 급히 그곳으로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짧고 몽땅한 발과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철퍼덕-

몇 걸음 가기가 무섭게 앞으로 넘어졌다.

“아기야, 괜찮아?”

놀란 벤스가 얼른 나를 일으킨 후 원피스를 손으로 탁탁 털어 줬다. 그사이에 나는 벤스가 놓은 딸랑이를 잡고 깨물었다. 겉을 깨야 진주를 가질 수 있으니까.

내가 딸랑이를 물고 빨 때 벤스는 남은 딸랑이를 또다시 흔들어댔다. 

“자네, 여기에서 뭐 하는가.”

딸랑이를 아작아작 씹고 있을 때 들리는 묵직한 소리에 나는 그대로 굳었다. 진주를 몰래 숨기려고 했는데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들킨 건가.

판테르 공작의 푸른 눈동자에 예리한 얼음이 박혀 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벤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넉살 좋게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뭘 하고 있겠습니까. 아기랑 놀아 주고 있었답니다. 딸랑이를 흔들어 주니까 좋아서 손을 허우적거리는데 너무 귀엽더군요.”

그거 아니야. 딸랑이 흔들어 줘서 좋아한 게 아니라 딸랑이 안에 있는 진주가 좋았을 뿐이야.

하지만 그걸 굳이 고쳐 주고 싶지 않았던 나는 째려보는 듯한 공작에게 아쉬움 가득한 시선을 한 채 앞으로 몇 걸음 움직였다.

“요고 가꾸시퍼여?”

“…….”

“에휴휴…… 주께여. 요기여.”

내가 쥐고 있는 딸랑이를 내밀었다. 나는 착하니까 하나 정도는 양보해 줄 수 있어. 비록 두 개 다 내 것은 아니었지만.

두 개의 딸랑이 중 진주 몇 알이 덜 들어 있는 듯한 하나를 내밀었지만 판테르 공작은 그걸 받지 않았다.

“큽! 크크큭.”

내가 판테르 공작에게 딸랑이를 내밀자 벤스의 어깨가 굿거리장단을 타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입술 사이에서 웃는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크흠흠, 공작님이 자신을 계속 보니까 아기가 딸랑이를 준다는 표시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을 정확하게 해석한 벤스의 말에 판테르 공작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받아 주시지요. 아이는 자신이 주는 것을 받아 주는 것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미친 듯한 인내심으로 웃음을 참는 듯한 벤스의 말에 판테르 공작의 시선이 다시 내게 닿았다.

“주께여. 요기, 요기…….”

어쩌다 보니 내 침이 잔뜩 묻어 있는 딸랑이었다. 자고로 먼저 침 묻힌 사람이 임자 아니겠는가.

“난 필요 없다.”

“징짜? 후헤하디마여.”

딸랑이를 가지지 않는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광대가 위로 승천할 것만 같았다.

고마워요. 공작님. 당신은 생각 외로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하지만 나를 보는 눈빛이 참으로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이러다가 내년 이맘때 공짜 밥을 먹을 것 같았던 나는 그의 눈에 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한데 이건 어디에서 가지고 온 건가?”

“아가씨와 도련님이 사용한 물건을 모아 둔 창고에서 가져왔습니다만.”

에잉 뭐야. 그럼 이 집안 거네. 가져가면 안 되려나. 딸랑이 두 개를 든 채 군침을 삼켰는데 입 밖으로 침이 흘러나왔다. 벤스가 손수건으로 내 입 주변을 닦아 줬다.

“한데 여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참고로 저는 할 일 다 끝내고 왔습니다만.”

벤스가 당당하게 말하자 판테르 공작이 나를 뚫어지게 보며 말했다.

“심문.”

젠장, 일어나자마자 심문당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딸랑이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그냥 누워 잘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럴 경우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난 아기였다. 이 상태에서 내가 열여덟 살이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미친 아이 취급당해서 쫓겨날 것 같았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완벽한 아기가 되기로 했다.

벤스가 나를 번쩍 안아 올려 판테르 공작과 눈높이를 맞춰 줬다. 안 그래도 위를 올려다보는 거 목 아팠는데.

“넌 어디에서 온 거지?”

