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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 제발 좀 망하세요 (59)화 (59/130)

59화

초록색의 다이아몬드가 있었나?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분명 엄청 희귀하고 비싼 물건일 것이다. 이름부터도 다이아몬드잖아.

저만한 핑크 다이아몬드로 대저택을 살 수 있으니까…….

‘저건 도대체 얼마야?’

성 한 채 값은 되겠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데 메리가 상자를 들고 다가왔다. 나는 목을 양손으로 가리며 다급하게 몸을 틀었다.

“잠깐만요!”

메리가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녀가 눈빛으로 왜 그러냐고 물어왔다.

“그, 그걸 진짜 제 목에 거시려고요?”

“네.”

“그거 성 한 채 값은 되지 않을까요?”

“작은 성 정도는 살 수 있겠죠.”

메리가 가볍게 응수하면서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안 되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걸 목에 걸고 다닐 순 없다. 너무 부담스럽단 말이야!

거부하고 싶었으나 차마 손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목걸이를 들고 있는 메리의 손을 움직여 상자에 내려놓게 했다.

그리고 메리가 다시 목걸이를 꺼내기 전에 냉큼, 그러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상자를 안아 들었다.

“잠깐 공작님께 다녀올게요!”

“네?”

뒤에서 당황한 듯한 메리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뛰듯이 걸어 문을 열었다.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라도 그녀가 나를 붙잡을까 봐 조금 더 걸음을 빨리했다.

방이 넓어서인지 옆방인데도 제법 거리가 있었다.

떨어트리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걸어 문을 두드렸다. 이내 시종이 밖으로 나왔다.

“누구십니까?”

“저는,”

“들어오라고 해.”

내가 누구인지 밝히기도 전에 안에서 라이오넬의 목소리가 들렸다.

굳은 얼굴로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나를 보다가 하인들에게 손짓했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던 하인들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우르르 방 밖으로 나갔다.

성에서 온 하인도 커프스단추를 달아 주려다가 뒤로 물러났다. 그 옆에 메리가 나란히 섰다.

라이오넬은 그들을 내보내지 않고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거요.”

상자를 내밀자 라이오넬이 잠시 상자에 눈길을 주었다.

“이걸 왜 나에게 주지?”

“성 한 채 가격이라던데요. 이런 걸 하면 목이 부러질 거예요.”

“부목이라도 대 줘야겠군.”

진심이냐는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가볍게 웃었다.

“빌려주는 거니 부담 갖지 마.”

“그래서 부담스러운 거예요. 걸고 다니다가 흠집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그동안 그에게 금전적인 손해를 입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당한, 그러니까 핑곗거리는 있지만 책임질 일은 없는 것들이었다. 배상해야 하는 금전적 손해는 사양이라는 뜻이다.

목걸이와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뺐다.

라이오넬에게 손만 불쑥 내민 상태가 되었다.

그는 상자를 보다가 가볍게 말했다.

“그럼 일해서 갚아야지.”

“저를 평생 무보수로 부려 먹으시려고요?”

“역시 눈치가 빨라.”

그러고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갑자기 손은 왜 내밀지?

“아!”

작게 감탄하고 상자를 내려놓은 뒤 커프스단추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소매를 잠그며 투덜거렸다.

“평생 무보수 노동이라니.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알면서도 뒷골이 쭈뼛 선다니까! 소름 돋는 팔뚝을 문질렀다.

그리고 커프스를 단 소매 끝을 아래로 당겨 각을 잡고 다른 커프스단추를 들었다.

라이오넬이 한 박자 늦게 반대쪽 손도 내밀었다. 커프스단추로 소매를 고정하는데 머리 위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게 봐도 목걸이는 안 할 거예요.”

그가 설핏 웃더니 소매를 정리하는 내 손을 빤히 보았다.

“상자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단추를 달아 주다니. ……이런 일에 익숙한가 보군.”

언짢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익숙해졌는데 언짢아하고 그런담?

어이가 없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코로 숨을 훅 내뿜은 뒤 손을 떼어 냈다.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누가 시켜서요.”

“누가?”

자연스럽게 당신이 아니면 누구겠냐고 말하려다가 굳었다.

또다. 거리감과 친근함.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죽기 전처럼 그와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 상황이 낯설었다.

심리적 거리감 때문인지 저절로 뒷걸음질 쳐졌다. 그와 떨어진 뒤 애써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있어요. 그런 사람.”

“흐음…….”

묘한 비음을 흘리며 그가 목걸이 상자를 바라보았다.

캐물을 줄 알았는데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또 의심이나 하고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몸을 돌렸다.

‘목걸이도 줬으니까 나가야지!’

술렁이는 마음을 다잡고 메리를 보았다. 그녀가 따라오려는 듯 움직였다. 문으로 향하려는데 별안간 양어깨 옆으로 팔이 둘렸다.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나자 뒤통수에 체온이 닿았다.

고개를 젖히자 라이오넬의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무슨…….”

짓이냐고 물으려다가 목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여 목을 봤다. 연녹색의 투명한 보석이 빗장뼈 사이로 늘어져 있었다.

