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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의 귀염둥이가 되었습니다 (15)화 (15/101)

15화 

일리아는 설탕이 소복하게 쌓인 사과쿠키를 집어 먹었다. 버터의 고소한 맛과 진한 사과 향이 일품이었다.

“맛있어!”

“입맛에 맞으셔서 다행입니다.”

“각하께선 좋은 파티시에를 두셨네.”

일리아의 말에 올린은 씁쓸하게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

“전혀 감사해하는 얼굴이 아닌데?”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올린은 울적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죄송합니다. 아가씨께서는 좋은 의미로 칭찬해 주신 건데…….”

“혹시 각하께서 올린이 만든 디저트를 별로 안 좋아하시는 거야?”

올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한 입 이상은 드시지 않으십니다. 제 실력이 부족한 탓이겠죠.”

“너무하네. 그래도 열심히 만든 건데.”

“아, 아닙니다! 얼마나 좋은 분이신데요. 각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올린은 원래 어느 남작 가문의 전속 파티시에였다. 온화한 남작 부부는 올린의 디저트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올린 역시 그럭저럭 괜찮은 임금을 받으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영유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로 유학을 떠났던 남작 영식이 저택으로 돌아오면서 사달이 났다. 그는 가문의 전속 파티시에가 요리 대회에서 상 하나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올린을 따라다니며 끈질기게 괴롭혔다. 때로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올린은 억울했다. 자는 시간까지 줄여 가며 열심히 일했는데 고작 상)하나 때문에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도무지 참기 힘들었다. 그래서 술을 먹고 친한 하인에게 푸념을 했다. 그것이 함정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 하인은 당장 남작 영식에게 달려가 모든 것을 고했고, 올린은 그날로 남작 가문에서 쫓겨났다.

“정말 흠씬 두들겨 맞았습니다. 그동안 받은 임금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죠.”

“맙소사…….”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을 때, 저를 구해 주신 분이 바로 각하셨습니다.”

카일루스는 쓰러진 올린을 마차에 태워 손수 의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올린이 파티시에라는 것을 알게 되자 마침 자리가 비었다며 흔쾌히 스카우트까지 해 주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디저트를 만들 수 있게 되었죠.”

“각하께서 정말 좋은 일을 하셨네.”

“그러니 더욱 열심히 연습해서 각하께서도 만족하실 수 있을 만한 디저트를 만들 겁니다!”

“응원할게, 올린.”

“감사합니다!”

일리아에게 꾸벅 인사를 한 올린은 다시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조리대로 향했다.

그런 올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리아는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섰다.

‘그렇게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으셨던 것 같은데.’

일리아는 전쟁터에서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거하게 사고를 치고 막사를 옮긴 이후, 일리아는 종종 카일루스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때마다 카일루스는 무슨 음식이 나오든 편식하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가브리엘라라는 병사가 취사 담당을 맡았을 때만 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가브리엘라는 지독한 설탕 중독자로 아무 음식에나 몰래 설탕을 섞는 바람에 많은 병사들의 원성을 샀었다. 그래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해 보니 지나칠 정도로 질색을 하셨지.’

일리아는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부족할 것 없는 에스테반 저택에 왜 하필 파티시에만 없었겠는가. 그건 바로 카일루스가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리아는 제 앞에 놓인 접시를 내려다봤다. 올린의 디저트는 화려한 외형만큼이나 달달하기 그지없었다. 즉, 카일루스의 입맛과는 완전히 상극이라는 것.

‘하여간 성격은 좋아 가지고.’

아무래도 올린이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긴 모양이었다. 그런데 카일루스는 과연 알까. 그 배려가 올린을 더욱 고뇌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은 일리아는 올린에게 넌지시 말했다.

“올린, 오늘은 설탕을 뺀 담백한 디저트를 만들어 봐.”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디저트는 설탕이 팍팍 들어가야 맛있죠!”

“달지 않은 디저트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

일리아의 말에 올린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제, 제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한번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올린은 일리아에게 거듭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인사는 됐어. 정 감사하면 저 쿠키 좀 나눠 주든가. 간식으로 먹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마음껏 드십시오!”

올린에게서 쿠키를 건네받은 일리아는 가벼운 마음으로 주방을 나섰다. 청소는 망했지만, 맛있는 디저트가 카일루스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 주기를 바랐다.

* * *

올린은 직접 만든 스콘과 자몽잼을 들고 카일루스의 집무실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카일루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런 시간에 자리를 비우실 분이 아닌데.’

올린은 고민했다. 고작 디저트 하나 대접하겠다고 카일루스를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계속 기다리자니 정성껏 우린 홍차가 식을 것 같고.

이도 저도 못 하고 우왕좌왕하던 올린은 결국 울상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올린?”

그런데 그때, 복도 너머에서 카일루스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그를 불러 세웠다.

“각하!”

“무슨 일로…….”

