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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의 왕관-47화 (47/142)

<-- 비밀 -->                “반지?”

그날밤 침실에서 에스트레드가 불쾌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세리나는 왼손 약지에 끼워진 황후의 선물을 들어보였다.

“워-위치 출신이시지만 사물의 마법에도 대단한 능력이 있으신 듯 합니다. 이런 아티팩트는 황실 안에서도 상당히 드문데 말이죠. 소유자의 손가락에 잘 맞게 변화하는 능력이 과연 그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녀의 물건이군.”

황자는 그녀의 손을 끌어서 눈 앞에 보았다. 그가 끌어당겨보았지만 반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 피부가 새빨개진 것을 보고 에스트레드는 반지 주변을 차가운 손으로 매만져 주었다.

“공격적인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긴 한데 목적이 불분명해.”

한참 반지를 자신의 기운으로 스캔하던 에스트레드가 혀를 찼다.

“정체불명의 물건을 손가락에 낀 것 치고는 굉장히 평온한 얼굴이군.”

“뭐…”

세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손가락이잖습니까, 자르면 되지요. 팔찌가 아닌 것이 차라리 다행인지라.”

그 말에 에스트레드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되물었다.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어쩐지 간신히 입을 연 것이 느껴져서 세리나는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군인으로서 그녀의 논리로는 대단히 정당한 결론 도출이었다. 만약 팔찌였다면 왼팔을 통째로 잘랐어야 했을 테니 상당히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왼손 약지 하나쯤이야 별 것 아니었다. 오른손잡이인 그녀가 검을 잡는 데 특별히 방해가 될 만한 신체 부위도 아니었다.

“멀쩡한 반지라면 이런 식으로 제게 주지 않았을 테니 분명히 문제가 생길 겁니다. 감당할 수 없다면 잘라내면 되겠지요. 아, 사실 먼저 자를까도 생각했지만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됐어.”

단칼에 그녀의 제안을 자르면서 에스트레드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뭔가 짜증이 난 것 같은 그의 태도에 세리나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의 곁에 앉았다.

“이미 도나 누앤을 누가 채갔는지 아는 듯했습니다. 여러모로 제게 경고와 선전포고를 하더군요.”

“모를 리가 없지. 지금 황후와 각을 세우고 있는 건 나 뿐이니까.”

“벡스 레넌도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황실 내에 이미 황후와 척을 졌던 세력들이 하나 둘 씩 꺾여가고 있다고요.”

“그래. 황후의 반대파 척살은 이미 수년에 걸쳐 진행되온 작업이라 이제 거의 막바지 수준이다.”

에스트레드는 결혼전야 무도회에서 자신에게 독대를 요청했던 슈엔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부친, 밸러스 대공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원래도 제1황자와 황후 사이에서 박쥐처럼 굴던 자였지만 최소한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매우 영악한 자였다. 레드포 로마나와 에스트레드 사이에서 결국 에스트레드 쪽에 가능성이 좀 더 높다는 사실을 알고 어지간히 딸을 가지고 거래를 하고자 했다. 결국 에스트레드의 마음이 향한 곳은 다른 방향이었지만.

슈엔은 자신의 아버지가 갑자기 황후 쪽으로 돌아서 자신의 관할인 감찰단을 친황후파 사람들로 채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영리를 위해 중립을 유지하던 자가 자신의 조직을 한쪽으로 채우다니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에스트레드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던 슈엔 대공녀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 없었다.

애초에 에스트레드의 어머니인 메리타 궁부인이 어떤 뒷배경도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에스트레드 자신에게도 권력을 가진 친척이 있을 리 없었다. 간신히 성인식을 통과한 그는 바로 동부내란의 가운데로 보내졌고, 삼년을 전장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돌아왔다. 황궁 안에 그의 편이 될만한 귀족 가문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지난 삼년간 그가 한 일은 발디딜 틈도 없는 한끝 절벽 같은 황실 내부에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사건들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세리나가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느닷없는 마수의 출현. 클리스 로마나 전하의 폭주. 오르젤 로마나의 변태. 레이디 도나 누앤의 감금. 황후의 방문.”

간단하게 나열된 현재까지의 사건 리스트였다. 에스트레드는 이미 주의깊게 훑어보았던 사건들을 다시 한번 머리속으로 되짚었다.

“황후 폐하와 레드포 로마나 전하가 사건들의 뒤에 서있다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동기도 확실하고요. 다만 중간중간 연결고리가 빠져있다는 느낌은 드는데…”

“동기도 사실 불확실해. 제위의 야망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면 좀 이상한 움직임이다. 정치적으로 압박한다면 더 효율적으로 목적을 이룰 수도 있을 텐데.”

