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까마귀 죽이기 (8)화 (8/95)

07화.

“대장님은 어째서 그 사제가 필요하십니까?”

“그의 능력을 못 봤나?”

“하지만 고작 그런 거로….”

“못 본 거로 하라고 했을텐데.”

해일러는 또다시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손에서 나이프를 떨어트렸다. 루이스라면 여기서 못 봤다고 대답했을까? 루이스라면 이 바보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까? 꼬리를 물고 늘어가는 자괴감에 그녀의 표정이 어그러졌다.

“해일러.”

낮은 저음이 적막한 방 안에 퍼졌다. 가면과 부딪힌 소리가 울려 더욱 위압적이었다. 해일러는 제 주인과 나름대로 신뢰를 쌓고,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럴 때면 늘 공포에 사로잡히곤 했다. 식은땀이 흘렀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예… 네…. 대장.”

“그런 얼굴을 하면 생각을 다 읽히지 않나.”

“죄송합니다.”

“그 사제는 조만간 엑젤리스에 가장 필요한 인재가 될 거야.”

“전 시키시는 대로 그저 따르겠습니다.”

“루이스와 비교하는 건 그만두게. 그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그대를 루이스와 동급으로 대해주긴 아직 이르지 않나.”

해일러는 그 딱딱한 말투가 나름의 위로라는 걸 알고 있었다. 주군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건만, 그 앞에서 감정조차 못 숨기고 얼굴을 붉혔으니 본인이 생각해도 참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 * *

다음날, 꽤 이른 시간부터 성에 외부인이 찾아왔다.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던 비예단이었다.

“저, 녹스 엑젤리스…. 각하를 뵈러 왔습니다.”

경비병들은 익숙한 얼굴에 서로 눈짓을 한 뒤 ‘모셔다드리겠습니다.’라며 비예단의 양팔을 각각 잡았다. 비예단은 체포당하듯 끌려가고 있어 기분이 나쁠 법도 했지만, ‘감사합니다.’라고 공손히 인사만 할 뿐 인상을 쓰거나 불쾌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긴장한 것인지 꼭 그러쥔 손에선 떨림이 느껴졌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 네….”

누굴 기다리라는 건지, 어딜 가는 것인지 묻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비예단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오로지 감탄만 할 뿐이었다.

절벽을 깎아 건설한 엑젤리스 성은 비예단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예술품처럼 보였다. 멀리서 봤을 땐 투박해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교한 조각에 건설 등엔 전혀 흥미가 없는 비예단조차도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놀라움이 들었다. 목석처럼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지도 알아채지 못했다.

“아름다운 곳이죠?”

고개를 쳐들고 넋을 놓고 있을 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뒤를 돌자 셰이단이 소년에게 고개를 숙여 정중히 인사했다.

“앗, 안녕하세요. 이른 아침에 실례가 많습니다.”

비예단은 자신의 인사를 받으며 작게 미소짓는 셰이단을 보고, 엑젤리스에 온 후로 처음 받는 화답에 안심이 되었다.

“주인님을 뵈러 오셨다 전해 들었습니다.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감…. 감사합니다.”

“주인님께 어디서 오셨다고 전해 드리면 될까요?”

“저, 저는 비예단입니다. 베르티아의 사제라고 말씀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비예단?”

셰이단이 과하게 놀라는 어투로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진심으로 놀란 건 아니었다. 녹스가 비예단이 라카르 지방 출신인 걸 알곤, 고향이 같은 셰이단을 보내 맞이하게 했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연극에 지나지 않았다.

“네?”

“이런, 무례를 범했군요. 고향 사람을 만나는 건 오랜만이라서요.”

“어? 그럼 혹시….”

“저도 라카르 지방 출신입니다. 비예단 님은 아직 어리시니, 부모님께서 저와 고향이 같으셨나 보군요.”

“아, 맞아요!”

연극은 생각 이상으로 잘 통했다. 언제 긴장하고 있었냐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맞장구를 치는 비예단은 라카르 사람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다는 얼굴이었다. 셰이단은 언젠가 비예단이 녹스를 배신하기라도 했을 때를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고, 시작은 훌륭했다.

“저는 엑젤리스 성의 집사, 셰이단입니다. 편하게 이름을 불러주시면 됩니다.”

“셰이단 님! 그럼 라카르에서 사신 적이 있으신 거예요?”

“어린 시절 잠깐이지만, 그렇죠.”

“저는 한 번도 못 가봤어요.”

“30년도 더 전에 멸망했으니까요. 비예단이면, 라카르어로 ‘구원하는 자’네요. 이름과 어울리는 훌륭한 직업을 가지셨군요.”