의아해하는 얼굴로 올린을 쳐다보던 카일루스는 슬금슬금 풍겨 오는 과일 냄새에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이건…….”

“스콘과 설탕 없이 조리한 자몽잼입니다. 홍차 또한 진하게 우렸으니 함께 곁들여 드시면 달지 않게 드실 수 있을 겁니다!”

뜬금없는 올린의 말에 카일루스는 무심코 집무실 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의 집무실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 주방에 다녀간 모양이었다. 카일루스가 설탕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엘리엇을 제외하면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엘리엇에게는 함구령을 내렸으니 그가 올린에게 언질을 줬을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전장에서 함께 생활하며 그의 식습관을 파악할 수 있었던 일리아뿐이었다.

‘괜한 짓을 했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카일루스의 얼굴은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서재에 놓고 가. 가면서 청소할 사람도 불러 주고.”

“네? 청소요?”

“집무실이 난장판이 됐거든. 도저히 혼자서는 못 치울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올린이 디저트 트레이를 서재에 두고 나가고, 의자에 편하게 기대어 앉은 카일루스는 따뜻한 스콘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부슬부슬한 식감의 스콘은 진한 버터 향만이 혀끝을 맴돌 뿐 조금도 달지 않았다. 자몽잼 역시 특별히 신경 써서 만들었는지 과일 특유의 새콤달콤한 맛이 더욱 돋보였다. 이렇게 디저트를 즐겨 본 게 얼마 만이던가.

카일루스는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래서는 혼내지도 못하겠네.”

* * *

일리아는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에나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많은 일을 배우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평범하게 먼지를 터는 법과 무언가를 닦을 때 힘 조절을 하는 법 등을 배웠을 뿐.

일리아의 청소 능력을 상당히 얕잡아 본 처사였지만,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다. 괜한 과욕으로 또 사고를 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후우, 청소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일리아가 응접실 탁자를 닦고 있을 무렵이었다. 언제나처럼 서류를 손에 든 카일루스가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청소는 잘되어 가?”

“그럭저럭요.”

“내 집무실은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다른 곳은 잘도 닦고 있군.”

“…청소가 익숙해지면 다시 정리해 드릴게요. 그럼 됐죠?”

“기대하지.”

일리아는 장난스럽게 웃는 카일루스를 노려봤다.

“안 바쁘세요?”

“바빠.”

“근데 여기서 뭐 하세요?”

“일.”

“그러고 보니 폐하께서 부르셨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분명 아까…….”

“가기 싫어.”

카일루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것이 정말로 가기 싫은 모양이었다. 일리아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그를 향해 물었다.

“왜 가기 싫으신데요?”

“폐하께서 계속 쓸데없는 소리를 하셔서.”

“폐하께 쓸데없는 소리라니요. 누가 들으면 난리 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네요.”

“뭐 어때. 내 집인데.”

일리아가 카일루스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대체 뭐라고 하셨길래 그래요?”

“결혼하라고.”

“에이, 별거……. 겨, 결혼이요?”

“그래. 폐하께서 황녀 전하와 내 결혼을 주선하려고 하셔.”

바이에드는 카일루스가 전장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에게 끈질기게 결혼을 종용했다. 한두 번은 그러려니 했지만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압박을 가하니 이제는 귀찮다 못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가문으로서는 좋은 일 아니에요?”

“황녀 전하의 나이가 몇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야?”

“그러니까 올해로 열다섯……. 헉!”

“맞아. 열다섯이지.”

황제에게 있어 강한 세력을 가진 가신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쿠데타를 통한 황실 전복은 역사적으로도 수없이 반복되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바이에드는 그 점을 우려하여 황녀를 이용해 에스테반 가문을 휘어잡으려는 속셈인 듯했다.

아제로스 제국에서는 성년이 되지 않아도 결혼을 할 수 있는 데다가 방계 가족과의 결혼 또한 허용하고 있었다. 즉, 거리낄 게 없다는 것. 그러나 자신보다 열 살 이상이나 어린 미성년 여자아이를 부인으로 들일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거절할 수 없어요?”

“해 봤지. 안 먹혀.”

일리아 역시 정략결혼에 개인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황녀까지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으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어때요?”

“그대 같으면 믿을 것 같아?”

“…아니요.”

카일루스는 픽 웃으며 서류를 내려놨다.

“그 얘긴 됐고, 따로 일정은 없어?”

“휴가 중인데 일정이 있을 리가……. 아, 하나 있어요.”

일리아는 승전 기념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의도치 않게 크리스틴의 친구들과 말다툼을 했고, 그것 때문에 따로 자리를 갖기로 했다고.

“그런 일이 있었어?”

“그냥 사소한 다툼이었어요.”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네. 아무튼 잘 다녀와. 그대도 하루 정도는 쉬어야지.”

카일루스의 말에 일리아는 울컥했다. ‘하루 정도는’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부려 먹을 속셈인 걸까. 아무래도 이렇게 열심히 청소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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