“흠집이 나도 상관없어. 어차피 창고에서 뒹굴던 것이니.”

목 뒤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커다랗고 흉터 많은 손이 물러가고, 등 뒤에서 느껴지던 온기 또한 멀어졌다.

어색하게 목덜미를 만지는데 그가 가면을 들어 얼굴에 쓰고 끈을 머리 뒤에서 묶었다.

가만히 서 있던 메리가 그제야 내 쪽으로 왔다.

“아가씨. 가면 씌워 드리겠습니다.”

으으. 아가씨라는 말에 진저리를 치자 라이오넬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메리가 눈을 크게 뜨고 몇 번 깜빡이더니 나에게 가면을 내밀었다. 입술만 겨우 보이는 새하얀 가면이었다.

메리가 머리 뒤에서 가면 끈을 묶어 주며 중얼거렸다.

“가망이 있어 보이네요. 저도 가담해야겠어요.”

“어디에요?”

“파우트 씨 계획에요.”

파우트 씨?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다.

무슨 말이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의뭉스럽게 웃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나와 라이오넬을 번갈아 보며 음흉하고도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 * *

가면무도회라 그런지 누가 입장했다고 알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라이오넬이 입장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겠지? 그러면 나는 목걸이를 사수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을 거야!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시선 몇 개가 라이오넬에게로 향했다.

뭐야. 가면을 썼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거람? 신분을 가린 채 자유롭게 놀기 위해 가면무도회를 하는 건데, 유명한 사람은 그러지도 못하는구나.

일단 사람들한테 휩쓸리기 전에 도망쳐야겠다.

나는 까치발을 들어 그에게 속삭였다.

“저는 혼자 다닐게요.”

라이오넬의 시선을 모른 체하며 두 발자국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주변에 충분히 들릴 만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그럼, 알터우드 공작님! 즐기다 가세요.”

“넬…….”

그는 나를 붙잡으려다가 말을 거는 귀족 때문에 실패했다.

곧 사람들이 설탕 냄새를 맡은 개미처럼 몰려와 그를 둘러쌌다.

가면을 쓰고 있어서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 심기가 불편한 티를 팍팍 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많은 걸 귀찮아하니까!

조금 쌤통이다 싶었다.

“흐흐흐.”

조용히 웃으며 몸을 돌렸다.

어디 한 구석에 붙어 맛있는 거나 먹다가 조용히 나가야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허리 높이의 넓은 상 위에 각종 디저트와 빵이 쌓인 걸 발견했다.

다가가 몽블랑 한 개를 집어 들었다.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눈만 겨우 가리는 파란 가면을 쓴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 목걸이는 그린 다이아몬드인가요?”

재빨리 씹어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

“네.”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인데, 대단하시군요. 어디 가문의 분이십니까?”

가면무도회에서 신분을 묻는 건 엄청난 결례이다. 방금 라이오넬의 정체를 만천하에 알리고 온 내가 할 생각은 아니지만!

나는 탐욕에 번뜩이는 남자의 눈을 보며 생긋 웃었다.

“가문이랄 건 없고, 목걸이는 대여했어요.”

“예?”

“대여비를 갚으려면 평생 무보수로 노동해야 해요.”

남자가 진위를 가늠하듯 나를 훑어보더니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홱 돌렸다.

남자의 뒷모습을 위아래로 흘겨보는데,

“하하하하!”

별안간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새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남자가 몸을 숙인 채 숨 가쁘게 웃고 있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신경도 안 쓰면서 말이다.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슬쩍 몸을 돌렸다.

맛있는 건 나중에 와서 먹어야지. 뒤돌아 벽으로 가려는데 남자가 내 뒤를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역시 연노란색이 잘 어울리시는군요.”

내가 연노란색 드레스를 입을 걸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잠시 드레스를 선물한 랜더스 공인가 싶었으나 고개를 저었다. 랜더스 공의 나이는 40대 후반이라고 들었는데 남자는 너무 젊어 보였다.

역시 그냥 자리를 피해야겠어.

“제가 누군지 모르시나 봅니다.”

“네.”

얼굴을 가리고 있는데 어떻게 알아요.

뚱한 마음을 애써 미소로 감추며 잠깐 눈을 마주치고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남자는 끈질기게 따라왔다.

“제 초대는 매몰차게 거절하셨으면서 가면무도회에는 오시다니. 서운합니다.”

“사람을 착각하신 것 같아요.”

유감스럽지만 나는 초대를 매몰차게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평소에 나를 초대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후자는 좀 눈물 나지만, 사실인 걸 어떡하겠어.

그럼 아까 웃은 것도 그냥 사람을 착각해서 그런 건가 보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줘야겠다 싶어 걸음을 멈추고 그와 마주 섰다. 남자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저는 착각한 적 없습니다.”

“저는 초대받은 적이 없고요.”

“나름 강렬한 첫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까맣게 잊었다니 서운하군요.”

강렬한 첫 만남이라고? 고개를 기울이자 남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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