첫 번째 질문에 난 대답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중2까지 살았다가 컨티넨 대륙에 있는 베네딕트 제국의 황녀에 빙의해서 지냈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방긋 웃었다.

“헤에에, 모라여.”

해맑게 웃자 판테르 공작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네 이름은 뭐지?”

“우웅? 이룸?”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움직이며 대답하지 않자 판테르 공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나이는?”

갸웃갸웃-

이름도 모르는데 나이까지 몰라야겠지. 고개를 가로젓자 판테르 공작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가 아닐까요.”

“천사가 다 얼어 죽지 않고서야 구운 찹쌀떡 같은 애가 떨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떨어지다가 늘어나서 찹쌀떡이 된 거 아닐까요?”

아니야. 벤스. 그만해. 더 했다가는 내가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 같아.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하는 나를 본 판테르 공작의 고운 얼굴은 살아남기 위한 나의 드립에 굳어 버렸다.

“오빠, 징짜 자생긴 오빠다.”

잘생긴 오빠라고 하니 순간 주변에 서리가 낀 듯 싸늘하게 변했다. 그러자 나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두 개의 딸랑이를 흔들었다. 진주알이 또륵또륵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나이에 맞지 않은 장난감을 들고 흔든 보람이 있었는지 벤스가 내 볼에 제 얼굴을 갖다 비볐다.

“흐읏, 어쩜 이런 촉감이 존재할 수 있는 거죠.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네요. 작은 아가씨, 좀만 더 커서 나한테 시집올래?”

아주 좋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은 벤스를 보던 판테르 공작이 갑자기 나를 빼앗다시피 하며 들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내 보좌관이 범죄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아무리 봐도 스무 살 이상 차이 나는데. 판테르 공작이 살짝 흐린 눈으로 보자 벤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 다시 한번 물어보마. 넌 대체 어디에서 온 거지? 설마 진짜 하늘에서 살았다는 말은 안 하겠지?”

진심으로 하늘에서 한 번이라도 살아 봤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곳은 쓰레기장이었을 뿐이었다. 인간쓰레기들만 그득한 곳.

죽었지만 흔히 간다는 하늘나라 문턱에 한 번도 닿아 본 적이 없었다. 악마 같은 친부한테 벗어나자마자 더한 악마를 만났으니까.

그리고 이제 좀 편하게 지내려나 했더니 전 약혼자 집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것도 모자라 나를 그리도 좋아한다고 말하며 결혼해 달라고 했던 그놈의 검에 가슴을 찔렸다.

비로소 천국 문턱을 밟아 보나 생각했는데 이곳에 떨어지고 말았다. 어째서? 마나가 완전히 고갈되었고, 검에 찔렸는데 상처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어린애가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은 나는 고개를 흔들다가 문뜩 목에 걸린 목걸이를 봤다. 오빠가 열여덟 번째 생일에 신비한 힘이 깃들었다고 말하며 선물로 준 목걸이였다.

‘혹시 이 목걸이 때문에 살아서 다른 곳으로 떨어진 건가.’

이 목걸이에 깃든 힘이 뭔지 알 길은 없다. 분명 오빠가 줬을 땐 보라색이었는데 지금은 회색이 감돌았다.

목걸이를 유심히 본 나는 판테르 공작을 봤다. 까만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동안의 잘생긴 남자는 나를 보더니,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금 쫓겨나면 안 되었다. 어린아이 몸인데 지금 나가면 곧 죽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 세계의 지식도 없고,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허망하게 죽는 것은 사양이다. 이곳에서 몸이 본래대로 될 때까지 들러붙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이에 맞게 행동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지금 이 나이 때쯤의 아이는 잘생긴 남자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처음과 두 번째 삶에서 아빠에게 학대당한 기억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아휴휴휴’ 한숨을 푹 내쉴 때 내 눈에 제니가 가져온 우유가 보였다.

그걸 본 나는 뭔가 생각이 나자마자 판테르 공작의 크라바트를 당기며 물었다.

“자생긴 오빠, 나랑 가치 우유 빨묜서 이야기하래여?”

살아남기 위해 눈치는 기본이고 아부는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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