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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의 왕관-35화 (35/142)

<-- 새로운 국면 -->                다음날도 에스트레드는 자리를 비웠다. 언제나 일정이 빡빡한 것이 제국의 황자라지만 요즘은 좀 심했다. 그런 날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낮에 궁에 머물렀다면 밤에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세리나는 심심함을 달래려 산책 겸 말을 달린다고 핑계대며 잠시 동안 상단 게오르그 앞의 여관 겸 주점에 들렀다가 돌아왔다. 매일 그를 따라 나갈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였다.

“네게 신경을 쓰지 못해 미안하군. 하지만 곧 결혼식이니까, 며칠을 신혼으로 네게 할애하려면 지금 좀 고생하는 수 밖에 없다.”

황자는 미소를 지으며 세리나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내를 한껏 안은 잠자리에서 그는 세리나의 습기에 젖은 금발을 손가락으로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화려한 금발이 그녀의 목덜미와 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렸다. 여자는 남자의 늘씬하고 군살 없는 허리를 끌어안았다. 습한 피부가 매끄럽게 비벼지고 서로의 향기가 얽혀 공중에서 떠돌았다.

“그나저나 레드포도 클리스도 조용하군. 성가시지 않아서 좋긴 한데…”

에스트레드는 말끝을 흐렸다. 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데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며칠이었다.

몸이 멀쩡한 것이 확인된 클리스 로마나는 자신의 황궁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에스트레드의 얼음창에 꿰뚫리고도 며칠 뒤 아무런 상처 없이 나타난 그는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음울하게 황자궁 안을 배회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레드포 로마나는 슈엔 대공녀와의 혼담을 조용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전의 반려를 내치고 진행하는 혼담이라 에스트레드처럼 거한 결혼식은 예정되지 않았다. 황후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슈엔 대공녀는 이미 레드포의 황궁에 들어갔다. 그녀가 에스트레드에게 불태우던 열정을 생각하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었다.

“뭔가 진행되는 중이긴 한데 도대체 알 수가 없군요. 제가 아는 정보는 너무 한정되어 있어서…”

세리나는 남자의 얼굴을 흘끔 훔쳐보았다. 에스트레드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다만 여자의 어깨를 감싸안고 도닥거렸다. 손길은 지극히 다정했지만 세리나는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그의 가슴에 엎드렸다.

“그림자 꼬리라도 잡아야지.”

그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했다. 남자는 무슨 말이냐 물으려던 세리나를 자신의 몸 위로 가뿐히 안아올렸다.

“밑에서 봐도 참 아름답군.”

에스트레드가 미소를 지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야말로 좋은 광경이었다. 화려한 은발이 흰 침대보 위에 퍼진 채, 조각같이 아름다운 흰 피부의 남자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세리나는 얼굴을 에스트레드의 목덜미에 묻었다. 그의 체향이 짙고 낮게 그녀를 감싸안았다. 편안하면서 동시에 몽롱한 상태로, 그녀는 남자의 목에 입을 맞췄다. 남자의 페로몬이 서서히 세리나의 열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달콤한 기분으로 세리나는 에스트레드의 이마와 입술, 뺨과 목덜미에 차례로 입을 맞추며 내려왔다. 잘 뻗은 단단한 쇄골뼈를 쓸고 가슴 위에 키스하자 남자의 숨결이 거칠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곧 그의 길고 강인한 손가락이 세리나의 날씬한 골반을 쥐어왔다.

그녀는 남자의 가슴 위에 엎드리고 엉덩이를 들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다리 사이로 넣으면서, 세리나는 눈을 감았다. 분위기에 취해 낯뜨거운 짓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뇌 한구석에서 무척 부끄러워 하고 있었다. 살짝 위에 위치한 돌기를 손가락 끝으로 굴리고 짜릿하게 전기처럼 올라오는 감각에 잠깐 입술을 벌리고 허덕였다. 이미 에스트레드에게 한껏 안겨 부드럽고 녹진해진 은밀한 틈을 손가락으로 가르고 넣으면서 세리나는 신음을 삼켰다. 손가락에 감기는 눅진한 습기와 매끄러운 내벽, 빽빽한 조임이 수치스러우면서 쾌락적이었다.

그녀의 골반을 잡은 남자의 손가락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내일 아침이면 허벅지와 엉덩이 허리 부근으로 온통 그의 손자국으로 멍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리나는 그 힘을 빼라고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에스트레드가 지금 이순간 만큼은 자신을 보고 자신만을 열망한다는 자신감이 생겼으니까.

그녀는 남자의 가슴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유혹적으로 흔들리는 소담한 젖가슴에 에스트레드의 눈이 짙어졌다.

