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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56)화 (56/101)

56화 

* * *

저택으로 돌아오니 황성에서 편지가 와 있었다. 발신인은 이사벨라였다.

[일리아에게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어요. 클리드에게 물어보니 방어 마법이라고 하더라고요. 꽤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이렇게 예쁜 빛깔의 마정석은 처음 봐서 너무 신기한 거 있죠?

다음에 황녀궁에 놀러 와요. 보답으로 맛있는 디저트라도 대접할게요.]

일리아는 뿌듯해하는 얼굴로 편지를 내려놨다. 그리고 답신을 쓰기 위해 새 편지지를 꺼내려는데, 창 밖에서 ‘야옹!’ 하고 맑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일리아는 창틀에 몸을 지탱한 채로 후원을 내려다봤다. 녹음이 우거진 잔디 위로 하얀 솜뭉치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뒷다리에 검붉은 핏자국이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글렌의 영주성에서 만났던 바로 그 고양이인 듯했다.

잠시 고민하던 일리아는 창문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일리아가 약한 바람을 일으키며 잔디 위로 내려서자 고양이가 그르릉거리며 그녀의 드레스 자락에 얼굴을 비볐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고양이는 선명한 황금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야옹거렸다. 고양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일리아는 문득 카일루스가 떠올랐다. 괜히 친근감이 들었다.

“나랑 같이 살고 싶어서 따라온 거야?”

“야옹!”

고양이는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다리를 폴짝거렸다.

“귀여워!”

한참이나 고양이를 안고 잔디 위를 구르던 일리아는 내친김에 저택에서 고양이를 기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일리아가 저택의 로비를 막 지날 무렵, 마침 엘레나가 업무를 마치고 거실로 나오는 게 보였다. 일리아는 한달음에 달려가 엘레나를 불렀다.

“어머니!”

“저택 안에서는 뛰어다니지 말라고 누누이……. 웬 고양이니?”

“파견지에서 만난 고양이인데 아무래도 절 따라온 것 같아요.”

일리아가 눈을 반짝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키우게 해 주세요!”

“안 돼. 네 손으로 화분 하나 안 키워 봤으면서 고양이를 어떻게 키워?”

“키울 수 있어요. 에나도 있고 세실라도 있잖아요.”

“다들 각자 할 일이 있는데 어떻게 고양이만 봐?”

엘레나가 강경하게 나오자 일리아는 작전을 바꾸었다. 이럴 때는 감정에 호소하는 게 직방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저마저 손을 놓아 버리면 이 아이는 갈 데가 없는걸요. 글렌에서부터 저만 보고 따라온 아이예요.”

“일리아…….”

“이런 아이를 어떻게 내보내겠어요. 제가 진짜 잘 돌볼게요. 네?”

일리아가 엘레나를 애처롭게 바라보자 고양이 역시 큰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엘레나를 올려다봤다. 그 눈빛이 얼마나 간절한지, 마치 ‘저 여기서 살고 싶어요.’ 하고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머니이…….”

“야오옹…….”

애처로운 두 쌍의 눈동자에 마음이 약해진 엘레나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잘 돌볼 수 있겠어?”

“그럼요! 사고 치지 않게 교육도 단단히 시키고, 밥도 잘 챙길게요!”

“하나 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도록 해. 생명의 무게는 그렇게 가볍지 않단다.”

“알고 있어요. 명심할게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일리아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원으로 향했다.

“잘됐다. 그렇지, 사샤?”

“야옹!”

“네 이름은 사샤고, 앞으로 여기가 네가 살 집이야. 잘 봐 둬.”

일리아는 고양이 사샤에게 저택의 이곳저곳을 소개시켜 주었다. 일리아의 품에 안겨 주변을 둘러보던 사샤는 저택이 마음에 든 것인지 앞다리를 휘휘 내저으며 맑게 울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일리아는 복잡하던 머릿속이 금세 말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고마워, 사샤. 앞으로 잘 지내자.”

“야옹!”

* * *

이튿날. 일리아는 새로운 보고서와 함께 단장실을 찾았다.

“앉아. 보고하러 온 거지?”

“네.”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해. 괜찮으니까.”

“그러지, 뭐.”

오스카가 노란 캐모마일차를 내밀었다. 은은한 향기가 화려한 단장실을 가득 메웠다.

“일단 보고부터 들을까. 네 파견지가 하베룬이었지?”

“으음, 그게… 마부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글렌에 갔었어.”

“글렌에?”

일리아는 영상석을 보여 주며 글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맙소사. 글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아니, 마물이 이렇게 나타나는 거였어?”

“응. 그러니까 수색을 해도 성과가 없었던 거야.”

“이건 꽤 큰 발견이야, 일리아. 당장 폐하께 보고해야겠어.”

“자, 잠깐만, 오스카!”

일리아는 오스카를 막아서며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사, 사실 아직 못 한 말이 있어.”

“뭔데?”

“그러니까…….”