사실 그건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친황후파 귀족들이 요직을 거의 점거했다. 언젠가부터 허수아비가 된 황제는 알현실에 나와 앉아있어도 침묵을 지켰다.

그는 한숨을 짧게 쉬었다. 아내를 끌어안고 에스트레드는 세리나의 뺨과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따뜻한 황자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황자는 천천히 아내의 왼쪽 어깨를 따스하게 마사지해주었다. 많이 나아간다고 생각했던 상처는 예상처럼 나아있지 않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움찔거리는 세리나의 몸이 느껴져서 그는 아주 얇은 살얼음들을 손 표면에 만들어내어 어깨에 얼음찜질을 해주었다. 세리나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남자의 어깨 위로 고개를 떨궜다. 그 사이에 열이 올랐던 상처가 에스트레드의 한기를 받아 천천히 식어갔다.

“많이 아픈 모양이군.”

에스트레드는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은청색 눈동자가 가라앉은 것을 보고 세리나는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그는 그녀를 도구로만 여기지는 않았다. 사실 그랬기 때문에 처음부터 에스트레드를 향해 연심을 품게되었는지도 모른다. 벡스 레넌의 말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아픕니다...많이요.”

세리나는 작은 소리로 어리광을 부렸다. 어쩌면 기사가 된 열 네살 이후 첫 어리광인지도 몰랐다. 수호기사로서 세리나 리엔은 언제나 철혈과 같은 군인이었으니까. 그녀 자신이 스스로 인지하고 있지도 못했다.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아내의 목소리에 에스트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리며 조용히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녀로부터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세리나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마음껏 체향을 들이마셨다. 언제라도 청량하고 맑은, 사람의 혼을 빼앗는 페로몬이었다. 에스트레드는 한껏 그의 오감을 열었다. 세리나의 존재 자체가 황자의 예민하기 그지 없는 신경들로 한꺼번에 다가왔다. 한가운데 그녀만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 에스트레드가 그녀를 이끌어 몸을 함께 뉘였다.

여전히 몸 다른 곳보다 온도가 높은 어깨의 상처에 입을 맞추어 한기를 불어넣어주고 그는 아내가 입은 얇은 카디건과 슬립을 어깨에서 밀어내었다. 실크 드레스가 아래로 내려가며 백옥같이 흰 가슴 피부가 나타났다. 동글고 소담한 가슴 사이로 황자가 조심히 입을 맞췄다. 양 가슴 위의 유실을 이빨로 물자 세리나에게서 낮은 신음성이 흘렀다.

황자의 조심스러운 손길이 황자비의 다리 사이로 밀려들어갔다. 다리를 좀 더 넓게 벌리면서 그녀는 허리를 들었다. 에스트레드 로마나는, 최소한 현재는, 그녀의 남편이었고- 세리나 리엔은 그를 욕심낼 권리가 있었다. 세리나는 한껏 몸을 열면서 그를 재촉했다.

타이트한 내벽의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은 에스트레드가 세리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녀를 달랬다. 몸이 달아오른 세리나가 신선하면서도 귀여웠다. 지난번 클리스 로마나의 손톱에 찔린 이후 가졌던 사흘간의 정사는 최음독에 의해 달아오른 세리나의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사랑의 행위라기 보다는 치료에 가까웠다.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

에스트레드는 자신의 바지를 벗고 그녀를 돌려 눕혀 뒤에서 안았다. 가능한 몸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녀를 오른쪽으로 뉘이고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천천히 진입했다. 세리나가 허리를 떨면서 내벽을 빠듯하게 채우는 거대한 물건에 울었다.

“에스트레드님…흑, 흐읏, 앗…!”

황자는 다정하게 그녀의 뒷머리와 뒷목에 입을 맞추며 허리를 움직였다. 점차 빨라지는 허릿짓에 세리나가 몸을 뒤틀었다. 전기처럼 뜨겁고 아픈 쾌락이 뇌리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황자는 최대한 자신을 자제하면서 그녀만을 위해 움직였다.

곧 자신의 몸 안에 배출되는 뜨거운 정액을 느끼면서 세리나가 몸을 떨었다. 한껏 목을 뒤로 젖힌 채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끌어안고, 에스트레드가 조심스럽게 아내의 몸을 만져주었다. 번개같은 쾌락 뒤로 이어지는 솜처럼 조심스러운 손길에 세리나가 천천히 몸을 이완시켰다.

“자, 이제 나머지는 내일 생각하자.”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아내의 상처는 뜨거웠다. 세리나는 숨을 가라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그녀는 남자의 뺨을 손에 담았다.

“지금을 그리워하게 되겠죠…”

“뭐?”

거의 뭉개진 발음에 말을 알아듣지 못한 황자가 되물었지만 세리나는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곧 에스트레드가 한기를 불러내어 상처를 감싸주고, 그녀는 고요히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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