“별말씀을요…. 여기서 같은 지역 사람을 보니까 너무 반가워요.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거든요.”

긴장이 풀리자 언제 경직되었었냐는 듯 조잘대는 모습에 셰이단은 이 소년이 안쓰러웠다. 녹스의 눈에 띈 이상 소년이 절대로 좋은 결말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비롯된 동정심이었다.

하지만, 셰이단은 그런 인간성보단 주인을 향한 충심이 강한 자였다. 엑젤리스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녹스가 바라는 바를 위해서라면 그를 모시는 사람들은 개인적인 인간성은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긴장은 제 앞이 아니라, 이 성의 주인이신 엑젤리스 님 앞에서 하셔야 할 겁니다. 빈말로라도 만만하신 분은 절대 아니거든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또 식은땀이 나네요….”

“그래도 불우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자애로운 분이시기도 하죠.”

해일러가 가져온 정보들이 별 볼 일 없음에도 녹스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제를 만난다는 것에 전혀 긴장감을 느끼지 않았다.

고작 어린 사제일 뿐이고, 그 눈은 몹시 절박해 보여 자신이 무슨 제안을 하든 간에 다 받아들일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제안이 어린 사제가 감당하기엔 힘든 것일지라도. 소년이 제게 무엇을 요구하든 간에, 그는 더 중요한 걸 받아 갈 셈이었다.

녹스는 정확히, 비예단의 ‘목숨’이 필요했다.

집무실 의자에 앉아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익숙한 발소리가 났다. 이내 작은 노크 소리가 두 번 들리더니 발소리의 주인인 집사가 사제가 도착했음을 알렸다.

“주인님. 베르티아에서 사제가 왔습니다.”

녹스가 정확히 예상한 시간이었다. 그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시간인 동시에, 비예단은 중요한 걸 잃게 될 시간.

집사가 살짝 문을 열었을 때, 녹스는 다시금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가면을 집어 들었다. 대외적으로 나갈 일이 있다면 반드시 착용했던 이 가면이 불러오는 공포심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압도되는 분위기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얼굴에 딱 맞게 씌워진 가면 사이로 빛나는 눈이 들어오는 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었다. 비예단은 그 눈초리를 느끼곤 더욱더 주눅 들었다. 촉망받는 인생을 살아온 어린 사제가 견디기엔 버거운 눈빛이었다.

“엑젤리스 각하를… 뵙습니다….”

“앉지.”

비예단에게 앉기를 권한 그의 나직한 목소리는 배려가 아닌 명령의 느낌이었다. 책상 의자에 앉아있다가 응접용 소파로 자리를 옮긴 녹스는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거만한 자세였고, 비예단은 그와 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았다.

푹신하게 제 몸을 감싸는 소파는 세상 물정 모르는 비예단이 보기에도 무척 고가의 제품이었다. 작위를 잃은 사생아 출신이라 하여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한 것도 있었는데, 그 생각들이 민망해졌다.

집사가 차를 준비하기 위해 티 테이블로 몸을 돌렸고, 녹스는 민감한 이야기를 할 것임에도 굳이 그를 내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비예단.”

이름을 부르는 한 마디에 비예단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누가 봐도 떨고 있음이 분명한 손은 무릎 위에 꽉 그러쥐어 굳세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더크에게 들었던 그의 잔악한 소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사람이… 친족을 살해한 살인자….’

생각을 잊기 위해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목석처럼 딱딱해진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대답조차 하지 못한 채, 그저 눈을 굴려 포식자를 바라보는 그 작은 산짐승 같은 모습이 짓궂은 마음을 불러왔다. 녹스는 꽤 당황할만한 질문을 내뱉었다.

“그대는 날 죽일 작정인가?”

“무슨…그런…, 당치도 않은 말씀이십니다.”

영문도 모른 채로 아연실색하며 대답하는 비예단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녹스가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아는 것인지 궁금했던 마음마저 날아가 버렸다. 그 와중에도 집사는 태연하게 그의 앞에 찻잔을 내려두었다. 집무실에 있는 세 명의 사람이 모두 다른 세상에 있는 듯 이질적이고도 낯선 분위기가 흘렀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가 죽는 그 순간에 내 옆에 있을 거라 장담하는 거지?”

“그게 무슨…?”

“목이 잘린 찰나의 순간이면 다시 살려낼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성문 앞에서 녹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며 했던 말들이 생각나며 비예단은 얼굴이 붉어졌다. 너무 간절하고 긴박한 심정에 사제로서는 하면 안 될 오만한 언행을 한 것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초에 신 혹은 사제 등에 별로 관심이 없던 녹스는 비예단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유능한 능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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