일리아는 밤중에 수도 없이 외웠던 말을 꺼냈다. 아직 제대로 된 연결점을 찾지는 못했지만 글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듀크 그레고리와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용병들이 영주성을 점거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리 영주가 자리를 비웠다고 한들 성에는 사병을 비롯한 관리 인력이 꽤 남아 있었을 터였다. 그들 역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어엿한 기사로, 고작 이름 없는 용병단에 질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

즉, 그들이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전부 황제의 최측근인 듀크 그레고리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네 말도 일리는 있네.”

바이에드는 상벌에 가차 없는 편이었지만, 유독 측근들에게는 약했다. 언젠가 듀크 그레고리가 부하를 죽였을 때도 크게 징계하지 않고 넘어간 적도 있었다. 사고였다고는 하나 그렇게 덮어 버릴 만큼 작은 사건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럼 보고는 다음 대회의에서 내가 직접 올릴게.”

“네가?”

“그러는 편이 제일 나을 것 같아서.”

“그러다 폐하께 미운털이라도 박히면 어쩌려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냥 두었다가는 다른 도시도 같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이 문제가 대회의에서 다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오스카는 마법사단의 단장으로서 대회의에 참석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임명된 지 일 년도 안 된 단장이 대회의에서 독단으로 이런 보고를 올린다면 바이에드는 물론이고 다른 귀족들의 시선 역시 좋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대회의에는 듀크 그레고리도 참석하지 않던가. 자칫 가문 간의 싸움으로 번질 우려도 있었다.

“그냥 황태자 전하께 맡기는 건 어때?”

“전하께?”

“응. 네가 직접 대화해 보고 결정해. 전하께서 과연 글렌을 구해 주실 만한 분인지, 아닌지. 내가 각하께 부탁해서 자리를 마련해 볼 테니까.”

“으음, 나쁘지 않네. 좋아. 일단 그렇게 하자. 부탁할게.”

일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결국 게트릭 로한슨과 영상석은 테오도르의 손에 들어갔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어 본 결과 그를 믿을 수 있겠다고 판단한 오스카가 보고서와 함께 모든 증거를 넘겼기 때문이다.

일리아로서는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헤이스팅스 가문은 당분간 바이에드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겠지만, 적어도 원망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테오도르가 게트릭을 제대로 심문하고 듀크와의 관계만 밝혀낸다면 그레고리 가문을 쳐 내고 바이에드의 전력을 다소 약화시킬 수 있으리라.

‘대회의는 사냥 대회 이후에 열린다고 했지.’

어차피 대회의 안건은 일리아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 일리아는 일단 사냥 대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 사냥 대회는 프노이트 사절단에 아제로스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즉, 그들 역시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 일리아는 피델리오 플레타의 실력을 확인할 생각에 내심 설렜다.

“다 됐어요, 아가씨.”

에나의 말에 상념을 털어 낸 일리아는 우아하게 거울 앞에 섰다. 화려한 승마복과 높이 올려 묶은 머리가 조화롭게 잘 어울렸다.

일리아는 가슴에 마법사단의 부단장을 상징하는 배지를 달고 하얀 장갑을 꼈다.

“큰 놈으로 한번 잡아 볼게.”

“살살 하세요. 괜히 다치지 마시고요.”

“하하, 누구랑 똑같은 말을 하네. 알겠어. 그럼 다녀올게!”

두 대의 거대한 마차가 그라니체 저택을 나섰다. 레이븐과 엘레나가 한 마차에, 그리고 일리아와 클리드가 또 다른 마차에 탔다. 세실라는 호위를 명목으로 말을 탔다.

일리아는 세실라에게 작게 손을 흔들어 주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일리아.”

“응?”

“그러니까…….”

클리드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럴 만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리아에게 어떻게 ‘차원의 봉인에 문제가 생겼으니 조심해.’ 하고 이야기하겠는가.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부가적으로 설명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그냥. 조심하라고.”

“에이, 내가 애도 아니고. 알겠으니까 걱정하지 마.”

“여차하면 내가 준 목걸이도 꼭 쓰고.”

“아, 맞아. 이 목걸이…….”

일리아가 말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마차가 작은 소음을 내며 멈춰 섰다.

“응? 뭐라고?”

“아니야. 다음에 얘기할게. 일단 가자.”

사냥 대회는 내성 외곽에 있는 거대한 사냥터에서 열렸다. 평소에는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클리드는 일리아와 함께 사냥터에 들어서다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일리아, 잠깐 아이기스 좀 보고 올게. 잘하고 있어.”

“응. 다녀와.”

클리드가 자리를 뜨고, 일리아는 세실라와 함께 사냥터를 둘러봤다. 많은 귀족들이 하나둘씩 관람석으로 모이고 있었다.

“사람이 꽤 많네.”

“그러게요. 그래도 아가씨의 적수는 없네요. 우승은 아가씨 거예요.”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세실라. 그런데 저 사람은 조금 강해 보이지 않아?”

일리아의 시선 끝에는 카일루스가 서 있었다. 그는 사냥 대회 때 탈 말을 점검하며 에스테반 가문의 기사, 디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금 강해 보이기는 하네요.”

“그렇지?”

일리아의 시선을 느낀 카일루스가 고개를 휙 돌렸다. 일리아가 작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카일루스는 고삐를 디노에게 넘기고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왔다.

“왔어?”

“카일루스도 일찍 왔네요?”

“사냥터 좀 둘러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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