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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의 왕관-56화 (5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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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나는 이를 악물고 발버둥을 쳤다. 곧 녹색 줄기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입 안으로 들어온 줄기를 물어 뜯었지만 줄기는 단단했다. 허리를 감은 굵은 줄기가 세리나의 체중을 받쳐 안고 손목과 발목을 묶은 줄기들은 더 활짝 벌려져 그녀의 사지를 캐딜럿 앞에 내보였다. 마법사가 손을 들자 넓은 공동 안에 흩어져있던 견습 마법사들이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세리나는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캐딜럿은 그녀의 드레스를 들어올렸다. 천천히 다리 끝부터 타고 올라온 키메라의 줄기들이 흰 허벅지를 감고 올라갔다. 전부 남성으로만 구성된 견습 마법사들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지만 눈은 떼지 않았다. 반대로 캐딜럿은 조금의 당황도 없이 욕심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했다. 그 욕심은 성욕이 아니라 실험체를 향한 잘못된 욕심 쪽이었다.

“항상 탐나는 실험체였는데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손에 넣게 되는군.”

마법사가 낮게 웃었다. 어디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체액만 받아내면 되니까. 페로몬을 가장 진하고 깊게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은 남자의 정액, 여자의 애액을 받아내는 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다량의 혈액이 좀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에스트레드가 그녀를 사지 멀쩡하게 데리고 오라 했다니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욕심이 채워진 와중에도 약간 아쉬움이 남아 그는 입맛을 다셨다.

키메라의 줄기가 기어올라가 그녀의 가슴을 휘어감았다. 얄팍한 드레스 한겹 위로 차갑고 미끈한 줄기들이 둥근 가슴을 감싸는 느낌에 세리나는 당황했다. 다리 사이를 노골적으로 더듬는 줄기 끝으로 빨판처럼 생긴 끄트머리들이 생겨났다. 비에 젖은 얇은 속옷 한겹 위로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그 위를 훑었다. 배꼽 안을 슬금슬금 훑는 촉수의 움직임에 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 아래 예민한 아랫배와 둔덕 위로 줄기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광경을 보며 침을 삼키던 견습 중 하나가 간신히 더듬으며 입을 떼었다.

“저, 저...저희가 하면 안될까요?”

“저도...이왕 시료를 체취한다면...저희 손을 거치는 게…”

저열한 욕심에 눈을 물들이고 남자들이 손을 비볐다. 견습 마법사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캐딜럿의 곁에서 이상한 실험의 대상이나 되고, 사적인 욕망을 채오는 것은 몇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경험이었다. 되기만 하면 영예가 보장되는 마법사의자리를 위해 괴팍한 스승의 취급을 참고 있지만 언제든 튕겨져 나갈 수 있는 사내들이었다.

“조가 죽었습니다, 저 계집을 능욕해서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습니다 스승님.”

사내 한명이 수습해 놓은 시신 쪽을 가리켰다. 자못 분에 찬 목소리였으나 캐딜럿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마법사 자리의 계승을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던 사이였다. 진심으로 울어줄 리 만무였다.

“더러운 소리 마라. 마법사가 되려면 마법 그 자체 외에는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내가 몇번이나 이야기했지?”

스승이 냉정하게 잘라냈다. 그 사이 키메라의 촉수는 계속해서 세리나의 몸을 배회했다. 젖은 드레스 위 아래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에 여자는 이를 악물었다. 저들이 말하는 시료채취라는 게 무엇인지 싫지만 알 것같았다. 다리 사이로 자꾸만 파고드는 키메라의 촉수가 그게 사실임을 알려주었다.

“자, 이제 샘플을 얻을 시간이다. 드물디 드문 페로몬의 소유자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겠군.”

캐딜럿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의 말과 함께 키메라의 움직임이 서서히 달라졌다. 입 안에 들어온 줄기 끝의 빨판에서 끈적하고 달콤한 액체가 혀 위로 흘러들었다. 뱉으려고 했지만 될 리가 없었다. 코까지 감싼 빨판 때문에 숨이 막혀 액체가 꿀꺽 목 아래로 넘어갔다. 그녀의 목젖이 움직이고, 둥근 가슴을 감싼 촉수가 빨판을 세워 유두 부분을 흡착했다. 날카로운 감각에 세리나가 신음을 토했다. 빨판들이 그녀의 예민한 부분들에 달라붙어 빨아들이고 핥기 시작했다. 동시 다발적으로 가해지는 자극에 세리나는 어쩔줄 몰라 하며 몸을 비틀었지만 팔과 다리와 허리를 구속하는 줄기의 힘은 상상보다 훨씬 더 강인했다.

발가락 끝에서부터 핥듯이 훑고 올라온 촉수들이 종아리를 지나 무릎 안쪽, 허벅지 안쪽으로 자국을 남기며 흘러들었다. 잘 단련되어 늘씬한 세리나의 흰 허벅다리 안쪽 더 깊은 곳으로 줄기가 슬근거리며 올라왔다. 목으로 넘어간 액체가 무엇이었는지 점차 몸에 힘이 빠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속옷 위로 은밀한 곳을 깊이 흡착하기 시작하는 촉수에 세리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겹 옷감이 버티고 있는데도 생소한 자극에 허리가 저절로 떨렸다. 주변을 둘러싼 견습 마법사들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남자들의 욕망어린 눈길을 깨닫고 세리나는 수치심과 모욕감에 이를 갈았다. 나이프 하나만 있었어도 전부 상대할 수 있는 얼간이들이었다.

“옷을 벗겨야지, 마지막 한겹까지.”

