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은의 왕관-80화 (80/142)

<-- 혼약 -->                드레스가 벗어진 피부에 냉기가 와 닿았다. 평소라면 소름이 약간 돋을 정도의 기온이었지만 세리나는 그리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허리와 뒤의 조임 장치를 풀고 드러난 왼쪽 어깨에 입을 맞추던 에스트레드는 차가운 그녀의 체온에 어두운 얼굴을 했다. 상처는 다 나아 흉터만이 남았지만 어깨 근처가 보랏빛이 돌 정도로 차가웠다. 황자는 천천히 손가락 끝으로 그 주변을 짚어보았다. 확실히 차가웠다.

“...체온이 많이 내려간 것 같은데.”

“설마요. 다른 부분은 재보면 정상입니다. 어깨 주변 피부 표면의 온도는 내려간 게 맞다고 들었지만…”

세리나는 부드럽게 남편의 은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비단처럼 가늘고 긴,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감겨들었다. 기분 좋은 감촉에 그녀는 뺨을 그의 정수리에 올려놓았다. 차가운 냉기는 언제나 에스트레드의 것이었고, 자신의 몸이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것도 그리 낯선 느낌은 아니었다. 차라리 냉기는 그녀에게 언제나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것이었으니까.

“아냐. 내가 네 체온을 모를 리가 없다. 분명히 좀 더 차가워졌어.”

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더 몸이 안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오랜 동안의 기사 생활과 수련으로 돌처럼 강인한 그녀의 몸은 그리 쉽게 피곤해지거나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컨디션의 저하는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최근 들어 몸이 차고 아픈 것이 꽤 자주 있는 일이어서 굳이 에스트레드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세리나는 고개를 숙여 에스트레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전하의 손으로 따뜻하게 만들어 주세요.”

제법 야하게도 느껴지는 말에 황자는 고개를 들어서 아내의 녹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맑고 깊은 눈이었다. 에스트레드가 언제나 한결같이 사랑해온 청명한 눈. 그는 아내의 차가운 어깨를 감싸쥐고 부드럽게 문질러주었다. 황자의 조심스러운 손길 아래에서 세리나의 피부가 천천히 온기를 되찾아갔다. 투명한 흰 피부가 제 색도 찾아갔다. 에스트레드는 조금 어처구니 없는 말투로 투덜거렸다.

“이제 꽤 야한 소리도 할줄 알게 되고 말이야.”

“경험이 부족한 거지 학습능력이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

미소를 띄우고 황자비는 틀어올렸던 풍성한 금발을 풀어내렸다. 황홀한 금빛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에스트레드는 그녀를 끌어당겨 다시 한번 키스를 했다. 그의 품 안에 세리나의 가느다란 허리가 더 깊이 안겼다. 아내는 스스로 드레스를 내리고 코르셋의 복잡한 매듭을 풀었다. 황자는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혼자서 잘도 푸는데?”

“이걸 안 풀면 잠옷도 못입는데, 당연하죠.”

“기사 시절엔 한번도 안해봤을 거 아냐? 안나를 시키지 않는 건가?”

“뭘 잠옷 입는 것까지 안나를 부릅니까.”

여자의 길고 하얀 손가락이 스스로 코르셋의 끈을 풀어나가는 광경은 기묘할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세리나가 침대 위에서 돌아앉아 옷을 벗느라 에스트레드는 그녀의 손가락이 복잡한 매듭 사이를 오가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 감질날 정도로 느리지만 쉬지 않고 손가락이 끈을 풀어나갔다. 천천히 풀려난 매듭이 느슨해지고 코르셋이 빠져나갈 만큼 틈이 생기자 에스트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숨을 내쉬었다. 세리나는 남편을 돌아보며 조금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시죠?”

“...아니, 뭐…”

남자에게 익숙한 여자였다면 유혹을 위해 한 행동이었겠지만 세리나는 아니다. 에스트레드는 그것이 사랑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여전히 의아한 얼굴을 한 아내를 끌어다가 남은 옷가지를 모두 내려주고 그는 매끄러운 여체를 꼭 끌어안았다.

세리나는 에스트레드의 상의를 풀어주며 그에게 입을 맞췄다. 바깥으로 극한의 냉기를 흩뿌리는 남자는, 자신의 품안에 있는 여자에게만은 안온하고 따스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이제 세리나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어떤 방식의 보호이든 에스트레드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리나를 소중하게 대했다. 여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리나 리엔은 홀로 설 수 있는 여자임에도 그랬다.

그가 모든 옷가지를 탈의하고 아내를 안아 품 안에 넣었다.

“너를 사랑해, 나의 아내. 나의 세리나.”

“에스트레드님.”

