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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의 왕관-21화 (21/142)

<-- 뒷면의 길 -->                늦은밤, 황자궁의 침실로 돌아온 에스트레드는 생각에 잠겼다. 입을 다문 그의 앞에 손수 부드러운 스프와 차를 가져다 놓으면서 세리나가 앞에 앉았다.

“어떠셨습니까?”

“이상했지.”

황자가 혀를 찼다.

그가 중앙궁으로 말을 타고 나아갔을 때, 클리스 로마나는 그의 측근들과 함께 사냥을 위해 황궁 뒤의 숲으로 말을 달리고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거구의 남자는 적발을 흩날리며 에스트레드 쪽으로 흘긋 시선을 던졌다.

거구에는 부상은 커녕 폭주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어지간해서는 놀라지 않는 에스트레드도 얼굴을 굳힌 채 말을 멈췄을 정도였다.

“알겠지만, 클리스가 폭주했을 때는 거의 한달 이상을 기혈이 꼬인 채로 지낸다. 반신이 짐승인 채 벗어나지 못하지. 하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었어. 멀쩡한 몸으로 말을 타고 있었다.”

세리나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셈이었다. 폭주와 부상이 전부 사라졌다. 클리스 로마나가 패퇴하여 달아난 지 여드레밖에 되지 않았으니 사망했거나 최소한 지금쯤 곤죽이 되어 누워있어야 마땅했다.

“내가 찌르지 않았다면 허상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아니었지.”

에스트레드는 세리나가 습격을 받았던 밤, 시찰을 가던 길에 발견했던 고목을 기억했다. 완전히 생기가 빨려나간 마른 나무가 거대하고 기괴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카스가드 백작이 중얼거린 한마디가 아니었다면.

-아니,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이 나무가 멀쩡했는데. 정원사에게 내일 아침 한소리를 해야겠습니다.-

그림자 마법. 생명의 기운을 빨아먹고 자라나는 힘. 말라 죽은 나무 밑둥 아래로 검붉고 가늘게 실 같은 흔적이 에스트레드가 달려온 길을 되짚어 이어지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과 확신에 그대로 전력을 다해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세리나는 그대로 범해지고 살해당했을 것이다.

끔찍한 상상에 에스트레드는 손을 뻗어 세리나의 손을 잡았다. 길쭉하고 거친 손이 따스했다. 남자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 자신의 다리 위로 올려 앉혔다.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황자는 천천히 숨을 쉬었다. 공기 중에 느릿하게 결약된 두 사람의 향기가 섞어 피어오르고, 편안함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세리나는 황자의 은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은발이 비단처럼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천천히 부드러운 두피와 머리카락을 애무하자 황자는 한숨을 쉬며 더 가까이 반려를 끌어안았다. 늦은 밤, 등잔불의 낮은 불빛에 둘의 머리카락이 따뜻한 색으로 빛났다. 세리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전부터 여쭙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뭐지?”

“슈엔 대공녀님을, 왜 선택하지 않으셨습니까?”

잠깐 정적이 찾아왔다. 황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갑자기 무슨 소리지?”

“그저 궁금했을 따름입니다. 레이디 휘에리와 말씀을 나누다가 슈엔 대공녀님의 이야기가 나와서요.”

“....”

“대공녀님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무래도 실보다 득이 큽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이 역할을 철회하는 게 옳은 일 아닐까 싶어서…”

에스트레드는 혀를 찼다. 언제라도 도망갈 준비가 되어있는 이 여자를 어쩔까 싶어서.

“나는 대공과 대공녀를 싫어한다고 말했었지. 더 이유가 필요한가?”

“원래 사감에 그리 치우치는 분이 아니시지요. 또한 그렇더라도 분명 득이 큽니다. 전하의 제위 계승에는 대공의 힘이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또 전하라고 부르는군.”

남자가 그녀를 침대 위에 밀쳐 눕혔다. 여자는 당황하면서도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황자는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전...아니, 에스트레드. 이건 분명히 말씀을 나눠볼만한 부분입니다. 저는...잠깐만요, 오늘 아침에도 분명히…!”

“글쎄, 그건 어제치였고. 오늘치의 관계는 하지 못했는데?”

에스트레드가 심술맞게 말하면서 세리나의 가슴을 꽉 쥐었다. 얄팍한 비단 드레스 한겹만을 입고 있던 그녀가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아직 어깨가 자유롭지 못해서 여자는 한팔에 힘을 주어 황자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가 여자의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내 아내. 싫다면 물러나겠지만 날 거절하지 말아줘.”