캐딜럿의 말투에는 가벼운 웃음까지 서려 있었다. 분노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손발이 묶여 무력한 채로, 그녀의 속옷 밑으로 키메라의 촉수가 슬금슬금 밀고 들어왔다. 활짝 열려진 양 다리 사이로 무방비한 깊은 곳을 가늘고 차가운 줄기의 끝이 헤짚고 다녔다. 가느다란 붓 끝으로 곳곳을 간지르는 듯한 감각에 여자는 몸서리를 쳤다. 곧 깊은 곳으로 가장 가느다란 줄기의 끝이 파고들어 왔다. 세리나는 가느다랗게 신음을 흘렸다.

“다치게는 하지 마라. 샘플만 얻는거야.”

키메라는 어둠숲에서 시료를 채취하는 용으로 특별히 개조, 제작된 것이었다. 숲 슬라임에 약물을 주입하고 마법을 걸어 만들어진 생명체는 정확히 마법사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그것은 제가 쥐고 있는 여체를 성적으로 자극하며 샘플을 얻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

‘아, 아…’

설마하니 이렇게 공개적으로 은밀한 곳을 내놓고 수치를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목구멍 속으로 주입된 액체 때문에 힘이 빠지고 흐려진 정신 속에서도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세리나의 왼쪽 약지에서 황후가 준 반지가 작게 반짝였다. 마법사와 그의 제자들은 곧 제물이 될 여자에게 정신을 쏟느라, 황자비는 상황의 수치심과 모욕감 때문에 그들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순간, 공동 안에 있는 모두의 눈이 멀 만큼 거센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그림자 자체가 사라질만큼 강한, 새하얀 백색의 빛이었다.

눈을 감싸쥔 채 비틀거리며 물러난 캐딜럿과 몇몇 견습들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겉보기에는 눈이랄 것이 없는 키메라 역시 자유로울 수 없는지 세리나의 손목과 발목을 구속했던 줄기들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 그녀를 놓쳤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서 그대로 놓여진 바닥에 주저앉았다. 세리나가 흐린 눈으로 고개를 들자 그녀의 앞에 희미하게 빛나는 발 한쌍이 서 있었다. 그녀는 애써 눈을 올려서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확인했다.

흐릿한 정신에도 세리나는 자신의 앞에 선 것이 인간을 닮은 환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마치 인간 남자처럼 생겼지만 얼굴이나 옷차림의 상세한 부분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환영. 그는 희미하게 빛을 내면서 세리나의 앞에서 키메라를 건드렸다. 석고상처럼 굳었던 키메라의 줄기가 하나둘 씩 검게 변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세리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헐떡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간단한 치유마법으로 간신히 시야를 회복한 마법사가 눈 앞에 선 환영을 바라보았다. 마치 인간 남자처럼 생긴 형체를 보고 그는 눈을 찌푸렸다. 자신이 공들여 만들어낸 키메라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아깝기도 했지만 동시에 강한 호기심이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건 또 뭐지…?”

캐딜럿은 호기심 반, 적의 반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뛰어난 마법사였으나 세상의 이치에 접근하기에는 아직 멀디 먼 자였다. 저런 류의 환영 마법은 본 적도 책에서 읽은 적도 없었다. 지식에 대한 욕망에 눈을 번뜩이며 마법사가 환영을 노려보았다. 손에 들어올 뻔한 샘플에 대한 아쉬움과 신기한 현상에 대한 학구열이 엇갈렸다.

“넌 누구냐! 인간이면 말을 하고, 유령이면 썩 꺼져라!”

[유령이라…]

“뭣…”

설마 유령같은 형체가 말을 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서 캐딜럿은 움찔 뒤로 물러섰다. 뒤늦게 흐릿하게나마 눈을 뜬 견습 마법사들도 붉어진 얼굴을 채 가라앉히지 못한 채 스승의 뒤로 모여 섰다.

얼굴이 없는 그저 형태일 뿐인데도 세리나는 ‘그’가 웃음을 띄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코 따스한 웃음은 아니었다. 차갑고 생기 없는 미소였다.

[아직 안된다, 마법사여.]

기묘한 목소리였다. 베일이 깊고 깊게 싸여진 듯, 얇으면서도 굵고 깊은 목소리.

[실험체가 부족한가? 마법사 캐딜럿.]

“누구냐!”

[여전히,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잡아먹어 놓고도.]

마법사는 마치 그 환영에 실체가 있는 것처럼 노려보았다. 형체가 검지손가락을 들어 캐딜럿을 가리켰다. 마치 화살에 쏘인 것처럼 마법사가 몸을 벌컥 움직였다.

[네 황제의 명을 받들어서 말이다.]

“누구냐고 물었다!”

사람의 형체를 한 환영은 천천히 손을 들었다.

[누구일 것 같은가? 넌 이미 알고 있겠지.]

“헛소리 마라, 닥쳐!”

[마법사의 운명, 잘못된 길, 네가 앞으로 걷게될 길.]

환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날카롭고 낮은 웃음소리가 길게 공동을 울렸다.

[나는 네가 희생시킨 동부 마법사들의 수장]

‘수장? 동부 마법사?’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설핏 알 것 같았다. 세리나는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연못 수면 아래에 누워있는 인간과 눈이 마주치고 그녀는 흠칫 뒤로 물러났다.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알 수 없는 인간은 눈을 뜬 채로 물 안에 떠 있었다. 길고 긴 검은 머리가 수면 밑으로 한없이 퍼져 밑으로 연결되었다. 그의 옆과 뒤로 많은 수의 인간들이 똑같은 형태로 수중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소름 끼치는 기분에 몸을 떨었다. 힘이 빠진 다리로 그녀는 뒤로 다리를 끌며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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