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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66)화 (66/101)

66화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끊임없이 입을 맞추던 일리아는 돌연 카일루스를 밀어내며 숨을 몰아쉬었다. 얼마나 붙어 있었던 것인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아, 잠시만요…….”

“괜찮아?”

“네. 괜찮아요.”

일리아를 소파에 내려 준 카일루스는 번들거리는 그녀의 입술을 손으로 문질렀다. 자신이 이렇게 자제력이 없는 사람인 줄은 카일루스도 미처 몰랐다. 아직은 이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리아의 모든 것이 탐이 났다. 아무래도 일리아가 첫사랑이기 때문인 듯했다. 봄바람처럼 찾아온 사랑이라는 감정은 카일루스의 인내심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고작 입맞춤 한 번도 참지 못할 정도로.

“더는 안 되겠어.”

“네?”

“이만 가 볼게. 더 있다가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거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제압할 수 있어요!”

“…그래도 안 돼.”

겉옷을 챙겨 든 카일루스는 일리아의 손을 잡고 저택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 내내 하인들이 그들을 힐끔거렸지만 일리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카일루스의 손을 더욱 힘껏 붙잡았다.

“조심히 가요.”

“플레타 백작과 만날 때는 기사를 동행하도록 해.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으니까.”

“그럴게요.”

카일루스는 일리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웃었다.

“그럼 가 볼게. 당분간은 바빠서 못 올 거야.”

“지방 영지 조사 때문이죠?”

“그래. 그래도 그대가 오는 건 상관없으니 언제든지 와.”

“…알겠어요.”

카일루스와 한 번 더 인사를 나눈 일리아는 에스테반 가문의 마차가 대문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 *

사흘 후, 오스카에게 미리 허락을 받은 일리아는 세실라와 함께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피델리오가 황성이 아닌 중앙 광장에서 만나자고 전해 왔기 때문이다. 일리아는 왠지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 꺼림직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차피 마지막 만남일 테니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오셨습니까.”

일리아가 중앙 광장에 도착하자 피델리오가 정중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피처럼 붉은 장미 꽃다발이었다. 일리아는 꽃다발을 받아 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예쁘네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피델리오는 일리아를 레스토랑까지 에스코트했다. 그러면서 그림자같이 따라붙는 세실라에게 ‘호위 기사분은 마차에서 기다리시는 게 어떨까요?’ 하고 이야기하며 대놓고 따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세실라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닌지라 ‘전 아가씨와 한 몸이거든요. 각하와 데이트하실 때도 따라다니는걸요.’ 하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일리아의 곁을 지켰다. 아무래도 카일루스에게서 따로 언질을 받은 모양이었다. 피델리오가 허튼수작을 부리지 못하도록 딱 붙어서 감시하라고.

일리아는 웃음을 참으며 세실라를 제 쪽으로 더 끌어당겼다.

“세실라가 원래 걱정이 많은 편이거든요. 폐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폐가 되었다. 적어도 피델리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망설임 없이 4인석으로 걸음을 옮긴 세실라는 일리아를 냅다 자신의 옆에 앉혔다. 피델리오가 한숨을 삼키며 물었다.

“같이 드시려는 겁니까? 호위 기사가요?”

“네. 괜찮죠, 아가씨?”

일리아는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괜찮죠, 플레타 백작님?”

“…네. 괜찮습니다.”

피델리오의 수난은 음식이 나온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세실라는 피델리오가 무슨 말을 꺼내려고만 하면 일리아의 주의를 돌려 대화를 차단했다. ‘고기가 고기 맛이네요.’라든가 ‘여기는 터가 좋은 것 같아요.’라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해 대면서. 덕분에 피델리오는 일리아와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식사를 마쳐야만 했다.

피델리오는 부아가 치밀었지만 일단 참았다. 어차피 식사 시간에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예의지 않던가. 대화는 디저트 카페에서 나누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피델리오의 바람은 디저트 카페에 가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실라가 또다시 비슷한 수법으로 훼방을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참다못한 피델리오는 세실라의 행동을 지적했다.

“아무리 호위 기사여도 너무 무례한 것 아닙니까?”

“아가씨께서도 가만히 계시는데 왜 백작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라니체 영애.”

피델리오의 언짢아하는 목소리에 일리아는 얼굴을 굳히며 세실라를 만류했다. 물론 목소리는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세실라, 적당히 해.”

“네. 죄송해요.”

그렇게 어색한 디저트 타임이 끝이 났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카페를 나선 피델리오는 일리아에게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잠시 걸으시겠습니까.”

“네. 그래요.”

일리아와 피델리오가 앞서 걷고, 세실라가 뒤를 따랐다. 겨우 세실라의 방해에서 자유로워진 피델리오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일리아에게 속삭였다.

