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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의 왕관-13화 (13/142)

<-- 황자비 -->                현 황후 라일리아 로마나는 황제의 첫번째 반려였던 전 황후가 급사한 후 들어앉은 두번째 부인이었다. 로마나 방계의 피를 이어받은 귀족가의 여식으로, 얌전하고 수더분한 타입이었던 첫번째 황후와는 전혀 다른 타입이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 발끝까지 끌릴 만큼 긴 검은 머리와 깊은 검은 눈으로 유명했다. 또한 라일리아가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녀가 마녀라는 사실이었다. 마법사가 드문 로마니엔에서 마녀는 더욱 드물었지만 라일리아는 전쟁터에서 대량학살로 가장 유명한 워-위치(War-Witch) 중 한명이었다. 황제와 만나게 된 것 역시 전쟁터였다고 했다.

“황후에게 도는 소문은 참 여러가지가 있지.”

에스트레드가 집무실 책상앞에 앉아 손깍지를 꼈다. 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뒤로 돌아가 원래 자리에 서려다가, 자신이 현재 드레스 차림인 것을 깨닫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시종장 호보프가 정중히 그녀를 일인용의 거대한 소파로 안내했다.

“굉장히 적대적으로 보이시던데요. 기사로서 뵐 때는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예상과 다른 전개니까 화가 좀 났을 것이다. 지금 제위 승계에 대한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텐데, 전제부터 틀려버린 거니까.”

원래 세리나는 권력다툼에 관심도 아는 것도 전혀 없었다. 수호기사의 임무는 자신의 주군을 지키는 것. 하지만 이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녀는 어쨌든 에스트레드의 반려로, 그가 제위에 오르도록 도울 적극성을 띄워야 했다.

“의아한 게...제14황자이신 레드포님이 유리하려면 차라리 제 쪽이 낫지 않습니까? 아, 물론 황후폐하의 입장에서요. 권력도 아무것도 없는 일반인인 반려이니 슈엔 대공녀님 보다 훨씬 지지를 받지 못할 테고.”

“그렇지. 하지만 황후는 마녀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속이 있을 테지.”

에스트레드는 턱을 괴었다.

“워-위치에 대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히스토르 내란에서 당시 워-위치였던 라일리아 로마나가 대량학살을 감행했던 것을 분석한 보고서였는데…”

세리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십여년 전 쯤 북부 산악지방인 히스토르에서 로마니엔 제국의 지배를 벗어나고자 하는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히스토르인들은 대대로 독립심이 매우 강한 민족이었고,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은 격렬했다. 물론 제국측에서는 이를 발칙한 내란으로 규정했다. 워-위치 라일리아 로마나가 내란 진압의 선봉에 서 있었다.

“당시 소규모의 제국군을 이끈 황후폐하의 놀라운 마법으로 히스토르 군을 백 퍼센트 척살하였고 제국군의 피해는 제로에 가까울 정도였다고 하지요. 항간의 음유시인들은 그에 대해 불 뿜는 드래곤을 소환했다, 마족의 제왕을 소환했다, 참 많은 이야기를 지어내고 헛소문이 돌았지만 아무도 진상은 몰랐습니다.”

“맞아. 어느 것도 진짜라고 할 수 없었지.”

내란의 결과는 참혹했다. 제국군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승리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히스토르 지방은 완전히 황폐화 되었다. 순수한 히스토르인의 자손은 단 한명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제국에서 선포될 지경이었다. 히스토르 내란은 이후 로마니엔 제국에 반항하는 소국이나 약소민족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내란 직후, 황제는 라일리아를 황후로 맞이하였다. 소문이 무성했다. 마녀의 활약에 매료된 황제가 그녀를 침대로 끌어들였다든가, 그녀의 페로몬이 황제를 위압할 정도로 강했다든가, 둘의 체향이 마치 열쇠와 자물쇠와 같았다든가. 그녀의 강함과 혹은 성적인 면에 대한 더러운 소문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보고서 상에 나타났던 것 역시 별다른 게 없었다. 라일리아의 부관이 쓴 것이었지만...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지. 굉장히 이상하지 않나?”

“그건 정말로 이상하군요. 부관의 전후 보고서가 그따위라면 참수까지는 가지 않아도 징역형까지 갈 수 있는 사안 아닙니까?”

“맞아. 하지만 황제 폐하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걸 묻어버렸다...히스토르인 몇만명이 죽어갔지만 말이야.”

세리나는 허리를 조여오는 코르셋이 힘들어 한숨을 쉬었다.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어진 기사단의 정복과는 전혀 다른 옷이다. 이런 걸 입고 평생을 살다니. 그녀는 갑자기 귀족 아가씨들이 매우 존경스러워지기 시작했다. 힘겨워하는 세리나를 눈치 챈 에스트레드가 미소를 지으며 소파로 다가와 앉았다.

“아무래도, 레드포의 성인식 전에 결혼식을 올려야 면이 살겠지. 내가 서열자들 중에는 가장 윗선인데 말이야. 안그런가, 호보프.”

“그렇습니다. 오늘  황제 폐하께 정식 알현을 드리셨으니 곧 내무부에서 회의를 하고 일자가 잡힐 것입니다.”