남편의 몸이 홧홧하게 달아오른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세리나는 그의 가슴에 어깨를 기댔다. 소담하고 모양 놓은 그녀의 가슴이 에스트레드의 피부에 밀착되었고 남자는 그녀의 다리를 잡아 자신의 허리에 둘렀다. 손가락으로 아내의 은밀한 틈 주위를 애무하고, 그 안으로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자 처음에 다소 뻑뻑했던 구멍은 곧 달콤한 애액을 흘리며 그를 반겼다. 쫄깃하게 손가락을 물어오는 내벽에 에스트레드는 작게 신음성을 내며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박았다. 아내는 입을 꼭 다물고 목을 울리며 남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의 허리를 감은 여자의 다리에 자신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날카로운 근육이 팽팽하게 일어섰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결혼식과...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선물해 주겠다.”

에스트레드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는 절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제국의 황제였고, 아내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바로 그 옆자리, 황후의 자리였다. 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자신은 지위에 그리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주군이 원한다면-혹은 그녀의 남편이 원한다면, 기꺼이 그의 의지에 따르고자 했다.

에스트레드의 남성이 천천히 세리나의 몸 안으로 진입했다. 빠듯하게 그의 물건을 감싸는 자신의 질이 곧 찢어질까 겁이 나서 그녀는 숨을 멈췄다. 이제 성관계에 아주 많이 익숙해졌는데도 에스트레드의 남성은 지나치게 컸다. 언제나 시작 지점에서는 세리나가 겁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그걸 알고 남편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천천히 그녀를 안았다. 넓게 벌린 다리 사이로 애액이 흘러내렸고 곧 완전히 남편을 몸 안에 들인 세리나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랫배쪽 자궁이 완전히 채워진 기분이었다. 뜨겁고, 가득 차고, 팽팽했다. 완전히 충만해진 느낌에 여자는 다리를 남편의 허리에 두르고 속삭였다.

“내가 따를 수 없는 명은 이제 한가지 뿐입니다.”

“뭐지?”

“당신을 떠나라는 말. 절대로 듣지 않아요.”

예전의 그녀는 진짜 반려가 된다면 그의 앞길에 방해가 될 테니 에스트레드가 제위에 오른 후 수도를 떠나려고 생각했었다. 지금 돌이키면, 절대로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을 거라고 세리나는 확신했다. 그에게 누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에스트레드의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황자의 곁을 떠나서는 숨을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세리나는 또한 에스트레드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확신했다. 에스트레드가 낮게 웃었다. 떠나다니, 누가 누구를 말인가.

“떠나라는 말 같은 건 이 대륙이 가라앉는다고 해도 내가 하지 않는다.”

에스트레드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찌걱거리며 접합부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충분히 젖은 세리나의 질 안에서 에스트레드의 남성이 매끄럽게 왕복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허릿짓에 맞춰 힘겹게 허리를 움직이면서 아내는 아랫배 깊은 곳을 두드리기 시작하는 쾌감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내뱉었다.

“아, 앗, 흑...아!”

“세리나….”

움직임이 점점 더 격해져갔다. 세리나는 신음을 누르지 않고 내보냈다. 에스트레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내의 다리를 한계까지 벌려 자신의 어깨에 올리고, 에스트레드는 그녀의 골반을 붙잡고 허리를 움직였다. 퍽퍽 살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반복되는 움직임에 세리나는 절정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남편의 어깨를 끌어다 잡아당겼다. 에스트레드는 순순히 그녀의 손길에 끌려 몸을 숙였다. 아내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황자는 아내에게 안긴 채로 허릿짓에 박차를 가했다.

“에, 에스트레드님...아, 읏….아, 흐앗…!”

곧 눈앞이 새하얗게 변하는 절정이 찾아왔다. 쾌락에 발발 떨면서 세리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땀에 젖어 희게 드러나는 목선을 베어물면서 에스트레드 역시 마지막으로 허리를 강하게 쳐올렸다. 그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다. 몸 안에 뜨겁게 퍼지는 남편의 정액을 느끼면서 세리나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몸에 잘게 경련이 일었다. 땀에 젖은 몸에 절정이 휩쓸고 지나가 끈적했지만 에스트레드와 세리나 둘 다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침대의 이불이 몸 사이로 엉겨들었다. 세리나는 달디단 한숨을 쉬며 남편에게 더 깊이 안겼다. 에스트레드는 그녀의 금발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조금만 자자, 세리나.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움직이는 거야.”

“기꺼이, 에스트레드님.”

밖에서 정치 공세가 목을 조여오고 있었지만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질 수는 있다. 꿀맛 같은 부부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에스트레드는 아내를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두세시간 후 이 눈을 뜨면 곧 반격을 위한 순간을 준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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