“사실은 단둘이서만 있고 싶었는데 말이죠.”

“…하하, 제가 워낙 이런저런 일에 잘 휘말리는 편이라서요. 나간다니까 걱정이 되었나 봐요.”

“기분이 나쁘지는 않으십니까?”

“네? 왜요?”

“그라니체 영애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닙니까. 고작 호위 기사가.”

일리아는 눈썹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절 생각해 주는 게 기특하기만 한걸요.”

“그라니체 영애께서 그렇게 느끼신다면 다행이지만요.”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일리아는 뚱한 얼굴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길 몇 분 후,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실라는 우산을 가져오기 위해 서둘러 마차로 향했고, 이때다 싶었던 피델리오는 일리아를 호숫가 쪽으로 이끌었다. 워낙 찰나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일리아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백작님, 잠시만요!”

피델리오는 호숫가 안쪽의 숲까지 들어가서야 일리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이게 대체…….”

“이제야 겨우 둘만 남았군요.”

의미심장하게 웃은 피델리오는 겉옷을 벗어 일리아의 머리 위에 덮어 주었다.

“산책은 틀린 것 같고 잠시 비를 피할 곳을 찾아보죠.”

“…네.”

말없이 호숫가를 걷던 피델리오는 수풀 안쪽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멈춰 섰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피델리오는 비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살폈다. 이대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려는 모양이었다.

‘그냥 지금 확실하게 정리하자.’

마음을 굳힌 일리아는 피델리오에게 겉옷을 돌려주며 말했다.

“백작님께서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 잘 알고 있어요.”

“아신다면 긴말할 필요 없겠군요.”

일리아는 부드럽게 웃는 피델리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드릴 말씀은 이것뿐이에요.”

“저로는 안 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피델리오는 의외로 쉽게 단념했다. 그동안 일리아가 참고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그라니체 영애.”

“괜찮아요. 그럼 저는 이만…….”

“크와아아악!”

그때, 우거진 수풀 너머에서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려왔다. 일리아는 어깨를 흠칫 떨며 자세를 잡았다. 수풀을 헤치고 나온 것은 검은 비늘을 가진 마물이었다.

‘마물이 왜 여기서 나와!’

일리아는 피델리오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화친 논의가 끝났다고는 하나 마물의 존재를 들켜서 좋을 것은 없었다. 피델리오가 의구심을 가지기 전에 어떻게든 무마해야만 했다.

‘뭐라고 하지? 그냥 마수라고 우기면 되나? 과연 속을까?’

일리아가 마물과 피델리오를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마물을 슬쩍 훑어본 피델리오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말했다.

“특이하게 생긴 마수로군요.”

좋아. 이거다! 일리아는 피델리오의 말을 덥석 물었다.

“마, 맞아요! 마수예요, 마수! 아제로스 제국은 원래 마수의 출몰이 잦거든요. 가끔 저런 변종도 나타난답니다!”

“변종 마수라…….”

피델리오가 애써 흥미로워하는 기색을 숨기며 물었다.

“상대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럼요! 물론이죠. 귀빈을 지키는 것도 제 임무 중 하나니까요. 다 저한테 맡기세요!”

일리아는 물먹은 드레스를 털어 내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움직여 그대로 마물의 몸을 꿰뚫었다. 빗줄기에 마력을 담아 바람으로 쏘아 보낸 것이다.

순식간에 수십 개의 비수에 찔린 마물은 단말마의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고,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실로 경이로운 능력이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일리아를 주시하던 피델리오는 상황이 일단락되자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그러고는 짧게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역시 대단하시군요. 저런 변종 마수를 일격에 잡으시다니요.”

일리아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별것 아니었어요. 일단 돌아가죠. 마수가 또 나타날지도 모르니까요.”

“또 나타나지는 않을 것 같지만… 알겠습니다. 가시죠.”

일리아와 피델리오가 호숫가를 벗어나자 산책로 주변을 서성이던 세실라가 일리아를 향해 부리나케 뛰어왔다.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세실라는?”

“…괜찮아요.”

세실라는 들고 있던 우산을 일리아에게 넘기고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러고는 가만히 서 있는 피델리오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일리아를 마차까지 에스코트한 세실라는 차가운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피델리오가 있었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일리아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에는 카일루스에게서 언질을 받고 피델리오를 경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세실라는 그냥 피델리오라는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듯했다. 딱히 접점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세실라는 플레타 백작님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냥 싫어요.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쁘다고? 사냥 대회 때는 그런 말 없었잖아.”

“그때는 멀리서 봤잖아요. 가까이서 보니까 확실히 알겠어요. 마음에 안 들어요.”

세실라는 피델리오의 모습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해서 창밖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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