낮은 목소리와 뜨거운 호흡에 밀어내던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는 결국 낮게 한숨을 쉬면서 남자의 목덜미에 팔을 걸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분명히 이렇게 말을 끝내버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들을 남자도 아니었다. 황자는 고집이 아주 셌으니까.

남자의 입술이 여자의 이마에서부터 천천히 키스를 하며 내려왔다. 이마, 코끝, 눈 위, 볼과 입술, 목덜미, 가슴까지. 민감한 아랫배에 혀를 미끄러뜨리며 애무하자 여자가 작게 신음했다.

“에스트레드…”

뜨거운 숨이 섞인 남자의 이름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에스트레드가 가슴 위에 입을 맞추면서 세리나와 시선을 맞췄다. 완전히 달아오른 은청색의 눈동자에, 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머리카락을 끌어당겨 스스로 입을 맞췄다. 저 눈동자만 보면 그가 정말 자신만을 원한다는 착각이 생겼다. 에스트레드는 기꺼이 초대를 받아들여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벌려진 채 한껏 서로를 탐하고 정복하려는 키스에 둘 모두가 신음했다.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벌려 그를 끌어당겼다.

세리나의 허리가 가늘다. 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허리를 지나 그 밑, 골반과 엉덩이를 어루만지다가 여자의 속옷을 벗기고 그 안에 손을 밀어넣었다. 손가락이 이곳저곳을 두드렸다. 수풀로 덮인 둔덕과 그 밑, 갈라진 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고 천천히 둥글게 돌리자 그녀가 허리를 구부렸다. 자신도 모르게 남자의 손을 다리 사이에 가둔 꼴이 된 채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떨렸다.

남자는 여자의 입술을 찾아 매달렸다. 긴 중지 하나가 세리나의 흰 다리 사이로 사라졌다. 질척이는 감촉을 즐기면서 그는 예민한 지점을 찾아 손을 움직였다. 에스트레드가 손을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리 사이에서 찌걱거리는 소리가 올라왔다.

“아, 아...앗.”

황자의 목에 매달려서 그녀는 몸을 비틀었다. 그의 긴 손가락이 예민한 곳을 찌르고 자극했다. 박자에 맞춰 허리를 움직이면서 여자는 자신의 몸이 절정에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오르가즘 바로 직전, 남자가 손가락을 빼내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리잡았다. 그의 거대한 물건이 다리 사이 은밀한 틈을 천천히 문지르는 것이 느껴졌다. 희고 긴 다리를 잡아 양 옆으로 벌린 채 에스트레드가 명령했다.

“세리나, 날 봐.”

숨을 허덕이면서 세리나는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긴 은발이 흐트러진 채 에스트레드가 거칠어진 숨을 감추지 않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은청색 눈동자와 그녀의 녹색 눈동자가 맞고, 시선이 고정되었다. 남자가 천천히 허리를 밀었다.

“읏…”

여자의 입술에서 낮게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한껏 벌린 다리 사이로, 언제나 버거운 크기의 남성이 밀고 들어왔다. 한계까지 벌어진 은밀한 구멍이 금방이라도 잘못될 것 같아서 겁에 질린 채 세리나는 입술을 물었다. 완전히 다 들어오자 골반이 벌어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자가 허리를 뒤로 빼자 그녀의 속살이 오물거리며 남성을 물어왔다. 쫄깃하게 조여드는 감각에 에스트레드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탄력있는 내벽이 그를 압박하며 숨막히는 감각을 선사했다.

“응, 앗, 흐읏, 흣!”

에스트레드에게 매달린 채 세리나는 남자를 버겁게 받아냈다. 아랫배가 불로 지진 것처럼 뜨겁고, 가득 차 있었다. 금방이라도 자궁이 타들어갈 것 같은 감각에 그녀는 바들바들 떨면서 다리를 오므리려고 애썼다. 이미 그와 몸을 섞은 지도 한달이 다 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쾌락에 신경줄이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세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황자의 침실 곁에는 호위병이 많았으니까.

둘의 매끄러운 피부 위로 땀방울이 맺혔다. 곧 에스트레드의 뜨거운 액체가 세리나의 뱃속에 흩뿌려지고, 세리나가 억눌린 신음성을 삼켰다. 그녀는 다리를 떨면서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에스트레드가 낮은 신음을 내면서 한번 더 허리를 쿡 처박자 세리나가 결국 짧은 비명을 터뜨렸다.

떨고 있는 여자를 끌어안으며 남자가 부드럽게 그녀의 옆으로 누웠다. 그는 상냥하게 땀에 젖은 세리나의 앞머리를 쓸어넘겨 주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로 뭔가 더 말을 하려 했지만, 에스트레드는 세리나의 입술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깊이 입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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