“얌전한 고양이인줄 알았더니, 어디서 이런 걸 배운 거지?”

“에스트레드님께 배웠지요.”

세리나의 녹색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이미 그와 몸을 섞은 지 몇달째였다. 초심자였던 그녀도 매일같은 섹스에 몸이 길들여지고 능숙해졌다. 세리나는 몸을 일으켜 그의 가슴에 손을 짚었다.

남자의 물건에 자신의 틈을 맞춘 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내렸다. 처음 해보는 체위라 어색하기도 했고 그의 남성이 상상 외로 거대하고 벅차게 느껴졌다. 매일 같은 성관계에 이미 다 알고 있고, 많이 익숙해 졌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생각 외였다. 이미 젖어버린 질이 아니었다면 품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작게 신음하면서 견디기 힘든 압박감을 버텼다.

매끄러운 내벽의 조임을 느끼면서 에스트레드는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세리나를 놀라서 올려다 보았다. 수줍어서 발갛게 물든 얼굴을 하고 금발의 황자비는 힘겹게 에스트레드의 물건을 완전히 품었다. 그의 하체 위에 앉아서 세리나는 움찔거리며 떨었다. 아랫배 깊숙히 들어온 거대한 남성이 지독하게 뜨겁고 버거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뱃속이 잘못되어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에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남자의 가슴을 짚고 꼼짝도 하지 못했다.

“움직여야지, 세리나.”

황자가 속삭였다. 욕망을 참느라 완전히 어두워진 낮은 목소리였다. 당장 그녀의 골반을 잡고 마음대로 허리를 쳐올리고 싶은 것을 막느라 그의 인내심이 닳아가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세리나는 길고 풍성한 금발로 얼굴을 가리고 조심조심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갰다.

하복부가 터질 것 같아 무서웠지만 그녀는 꾹 참고 허리를 움직였다. 어설퍼서 제대로 된 자극도 받지 못했지만 세리나는 무릎과 손으로 체중을 지탱하며 가능한 자신이 좋은 쪽을 찾아 몸을 움직였다. 에스트레드가 이걸 좋아했으면 싶었지만 버거운 감각에 그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너무...아…”

크고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세리나는 입술을 물었다. 그녀는 대신 좀 더 대담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의 흰 허벅지 안쪽으로 질척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응, 읏...읏…”

세리나는 낮게 신음성을 뱉으며 스스로 허리를 둥글게 돌렸다. 참을성이 다한 에스트레드가 곧 그녀의 허리와 골반을 잡고 자신이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해지는 압박에 세리나가 비명처럼 높은 신음을 올렸다.

“앗! 에, 에스트레...앙, 아응…!”

엇박자로 허리를 치대는 남자의 움직임에 그녀가 발로 시트를 마구 비비며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강철같은 남자의 손이 그녀를 꼼짝도 하지 못하게 잡았다. 세리나는 꼼짝없이 잡힌 채로 에스트레드의 몸 위에서 절정을 맞았다.

바짝 굳어있던 여자가 힘없이 침대로 허물어져 내렸다. 에스트레드는 그녀를 보듬으며 다시 자신의 품 안으로 그녀를 끌어들였다. 단단한 팔로 허리를 끌어안고, 그는 아내의 이마에 조심히 입을 맞췄다.

힘겨워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새삼스럽다. 세리나 리엔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간혹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그는 이런 그녀의 모습을 아는 것이 자신 뿐이라는 생각에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렇게 다정한 자신의 모습을 아는 것 역시 그녀 뿐이라는 사실을, 세리나는 알까 궁금했다.

“잠을 자야지. 밤이 늦었다.”

직접 수건에 물을 적혀와 아내의 몸을 씻어준 그가 조용히 속삭였다. 그녀는 비몽사몽한 기분으로 아름다운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달콤하고 다정한 표정. 에스트레드는 눈이 감기는 세리나의 얼굴을 확인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가벼운 검은 색의 승마용 복장을 하고 침실을 빠져나갔다.

잠이 든 것 같았던 세리나의 눈이 슬그머니 떠졌다. 오늘도 에스트레드는 밖으로 향했다. 오히려 낮보다 밤에 더 바쁜 것 같았다. 그는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다닌다고 생각하겠지만 전장에서 구른 수호기사의 감이 쉽사리 사라지는 건 아니다. 어느새 말똥말똥해진 눈으로 세리나는 이불을 걷었다. 길고 다정한 정사로 인해 달콤한 동통이 아랫배를 찔러왔다.

봄이긴 해도 밤바람은 서늘했다. 가만히 누워 곰곰히 생각하던 그녀는 급히 승마복으로 갈아입고 발끝을 세워 조심히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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