시종장 호보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그가 키우다시피 한 황자가 드디어 결약을 맺고 그를 널리 알리는 일이었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모든 걸 최고급으로 준비해라. 황자비가 가장 빛날 수 있도록.”

호보프가 허리를 굽혔다. 황자궁의 최고 책임자가 그였으니 결혼식의 준비도 그가 하게될 것이다. 아직 날짜는 잡히지 않았어도 벌써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날짜에 맞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른 이도 아닌 에스트레드 로마나의 결혼식이었으니까.

세리나는 결혼식이라는 말을 듣고 부담감에 목이 막혔다. 에스트레드의 옆자리에서 모든 이에게 환하게 웃어줘야 하는 자리였다. 황족들의 결혼은 제국 수도를 행진한 뒤 황궁의 전당에서 예식을 올린다. 달리 말하면 수도의 모든 제국민들이 그들 부부를 보기 위해 거리로 나온다는 뜻이었다.

따뜻한 남자의 손이 세리나의 찬 손을 잡았다.

“너무 염려마. 그저 내 곁에만 있으면 되니까.”

에스트레드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세리나는 달콤하면서 동시에 비참한, 이상한 기분이 되어 그의 품에 몸을 기댔다. 시종장이 눈치 빠르게 찻잔과 디저트 쟁반을 치워 시종들과 함께 자리를 피해 방밖으로 나갔다. 황자가 뒤쪽 그림자를 향해 손짓했다.

“자리를 좀 피해주겠나, 바스트경?”

그림자 속에서 거짓말처럼 밀렌 바스트가 나타났다. 에스트레드와 세리나 두사람 다 의례히 알고 있던 일이라 놀라지도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림자 기사’ 밀렌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고 허리 굽혀 인사하고 다시 사라졌다.

“저 친구도 참. 말도 안거는군요.”

“밀렌은 어색해하고 있는 거야. 동료 기사이자 친한 친구이던 자네가, 어느날 갑자기 황자비가 되어 나타나 버리니까.”

“그렇다고 해도…”

투덜거리는 세리나의 입술이 곧 에스트레드의 입술에 가로막혔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입술은 곧 천천히 그녀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와 입안을 침범했다. 달콤하고 따스하게 퍼지는 감각에 세리나는 온 몸을 맡겼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녀는 남자가 이끄는 대로 입맞춤에 빠져들었다.

“이 소파는 제법 크고 푹신해서 마음에 든단 말이야.”

세리나의 얼굴이 빨개졌다. 둘 다 밤을 생각하고 있었다. 기억도 흐릿할 정도로 본능에 충실했던 밤. 에스트레드는 세리나의 가운을 들어올리고 등 뒤로 손을 넣어 안의 코르셋을 신중하게 풀어나갔다. 허리가 조금 편해지자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다시 천일화의 향기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신경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 같았다.

앞에 꼼꼼하게 챙겨 입은 속옷 위로 남자가 손을 미끄러뜨렸다. 훤히 드러난 쇄골 위로 입을 맞추면서 그는 안타깝게 말했다.

“요즘 드레스의 유행이 깊이 파인 형태라서 참 아쉽군. 목깃이 올라오는 형태라면 자국을 좀 남겨줄텐데 말이야.”

“에스트레드...그런 말씀은.”

“알아.”

그는 드레스 밑에 손을 넣고 천천히 손가락 끝으로 속옷 아래의 둔덕을 문질렀다. 갈라진 틈 사이로 속옷이 천천히 젖어갔다. 약간 밀어넣자 세리나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그의 어깨로 묻었다.

“아직 부어있군.”

미끌미끌한 손가락 끝을 비비며 에스트레드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더이상 진행하는 건 무리다. 그는 갈라진 틈을 타고 들어가 위에 볼록히 솟아오른 돌기를 찾아냈다. 손톱 끝으로 긁자 여자의 목소리가 튀었다. 회음부를 쓸어내리고 돌기를 비비고 돌리자 세리나가 입술을 물며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쾌감을 참는 억눌린 신음성이 남자를 자극했다.

매끄러운 여자의 다리를 벌리고서 드레스 자락을 완전히 위로 올렸다. 자신의 은밀한 곳에 얼굴을 묻는 남자를 보고도 세리나는 차마 말릴 생각을 못한 채 입을 막았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쾌락이 하반신에서 치솟았다. 미끈한 혀가 돌기를 희롱하고, 부어서 예민한 구멍 안쪽을 건드린다. 다리 사이에서 움직이는 에스트레드의 화려한 은발을 내려다보면서 세리나는 결국 절정의 신음을 터뜨렸다. 허리가 달달 떨리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흥건하게 액체가 흘러내릴 정도였다. 에스트레드는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차려입은 드레스가 완전히 흐트러진 채, 단정하던 여기사는 그의 아래에서 떨고 있었다.

“쉬, 괜찮아.”

황자는 그녀의 금발을 쓸어내려 정리해주면서 다정하게 속삭였다. 공기중에서는 다시 한번 그들의 체향이 뒤섞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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